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서로를 필요로 하는가

불완전한 진화가 만든 인간다움의 기원

by 안녕 콩코드


마리아 마르티논 토레스는 고인류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스페인 아타푸에르카 고고학 프로젝트의 책임자이자 인간 진화에 관한 다수의 중대한 연구를 이끌어온 학자다. 그녀의 학문적 여정은 고대 인류의 두개골과 뼈에서 출발하지만, 그 끝자락에서는 늘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라는 철학적 질문과 마주한다.


『불완전한 인간』은 이 질문에 대한 과학적이면서도 인문학적인 응답이다. 이 책에서 토레스는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유난히 연약하고, 출산은 어렵고, 성장 속도는 느리며, 심지어 걷기조차 불안정한 존재임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불완전함이야말로 인간을 독특하게 만든, 진화가 남긴 '결핍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았기에 서로를 필요로 했고, 돌보아야 했으며, 협력하고 연대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글은 『불완전한 인간』이 제시하는 ‘결핍의 인류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연약함을 단지 극복해야 할 결점이 아닌 ‘존재의 본질’로 재조명하고자 한다. 고인류학적 발견과 철학적 사유가 교차하는 이 책은, 인간됨의 의미를 다시 묻고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인간이 되었는지를 되새기게 만든다. 이 글은 그 여정을 따라가며, 과학이 사유로 확장되는 순간을 함께 포착해 본다.



인간의 불완전함에 대한 고인류학적 시선


인간은 종종 진화의 정점에 선 ‘지적인 존재’로 묘사되지만, 고인류학적 시각으로 들여다보면 놀랍도록 불완전한 종임을 알 수 있다.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은 출생 시 극도로 무력하며, 스스로 생존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두 발로 걷는 진화적 선택은 손의 자유를 얻는 대신 출산을 더 어렵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특히 뇌가 커지면서 산도를 통과하는 출산은 위험한 과정이 되었고, 이로 인해 인간 신생아는 상대적으로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도록 진화했다.


그러나 마리아 마르티논 토레스는 이러한 ‘결점’이 오히려 인간 진화의 핵심 축이었음을 강조한다. 오랜 기간 아이가 보호와 보살핌을 필요로 하면서, 인간은 돌봄에 대한 본능적인 사회성을 발달시켰다. 연약한 존재를 향한 공감과 감정적 유대, 그리고 돌봄의 행위는 단순한 생존 전략을 넘어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정서적 토대가 되었다.


더불어, 커진 두뇌와 고도화된 인지 능력은 복잡한 사회 구조와 상호작용의 필요성을 낳았다. 인간은 더 이상 완전한 독립 존재로서 생존하지 못하고, 오히려 ‘의존’이 인간다움의 필수 조건이 되었다. 약함은 결핍이 아니라 관계를 맺게 하는 힘으로 작용했고, 이러한 새로운 의존 구조는 협력과 연대를 통해 인간이 진화하는 방식을 결정지었다.


토레스는 인간의 진화 역사를 “결함으로부터 길어 올린 창의성의 역사”로 읽는다. 이 관점은 강함이 아니라 연약함에서, 독립이 아니라 의존에서 인간다움이 시작되었음을 시사한다. 즉, 불완전함은 인간을 위태롭게 했지만, 동시에 공동체라는 보호막을 세우게 하였으며,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인간 문명의 출발점이 되었다.


우리가 진정 회복해야 할 것은 ‘완벽한 자아’가 아니라 서로를 돌보는 능력이며, 사회적 연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감각이다.



인간다움의 조건: 결핍에서 피어나는 연대


우리는 흔히 강인함을 진화의 핵심 덕목으로 여긴다. 경쟁에서 이기고 독립적으로 생존하며 결핍을 극복하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라 배워왔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의 마리아 마르티논 토레스는 이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그녀는 인간이 바로 그 ‘약함’ 때문에 진화해 살아남았다고 말한다. 우리 종의 사회성은 강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약점을 보호하고 보완해야 하는 생물학적 운명에서 태어났다.


인간은 긴 유아기와 늦은 자립, 그리고 무력한 노년기를 겪는 종이다. 이처럼 한 개인이 홀로 생존하기 어려운 구조는 인간을 태생적으로 서로를 돌보도록 만들었다. 이 돌봄의 반복 속에서 공감과 협력이 생존의 필수 조건으로 자리 잡았다. 이것은 단순한 윤리적 선택이 아니라, 진화 속에 내재된 생존 전략이었다.


공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고통받는 이를 향해 다가가고, 울음소리에 반응하며, 낯선 이를 돕는 행동들은 수천 년에 걸쳐 생존에 유리한 특성으로 자리 잡았다. 도덕성 역시 마찬가지다. 불완전한 존재들이 서로 질서와 보호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생물학적으로 ‘발명’된 장치였다.


토레스가 강조하는 인간다움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다. 구조적으로 서로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도록 진화한 존재다. 의존은 무능함의 징표가 아니라 인간됨의 본질이며, 연대는 선택이 아닌 삶의 조건이다.


