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수수께끼

생존 전략으로서의 문화와 사회의 구조적 해석

by 콩코드


왜 사람들은 이상한 짓을 하는가?

- 마빈 해리스의 문화물질주의와 오늘의 풍경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문화적 풍경을 마주한다. 누군가는 소를 신성한 존재로 여겨 먹지 않고, 또 다른 누군가는 기꺼이 소고기를 주식으로 삼는다. 어떤 사회는 어린아이의 귀를 뚫는 것을 당연히 여기지만, 다른 사회는 이를 학대의 한 형태로 본다. 마빈 해리스는 이러한 차이를 마주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이상한 짓을 할까?”


《문화의 수수께끼》(Cows, Pigs, Wars, and Witches, 1974)의 첫 장은 이 의문으로 시작한다. 해리스는 단순히 타문화를 향한 호기심이나 판단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비합리적’이라 여겨온 수많은 문화적 행위가 사실은 환경적 조건과 물질적 필요에 근거한 합리적 대응일 수 있다는 전제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그는 인간의 문화를 해석하는 새로운 프레임, 즉 문화물질주의(cultural materialism)라는 관점을 제안한다.


해리스의 핵심 주장은 이렇다. 사람들은 그들이 믿는 신념, 수행하는 의례, 규범이나 금기를 단지 관습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늘 환경적, 경제적, 기술적인 조건이 있으며, 그 조건은 문화를 실질적으로 ‘형성’한다. 예를 들어 힌두교도들이 소를 신성시하여 먹지 않는 문화는 단지 종교적 교리에 따른 것이 아니라, 농경을 중심으로 한 인도의 생태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소는 농사에 쓰이는 귀중한 노동력이며, 배설물은 연료와 비료로 재활용된다. 이런 조건에서 소를 먹는 일은 단기적으로는 식량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삶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소를 먹지 않는다'는 믿음은 단지 신성성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생존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각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해리스가 활동하던 20세기 후반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보와 자원이 넘쳐나는 21세기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상한 짓’을 한다. 팬데믹 기간에 벌어진 현상들을 떠올려 보자. 일부 사람들은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거나 백신 접종을 극렬히 반대했고, 심지어는 정부가 코로나바이러스를 조작했다는 음모론까지 등장했다. 많은 이들은 이를 비이성적이라 비난하며 과학과 상식을 부정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해리스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행동들도 단지 ‘무지’나 ‘고집’의 산물이 아닐 수 있다.


팬데믹이라는 위기 속에서, 정보는 권력이 되었고, 불신은 생존 전략이 되었다. 일부 계층은 신속하게 백신을 맞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위치에 있었지만, 또 다른 계층은 그 구조에서 배제되었다. 정부나 제도에 대한 오랜 불신, 의료 체계에 대한 소외 경험, 정치적 양극화 등은 그들이 ‘합리적 불신’을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백신을 거부하는 이들은 단순히 반과학적인 사람이 아니라, 다른 조건에 놓인 생존자일 수 있다. 이러한 시각은 사람들의 행동을 무조건 옹호하지 않지만, 그것이 만들어진 배경과 구조를 이해하게 해준다.


해리스의 문화물질주의는 이런 통찰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의 행동을 도덕이나 문화적 기준으로 재단하기 전에, 먼저 그 물질적 조건과 환경적 맥락을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왜 어떤 사회는 전쟁을 일삼는가? 왜 어떤 공동체는 여자아이의 생식기를 절단하는 풍습을 고수하는가? 왜 마녀사냥은 유럽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되었는가? 해리스는 각각의 현상에 대해 구체적인 자원 분배, 기술 환경, 생존 전략이라는 렌즈로 접근한다. 이로써 그는 “문화는 논리적이지 않다”는 통념에 도전한다. 오히려, 문화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논리적’이다. 다만 그 논리는 우리가 속한 체계와 다를 뿐이다.


해리스는 또한 상징과 신념의 세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그는 문화적 상징 역시 매우 중요한 실체이며, 사람들의 현실을 규정짓는 힘이 있다고 본다. 다만 그는 그것을 1차 원인이 아닌, 2차 반응으로 본다. 다시 말해, 문화적 상징은 종종 물질적 필요에 의해 ‘정당화’되거나 ‘심화’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마녀’는 중세 유럽에서 단순히 이상한 여인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부유하거나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난 여성을 공격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마녀사냥은 남녀 간의 권력 문제, 재산 분배 문제, 사회적 긴장 등의 복합적인 조건 위에서 작동했던 것이다.


