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 일에 적응하고 나니, 다시 고민이 고개를 들었다.
정식 바리스타를 뜻하는 블랙티셔츠를 받고 난 후, 카페네로 일엔 많이 적응했다. 티셔츠가 뭐라고, 일하는 태도부터 달라졌다. 동료들과 매니저도 일 잘한다고 칭찬했다. 이제야 내가 해야 할 역할을 조금 해내는 느낌이었다. 카페 단골손님들도 드디어 내 티셔츠 색깔이 바뀐 걸 보고 축하해줬다. 나 스스로 당당해지니 일할 때 훨씬 자연스러웠다.
카페 일에 적응해서 한숨 돌리니, 다시 본질적 고민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왜 영국에 있는 것 인가?
하루는 한 달에 한번 하는 매장 대청소를 하고 집에 왔는데, 집 부엌에서 플랏 메이트(flat mate, 방은 각자, 부엌과 화장실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파티를 하고 있었다. 일하고 나면 지쳐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데, 하필이면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사람 소리가 나는 걸 못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부엌에 들어갔더니 서로 민망한 상황이 발생했다. 다 한국인인 플랏 메이트들은, 와서 치킨과 피자를 먹으라며 권했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만큼은 정말 아무도 마주치고 싶지가 않았다. 혼자 있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매장 쓰레기통을 청소해서 온몸에서 쓰레기 냄새가 난다고 거절하며 방으로 올라왔다. 현타가 왔다. 나는 왜 혼자 있고 싶을 때 혼자 있을 수도 없는 이곳에서 이러고 있는가?
그 후 블로그 이웃들의 포스팅을 보다가, 영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워홀러가 사무직 취업 성공해서 외국인 친구도 사귀고 파티도 가는 내용을 봤다. 남루한 의상으로 온몸에 쓰레기 냄새를 풍기며 방구석에 혼자 찌그러져 있는 내 모습과 비교가 됐다.
나는? 나는 언제까지 카페네로에서 이러고 있을 건데?
사실 내가 계속 카페네로에서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있는 이유는 영어가 자신 없어서였다. 카페에서 일하면서도 영어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이런 영어실력으로 사무직에 도전하려니 엄두가 안 났던 것이다. 나는 과연 이 영어실력으로 2년 안에 원하는 일을 영국에서 할 수 있는 것인가? 과연 2년 안에 그만큼의 영어실력을 키울 수 있는 걸까? 마트나 은행에 갈 때도 영어를 못 알아들을까 봐 긴장하는데, 일은 과연 할 수 있을까? 한번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왜 영국에 있는 것 일까?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것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