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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에 마음을 빼앗기다

끌리는 첫 문장의 비밀

by 콩코드


첫 문장은 하나의 세계를 여는 열쇠다. 종이 위에 놓인 단 하나의 문장으로, 어떤 작가는 세계의 멸망을 선언하고, 또 어떤 작가는 마음속 가장 깊은 외로움을 불러낸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카뮈의 『이방인』이 이 한 줄로 독자를 끌어들인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첫 문장을 읽으며 책을 펼치기로, 혹은 덮기로 결정한다. 첫 문장은 단지 서사의 시작이 아니다. 때로는 결말보다 더 많은 것을 예고하고, 분위기보다 더 많은 감정을 자아낸다.

그래서 우리는 묻고 싶어진다. 왜 어떤 첫 문장이 우리를 사로잡는가? 그리고 첫 문장은 대체 무슨 일을 하는가?


[프롤로그]

첫 문장의 마법


책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의 결심을 한 상태다. 이 책을 읽어볼까, 아니면 내려놓을까. 그 결심을 단번에 무너뜨리거나 굳히는 건 대개 첫 문장이다. 첫 문장은 짧고 날카로우며, 종종 설명을 생략하고 사건의 심장부로 우리를 끌고 간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이 단 한 문장으로 세기의 명작이 되었다. 독자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엄마의 죽음’이 이렇게 건조하게 기술되는가? 이 문장을 말한 사람은 누구이며, 그는 정상인가, 냉담한가, 혹은 무언가 더 복잡한 인물인가? 질문은 꼬리를 물고, 독서는 시작된다.


첫 문장은 마치 나침반과 같다. 방향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이미 암시되었다. 작품 전체의 정조, 주제, 때로는 결말의 한 조각까지도 이 문장에 응축된다. 독자는 그 압축의 미학에 사로잡히고, 작가는 이 짧은 서두에 모든 것을 건다.


첫 문장은 하나의 문이지만, 동시에 심연이다. 그 안에는 거대한 구조물이 숨어 있다. 독자는 미처 준비되지 않은 채 그 구조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작가는 아무 설명 없이 문을 닫아버린다. 첫 문장의 마법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의식하지 못한 채, 우리는 이미 빠져든다.


[1장]

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이미 끌려들고 있다


첫 문장은 단지 서사의 첫걸음만이 아니다. 그것은 ‘몰입’이라는 깊은 강물에 던져지는 첫 번째 돌이다. 독자는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그 문장 너머에 있을 '더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된다. 그것이 단순한 묘사든, 충격적인 진술이든, 혹은 우아한 이미지 한 줄이든 말이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불행은 각기 다른가? 이 이야기는 어떤 불행을 다룰 것인가? 독자는 이 문장에서 이미 정서적 반응을 시작한다. 공감, 불안, 호기심 같은 감정들이 밀려들고, 그 감정은 곧 독서의 원동력이 된다.


첫 문장은 작품의 물리적 시작인 동시에, 독자의 정서적 진입점이다. 그것은 하나의 문장이지만, 동시에 수많은 상상과 예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다. 독자는 이 첫인상에 반응하며 읽을지 말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일단 끌려들었다면, 이제는 책을 덮기 어렵다. 첫 문장은 그렇게 독자를 '사로잡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끌림에는 의지가 필요 없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의 움직임이고, 때로는 중력처럼 피할 수 없는 힘이다. 그런 힘을 가진 문장은 놀랍게도 짧고 간결한 경우가 많다.

"나는 세 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그날, 나는 내 이름이 없다는 걸 알았다."

이런 문장들은 설명보다 의문을 던지고, 친절함보다 충격을 택한다. 독자는 무의식적으로 ‘이후’를 기대하며 페이지를 넘긴다. 그 넘김은 단순한 손의 움직임이 아니라, 감정의 선택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토록 첫 문장에 끌리는가? 아마도 인간의 마음이 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혼란을 질서로, 낯섦을 친숙함으로 바꾸어줄 이야기를. 첫 문장은 바로 그 기다림에 응답하는 신호다. 그것이 강렬하고, 낯설고, 의미심장할수록 우리는 더 빨리, 더 깊이 그 이야기로 걸어 들어간다.


[2장]

첫 문장은 예고편이자 설계도이다


영화의 예고편은 종종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 된다. 짧은 장면과 음악, 대사 몇 줄만으로 우리는 곧 펼쳐질 이야기를 예감하고, 그 세계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문학의 첫 문장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것은 하나의 문장이지만, 그 문장 안에는 이야기의 방향, 인물의 성격, 세계의 분위기가 응축돼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이렇게 시작된다.

“로버트 콘은 한때 프린스턴 대학의 미들급 챔피언이었다.