해리스는 우리에게 한 가지를 요청한다.

문화는 이상하거나 미신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만들어진 구조적 조건과 생존 전략을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윤리와 도덕을 넘어서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이 있는 비판과 공감을 위한 출발점이다. 그가 말하는 ‘문화의 수수께끼’란, 단지 타문화의 이질감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낸 환경과 선택의 필연성에 대한 이해를 뜻한다.


우리가 이 책의 첫 장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인간의 문화란 단지 기이하거나 고집스러운 전통의 집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그 사회가 생존을 위해 만들어낸 가장 현실적인 대응 방식일 수 있으며, 우리도 그 흐름 위에 있다는 점이다. 지금, 이 시대에도, 우리는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해리스는 그것을 이해하는 열쇠가 언제나 환경과 자원, 그리고 구조적 조건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통찰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성스러운 소와 불결한 돼지

- 마빈 해리스, 종교 금기 너머의 생존 전략

인도의 거리에서는 쇠약한 소가 도로 한가운데를 천천히 걸어도 아무도 그 소를 쫓아내지 않는다. 사람들은 소를 피해 돌아가고, 때로는 소에게 먹이를 준다. 왜일까? 소는 힌두교 문화에서 신성한 동물이며, 죽이거나 먹는 것은 금기시된다. 반면, 유대교나 이슬람교에서는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여기고, 먹는 것을 금지한다. 이처럼 다양한 문화에서 특정 동물을 금기시하거나 신성시하는 현상은 오랫동안 서구 사회 궁금증의 대상이었다. 도대체 왜 그들은 소를 먹지 않고, 왜 돼지를 그토록 혐오하는가?


마빈 해리스는 이 질문을 매우 실용적이고 구조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는 종교적 금기가 단순히 믿음이나 도덕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가 환경에 적응하는 전략을 윤리적 규범으로 포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그의 대표 이론인 문화물질주의의 전형적인 해석이다. 해리스에게 종교는 신비가 아니라 구조적 생존 논리의 상징화다.


1. 성스러운 소 – 생존을 위한 신성화

해리스는 인도 힌두교의 소 숭배를 단지 종교적 신념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묻는다.


“인도는 가난하고 기근이 잦은 나라다. 소고기를 먹으면 해결될 문제가 왜 해결되지 않았는가?”

그리고 답한다.

“그들은 비합리적인 게 아니라, 놀랍도록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인도 농촌에서 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생존의 핵심 인프라다. 우선 소는 농사를 위한 노동력이다. 경작을 위해 땅을 가는 데 소가 필요하고, 농촌에서는 기계보다 이들의 힘이 더 실용적이다. 또한, 소의 배설물은 비료와 연료로 사용되며, 식량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의 순환 속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결정적으로, 가뭄이나 기근 등 위기의 시기에 소는 살아있는 '생존 보험'이 된다. 소를 죽여 먹는 것으로 단기적 위기를 넘길 수 있지만, 그 이후의 생존 기반은 파괴되고 만다.


따라서 ‘소를 먹지 않는다’는 힌두교의 금기는 장기 생존을 위한 집단 무의식적 전략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 이유를 자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회는 그 생존 전략을 도덕적·종교적 신념의 형태로 고착시킨다. 즉, 생존이 종교가 된 것이다.


해리스는 이 금기가 개인의 믿음이 아닌 집단의 물질적 필요에 뿌리내렸다는 점을 강조한다. 소 숭배는 종교가 아니라 생태다. 성스러움은 전략이다.


2. 불결한 돼지 – 무익한 가축의 배척

그렇다면 왜 중동 지역의 유대교와 이슬람은 돼지를 그렇게 혐오하는가? 그저 돼지가 진흙에서 구르고 더러운 동물처럼 보이기 때문일까?


해리스는 중동의 환경과 생태 조건을 면밀히 분석한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덥고 건조하며, 삼림이 부족하다. 돼지는 삼림에서 도토리나 뿌리, 벌레 등을 먹으며 자라는 동물인데, 중동에서는 그러한 자원이 거의 없었다. 대신 돼지는 사람과 먹는 것을 경쟁해야 했다. 곡물, 물, 열매 등 인간이 필요한 자원을 돼지가 함께 소비하는 것이다. 게다가 돼지는 잡초나 풀을 먹지 않기 때문에, 초원에서 방목하기도 어렵다. 기후는 덥고, 돼지는 땀샘이 없어 늘 진흙에 구르거나 물에 들어가야 체온을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중동 지역은 그런 물이 없다.


