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이야기로 기억하는 음식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운 당신에게

by Concept Varia

수신인: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운 당신에게


대표 문장: “나는 설명 때문에 먹었고, 설명 덕분에 기억했다. 먹는 것은 혀가 아니라 귀였고, 입이 아니라 이야기였다.”


편지 도입부: 이제는 어머니에게 음식 이야기를 해 드립니다. 어머니에게 들은대로 이야기하는데 현장감도 없고 감칠 맛이 안 납니다. 내가 겪은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런가 봅니다. 음식이 기억으로 남았던 최초의 공간. 혀가 아닌 언어로 맛을 배운 어머니의 부엌을 추억하며, 당신과 함께 기억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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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민물 참게 게장이에요.”

예전에 강남 신사동에서 사온 간장 게장이 맛이 없다고 하시면서 고향의 민물 참게 게장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셨다.


"드셔 보세요. 밥에 비벼서 드릴까요?"


부쩍 입맛이 없으시고, 목에서 넘어가지를 않으신다고 하신다.

예전에.

먹는 것에 관심이 없던 때에

어머니는 헐벗고,배고프던 시절에 먹던 음식들을 내게 말씀하셨다.

어린 자식이 많이 먹기를 바라서였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그 음식을 어머니에게 이야기한다.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더 드시길 바라서였다.



고등학교 시절, 영어 교과서 속에서 처음 만난 단어가 있었다.

샐러리. 1970년대, 그 낯선 식재료는 내 일상과는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그러나 활자로 접한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도무지 무슨 맛인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왜 영어 에세이의 소재가 될 만큼 의미 있는 것일까.

시간이 흘러 처음 샐러리를 먹었을 때, 그것은 정제된 외국의 쌉쌀함과 우리 식재료와는 사뭇 다른 씁쓸함이었다. 그래서 안심했다. "아, 맞다. 글에서 읽었던 그 맛이 이런 것이었구나." 지금도 샐러리를 접할 때마다 나는 그 시절의 활자를 먼저 떠올린다. 글로 접한 음식이 혀보다 먼저 내 안에서 맛을 내는 순간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먹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중학교 겨울방학,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으며 귀리 죽 이야기에 사로잡혔다.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그 귀리 죽은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음식이었다.

나는 며칠 동안 무엇이든 마구 먹어치우며 그 감각을 흉내 내려 했다.

귀리죽을 먹어본 적은 없었다.

끓여달라고 어머니께 말씀드렸지만 먹어보지 못했다.

아직까지 미제 사건이다.

다만 아주 먼 훗날 건강식으로 먹은 귀리 빵의 형편없는 맛에 안도했다.

소설 속 귀리죽의 간절함이 그대로였다면, 아마 내 상상만큼 맛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고등학교까지 이어진 나의 식성은 여전히 담담했다. 특별히 먹고 싶은 것도 없었고, 식사에 열정을 쏟지도 않았다.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먹은 것은 고등학교 시절 단 한 번뿐이었다. 길고 가벼운 몸은 늘 허기에 무심했다. "밥이 뭐가 맛있지?" 투정 부릴 이유도, 먹을 것을 찾아다닐 일도 없었다.


그런 나를 위해 어머니는 음식을 설명해 주셨다.

반찬을 차려주시면서 "이건 내가 어릴 때 먹었던 거야", "이건 내가 늘 그리워하던 맛이야" 하며 이야기를 곁들여 주셨다.

나는 설명 때문에 먹었고, 설명 덕분에 기억했다.

먹는 것은 혀가 아니라 귀였고, 입이 아니라 이야기였다.

그렇게 내 유년의 식탁은 어머니의 기억을 경유한 문학이자 구전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음식은 단순히 혀끝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나는 영문 수필에서 샐러리를 처음 만났고, 소설 속 귀리 죽을 통해 허기를 체험했으며, 어머니의 이야기로 음식을 맛보았다. 음식은 혀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로 먼저 와서 머리에 남고, 기억으로 쌓인다. 결국 우리는 글로, 이야기로, 말로 음식을 기억한다.


나는 지금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특정된 어떤 맛들에 대해서는 강렬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맛은 혀가 아니라 이야기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수필의 샐러리, 소설의 귀리 죽, 어머니의 이야기. 이것들은 내 삶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맛이다.

맛은 사라져도 기억은 남는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건 어떤 이야기를 남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곁들인다.

먹는 것이 곧 기록이고, 기록이 곧 기억이 되는 방식이다.

어머니의 세대는 궁핍한 시절이었고, 인간의 모든 감각으로 음식을 기억했다.

나의 세대는 글과 이야기로 음식을 기억했다.

그리고 이제 젊은 세대는 SNS와 영상으로 음식을 기억한다.


어머니의 음식 이야기는 기억을 소환한다.

특히 청어 이야기를 할 때면 어머니는 유독 말이 길어지셨다.

일제 강점기에 어쩌다 한 번 청어를 굽게 되면 동네 어귀까지 고소한 기름 냄새와 연기가 안개처럼 자욱했고, 지글지글 굽는 소리가 식욕과 마음을 한정없이 뒤집었다고 하셨다.


나는 그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상상 속에서 청어는 기름을 흘리며 지글지글 구워지고, 시각과 청각과 후각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보이지 않는 음식의 흔적, 냄새로만 존재하는 시간의 기억. 어머니의 말은 언제나 장면을 동반했다.


이제는 내가 어머니에게 음식을 설명한다.

"이건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맛이에요. 예전에 말씀해 주셨잖아요."

세월이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나는 들었던 이야기를 돌려드린다.

어머니가 나에게 건네주신 언어로 된 음식을, 나는 다시 어머니에게 건네드린다.

그것이 어쩌면 음식의 가장 오래된 역할일지 모른다.

몸을 채우는 동시에, 서로의 기억을 매개하는 것.

음식은 혀에서 끝나지 않고, 언어로 이어지며, 결국 서로를 기억하게 만든다.


지금도 샐러리를 씹으면 그 교과서가 떠올려지고, 귀리 죽이라는 단어에 중학교 겨울방학을 소환한다.

그리고 청어의 냄새는 어머니의 목소리와 함께 어른거린다.

나에게 음식은 언제나 "글과 이야기로 기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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