짧고 건조한 이 문장에는 이미 많은 정보가 들어 있다. 인물의 이름, 배경, 신체적 특징, 계급적 위치까지. 동시에 이 문장은 매우 상징적이다. 강함을 상징하는 ‘복싱’과 전통적 엘리트를 뜻하는 ‘프린스턴’, 이 둘은 향후 인물의 무력감과 정체성 혼란을 더욱 강하게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단 한 줄로, 소설의 서늘한 리듬이 이미 깔리는 것이다.


첫 문장은 독자에게 '정보'를 주는 동시에, 그 정보의 방향성을 설계한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 모든 일은 어느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문장은 '시작'의 기원을 제시하는 동시에, 앞으로 펼쳐질 사건이 얼마나 중대했는지를 암시한다. 독자는 이 문장을 읽자마자 묻는다.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그 일은 어떻게 이 사람의 삶을 바꾸었는가?


또한, 첫 문장은 문체의 성격을 결정짓는다. 리듬, 어휘, 어조. 독자는 이 첫 줄의 운율을 듣고, 그것이 자신의 호흡과 맞는지를 감지한다. 가령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처럼 장황하고 실험적인 첫 문장은, 그 자체로 작품의 문학적 실험성을 암시한다.

"위풍당당하고 뚱뚱한 버크 멀리건이 계단 꼭대기에서 나왔다. 그는 면도기와 면도 거품이 담긴 그릇을 들고, 그 위에 면도 유리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복도의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 앞에 들었다.”

이 문장을 읽은 독자는,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님을 직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이스의 스타일을 사랑하는 이들은 이 첫 문장에 매료되어 끝까지 완주한다. 첫 문장은 그래서 독자를 ‘선별’ 하기도 한다. 이 세계에 들어올 준비가 된 사람과 아닌 사람을 가른다.


때로 첫 문장은, 그 자체로 작품의 결말을 암시하기도 한다.

“많은 해가 흐른 뒤, 대령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는 처형대 앞에 서서, 먼 날 오후에 아버지를 따라 얼음 구경을 갔던 일을 떠올렸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이 인상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처음부터 ‘처형대’와 ‘기억’이 함께 등장함으로써, 이 작품이 시간과 운명, 순환을 주제로 하는 거대한 서사임을 단박에 드러낸다. 그리고 독자는 그 문장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서야, 이 첫 문장이 그 전체 이야기의 미로와 같은 구조 속에서 얼마나 정교한 ‘설계도’였는지를 깨닫는다.


첫 문장은 단지 이야기를 여는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작품의 모든 것을 간직한 하나의 농축물이다. 작가는 그 안에 주제와 정서, 구조와 복선을 녹여두고, 독자는 그 문장을 읽으며 무언가를 ‘예감’한다. 이 예감이 충실할수록, 독서는 더욱 밀도 있고 깊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첫 문장을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


[3장]

첫 문장, 독자와의 첫 대면


독자에게 첫 문장은 작가와의 첫 대면이자 첫 호흡이다. 눈으로는 글자를 읽지만, 실은 목소리를 듣는다. 그 목소리가 친근한지, 낯선지, 위협적인지, 혹은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속삭이려는 기색인지—독자는 단 한 문장으로 그것을 감지한다. 그리고 그 감지야말로, 본격적인 독서의 시작이다.


첫 문장은 ‘이야기’보다 먼저 ‘존재’를 드러낸다. 누가 말하고 있는가? 이 문장의 주체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차분한가, 흥분했는가, 아니면 거리 두고 관찰하는가?

"나는 어느 여름날 정오 무렵, 다리 밑에서 한 남자를 처음 보았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독자는 말하는 ‘나’를 느끼게 된다. 그의 눈과 시선, 무심한 듯한 말투, 그러나 어떤 예감—그 모든 것이 말을 하기 전, 혹은 말 사이에서 전해진다.


독자는 종종 그 ‘태도’에 끌린다. 이야기를 ‘어떻게’ 하는지, 어떤 리듬과 감정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지가 중요하다. 예컨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서는 종종 아무 일도 없는 듯한 일상에서 시작된다.

“나는 그때 막 스무 살이었고, 도쿄에 있는 한 대학의 일 학년 학생이었다.”

이 담담한 서술은 큰 사건을 암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자는 안다. 이 일상의 어딘가에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바로 그 ‘조용한 시선’이 하루키 작품의 매력임을 우리는 체득해 왔다. 첫 문장은, 작가의 ‘시선’을 독자에게 건네는 일이다.


한편, 첫 문장은 독자를 ‘호명’ 하기도 한다. 작가가 독자를 불러 세우는 방식이다.