결국, 돼지는 중동 사회에서 비효율적이고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돼지는 키우기도 어렵고, 먹여 살리기에도 낭비이며, 환경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동물이었다. 돼지를 기르는 것이 경제적으로 불리하자, 사회는 이를 점차 도덕적 금기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돼지를 먹지 말라. 돼지는 부정하다.” 이 말의 기저에는 사실 “돼지를 키우지 말라. 환경에 안 맞는다.”는 생존 논리가 숨어 있는 셈이다.


3. 종교는 윤리인가, 전략인가?

해리스의 문화물질주의는 종교적 신념을 단지 비판하거나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종교를 ‘의미 없는 믿음’이 아니라, 고도로 발전된 환경 적응 방식으로 본다. 단지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 구조를 신의 뜻이나 도덕으로 해석한 것뿐이다. 해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왜 그런 신념을 가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신념이 그들을 생존하게 했다.”


이는 마치 누군가가 해독작용이 있는 풀을 ‘신성한 약초’라며 수세대에 걸쳐 사용한 것과 같다. 그들이 과학적으로 분석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은 경험적으로 입증된 생존의 지혜였고, 그것을 신화나 금기의 형태로 후대에 물려준 것이다.


4. 오늘날의 적용 – 음식 규범과 생태 윤리

이러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최근 채식주의, 비건 운동은 단순한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윤리적 선택 혹은 기후 위기 대응 전략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기를 덜 먹고, 탄소 배출을 줄이며, 동물권을 보호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언뜻 보면 이는 도덕적 이상주의처럼 보이지만, 해리스의 관점에서 보면 이 역시 환경 조건의 변화에 따른 문화적 재조정이다. 다시 말해, 과거의 종교가 생존을 윤리로 포장했다면, 오늘날의 윤리는 생존을 다시 윤리로 정당화하는 셈이다.


자원 고갈, 기후 위기, 식량 불균형이 점점 더 심화되는 오늘날, 먹거리의 선택은 다시금 문화적 금기와 연결되고 있다. 과거의 소와 돼지처럼, 우리는 지금 어떤 자원을 먹고, 어떤 자원을 금기시할지를 다시 선택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


이 장의 결론 – 금기는 생존을 향한 숨은 설계

마빈 해리스는 《문화의 수수께끼》에서 종교를 깎아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종교를 보다 현실적이고 생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신성한 소든, 불결한 돼지든, 그 모든 금기와 믿음 뒤에는 사회가 생존하기 위해 내린 선택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사람들은 이상한 짓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살아남으려 애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문화의 진정한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신비가 아니라, 구조다. 믿음이 아니라, 생존이다.


전쟁은 왜 반복되는가

- 마빈 해리스, 폭력의 구조를 해부하다

전쟁은 인류 문명의 어두운 그림자다. 동굴 벽화 속 창과 방패의 형상부터, 오늘날의 드론 폭격과 사이버 테러에 이르기까지, 전쟁은 늘 인간사의 중심에 있었다. 우리는 전쟁을 두고 "인간이 본래 폭력적이기 때문"이라거나 "악한 지도자의 광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마빈 해리스는 이 문제를 훨씬 더 구조적으로 접근한다.


그는 전쟁이 결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일정한 자원 환경과 사회 구조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특히 그는 원시 부족 사회에서 전쟁이 어떻게 인구 조절, 자원 분배, 엘리트 권력 형성에 기여했는지를 추적하며, 그 배경에 존재하는 생태적·사회적 논리를 드러낸다.


1. 부족 사회의 전쟁 – 생존을 위한 순환 구조

해리스는 고대 부족 사회를 단지 평화로운 공동체로만 보지 않는다. 많은 인류학자가 이상화했던 '고귀한 야만인(noble savage)'의 이미지, 즉 평등하고 평화로운 원시 사회라는 상(像)을 그는 철저히 비판한다. 오히려 원시 부족들 사이에서 전쟁은 빈번하고 일상적인 일이었으며, 그것은 단지 복수나 명예 문제 때문이 아니라, 인구 압박과 생태적 제약에서 비롯된 구조적 대응이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마존 유역이나 뉴기니 고원, 아프리카 내륙의 부족 사회들을 보면, 이들은 일정한 지역 내에서 농업으로 생존을 유지하지만, 토양이 척박하고, 자원이 제한적이다. 그러나 출산율은 높고, 의료기술이 발전하기 전이므로 인구 증가와 자원 부족 사이의 긴장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이때 전쟁은 단지 땅을 뺏기 위한 폭력 행위가 아니라, 인구 조절의 수단이자 생존 경쟁의 불가피한 수단이 된다.


