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개찰구 앞. 누군가는 스마트폰으로 스윽, 또 누군가는 허리를 숙이며 쓱. 감지되지 않는 검은 그림자들이 오늘도 도시의 대동맥을 무임으로 활보한다. 그들의 표정은 당당하다. 오히려 당연하다.
반면, 옆자리에서 정당히 요금을 지불한 나는 바보다. 아니, 속칭 '비자발적 호구'다.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는 세금 먹는 비영리 재단, 지원금 빨아먹는 유령 단체, 구멍 뚫린 복지망 사이로 줄줄 새는 혈세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세금 고지서를 받고는 "나라가 있어 다행이지"라며 얌전히 납부 버튼을 누른다. 저마다의 이유로, 습관으로, 혹은 '이게 맞는 것 같아서' 내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사회의 조용한 후원자,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지만 늘 자리에 앉아 있는 관객, 이름 없는 스폰서, 다시 말해 ‘비자발적 호구’다.
이 호구들은 각계각층에 널려 있다.
정당한 등록금 내고도 실강 대신 유튜브 링크 받으며 고개 끄덕이는 대학생.
10년째 국민연금 꼬박꼬박 넣고도 받을 날은 요원한 직장인.
자식 교육에 집안 기둥 뽑히면서도 사교육은 부정하지 않는 부모.
예산은 빵꾸 나도, 그래도 공공도서관 책은 제때 반납하는 시민.
이쯤 되면 묻고 싶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부터 ‘정직함’이 ‘멍청함’과 동의어가 되었을까?
남들이 새는 동안 막고, 줄 때 뒤로 밀리고, 먹을 때 계산만 하는 이들.
그러면서도 사회가 무너지지 않길, 최소한의 질서가 유지되길 은근히 바라는 사람들.
이 비자발적 호구들의 세계는, 조롱하기엔 너무 슬프고, 동정하기엔 너무 고집스럽다.
그렇다.
이 사회는 무임승차자들이 만들지 않았다.
비자발적 호구들이 떠받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