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 『회색인』, 분열된 자아와 사유의 드라마
2004년, 천명관의 『고래』가 이야기의 과잉 속에서 문학의 새로운 서사 가능성을 실험했다면, 그보다 훨씬 앞선 1960년대에 최인훈은 『회색인』을 통해 사유 그 자체를 서사의 중심에 두는 전례 없는 문학적 실험을 감행했다. 『광장』에서 시대의 이념적 분열을 압축해 보여주었던 그는, 『회색인』에서는 인간 내면의 균열과 다성성을 무대 위에 올려놓듯 펼쳐 보인다.
『회색인』은 말 그대로 회색의 소설이다. 흑과 백의 명확한 대립이 아니라, 그 중간 지대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충돌하며 망설이는 자아를 통해, 소설은 한국 사회의 이념적 풍경을 다시 그려낸다. 작품 속 ‘나’는 단일한 자아가 아니다. 그는 끊임없이 분열하고, 내면에서 서로 다투며, 때로는 자신을 회의하고 부정하며 자기 자신과 토론한다. 『광장』의 이명준이 이념의 대립 속에서 외부의 공간을 선택했다면, 『회색인』의 주인공은 그 대립을 내면화한 채 자신의 내부에서 싸움을 벌인다.
연극으로서의 자아, 혹은 다성성의 소설
『회색인』은 줄거리보다 구조로 말하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표면에는 뚜렷한 사건이 거의 없다. 갈등, 전개, 반전, 결말이라는 전통적인 소설의 플롯은 이 작품에서 중요하지 않다. 대신 마치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연극처럼 여러 자아가 등장해 논쟁하고 토론하며 독자의 시선을 교차시키고 전복한다.
이러한 서사 구조는 바흐친이 말한 ‘다성성(polyphony)’ 개념의 문학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목소리로 수렴되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가 충돌하며 공존함으로써 의미는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으로 생성된다. 주인공 ‘나’는 통일된 자아를 지닌 단일한 주체가 아니라, ‘나1’, ‘나2’, ‘나3’처럼 복수의 자아로 분열되어 자신을 진단하고, 의심하며, 해석한다. 이러한 연극적인 자기 해체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불확실성과 근대적 주체의 해체 가능성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구성은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질문을 유도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에서 나아가, “나는 어떤 구성물인가?”, “나는 내면의 어떤 목소리들을 조율하며 살아가는가?”라는 자아 탐색의 질문으로 이끈다. 『회색인』은 자아를 고정된 실체로 간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기되고 구성되는 과정적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념의 분열에서 존재의 분열로
『광장』이 냉전 시대의 구조 속에서 이념적 선택의 비극을 그렸다면, 『회색인』은 그 이념의 내부로 깊숙이 들어간다. 인간 존재는 더 이상 좌우로 나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 자체의 불가능성과 선택 이후의 분열을 체험하는 실존적 주체로 나타난다. 여기서 '회색'은 단순히 중간 지대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경계에 머무르는 존재의 상태를 상징한다.
작품 속 주인공은 어느 한쪽도 확정적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그는 선택을 유예하고, 각자의 입장을 연기하며, 그 틈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탐색한다. 이는 1960년대 한국 사회의 이념 피로와 정치적 혼란, 그리고 개인 정체성의 위기를 문학적으로 반영한 결과이자, 시대에 대한 통찰이다.
최인훈은 이러한 분열과 유예의 상태를 단순한 무력감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깊은 사유의 과정으로 승화시킨다. 『회색인』에서의 회색은 방황이나 회피의 기호가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뇌하며 살아가는 존재의 증거다.
플롯 없는 사유, 혹은 비극 없는 비극
『회색인』은 기존 소설의 구조와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독자는 전통적인 의미의 ‘이야기’를 기대할 수 없다. 대신 끊임없이 교차하는 대사, 논쟁, 사유의 흐름 속에서 길을 잃게 된다. 이 낯선 독서 경험은 바로 이 작품이 시도한 가장 진지한 문학적 실험이다.
주인공은 실패하지 않는다. 죽지도 않고, 사랑에 빠지지도 않으며, 혁명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그 대신 그는 자신을 끝없이 반추하고,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주인공과 동일시하기보다는, 무대 위 인물을 관찰하는 관객처럼 작품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마주하게 된다. 바로 이 거리감이 『회색인』을 감정의 서사가 아니라 사유의 서사로 읽게 만드는 장치다. 독자는 공감하기보다는, 질문하게 된다.
이 점에서 『회색인』은 비극이면서도 동시에 비극이 아니다. 누구도 죽지 않고, 누구도 구원받지 않지만, 우리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모순과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어쩌면 이보다 더 깊은 비극은 없을지도 모른다.
회색의 정치성, 그리고 회색의 윤리
‘회색’이라는 단어는 흔히 타협이나 중도, 소극성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소비된다. 그러나 『회색인』의 회색은 그와 전혀 다르다. 그것은 흑과 백 사이에 위치한 정적인 중간지대가 아니라, 양 극단을 끊임없이 오가며 자기 성찰과 타자 이해를 반복하는 동적인 상태다. 최인훈은 이 회색의 운동성 속에서 인간 존재의 윤리적 가능성을 탐색한다.
『회색인』의 주인공은 정치적 중립자가 아니다. 그는 판단을 유보하고, 다시 질문하며,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존재다. 그런 점에서 그는 현실을 회피하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가장 깊이 응시하는 자다. 이 윤리적 태도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의미 있다. 극단이 목소리를 독점하고, 흑백 논리가 문제를 단순화하는 시대에, 회색의 윤리는 우리에게 다시 사유하고 성찰할 수 있는 틈을 마련해 준다.
지금, 왜 다시 『회색인』인가
오늘날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더 복잡한 정체성과 수많은 정보 속에서 살아간다. SNS는 다양한 자아의 연기를 가능하게 하고, 정치와 윤리의 문제는 더 이상 단순한 선악 구도로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지만, 그 선택이 진정한 자기 자신인지조차 알 수 없다. 『회색인』은 이러한 불확실성과 유동성의 시대에, 존재를 사유하는 또 하나의 길을 제시한다.
『회색인』은 문학이 던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환기시킨다.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나는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조건은 무엇인가?" 이 질문들은 철학적이면서도 지극히 실천적인 물음이다. 그것은 개인의 삶, 사회적 위치, 정치적 태도에 이르기까지 깊은 사유를 요구한다. 바로 그렇기에, 지금 이 시대에 『회색인』은 다시 읽히고 다시 질문되어야 할 작품이다.
마치며: 이야기 너머의 이야기
『회색인』은 단순한 독서의 즐거움을 주는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독자에게 끊임없는 사유를 요구하는 도전장을 내민다. 하지만 그 도전은 문학이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감동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고, 존재의 조건을 되묻게 하며,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의 윤리적 지도를 다시 그리게 한다.
『회색인』은 단지 과거의 정치적 혼란을 반영한 문학적 유산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살아 있는 질문을 던지는 텍스트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서 분열된 자아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자아를 마주할 용기를, 『회색인』은 문학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