즉, 전쟁은 "비이성적 선택"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폭력적 메커니즘이다. 이처럼 해리스는 인간 집단 내에서의 전쟁을 생태적, 구조적 대응의 일부로 해석하며, 도덕이나 감정 이전의 ‘생존의 함수’로 본다.


2. 전쟁과 남성성 – 엘리트 구조의 형성

해리스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지점을 지적한다. 원시 사회의 전쟁은 단순히 부족 간 경쟁의 산물이 아니라, 남성 중심의 계층 형성과 통제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많은 부족 사회에서는 전쟁 경험이 있는 남성, 즉 전사(warrior)가 집단 내에서 명예를 얻고,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한다.


이는 곧 전사 집단 → 엘리트 계층 → 권력의 독점이라는 순환 구조를 만든다. 생존을 위한 전쟁이 점차 사회 내부의 권력 구조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변모하는 것이다. 전쟁이 집단 내 남성성을 강화하고, 남성 중심의 위계 구조를 고착화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해리스는 이 점에서 전쟁이 단지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내부 정치의 핵심 도구였다고 본다. 곧, 전쟁은 권력의 필요에 따라 정당화되고 반복되는 행위다. 이는 현대 사회의 군사주의나 군부 엘리트의 형성과도 연결된다.


3. 전쟁과 인류 진화의 역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이런 파괴적 행동을 반복하는가? 해리스는 “인간은 원래 폭력적이다”라는 생물학적 결정론을 거부한다. 대신 그는 사회 구조와 생태 조건이 폭력을 유도한다고 본다.


그는 인간이 협력과 경쟁 모두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종이라고 말하며, 어떤 행동이 우세하게 나타나는가는 주어진 자원, 환경, 인구 밀도, 정치적 구조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전쟁이 반복되는 것은 인간 본성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구조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해리스는 전쟁을 단지 비극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과거 사회가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채택했던 ‘사회적 기술’이었고, 문제는 그 기술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데 있다.


4. 오늘날 적용 – 전쟁의 새로운 얼굴들

해리스의 분석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갈등과 전쟁에도 강력한 통찰을 제공한다. 예컨대 중동 지역의 내전, 테러리즘, 난민 문제는 단지 특정 종교나 이념 때문만은 아니다. 자원 부족, 정치 구조의 붕괴, 인구 팽창, 경제 불균형 등 구조적 원인이 중첩되어 나타난 결과다.


오늘날의 ‘테러리스트’는, 해리스의 시선에서 보면, 과거 부족 사회의 전사와 유사한 지점이 있다. 전쟁과 폭력은 주변화된 집단이 자원을 얻기 위한 최후의 전략일 수 있다. 그들은 전투를 통해 명예를 얻고, 내부 결속을 다지고, 외부에 존재를 과시한다. 이는 과거 부족 간 전쟁이 가진 기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기후 변화로 인한 자원 위기, 생태 파괴로 인한 이주와 분쟁도 과거의 전쟁 논리와 겹친다. 우리가 마주한 갈등은, 어쩌면 인간 본성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를 바꾸지 못한 채 구시대적 생존 기술을 되풀이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장의 결론 – 폭력은 문화다, 그리고 구조다

마빈 해리스는 전쟁을 "불가피한 악"이 아니라, 과거 사회가 만들어낸 문화적 대응의 한 방식으로 본다. 문화란 신념이나 기호만이 아니라, 자원을 다루고, 사람을 조직하며, 위기를 관리하는 방식 전반을 포괄하는 체계다. 전쟁은 그 체계 속에서 작동하는 전략이었다.


그는 말한다.


“전쟁은 본능이 아니라, 조건이다.”

“그 조건을 바꾸지 않으면, 폭력은 반복된다.”


우리는 여전히 전쟁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전쟁을 끊는 방법을 배우기보다, 전쟁을 재구성하는 데 더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리스의 통찰은 우리가 적어도 전쟁을 인간 본성의 저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회 구조의 결과물로 분석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그렇게 볼 때, 폭력은 숙명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의 결과다.


