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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성 Dec 02. 2022

컨셉을 한 단어로 정해 주세요!?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컨셉도 그렇다.

한 인간으로서 나라는 존재를 과연 한 단어로 정의내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20년을 넘게 브랜드 컨설턴트로 살아 온 나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직업을 컨셉 디렉터 혹은 컨셉기획자로 짧게 설명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은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들 중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한 인간으로서의 페르소나를 한 단어로 정의하기에는 모든 인간이 그렇듯어려운 일이다. 아니 그렇게 해서도 않된다. 어디 마땅히 쓸데도 없다. 페르소나는 유명한 보이그룹의 노래제목처럼 그 자체로 소우주이자 독립적인 세상(UNIVERSE)을 정의내리는 일이다.


모든 여성들의 로망인 샤넬을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아니 샤넬은 스스로를 한 단어로 정의하려고 할까? 그럴리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애플, 테슬라, 할리데이비슨, 이케아도 마찬가지다.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복잡함은 악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것이 늘 선은 아니다. 복잡함의 반대는 명료함이지 단순함이 아니다. 오히려 단순화는 돌이키기 힘든 부작용의 위험을 안고 있다. 의사결정단계가 층층으로 복잡한 큰 기업일수록 구성원들의 일사불난한 행동을 위해 늘 단순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짙다. 보고는 10분 이내로, 컨셉은 한 단어나 짧은 구절로 정리하게 한다. Top-down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권위적인 조직 체계 내에서는 이러한 단순화된 메세지가 효율적인. 경우도 있다.  


개발도상국 시대에는 선진국에 보고 따라할 수 있는 모범 예들이 넘쳐났기에 'Why'를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시장의 기회가 넘쳐나던 호시절이라 깃발을 먼저 꽂는 자가 승자가 될 수 있었다. 속도가 경쟁력이었다. 하지만 어쩌다 '눈 떠 보니 선진국'이 되어버린 지금 더 이상 참고할 수 있는 사례들이 없어져 버렸고, 많은 기업들은 이정표도 없고 앞선 이의 흔적도 없는 갈래길 앞에 서 있게 됐다.      


이니스프리는 친환경 조차 재미있고 스타일리쉬할 수 있게 새로운 라리프스타일을 제안해 주던 멋진 자연주의 브랜드였지만 어느 순간 '제주'라는 한 단어 컨셉에 매몰되면서 그 매력이 퇴색해 버리고 말았다. 내부 구성원들은 제주도에서만 나는 특산 원료만을 찾으러 다니기 바뻤고, 인테리어는 제주를 떠오르게 할 수 있는 요소들을 매장에 가져다놓기 시작했다. "Natural Benefit from Jeju" 라는 슬로건이 웹사이트와 모든 매장에 커다랗게 걸렸고, 매장에는 돌하르방과 감귤나무, 정낭, 제주도 지도가 연출됐다. 제주도에서 만든 수 많은 지역 화장품처럼. 여러 원브랜드샵 중 하나로 되돌아가 버렸다. 소비자들은 더이상 궁금해 하지도 환호하지 않았다. 브랜드의 VIP가 되기 위해 제품을 미리 당겨서 사지도 않았고, VIP 프로모션이 네이버 실검에 오르내리는 일도 더이상 볼 수 없게 됐다. 제주의 건강한 아름다움을 담은 자연주의 뷰티 브랜드"라니! ‘자연주의 라이프스타일'보다 '제주'를 표현하데 집중하기 시작하자 마법이 풀린 호박마차처럼 그 모든 매력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니스프리가 놓치지 말아야 했던 것은 동시대적인(Contemporary) 자연주의 트렌드를 살펴서 앞서서 브랜드에 접목하는 작업이 었다. 이니스프리가 제주에 고개를 돌리고 있는 동안 자연주의 트렌드는 클린뷰티를 거쳐 비건뷰티 등으로 변화했고, 이니스프리는 뒤쳐져서 따라오는 옛날 브랜드로 전락해 버렸다.


한 단어로 'Why'를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교에서는 이런 것을 '화두'라고 한다. 평생을 면벽수행에 정진을 해도 깨닫기 어려운 '이 뭐꼬'의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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