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ceptzine vol.38
에디터 이혜인 l 포토그래퍼 최연정
이번 여름휴가는 베를린에서 보냈다. 친언니는 난생처음 태국으로 해외여행을 갔고, 주변 친구들은 제주도, 바르셀로나,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며 서둘러 한국을 떠났다. 그런데 우리 엄마, 아빠, 할머니는? 나는 위의 문장을 쓰면서 문득 깨달았다. 아무도 그들의 휴가를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것을. 심지어 그들에겐 휴가가 없을 것이라 마음대로 단정 지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깨닫고 나니 조금 충격이다. 엄마와 아빠는 휴일은커녕 주말에도 일할 때가 많다. 할머니는? 비교적 시간은 많으나, 십 원짜리 하나 쓰는 것도 아까워하신다. 며칠 전엔 넘어지셔서 팔도 잘 못 움직이신다. 아무도 없는 집 방 안에서 커다란 티브이를 보고 있는 할머니의 뒷모습은 내게 너무나 익숙한 장면이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등에 대고 “다녀오겠습니다”, “엄마는?”, “배고파” 하는 식의 말을 던졌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 언젠가부터 귀가 잘 안 들리신다. 허공에 대고 하는 혼잣말이 지겨워 그것마저 그만두었을 때,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내가 외출한 것도 모르고 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을까? 익숙함을 익숙해하는 건 무서운 일이다. 사람을 단념하는 건 더 무서운 일이고. 《할머니의 여름휴가》는 뭉클하고 따뜻한 동화책이다. 그렇지만 그 안엔 오래 곱씹게 만드는 날카로운 대화가 있다. 혼자 사는 할머니집에 들른 며느리와 손자. 살을 새까맣게 태운 손자는 할머니에게 바다에 함께 가자고 한다. 그때 사 온 음식을 정리하는 며느리는 아들에게 한마디 한다. “할머니는 힘들어서 못 가신다니까.” 이 문장을 보고 생각했다. 우리는 지나친 걱정과 익숙함으로 누군가를 단념하진 않았을까, 하는. 내가 단념한 건 할머니의 불편한 몸이라 여겼는데 그건 할머니의 존재를 단념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인간이 늙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늙음을 인정하는 것 또한 인간의 몫이다. 다행인 건, 육체와 정신이 반드시 함께 늙어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육체가 고장 났다 하더라도 정신은 어느 젊은이보다 총명하고 맑을 수 있다. 그림 속 할머니는 강아지 메리와 함께 손자가 놓고 간 소라속으로 들어가 바다에 누워 수박을 먹고 수영을 한다. 그리고 우연히 들른 기념품 가게에서 바닷바람 스위치(조개)를 하나 사고 집으로 돌아온다. 손자처럼 까맣게 탄 할머니는 낡은 선풍기 앞에서 바람을 쐬며 미소 짓는다. 나는 그 그림을 보고 작게 웃었지만 동시에 코가 시려 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할머니의 일탈은 고작, 바다에 가는 것이었다. 우리 할머니가 바라는 것도 그 정도가 아니었을까? 잘 다녀오겠다는 흐릿한 가족들의 목소리만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주로 김현식, 유재하, 김창완밴드 등의 노래를 듣는다. 그런데 가끔 샤이니나 빈지노 노래도 듣는다. 그때면 전자의 음악이 ‘피자’가 되고, 후자의 음악은 ‘김치’가 되는데 어쩌다 번갈아 듣게 되면 그 강약의 조화가 기가 막히다. 티브이를 잘 보지도 않으면서 한때 <쇼미더머니>를 챙겨본 적이 있다. 만나는 사람에게 <쇼미더머니> 얘기를 꺼내면 반응은 한결같았다. “네가 그런 것도 보냐?” 그렇다. 언젠가부터 나의 취향은-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완강한 게 되어서 신식의 것, 요즘 것에 대해 관심을 두면 별난 일처럼 되어버렸다. 그런데 사실, 나는 어느 하나 확고한 것 없이 살고 있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음악과 영화 장르는 있지만 그것만 내리 찾지 않는다. 심지어 스스로 무언가에 집착하고 고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어느 날 아무렇지 않게 깨어버린다. 그런 자의적인 일탈을 남몰래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앞서 말한 빈지노의 음악은 내 귀를 위한 일탈이다. 한여름날 동치미 국물을 마시는 것처럼 신나는 비트와 욕 섞인 가사를 들으면 상쾌한 기분마저 든다. 내 안에 숨겨진 본능이 저 밑바닥서부터 꿈틀거리며 올라오는 것 같달까? <12>엔 ‘Time Travel’이라는 곡이 있다. 빈지노가 10년 전 빈지노에게 전하는 노래. 