희생양을 찾는 사회

- 마빈 해리스, 마녀사냥과 집단적 투사의 구조

중세 유럽에서 수만 명의 여성들이 화형당했다. 그들은 “마녀”였다는 이유로, 즉 악마와 결탁하여 병을 퍼뜨리고 가축을 죽이고 날씨를 망쳤다는 죄로 처형되었다. 마녀사냥은 단순한 광신이 아니었다. 마빈 해리스는 이 거대한 박해의 역사를 사회적 위기의 구조적 산물로 본다. 왜 사람들은 갑자기 평범한 이웃을 향해 돌을 던졌는가? 왜 여성들이 표적이 되었는가?


해리스는 이를 통해 사회가 불안정해질 때, 집단적 긴장을 외부의 “타자”에게 투사함으로써 체제를 유지하는 기제를 작동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것이 단지 중세의 이야기가 아니며, 오늘날에도 음모론, 혐오 범죄, 사회적 루머의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고 말한다.


1. 마녀사냥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마녀사냥은 14세기 이후 유럽에서 본격화되었다. 그 시기는 흑사병, 전쟁, 기근, 사회 질서의 혼란이 겹쳤던 시기다. 해리스는 이 시기를 ‘구체제의 위기’와 ‘생존 기반의 불안정’이 겹친 시점으로 본다.


인구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농업 생산력은 정체되었으며, 봉건제는 흔들리고 있었다. 이 시기 교회와 귀족 지배층은 체제에 대한 불만과 불안을 외부의 적에게 전가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바로 그때 “마녀”가 등장한다.


마녀는 병을 퍼뜨리고, 아이를 훔치고, 남편을 저주하며, 가축을 죽이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 묘사는 마녀를 사회 불안의 모든 원인으로 만든다. 해리스는 이 지점에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왜 마녀였는가? 왜, 특히 여성들이었는가?”


2. 여성, 통제의 대상이 되다

해리스는 마녀사냥이 여성을 향한 사회적 통제의 일환이었다고 분석한다. 중세 말기 유럽에서는 가족 구조와 노동 분업이 재편되고 있었고, 여성의 역할이 불안정한 시기를 맞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여성들이 의료, 출산, 허브 요법 등의 지식을 갖고 지역 사회에서 독립적인 위상을 갖기 시작했다. 이는 교회와 남성 중심의 체제에 위협이 되었다.


따라서 마녀사냥은 단지 광신적인 박해가 아니라, 여성의 자율성과 지식을 위협으로 간주하고 억압하는 수단이 되었다. 독립적이고, 배우자 없이 살아가는 여성, 나이가 많고 사회적 연결이 약한 여성들이 주요 표적이 되었다. 해리스는 이것을 “체제가 혼란 속에서 자신의 경계를 회복하기 위한 상징적 제의”라고 본다.


즉, 마녀사냥은 사회적 해소의 수단이었다.


불안과 공포를 내부로 감당할 수 없을 때, 체제는 그것을 외부의 적 혹은 내부의 이질적인 타자에게 투사한다.


3. 마녀사냥의 구조: 루머, 자백, 공포의 확산

마녀사냥은 단순히 누군가를 마녀로 지목하는 행위로 끝나지 않았다. 고문과 자백, 연좌제적 고발, 그리고 사회적 공포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한 사람이 고문 끝에 “다른 마녀”를 지목하면, 체제는 다시 그것을 확대하고 통제한다.


이 과정은 일종의 자기 강화적 폭력 시스템이었다. 누구든 침묵하면 의심받고, 부인하면 고문당하고, 고백하면 더 많은 이들을 고발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 체계는 단지 무고한 개인의 파괴만을 초래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감시와 순응의 문화를 조장했다.


해리스는 이러한 마녀사냥의 논리가 근대 이전의 억압 체제뿐 아니라, 현대 사회의 집단 광기 속에서도 반복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4. 오늘날의 적용 – 혐오, 음모론, 희생양

오늘날의 사회에서도 마녀사냥은 형태만 바꾼 채 반복되고 있다. 팬데믹 당시 특정 인종이나 국적에 대한 혐오, 백신 반대자와 찬성자 간의 극단적 대립, 경제 위기 속에서 확산되는 음모론과 루머, SNS를 통한 여론몰이와 온라인 폭력까지. 이 모두는 해리스의 통찰대로 위기의 시대에 등장하는 새로운 마녀사냥이다.


특히 사회가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불안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기보다 외부의 ‘비정상적 존재’에게 돌리고자 한다. 이때 특정 집단이나 개인이 희생양이 된다. 정치인은 이 구조를 활용해 지지를 얻고, 언론은 이를 확산시켜 주목을 얻으며, 대중은 불안을 해소한다.


