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 홍성규 소장의 '매향리 평화꽃 화성시 정치꽃'을 읽고
최근 주말이면 병원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탓에 1시에 잠실 한의원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화성 향남으로 향했다. '3시 화성상공회의소 화성노동인권센터 홍성규 소장 출판기념회'를 전화기 달력 앱에 등록을 해 놨음에도 '2시 반까지 와 달라는 요청'을 맞출 수 없었다. 향남 방향으로 가는 길은 자주 막혔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오늘은 내 급한 마음을 아는지 도로가 한산했다. 15분을 늦게 도착한 화성시 상공회의소 4층에 올라가자 이미 '출판기념회'는 진행되고 있었다.
행사진행요원 일을 보던 '박혜명 진보당 화성시 전의원'과 제일 먼저 인사를 나누었다. 행사 후 집에 와서 읽은 홍소장의 논문에 박의원은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였다. 실명은 언급되지 않지만^^. (나는 그가 화성시 의원을 달고 있을 때는 그 의미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 인식하지는 못했다. 또 재선에 실패했을 때도 역시) 그리고는 제일 뒤편에 위치한 원탁 테이블에서 행사 상황을 생중계하듯 기사를 쓰고 있던 뉴스큐 장명구 기자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는 옆자리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고, 또 행사를 지켜봤다.
수원 영통권역에 살다가 동탄의 서쪽 끝 '신동탄'이라는 곳으로 이사한 지도 거의 4년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화성 혹은 동탄 생활권에 녹아들지 못했다. 동탄은 낯설고, 수원 영통권은 익숙했다. 마트 장 보러도 수원으로, 다니던 병원도 수원으로 그리고 심지어 도서관과 단골 미용실도 여전히 수원으로 가고 있다. 수원의 낡고 후줄근한 O마트보다 동탄의 O마트가 훨씬 삐까번쩍했고, 여러 좋은 시설들이 동탄에 많이 있었지만 주말이면 차를 수원으로 향했다. 수원으로 가는 전용도로로 인해 수원 접근성이 더 좋았고, 이사는 화성으로 했지만 일터가 화성으로 옮겨오지 못한 탓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이런 내게 '매향리 투쟁' 역시 '동탄 생활권' 혹은 '향남 방문' 만큼이나 '알면서도 낯선 미지의 영역'이었다. 과거 '매향리 미군 사격장' 문제에 대해 분명 '말'지를 통해 읽었던 기억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386 혹은 현재 586의 마지막 세대로 대구에 있었던 나는 '말'지에서 읽은(혹은 읽었을) '매향리 투쟁'은 직접적으로 다가온 것은 아니었다. 그때는 오로지 '광주항쟁'과 '군부독재타도' 외 에는 마음에 담기지 않던 시대라...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4년간의 소위 '운동권' 시기 이후 IT노동자가 된 나는 늘 야근과 주말근무를 밥 먹듯 하며 '제대로 공부하고 IT노동자가 된 자들'과 경쟁하는 것에 힘겨워했다. 홍성규 소장의 <매향리 평화꽃 화성시 정치꽃> 1부 '매향리로 다시 본 정치' 논문(주: 서울대 정치학과 석사논문. 학부는 서울대 도시공학)에서 제대로 접하게 된 '매향리 투쟁'은 내가 생존 자체에 힘들어하던 시기에 전만규 위원장님 비롯 많은 이들의 투쟁이 있었음을 알게 해 주었다. 나는 동료 IT노동자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사회문제나 정치 등에 엄청난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고 있는 편이라 생각은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관심의 절대량'은 활동가나 여러 헌신하는 분들에 비할 바가 아닐 듯 싶다. 