그녀가 말하는 ‘인간다움’이란, 뛰어난 두뇌나 기술이 아니라 서로의 결핍을 알아보고 감싸 안는 능력이다. 『불완전한 인간』은 우리가 ‘인간답다’고 할 때, 그것이 곧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일깨운다. 우리가 서로를 돌보는 이유는 도덕적으로 옳아서만이 아니라, 우리 종 전체가 그러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 허물기


『불완전한 인간』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과학이라는 언어로 출발해 인문학적 물음에 도달하는 저자의 통합적 시선이다. 마리아 마르티논 토레스는 고인류학자임에도 인간 진화사를 단순한 생물학적 변화의 계보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그녀는 해부학적 변화, 도구 사용, 사회 구조 형성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면서, 그것이 인간 존재의 철학적·윤리적 의미와 어떻게 맞닿는지 탐구한다.


토레스의 작업에서 고인류학은 단순히 뼈와 화석을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뼈가 살아 있던 시절의 감정, 관계, 연대의 흔적까지 되살리는 작업으로 확장된다. 예를 들어, 뇌 크기의 증가는 단순한 진화론적 결과가 아니라, 타인과 협력하고 감정을 조율하는 능력이 함께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된다. 이는 곧 뇌과학, 진화론, 윤리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불완전함’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접근은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허물며, 인간을 단지 ‘측정 가능한 존재’가 아닌 ‘이해되어야 할 존재’로 되돌려 놓는다. 토레스는 고인류학적 발견 하나하나에 생명과 감정을 불어넣으며,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묻는 동시에 왜 지금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성찰하게 한다. 과학적 사실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을 인간 존재의 의미로 확장하는 그녀의 서술은, 독자에게 단순한 생물학적 역사를 넘어선 존재론적 성찰의 여지를 남긴다.


『불완전한 인간』은 통계나 표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감정과 윤리를 과학의 언어로 다시 쓰려는 시도이며, 동시에 과학의 한계를 인문학으로 보완하는 작업이다. 결국 이 책은 과학이 다다르지 못한 영역에 인문학의 숨결을 불어넣고, 인문학이 막연히 다루던 인간성을 과학의 증거로 뒷받침하려는 ‘교차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통찰


현대 사회는 ‘완벽’이라는 신화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자기계발과 경쟁,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담론 속에서 약함은 곧 결함으로, 의존은 무능력으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마리아 마르티논 토레스는 이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녀는 진화의 관점에서, 인간은 결코 스스로 완결된 존재가 아니며, 오히려 불완전하기에 살아남았고, 불완전하기에 공동체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불완전한 인간』은 우리에게 인간다움을 성취의 결과가 아니라 관계의 구조로 다시 생각하라고 제안한다. 우리는 타인의 돌봄 없이는 자랄 수 없으며, 노년기에도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삶의 어느 지점에서도 완전히 독립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실패나 부족함이 아니라, 인간 진화의 기본 조건이었다. 즉, 연약함은 인간의 결함이 아니라 인간성 그 자체이며, 연대는 고귀한 덕목이 아니라 생존의 메커니즘이다.


이 통찰은 현대 사회의 고립과 단절을 진화의 관점에서 다시 성찰하게 한다. 우리가 진정 회복해야 할 것은 ‘완벽한 자아’가 아니라 서로를 돌보는 능력이며, 사회적 연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감각이다. 토레스는 과거 인류의 협력적 생존 전략을 재조명하며, 오늘날 경쟁 중심 사회에 불편하지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서로를 의지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는가?


돌봄과 의존은 약자의 언어가 아니라, 인간 모두의 언어다. 이는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에도 지속되는 진화의 결과이며, 앞으로의 생존을 위한 핵심 전략일지도 모른다. 『불완전한 인간』은 바로 그 점에서, 인간의 미래를 과거 속에서 되짚고, 개인주의의 시대에 공동체의 가능성을 다시 열어 보여 주는 책이다.



『불완전한 인간』은 단순히 고인류학의 성과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진화라는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인간 존재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를 견고히 세운 저작이다. 마리아 마르티논 토레스는 화석 속 뼈를 바라보며, 그 속에 깃든 관계의 흔적을 읽어내고, 돌봄의 가능성을 묻는다. 과거의 인간은 약하고 느렸으며 의존적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이 인간다움의 출발점이었다는 그녀의 통찰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결핍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아 왔다. 하지만 토레스는 인간의 결핍이 곧 사회성의 발현이었고, 연대와 공감, 협력이라는 핵심 가치를 꽃피운 토양임을 다시금 일깨운다. 인간은 결코 홀로 완성되지 않으며, 서로를 필요로 하며 존재한다. 바로 그 ‘필요함’ 자체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금 이 불완전함을 품을 용기를 요구받고 있다. 완전함을 추구하는 사회적 강박과 개인화된 삶의 구조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타인의 약함에 무관심해지고, 자신의 약점을 숨기려 한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은 말한다. 약함은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이해받아야 할 것이며, 의존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선택이라고.


따라서 이 책은 과거를 되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를 위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인간다움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토레스의 대답은 명확하다.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 때—비로소 우리는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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