무너진 것은 탑이 아니라 말이었다

바벨탑 신화와 소통

by Concept Varia

인간이 신을 자처하며 하늘로 올라가고자 할 때,

신은 단지 말과 언어를 빼앗았을 뿐이다.

이것이 소통의 힘이다.


수천 년 전의 이야기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신화가 있다.

인간이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우려 했을 때, 신은 그들을 벌하지 않았다.

무기를 뺏지도, 땅을 무너뜨리지도 않았다.

다만, "말을 흩어버렸다."
그 순간,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협력하지 못했으며, 결국 흩어졌다.

그들이 세운 바벨탑은 그 자리에 여전히 있었지만, 무너진 것은 탑이 아니라, 말이었다.

이 이야기는 단지 신화가 아니다.

오늘날의 조직, 커뮤니티, 심지어 작은 식당 안에서도 되풀이된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 팀은 흩어진다. 직책은 남고 마음은 떠난다. 시스템은 유지되지만, 신뢰는 사라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자, 조직을 욕망하는 존재다

수많은 커뮤니티, 단체, 조직, 계모임까지.

인간은 본능적으로 '함께'하려는 존재다.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 하고, 무리에 속하고자 한다.

이것은 생존의 본능이자 정서적 욕구다.

그러나 그 '함께'라는 구조 안에는 늘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들어선다.


함께 모인다는 것은 동시에 우위를 증명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발생시킨다.

서열, 역할, 권한, 영향력... 그리고 갈등.

조직의 본질은 소속과 권력의 충돌 지점에서 출발한다.

작은 식당이라는 조직, 가장 인간적인 충돌의 무대

나는 자그마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사장이라 불리는 나와, 직원이라 불리는 사람들.

그리고 직원들끼리의 미묘한 긴장. 때로는 뒷말로, 때로는 표정으로, 때로는 침묵으로 서로를 밀어내고 부딪힌다.

그럴 때마다 묻는다. '이 문제의 본질은 무엇일까?' 단지 돈 때문인가? 아니면 근무 환경, 복지, 보상 때문인가? 당연히 복잡한 이유가 얽혀 있다. 하지만 더 깊은 곳엔 언제나 말하지 못한 말이 있다.

갈등은 감정이 아니라 말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말했다.
"대부분의 인간 갈등은 서로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음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종종 소통을 '말하는 것'으로만 이해한다. 하지만 갈등은 대부분 듣지 못해서 발생한다.

정확히 말하면, 듣지 않아서가 아니라, 들릴 기회를 만들지 않아서다.

사장이 직원의 이야기를 '시간 내어 듣지 않을 때',
직원이 동료의 감정을 '들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할 때', 말은 사라진다.

그리고 말이 사라진 자리에 오해가 자란다.

바벨탑 신화에서, 신은 인간을 처벌하지 않았다. 그저 언어만 흩뜨렸다.

그런데도 인간은 더 이상 협력할 수 없었고, 결국 스스로 붕괴했다.

이 이야기에 소름이 돋는다.

조직이 무너지는 데 대단한 원인은 필요 없다.

권력 다툼, 자금난, 경쟁 실패 같은 복잡한 이유가 아니라, 말 하나, 언어 하나가 조직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그만큼 말은 무섭다. 아니, 말이 없다는 것이 무섭다.

복지보다 중요한 것, 성과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 소통

기업에서는 갈등이 생기면 보통 보상책을 논의한다.

임금 인상, 복지 확대, 제도 개선.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복지는 '결과적 위로'일 뿐이고, 소통은 '관계의 출발'이다.

소통 없는 복지는 관계를 유지시키지 못하고, 관계 없는 조직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러니 조직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소통, 그 관계의 숨결을 불어넣는 세 가지 움직임

작은 식당이라는 삶의 무대 위에서 매일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아무리 훌륭한 복지도, '말'이 죽으면 함께 죽어버린다는 것을.

그래서 묻는다.

우리는 어떻게 이 고요한 침묵을 뚫고, 관계의 숨결을 다시 불어넣을 수 있을까?


그 답은 거창한 혁신이 아닌,

지극히 본질적인 세 가지 움직임에 있었다.


1. 말의 샘을 터뜨리는 순간들: 존재를 드러내는 통로

말은 생명이고, 존재의 증명이다.

누구든, 어떤 이야기든 꺼내 놓을 수 있는 작은 틈, 그 말의 샘을 터뜨려야 한다. 딱딱한 회의실이 아니어도 좋다. 격식없고 늘상적이고 일상적인 자리에서 시작해야 한다.

주방 한 켠에서 대화를 시작하는 것,
각자가 진심으로 식사를 하는 것,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갖는 것.

이 모든 것은 단지 도구가 아니라,
'나 '라고 외치는 작은 목소리들이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숨죽이던 말들이 비로소 햇빛을 볼 때, 관계는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2. 귀 기울이는 영혼의 태도: 방어 없는 응시

소통은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마치 거울 앞에 선 듯 자신의 방어막을 거두고, 상대의 이야기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주는 '듣는 태도'다.

그들의 말이 때로 불편하고, 때로 날카로울지라도,
그것을 '나를 향한 공격'이 아닌 '조직의 성장통'으로 받아들이는 용기.

회의실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보다,
동료의 말을 먼저 요약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그 겸손한 시도가,
말의 벽을 허무는 첫 삽이 된다.

그 순간, 들리지 않던 소음 속에서 비로소 진심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3. 말의 흔적을 남기는 신념: 사라지지 않는 관계의 증거

말은 공기처럼 흩어진다. 한 순간 스쳐 지나가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된다.
하지만 그 말을 붙잡아 기록하고, 공유하며, 존중하는 순간, 관계는 눈에 보이는 실체가 된다.

가벼운 '비공식 회의록' 한 줄,
피드백에 대한 '리마인드' 한 통,
작은 제안이라도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알리는 '공지' 한마디.

이 모든 '흔적 남기기'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우리의 이야기는 중요하며, 우리는 서로에게 귀 기울이고 있다'는
굳건한 신뢰의 증거가 된다.

말이 흔적을 남길 때, 관계는 비로소 깊이를 더하고 견고해진다.


말은 존재의 증명이다

말을 통해 우리는 소속되고, 이해받고, 존재를 확인받는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모든 조직의 문제는 복잡해 보이지만, 실은 단 하나의 질문으로 압축할 수 있다.

“여기서 나는, 말할 수 있는가?”

말할 수 없다면,
말하지 못한다면,
말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 조직은 이미 내부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복지를 부정하지 않는다.
성과 관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것들 모두는 소통이 있을 때만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소통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시스템이 아니라, 철학이다.

그리고 말이 살아 있는 조직만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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