내가 사회와 단절되다 시피한 어느 곳에서 야근이나 주말근무 등을 할 때 '매향리 투쟁'이나 '평택 대추리 투쟁' 그리고 '광우병 투쟁' 등등이 일어났고, 나는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을 반복했다. 진보당 입당 후 맞은 '박근혜 탄핵 투쟁'에 나름 열심히 참여했던 것이 졸업 후 역사의 큰 흐름에 동참한 유일한 사건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출판기념회 행사 중 어느 분이 '(1부 논문은 건너뛰고) 2부(매체 기고한 칼럼 모음)부터 읽으시면 된다'라고 하였고, 홍소장의 책에도 '어려우면 2부를 읽으시라'는 권고가 나오지만 나는 '1부 매향리로 다시 본 정치'가 단숨에 읽어졌다. 아마 어렵게 쓴 논문을 쉽게 풀어 옮겨 놓은 덕이 아닐까 싶다. 행사 중 홍소장은 '전만규 위원장을 화성의 영웅 1호로 상을 드려야 한'다고 하였는데, 1부 논문을 읽으니 그 이유가 확연히 마음에 와닿았다. 함께 하지 않았으니 그 피와 눈물을 어찌 다 알겠는가마는, 원래 어부였다는 전만규 위원장의 고통과 용맹한 투쟁의 과정이 한달음에 다가왔다. 그리고 전만규 위원장과 홍성규 소장의 관계는, '전태일 열사'가 생전에 자신을 도와줄 대학생(혹은 지식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는데 사후에 '장기표 선생'이 찾아간 것을 떠올리게 되는 상호관계가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행사 중 사회자의 '서울대까지 보내놨더니 이러고 있어서 효자가 아니'라는 말에 옆 테이블에 앉아 계시던 홍소장의 어머니께서 '맞아요 효자 아니에요' 하고 크게 호응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어머님의 그 반응 아주 이해가 되고도 남을 것 같다. ^^. 딴지는 아니지만... '서울대까지 보내놓은 자식', '서울대도 못 보낸 자식' 어느 쪽이라도 그 부모의 '속 터짐의 크기'는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해 본다. <부모의 속 터짐 = 자식의 사회적 성공 기대치 X 자식에 대한 사랑 2(제곱)> 공식이 성립하지 않을까. 즉, E=mc2처럼... '부모의 속 터짐 정도'는 '자식의 성공 기대치'에도 비례하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의 제곱에 비례하리라는 공식. ^^
요즘 이런저런 이유로 쌓아 놓은 책은 많지만 제대로 읽은 책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 출판기념회에 다녀온 밤을 이용해 홍소장의 논문을 빨려 들어가듯 읽을 수 있어서 아주 행복하다. 아마 '내일 읽겠다'라고 책상 위에 놔뒀더라면 다른 책들처럼 차일피일 선택될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논문으로 제대로 알게 된 전만규 위원장님과 매향리 투쟁에 동참했던 많은 활동가들께 경의를 표하고 싶다.
홍성규 소장이 행사 말미에 얘기한 <착한 사람이 상을 받고, 나쁜 사람이 벌을 받는 세상> 그가 꿈꾸는 세상을 이룰 수 있도록 그의 정치인 여정에 열매가 맺힐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여러 함량 미달의 정치인과 온갖 비리를 저지를 자들도 그 뜻을 여러 위치에서 펼치고 있는데(그 뜻이 다르건 간에), 능력과 인품을 갖춘 <우리 형 홍성규 소장>에게 정치인으로서 뜻을 펼칠 공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이 어찌 대한민국의 손실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생물학적으로는 내가 홍성규 소장보다 '형'이지만, 그를 만날 때마다 그가 '우리 형'으로 느껴진다. 그것이 단지 그가 나보다 키가 좀 더 크거나 가방끈이 좀 더 길어서는 아니리라^^.
다시 한번 정치인 우리 형 홍성규 소장의 <매향리 평화꽃 화성시 정치꽃> 출간을 축하드리며 긴 글 마무리 하고자 한다.
2023.10.07
끝.
■ 홍성규(1974~ )
서울대 도시공학과 졸업
서울대 정치학과 석사
통합진보당 마지막 대변인 역임
화성시장 진보당 후보, 화성시갑 국회의원 진보당 후보 등
현 화성노동인권센터소장
현 진보당 화성시 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