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그룹면접으로 멘탈이 탈탈 털렸다.
2017년 11월 18일, 처음으로 영국 뮤지컬 극장 안내원 면접을 봤다.
영국 내 큰 공연장 회사 중 하나인 델폰트 맥킨토시 극장 회사(Delfont Mackintosh Theatres. 캣츠,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등 최고의 흥행 뮤지컬 제작자 Cameron Mackintosh의 회사)의 소속 극장 중 하나인 Prince of Wales theatre에서 면접을 봤다. 2017년 당시, 북 오브 몰몬(Book of Mormon)이라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뮤지컬을 하고 있던 극장이다.
영국 공연계는 크리스마스 기간이 극성수기이기에, 11월 초부터 극장 안내원 모집공고를 내서, 11월 중순쯤 면접을 많이 보는 것 같았다. 구직 사이트에서 극장 안내원 모집 공고가 이렇게 많이 보였던 적이 처음이었다. 델폰트 맥킨토시 극장 사이트에서 모집 공고를 보고 CV를 이메일로 보내니까 인터뷰 Invitation만 세 개를 받았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뮤지컬 소극장 안내원을 했던 경력과, 축제 사무국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서류통과에 도움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면접이 어땠냐면, 완전히 망했다.
당분간은 카페네로에 붙어있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면접은 그룹면접이었고, 참가자 16명, 면접관 3명의 다대다 면접이었다. 총 소요시간은 1시간 가량이었다.
면접의 첫번째 활동은 Pair exercise로, 두 명씩 짝지어서 파트너를 인터뷰했다. 그 후 파트너의 전 직업과 파트너가 고용되야하는 이유를 면접관에게 설명했다.
두번째 활동은 Group exercise로, 4명씩 조를 짜서 펀치, 노트 등의 일반 사무용품을 아무거나 준 후, 각 그룹별로 세일즈 프레젠테이션을 해보라고 했다.
세번째 활동은 개인 스피치로, 30초씩 주면서 왜 내가 고용되어야 하는지를 면접관에게 설명하라고 했다. 그리고 현금 계산 시험지를 줬다. 시험문제는 공연 MD가 각 물품별 판매수량과 단가를 알려주고, 각 경우에 내가 얼마를 관객에게 받아야 하며, 총 잔액은 얼마인지 계산하는 것이었다.
면접관이 모든 과정에서 강조한 것은 5 Star 고객서비스였다. 공연 및 극장일에 대한 열정은 기본이고, 면접관은 High Standard Customer Service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에 초점을 맞춘 것 같았다.
면접을 보고 나오면서 멘탈이 탈탈 털렸다.
처음으로 든 생각은, 지금 또 지원한다고 해도 큰 의미가 없다는 것. 영어 때문이다. 면접관들의 말은 거의 다 알아들었는데, 스피킹이 문제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할 수 없었다. 애초에 다른 이들과 경쟁이 되질 않았다. 극장 안내원은 서비스업으로, 오히려 사무직보다 더 높은 수준의 영어를 필요한 것 같았다. 관객과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야하니까 말이다. 실제로 면접 참가자 대부분이 영어 원어민으로, 유럽인도 2~3명밖에 안됐고 아시안은 나 혼자 였다. Pair exercise에서 나와 짝이 된 무용수 출신의 이탈리아인은 내가 말귀를 잘 못알아듣자 답답해했다. Group exercise을 할 때는, 사무용품인 펀치를 어떻게 판매할 것인지 적극적으로 토론하는 팀원들 사이에서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다른 3명의 팀원들이 펀치의 장점을 설명하면, 나는 '이렇게 누르면 되요!'라며 한 마디만 하고 손으로 작동법을 시연하는 것만 담당했다. 마지막 개인 스피치때는 내가 뭐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극장일에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나는 공연을 정말 사랑한다.' 이런식으로 말했던 것 같은데, 문장은 뒤죽박죽이었고 내가 말할 수록 면접관의 얼굴은 일그러져갔다.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마지막 거스름돈 계산 시험지를 받았는데, 이건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거기에 열심히 풀었다.
모든 면접이 끝나고, Pair exercise에서 짝이 됐던 이탈리안에게 내가 말을 잘 못알아들어서 미안하다며, 행운을 빈다고 말했다. 너도 행운을 빈다며 여기서 우리 둘이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처참한 심정으로 면접장을 빠져나와 걷고 또 걸었다. 면접본다고 신은 구두가 불편했지만 지금 당장은 하염없이 걷고 싶었다. 나는 왜 여기있는 것일까. 집에 오면서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물어봤던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