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에도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탕수육 이야기인 줄 알았다면 죄송합니다.
만년필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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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먹(컨버터 필링, converter filling): 전통적인 만년필 사용 방법.
펜 내부에 잉크를 주입하여 배럴에 저장해 두고 쓰는 방식이다. 안정적이고 오래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찍먹(디핑, dipping): 펜의 가장 원초적인 사용 방법.
닙을 잉크에 직접 찍어 글을 쓰는 방식이다.
필요한 만큼만 바로 써볼 수 있고, 세척과 관리가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사전에 등재된 단어는 아니지만, 만년필을 오래 다루는 이들에게는 충분히 통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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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펜에 잉크를 주입해서 쓴다.
그것이 만년필의 존재 방식이다.
그러나 그 방식이 불편하거나, 불합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쓰는 방법이 있다.
그것이 디핑, 바로 찍먹이다.
대부분은 부먹이었다.
형형색색의 잉크를 골라 배럴에 담고, 펜의 색과 잉크색을 맞추어 채워 쓰는 방식.
일상의 기록은 대체로 이렇게 흘러갔다.
그러다 단종된 이탈리아 빈티지 펜 몇 자루를 들이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캡이 헐거워 보관이 어려운 펜,
노브가 뻑뻑해 주입도 세척도 난감한 펜,
투명한 몸체에 착색이 걱정되는 데몬스트레이터까지.
이미 배럴이 부실해 본국으로 되돌려 보낸 펜도 있었으니, 자연히 고민이 많아졌다.
그래서 결국, 찍먹 실험이 시작되었다.
만년필에만 실험 정신이 유난히 투철하다 보니, 우선은 경로 우대, 노약자 우선.
빈티지 펜부터 찍먹으로 써보기로 했다.
닙만 찍어도 글은 나온다.
캡이 부실해도 상관없고, 세척도 상대적으로 가볍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만큼만 써볼 수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잉크를 시험할 때 유용하다.
만년필 잉크는 제조사마다 색감이 다르고, 종이에 닿아야 비로소 드러나는 야릇한 빛이 있다.
배럴에 채워 넣기 전, 그 색의 본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찍먹을 한다.
짧게는 한 문장, 길게는 한 페이지. 그렇게 찍먹으로 색을 가늠한다.
부먹은 다르다.
보통의 만년필 사용자들이 택하는 일반적인 방식.
배럴에 잉크를 가득 채우고, 하루하루를 함께 쓴다.
부먹에는 안정감이 있다. 언제든 글이 이어지고, 오래 버틸 수 있다.
한 번 채워 넣은 잉크가 다할 때까지, 펜과 사용자는 같은 리듬으로 움직인다.
꾸준히, 묵직하게, 오래.
찍먹과 부먹,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빈티지 펜처럼 연약한 녀석은 찍먹으로 다루어야 하고,
긴 글을 써야 할 때는 부먹의 안정감이 필요하다.
새로운 잉크의 색을 시험할 때는 찍먹이 더 정확하고,
하루를 온전히 기록할 때는 부먹이 든든하다.
SNS에서 이런 글을 본 적 있다.
찍먹파는 깔끔하고 계획적인 사람,
부먹파는 대범하고 외향적인 사람.
웃음 섞인 글이었지만, 그 속에 묘한 진실이 비쳤다.
찍먹은 순간의 태도,
부먹은 지속의 태도.
삶의 방식도 그와 닮아 있다.
결국 양쪽을 오가게 된다.
찍먹과 부먹,
순간과 지속,
가벼움과 무거움.
덩샤오핑은 말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검은 먹이든 푸른 먹이든, 결국 중요한 건 종이 위에 남는 글이다.
만년필이 일러주는 것은 단순하다.
삶은 방식을 고집하는 일이 아니라, 관점을 넓히는 일이라는 것.
때로는 찍먹처럼 가볍게 시작해야 하고,
때로는 부먹처럼 묵직하게 버텨야 한다.
정답은 없고, 다만 태도가 있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된다.
찍먹이든 부먹이든, 중요한 것은 방식을 증명하는 게 아니다.
종이 위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가, 바로 그것이다.
그 흔적은 거창한 삶의 표식일 필요는 없다.
생활의 흔적 하나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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