해리스가 말했듯,


“마녀는 항상 우리 곁에 있다. 그저 우리가 누구를 ‘마녀’로 부르느냐만이 바뀔 뿐이다.”


5.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반복된다

해리스는 마녀사냥을 단지 과거의 우매함이나 종교적 광기, 혹은 성차별의 결과로 보지 않는다. 그는 그것이 위기 사회의 구조적 선택이었으며, 동시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작동 중인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구조를 윤리적 비난만으로는 멈출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유지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 방어가 다름을 억압하고, 소수자를 제거하고, 불안을 외부화하는 방식이라면, 그것은 또 다른 마녀사냥이다.


이 장의 결론 – 마녀는 사라지지 않았다

마빈 해리스는 『문화의 수수께끼』에서 마녀사냥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불태우고 있는가?”

마녀는 중세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위기를 관리하는 은밀한 방식, 타자를 통해 자기 질서를 회복하는 무의식적 선택이다. 오늘날의 사회가 혐오와 배제를 반복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마녀사냥이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다.


따라서 마녀사냥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은, 불안의 구조를 직시하고, 그것을 외부로 투사하지 않는 사회적 성숙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이 해리스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뼈아픈 질문이자 희망이다.


메시아는 왜 끊임없이 나타나는가

- 구원의 열망, 억압의 구조, 그리고 반복되는 광기

마빈 해리스는 이 장에서 메시아 운동(Messianic movements)을 단지 종교적 믿음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적 고통과 불평등이 낳은 집단적 생존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이 초자연적 존재에게 의존하고, 구세주의 출현에 집착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체제 안에서의 고통, 억압, 절망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메시아는 현실을 견디기 위한 상징이며, 때론 그것이 혁명을 가능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다수의 경우 또 다른 파국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1. 메시아 운동의 본질: 고통이 낳은 상상적 해방

해리스는 역사 속 메시아 운동이 언제나 고통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점에 주목한다.

• 유럽 중세 말, 흑사병과 전쟁으로 인한 대중의 절망 속에서 등장한 종말론자들

• 제국주의 하의 식민지에서 나타난 토착 신앙과 예언자 운동

• 유대 전통의 메시아 사상은 로마 지배에 대한 저항의 형식이었고

•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의 신흥 종교들은 식민 통치에 대한 무의식적 반응이었다


즉, 메시아는 단지 종교적 ‘진리’를 전달하러 오는 존재가 아니라,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을 견디는 ‘상징적 출구’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해리스는 묻는다:


“왜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서는 메시아가 갑자기 속출하는가?”


그 답은 명확하다. 현실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2. 사회적 파탄과 구원의 심리 구조

해리스는 메시아 운동의 구조를 ‘심리’나 ‘정신적 착란’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그는 구체적인 조건, 즉 기아, 착취, 토지 상실, 전쟁, 질병, 계급 불평등 같은 물질적 고통이 이 신념 구조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강조한다.


메시아 운동은 종종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 강력한 종말론: 지금 세계는 곧 파괴되고 새로운 세계가 도래한다.

• 구체적 계시자: 초자연적 능력을 지닌 지도자가 나타난다.

• 극단적 순응 또는 급진적 행동: 공동체 생활, 금욕, 무장투쟁 등의 형태로 드러난다.


이러한 운동은 집단적 열광으로 이어지며, 체제 변화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종종 비현실적인 기대, 외부 세계와의 충돌, 내부적 와해로 끝난다. 해리스는 메시아 운동이 가진 위험성을 지적하면서도, 그 운동이 발생하는 구조 자체는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3. 반복되는 메시아: 구조적 억압의 징후

해리스는 메시아 운동이 ‘끊임없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중요한 통찰을 끌어낸다. 그것은 사회 구조가 변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며, 억압과 고통이 지속되거나 더욱 악화되었음을 뜻한다.

그는 특히 식민지 시대 이후에도 메시아 운동이 왜 여전히 빈발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아프리카의 무브먼트들을 소개합니다. 예를 들어,


• 짐바브웨의 ‘차문가 신앙’은 백인 식민주의에 대한 토착 저항의 방식으로, 부적과 주술, 예언을 통해 공동체의 단결을 모색했다.

• 브라질 북동부의 ‘카노두스 운동’은 대지주와 군대에 맞선 농민들의 신앙적 공동체였으며, 수만 명이 ‘신의 나라’를 꿈꾸다 학살당했다.