가사는 이렇다. ‘야 씨발 그대로만 하면 돼 나만 믿고 좆같겠지만 gotta keep going… 벌써 겁부터 먹지 마 거짓말 같지만 우린 수학여행보다 쩌는 여행들을 떠날 거고… 난 시간의 담을 넘어서 자신에게 말해 넌 미친 게 맞고 그래서 다행…’ 에디터라는 직업을 소개할 때면 이런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럼 문학 전공하셨겠네요?” 나는 문학과 영 관계없는 패션을 전공했다. 그다음은 이거다. “등단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세요?” 등단이라…. 영광스러운 일이다만 나는 내 글의 위치를 잘 안다. 폄하하는 게 아니라 등단의 길은 내 미래에 없는 일인 것이다. 사람들은 일찍이 문학의 길을 가지 못한 나를 안타까워한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것 같다. 물론 한때 후회한 적이 있다. 뒤늦게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한탄도 해봤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나를 후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패션이라는 세계에서 책이라는 세계로 넘어왔을 때, 분명 남들이 갖지 못한 무언가를 가득 안고 떠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뇨. 전 패션 전공을 했어요.” “등단은 뭐, 아무나 하나요.” 나를 규정짓는 일은 참을 수 없다. 난 자유롭고 싶다. 지금 전투력 수치 111퍼. 입고 싶은 옷 입고 싶고, 할 말은 하고 살고 싶다. 그게 나쁘든 좋든 말야.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12> 7번 트랙 ‘Break’의 가사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명소’라고 하면 더 가기 꺼려지는 것처럼, 너무 유명해서 보기 싫은 영화가 몇 있다. 내게 그런 영화 중 하나가 <레옹>이었다. 아마 교보문고에서 DVD를 염가에 팔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주 뒤늦게 보고 나서 후회하겠지. 이 영화를 왜 이제야 보았냐고. DVD를 본 그날 밤 나는 눈물을 찔끔찔끔 흘렸다. 사실 엄청 서럽게 많이 울었다. 레옹의 처음이자 마지막 일탈이 가슴 아파서. 레옹은 청부살인업자다. 말 그대로 거래를 하고 사람을 죽인다. 동그란 선글라스와 비니를 즐겨 쓰고 매일같이 빨간 팩의 우유를 산다. 침대에서 자는 법을 모르고 항상 소파에서 정자세로 잠든다. 그리고 적토색 화분에 ‘아글라오네마’라는 식물을 애지중지 키우고 있다. 아마 식물의 이름은 몰랐을 거다. ‘항상 행복해하고 질문도 하지 않아’서 키우는 거니까. 손바닥만 한 화분을 가장 친한 친구라 여기며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레옹. 어느 날 악명 높은 비리 경찰로부터 마틸다의 목숨을 구하게 되면서 소멸했던 감정을 하나둘씩 발음할 수 있게 된다. 문맹인 그가 마틸다를 만나고 더듬더듬 글을 읽고 쓰게 된 것처럼 말이다. 마틸다 역시 레옹의 도움을 받는다. 갓 태어난 오리처럼 레옹을 쫓아다니며 클리너(청부살인업자)가 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가족들을 죽인 경찰에게 복수를 하겠다며 경찰청사로 찾아간다. 하지만 고작 열두 살 난 어린아이가 약과 살인에 미친 성인 남자를 상대하기엔 무리. 치밀한 계획을 짜고 움직이는 레옹은 마틸다를 구하기 위해 무작정 청사로 향한다. 가까스로 마틸다와 만나지만 둘 다 살아서 나가기 어려운 상황이 오자 레옹은 환기구를 뚫어 화분과 마틸다를 탈출시키려고 애쓴다. 하지만 마틸다는 레옹의 죽음을 직감하고 헤어지지 않으려 한다. 그 순간 레옹은 가장 명확한 발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말한다. “네 덕에 삶이 뭔지 알게 됐어.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잠도 자고 뿌리도 내릴 거야.” 그가 키우는 아글라오네마엔 뿌리가 없다. 언젠가 마틸다에게 뿌리가 없는 게 저와 닮았다며 쑥스러운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나는 그 천진한 얼굴이 계속 생각나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이 시리다. 아마 레옹에게 마틸다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일탈로 남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함께하지 못할 걸 알면서도 그녀를 받아준 거겠지. 나는 레옹과 마틸다의 관계를 단순히 우정이나 사랑으로 정의할 수 없을 것 같다. 뿌리는 어느 날 문득 자란다. 미처 손쓸 틈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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