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리필 고깃집에서 깨달은 맛·언어·기억의 철학
가족의 생일을 맞아 무한리필 고깃집에 갔다.
맛은 없었다.
입이 고급이 된 것일까, 아니면 맛을 개별적으로 다룰 능력이 없는 것일까.
분명 맛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순서와 절차가 있을 것이다.
혀끝에서 시작해 목으로 넘어가는 과정, 그 미세한 변화를 따라가며 감각의 개별성을 기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단순한 포괄성 속에 머문다. 맛이 있다, 없다. 그뿐이다.
어제 그 자리에 앉아 나 에게 물었다.
왜 그 과정의 개별성을 알지 못하는가.
맛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탓인가, 아니면 미각의 느낌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게으름 때문인가.
맛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혀의 감각을 일깨우는 과정도 필요하지만,
식재료의 고유한 특성을 아는 일 또한 중요하다.
식재료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다.
그것은 열을 만나면서 변주를 시작하고, 물리적 성질을 넘어 화학적 변화를 일으킨다.
그 작은 차이가 음식의 감각을 바꾸고, 혀의 경험을 달리 만든다.
그러나 나는 그 세세함을 붙잡지 못했다.
단지 고기는 고기 맛이고 양념은 양념 맛이다.
맛이 기억으로 남으려면 언어가 필요하다.
‘맛있다’와 ‘맛없다’라는 두 단어만으로는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는다.
언어가 확장될 때 미각도 확장된다.
‘언어의 한계가 나의 세계’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혀끝의 산미, 중간에서 묵직하게 번지는 지방의 감촉, 목 뒤에 남는 잔여의 짠맛, 이런 식의 표현이야말로 순간의 감각을 기억으로 바꾸는 열쇠다.
언어가 빈곤하면 맛도 빈곤하다. 그러나 언어가 풍부하면, 그 순간은 다시 불러낼 수 있다.
프루스트가 홍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을 통해 유년의 일요일 아침을 통째로 소환했듯이, 맛은 기억의 문을 여는 가장 강력한 열쇠가 될 수 있다.
어제 나는 그 열쇠를 쥐지 못했다. 그래서 고깃집의 기억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맛은 단순한 혀의 사건이 아니다.
맛은 기억을 만들고, 그 기억은 나를 만든다.
우리가 먹은 음식은 우리의 과거이자 정체성의 일부다.
어린 시절 학교앞 분식집의 떡볶이,
군대에서 먹었던 라면,
첫 연애의 포장마차 술, 그것들은 단순한 맛이 아니라 시간과 감정이 응축된 나의 일부다.
무한리필 고깃집은 내게 그런 기억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그 아쉬움이 나를 깨운다.
맛은 결국 기억을 남기는 방식이다.
기억을 남기지 못하는 맛은 존재하지 않았던 맛이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미각의 문 앞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인지 기관의 발달 정도는 다르다.
나의 경우, 내 입맛은 여전히 ‘원시적 초보자 입맛’이다.
나는 이 말을 구태여 만들어 썼다.
흔히 자극적인 음식에만 반응하는 사람을 ‘초딩 입맛’이라 부르지만, 나는 그 말로 내 입맛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초딩 입맛은 유치하다는 비아냥에 가깝다.
내가 쓰는 원시적 초보자 입맛은 다르다.
아직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혀, 조금 더 자극적이고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만 겨우 반응하는 미각, 그리고 그 미숙함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그 과정을 기록하고자 하는 태도를 담고 있다.
지금은 자극적인 맛에 쉽게 취하고, 뚜렷한 맛에 즉각 반응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단순히 유치한 입맛이라 부르고 싶진 않다.
그것은 원시적 초보자 입맛, 미숙하지만 고백적이고, 아직은 배우는 단계의 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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