이처럼, 메시아 운동은 단지 기괴한 신앙 현상이 아니라, 체제 내에서 구조적으로 억압받는 집단이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정치적/종교적 수단이라는 것이 해리스의 핵심 주장이다.


4. 오늘날의 적용: 사이비, 극단주의, 정치적 메시아

이제 이 논의를 오늘의 사회로 확장해 보자. 해리스의 분석은 현대의 사이비 종교, 극우·극좌적 정치 운동, 급진적 구원론에도 적용된다.


팬데믹과 경제 불황, 전쟁, 기후 위기, 부의 집중, 일상의 고립… 이 모든 위기는 현대 사회의 불안을 증폭시켰고, 많은 이들이 과학보다 믿음, 제도보다 구세주, 점진보다 단번의 구원을 꿈꾸게 만든다.


• ‘영적 리더’로 포장된 사이비 종교 지도자들

• 절대선/악의 구도로 정치를 몰아가는 포퓰리스트

• 인터넷 기반의 급진적 종말론 커뮤니티


이들은 모두, 해리스가 지적했던 고전적 메시아 운동의 현대적 버전이다.


중요한 건 이들이 등장했다는 사실보다 왜 이런 운동에 사람들이 몰리는가에 대한 이해이다. 해리스는 이를 ‘절망이 낳은 해답’의 구조로 본다.


"사람들은 메시아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불안을 외면할 수 없어서 ‘누구라도 해답을 줄 것 같은 자’를 붙잡는 것이다. “


5. 메시아를 멈추는 방법

해리스는 마냥 비관적인 인물은 아니다. 그는 메시아 운동이 인간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에서 나온 것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이렇게 말한다.


"메시아를 끝내려면, 메시아를 낳은 사회적 고통을 끝내야 한다. “


즉, 억압받는 이들이 체제 안에서 희망을 찾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을 회복하는 것만이 극단적 구원 심리와 광신적 열광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종교를 억압해서도, 신념을 조롱해서도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가 자신이 낳은 절망을 응시하지 않는 한, 메시아는 또 다른 얼굴로, 다른 형태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이 장의 결론 – 끊임없이 나타나는 구세주, 그리고 우리 사회

메시아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신화이자 구조이며, 믿음이자 생존의 외침이다. 해리스는 우리가 메시아 현상을 ‘이상한 일’로 치부하는 순간, 그들이 외치던 고통의 구조도 외면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메시아는 불합리의 상징이 아니라, 사회적 균열의 신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구세주’를 갈망하고 있다. 누군가는 주식 시장의 급등을 예언하는 사람에게, 누군가는 정치적 강경 발언자에게, 누군가는 초월적 해답을 주는 사이비에 기대고 있다.


이 모든 갈망은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지금 무엇에서 구원받고 싶어 하는가?”


해리스는 그 물음을 통해 우리가 믿음 이전에 직시해야 할 구조의 얼굴을 보여준다. 메시아는 인간의 약함이 아니라, 사회가 약자를 돌보지 않을 때 나타나는 집단적 증상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무엇으로 유지되는가

- 문화의 지속과 변화

마빈 해리스는 문화는 무엇으로 유지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문화의 지속성과 변화를 탐구한다. 해리스는 문화가 단순한 인간의 창의력이나 상징적 의미의 산물이 아니라, 물질적 조건에 의해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문화적 형태나 제도, 규범은 단지 사람들의 생각이나 신념의 결과가 아니라, 생존 조건과 자원의 분배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한다고 강조한다. 이 이론은 문화물질주의의 핵심 개념 중 하나로, 물질적 환경이 인간의 사회적 상호작용과 문화적 구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한다.


1. 물질 조건이 문화에 미치는 영향

해리스는 문화가 단지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 기반과 그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특정 사회의 종교, 제도, 가치 체계가 물질적 환경—기후, 자원의 유무, 경제적 기반—에 따라 무엇이 다르게 발현되는지 설명하며, 이를 통해 문화적 현상의 지속과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농업 중심 사회에서는 토지와 생산 수단의 소유가 중요한 문화적 가치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이때, 사회의 생산 수단이 어떻게 분배되는지에 따라 그 사회의 계급 구조나 문화적 규범이 형성된다. 농업의 경우, 기후나 토지의 비옥함이 그 사회의 경제적 안정성이나 생산 능력을 좌우하며, 이는 결국 종교, 정치, 법률, 교육과 같은 제도적 변화로 연결된다. 해리스는 바로 이 물질적 기반을 문화적 변화를 촉진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보았다.


