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

by 검은빛

< 떠남 >

떠나고 또 떠나고, 내보내고 다시 뽑기를 반복한다.

마치 수사자가 암사자 집단을 차지한 후 이전 수사자의 자식들을 물어 죽이고, 자신의 유전자를 암컷의 자궁에 새기듯, 집단의 물갈이를 진행해 간다. 굳이 은밀하지도 않게도 대놓고 펼치는 작전이었다. 떠나는 자의 눈에도 남은 자의 눈에도 '그'의 행동이 그렇게 보인다고 하니 나만의 '왜곡된 시선'은 아닐터다.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겠다는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이 꼭 오답이라고 하긴 어렵기도 하다. 물론 전제조건으로 순전히 '동물적 관점' 혹은 그냥 '생명체의 관점'에서만 따지자면. 말하기 좋자고 하자면 '프로젝트도 생명체와 같아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뭐 그것이 꼭 그럴 리가 있을지 모르겠다.


전임 사또와 자주 가던 순대국밥집에 기록뷰어 신구 멤버 세명과 같이 갔다. 정 차장!. 그가 '이 차장'을 대신해 왔을 때 굳이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하지만, 외도한 배우자가 안고 들어온 '남의 자식'같은 느낌적인 느낌. 분명 그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그가 떠날 때가 되니 왠지 미안한 감정도 살짝 스쳐간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얼마나 챙겨댔던가! 말 한마디건, 건화한통이건, 커피 한잔이건... 여러 가지 이유로 떠나간 자들에게 간간히 전화를 걸어주기도 하고, 떠날 때 차 한잔을 하기도 했다. 이유야 뭐... 이것은 '내 프로젝트' 였으니까. 하지만, 하이에나를 닮은 새 수사자가 이곳을 장악한 후 이제는 '내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때론 허망하게, 때론 내 스스로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궁핍한 처지가 된 탓에 다른 이의 곤란함을 헤아릴 겨를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삼 개월을 코마와 같은 상태로 보내고는, 이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 주변을 돌아보고, 내 일과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불알을 덜렁거리며 하이에나 같은 자신의 씨앗을 뿌리기 여념이 없는 '새 수사자에게 호락호락당하지 않겠노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실권은 하이에나 같은 새 수사자에게 있는 법. '떠날 때'를 준비해야 한다. 일 년 반을 몸담았던 곳, 내 집처럼 여기며 밤과 주말의 텅 빈 사무실을 지키던 그때의 애정을 잘 여밀 때가 되었다. 조만간 잘리건, 내 발로 나가건 떠날 때 미련이 남지 않도록,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이 배는 침몰할 것이다. 침몰은 꼭 타이타닉처럼 대서양 어두운 찬 바닷물 속에 온몸이 잠긴 다음에야 알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작년 5월 10일 제안서를 냈을 때부터, 작년 8월 1일 야탑에 입성했을 때부터 예정된 침몰이다. 물론 이놈의 SW 프로젝트는 침몰한 배도 꺼내어 되살릴 수 있고, 완파된 자동차도 죄다 갈고 고쳐서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이 '타이타닉' 같은 HW와 다른 점일 것이다. 정해진 시간, 한정된 자원으로 범위를 정하면 분명 침몰하는 것이 맞고, 망하는 것이 정답이다.


떠날 의사를 늦게(10월 초) 밝혀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던 '정 차장'은 지난 주로 떠나라는 통보를 받고 떠났다. 그는 새로 온 '진 부장'에게 미안해했다. 미안해하는 그에게

"당신이 떠남으로 새로 온 분들에게는 자리가 생긴 것이다. 당신이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라고 말해줬다. 마음 편히 떠났기를.


자.. 다들 오늘은 오늘의 애환을 만날 것이고, 내일은 내일의 애환을 만날 테니...

어쨌거나 '파이팅~ ㅋㅋ'.


시월의 마지막 주

야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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