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고도를 기다리지 않는다

완벽이라는 이름의 기다림을 버리고 나서야, 나는 살기 시작했다

by Concept Varia

수신인: 완벽한 글을 쓰겠다며 수없이 썼다 지우다 '이불킥'만 반복하던, 글쓰기에 고뇌하던 젊은 날의 나에게


대표 문장: “완벽은 신이 발명한 유혹이고, 대충은 인간이 고안한 생존 전략이다.”


편지 도입부: 젊은 날의 나에게 보낸다. 예전에 술잔을 기울이던 대학로의 한 술집에 앉아있다. 창밖으로 <고도를 기다리며> 간판이 보인다. 문득 완벽한 첫 문장을 찾겠다며 밤새 썼다 지우다, 결국엔 이불만 걷어차던 모습이 떠오른다. 어쩌면 네가 기다리던 그 완벽한 문장이야말로, 결코 오지 않는 '고도'가 아니었을까. 그 끝없는 기다림에 대해, 오늘의 내가 하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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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고도를 기다리지 않는다.

완벽이라는 이름의 기다림을 버리고 나서야, 나는 살기 시작했다.


“고도는 언제 오는 걸까.”


무대 위 두 남자가 그렇게 되묻는 사이, 햇살은 지나가고, 날은 저문다.

기다려봐도 오지 않는 걸 알면서도, 둘은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이 기다리는 건 ‘고도’가 아니라 ‘완벽’이었는지도 모른다.

완벽한 말.

완벽한 타이밍.

완벽한 기획.

완벽한 실행.

그러다 결국,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고도’를 기다리는 일은, ‘완벽’을 기다리는 일과 닮아 있다.

그리고 그 끝은 언제나 무기력과 허무를 불러낸다.


나는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여름이 오기 전, 콩국수 메뉴를 새로 내기로 했다.

뻔하지 않은 콩국수, 우리만의 콩국수를 만들고 싶었다.

완전히 다르게 만들고 싶었고, 그 다름이 필살기인 완벽한 메뉴를 만들고 싶었다.

그 완벽을 위해 그릇과 포스터, 설명문까지 작은 부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 집착은 다름 아닌 강박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런데, 여름은 지나갔다.

완벽하게 계획했던 작은 요소들이 발목을 잡았다.

사소한 것들은 사실 수정하고 보완하면 되었을 텐데,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나는 멈춰버렸고 주저앉았다. 결국, 그 메뉴는 뜨거운 여름을 맞이하지도 못하고 말았다.


비슷한 일은 일상에서도 계속 된다.

어디론가 떠나려 완벽한 계획을 짠다.

동선, 식사 장소, 심지어 플레이리스트까지.

그런데 아침에 정작 출발하려고 할 때가 되어서야 빠진 것이 생각나거나,

다른 예상치 못한 일로 허둥지둥 혼란스러워진다.

분명 완벽했는데.

그래도 어찌어찌 일부는 계획했던 대로, 또 일부는 의도와 상관없이 이상하게라도 진행된다.

사는 것이 원래 이렇다.

어찌 모든 것이 완벽할 수 있겠는가.

그날의 날씨, 예상 못한 돌발 상황, 계획에 없던 식사 타이밍.

완벽보다 ‘대충이라도 그냥 간 하루’가 훨씬 더 완전했다.

이제야 알게 됐다.

완벽을 향해 달릴수록, 우리는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을.

‘고도’의 정체는 어쩌면 ‘실현되지 않을 약속’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걸음 내딛지 못한 채, 고요하게 실패하는 방식, 이것은 조용히 망해가는 방식을 닮았다.


대충이라는 말이 허술함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사실은 ‘움직임’이고, ‘시작’이었다.

대충은 실행이 만든 감각이다.

완벽은 수많은 계획을 만든다.

대충은 계획 없는 행동을 만든다.

완벽은 머릿속을 혼란하게 만든다.

대충은 그냥 해본다.

완벽이라는 놈은 항상 뒤에 불안과 두려움을 데리고 나타난다.

“이래도 괜찮을까?”

“지금 시작해도 되는 걸까?”

그 망설임은 결국 움직임을 멈추게 만든다.

반면, 대충이라는 놈은 때로는 근거 없는 자신감, 때로는 귀찮음을 데리고 다닌다.

아마 가장 친한 친구는 ‘귀찮음’일 것이다.

하지만 그 귀찮음이 의외로 삶을 움직이게 만들기도 한다.


한때,

‘완벽해지면 시작하겠다’고 말하며 삶을 미뤄왔다.

조금만 더 준비하고,

조금만 더 생각하고,

조금만 더 완벽해지면.

하지만 그 완벽은 끝내 오지 않았다.

완성되지 않은 계획과 출발하지 못한 마음만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어느 날, 대충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부끄럽고, 두렵고, 어설펐고, 그 시작은 참 엉망이었다.

하지만 그때 처음으로 살아 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완벽은 정적이었고, 대충은 생동이었다.


알고도 반복하는 인간, 굴러떨어질 바위를 알고도 또다시 바위를 굴리는 인간.

까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그가 진짜 인간이라고 말했다.

불완전한 삶, 반복의 지겨움.

그럼에도 바위를 굴리는 인간.

그 순간, 삶은 시작된다.


완벽은 신이 발명한 유혹이고,

대충은 인간이 고안한 생존 전략이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여전히 허약하고 어정쩡한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보는 쪽에 서고 싶다.

계속 실패하더라도. 계속 창피하더라도. 다시 시작해야 할지라도.

완벽은 인간의 적이다.

생의 열망은 언제나 엉성한 채로 몸을 일으킨다.

무의미를 알면서도 반복하는 자, 도달하지 못함을 알면서도 움직이는 자,

‘대충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은 시지프가 바위를 굴리는 장면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것이 시지프다. 그리고—그것이 나다.


완벽은 나를 가뒀고, 대충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이제 나는 안다.

진짜 완성은, 무언가를 시작한 사람에게만 조금씩 온다는 걸.

그래서 오늘, 고도를 기다리는 대신, 돌을 굴리기로 한다.

그래서 오늘도 대충일지라도 살았다.

계획은 지켜지지않았지만, 살아 있는 감정과 움직임은 만들어냈다.

내일도 그렇게 살고 싶다.

어떤 미지의 삶이 날 기다리더라도, 나는 반갑게 대충이나마 살아가겠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그렇게 살기로 했다.

실패하고, 돌발하고, 망가져도 그게 나의 방식이고, 나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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