2. 물질적 변화와 사상적 변화의 관계

해리스의 주장에 따르면, 사상적 변화나 철학적 사고의 변화는 물질적 조건 변화의 결과이다. 문화적 형태가 변화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원의 분배와 생존 조건의 변화에 반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나 자원 부족, 또는 경제적 불안정이 사람들의 사고방식, 사회의 제도, 그리고 문화 규범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아울러 해리스는 기술 혁신이나 자원의 변화가 인간 사회의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예시를 통해 설명한다. 예를 들어,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농업 중심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변화하면서 가족 구조나 노동 규범, 심지어 인간관계의 성격까지 바뀌었다. 산업화는 노동의 분업을 심화시키고, 도시화와 함께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이러한 변화는 기술적, 경제적 요인에 의한 것이며, 이는 사회적 규범이나 문화적 태도를 형성하게 되었다.


3. 현대 사회에서 물질적 변화와 문화의 관계

해리스의 이론을 오늘날의 사회에 적용해 보면, 디지털 기술이나 소비문화가 현대 사회의 문화적 규범을 어떻게 바꾸는지 이해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정보의 전달 방식,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 및 사회적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예를 들어,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이제 물리적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지역 사회 중심 문화에서 가상 공동체 중심의 문화로 변화를 일으켰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또한 소비문화를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전에는 한정된 자원과 공간 내에서 사람들이 소비했지만, 디지털화와 온라인 쇼핑의 확산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부여하고, 소비의 속도와 양을 급격하게 증가시켰다. 이는 소비를 넘어서 문화적 가치와 사회적 기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 비해 소비주의가 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았으며, 이는 사회적 경쟁과 사회적 지위의 기준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4. 소비문화와 문화의 지속성

소비문화의 확산은 문화의 지속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해리스는 물질적 변화가 문화의 변화를 이끈다고 했지만, 현대 사회에서 소비는 단순히 경제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소비는 문화적 아이덴티티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단순히 필요한 물건을 소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브랜드, 스타일, 생활 방식 등을 소비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디지털 기술과 소비문화가 결합하면서, 사람들은 온라인 소비와 디지털 경험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이는 사회적 관계와 문화적 표현의 형식을 바꾸고 있으며, 특히 젊은 세대에서 이러한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소셜 미디어에서의 인플루언서 문화나, 디지털 아트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문화가 등장하면서, 소비 자체가 단순히 물질적 제품을 넘어서 문화적 가치와 연결되고 있다.


5. 해리스 이론의 현대적 시사점

해리스의 이론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문화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유동적인 체계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단지 아이디어나 믿음의 발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물질적 조건의 변화가 반드시 뒤따른다는 점에서 사회적 변화의 핵심적인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디지털화와 소비문화의 변화가 문화적 규범과 가치관을 급격히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는 물질적 조건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해리스는 문화가 단지 사회의 표면적인 외양에 그치지 않고, 그 기저에는 항상 생존의 문제가 있으며, 자원의 분배와 사회적 불평등이 문화적 변화를 이끌어간다고 강조한다.


이 장의 결론

해리스는 문화의 지속성과 변화를 물질적 조건을 바탕으로 설명함으로써, 문화물질주의의 핵심 개념을 잘 드러낸다. 그는 문화의 변화가 물질적 환경과 자원 배분에 깊은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특히 디지털 기술이나 소비문화와 같은 현대의 물질적 변화가 문화적 규범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는 우리가 오늘날의 문화적 변화를 더 잘 이해하고, 그것이 사회적 변화를 어떻게 끌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을 제공한다.


마무리 요약

마빈 해리스는 문화를 신비롭거나 신성시하지 않고, 현실의 생존 조건 위에 쌓인 구조물로 보았다. 그의 문화물질주의적 접근은 우리가 문화를 단순한 믿음이나 관념의 집합체로 이해하는 것에서 벗어나, 생존과 자원 분배라는 실제적 요소가 문화 형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해리스의 관점은 오늘날 우리가 사회 문제를 읽을 때, 단순히 도덕적 판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의 구조적 요인과 물질적 조건을 함께 살펴보게 도와준다. 이는 문화와 사회적 규범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며, 유지되는지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제공하며, 우리가 마주하는 현대 사회의 문제들-예를 들어, 불평등, 혐오 범죄, 정치적 갈등 등-을 보다 실질적이고 통합적인 시각에서 분석할 수 있도록 한다.


해리스는 문화를 생존 전략의 하나로 바라보며, 현재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근본 원인을 물질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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