"당신은 지금, 아주 오래된 비밀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문장은 독자의 시선을 붙잡는다. 단지 관찰자가 아니라, 이야기의 일부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장치다. 호명된 독자는 이미 선택된 사람처럼 느껴지고, 그 책은 ‘나를 위한’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첫 문장은 이렇게 독자와의 심리적 연결을 만드는 첫 고리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첫 문장 앞에서 긴장을 느낀다. 그것이 단순히 문장이 좋아서가 아니다. 자신이 이 세계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지, 혹은 들어가고 싶은지 스스로 묻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첫 문장에서 문을 열고, 또 누군가는 문 앞에서 돌아선다.


하지만 만약 그 문장이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면—우리는 망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한 줄에서 이미 감지된 감정, 분위기, 그리고 목소리는 말없이 우리에게 속삭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당신에게 꼭 필요하다."


[4장]

좋은 첫 문장을 쓰기 위한 작가의 고심


작가에게 첫 문장은 창작의 관문이자 벽이다. 이야기의 전부를 압축하면서도, 독자를 붙잡아야 하는 문장. 작가는 그 한 줄에 며칠, 몇 주를 매달리기도 한다. 아니, 어떤 경우에는 작품 전체보다 더 오랜 시간을 들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 문장은 전체를 압축하는 ‘문학적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한 인터뷰에서 “첫 문장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지 않으면 절대 소설을 시작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강렬하거나 의미심장하기보다는 어떤 기묘한 일상의 리듬을 품고 있다. 그러나 그 리듬이 정확히 잡히는 순간, 하루키는 그 문장을 따라 소설 전체를 써 내려간다고 했다. 첫 문장은 단순한 시작이 아니라, 작가가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을 예시하는 리듬과 색채다.


작가들은 첫 문장에서 독자를 ‘속이기’도 한다. 뭔가 충격적인 사실을 던져놓고, 그 진실을 뒤엎는 식이다. 이것은 스릴러나 미스터리 장르에서 흔히 쓰이는 방식이지만, 철학이나 인문서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우리가 안다고 믿는 것 중 절반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런 문장은 독자의 확신을 흔들고, 호기심을 일으킨다. 작가는 독자의 인식을 깨뜨리고 새로운 사고의 문을 열어주기 위해, 이처럼 도발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에세이스트나 인문학자는 더더욱 고심한다. 왜냐하면 독자는 단지 ‘이야기’가 아니라 ‘생각’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각의 문은 대개, 한 문장으로 열린다.

“자기 삶을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은, 결국 남의 삶을 흉내 내게 된다.”

이런 문장 앞에서 독자는 멈칫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문장이 아니라, 거울이기 때문이다. 좋은 첫 문장이란, 때로 독자의 내면을 되비추는 한 줄의 질문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문장은 이 이야기를 품을 수 있는가?

이 문장은 독자의 마음까지 닿을 수 있는가?

이 문장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너무 일찍 말해버리는 건 아닌가?


첫 문장은 그러므로 정제된 언어의 결정체이자, 무수한 삭제와 퇴고의 흔적이다. 독자에게는 1초, 작가에게는 수십 시간의 시간. 그러나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단 하나의 문장을 얻는다.

그 한 줄이 독자의 마음을 건드릴 수 있다면, 이미 이야기는 절반쯤 성공한 것이다.


[에필로그]

당신의 첫 문장은 무엇입니까?


누구나 삶 속에서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 어떤 이는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하고, 어떤 이는 조용히 마음속에 간직한다. 그 이야기마다 시작점이 있다. 우리 각자의 첫 문장. 아직 쓰이지 않은 문장. 아직 말해지지 않은 한 줄.


당신은 어떤 문장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것인가?

“나는 한때 누구보다 확신에 찬 사람이었다.”

“그날, 내 안의 시간이 멈췄다.”

“나는 늘 말하지 않은 문장들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처럼 우리의 삶 역시 문학처럼 첫 문장을 품고 있다. 그것은 회고일 수도 있고, 고백일 수도 있고, 결심일 수도 있다. 어떤 첫 문장은 그날의 마음을 온전히 담기도 하고, 어떤 문장은 앞으로 펼쳐질 변화의 예고편이 되기도 한다.


첫 문장을 쓴다는 것은, 사실 자신의 이야기를 인정하는 일이다. 말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 들려줄 수 있다는 용기. 그 믿음과 용기를 단 한 줄의 언어로 세상에 건네는 일.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많은 이들이 첫 문장에서 멈추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이 단지 시작이 아니라, _나 자신을 드러내는 일_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하자.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첫 문장 하나에서 출발했다. 그 문장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진심이었기 때문에. 혼란스러워도 좋고, 엉성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말하기 시작하는 것’, 그 자체다.


그러니 이제는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떤 첫 문장을 쓰고 싶은가?

당신의 이야기, 그 첫 문장은 무엇인가?


아마 지금 이 순간,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 문장이 조용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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