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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코드 Apr 15. 2024

불행한 결말

문제 해결이 아닌 단순 봉합으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다투거나 오해가 생겼을 때 전적으로 어느 한쪽에 책임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책임의 비중이 50대 50이거나 90대 10, 혹은 20대 80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전적으로 어느 한쪽에 100% 책임이 있는 경우란 많지 않다. 예를 들어 금전적인 문제에 있어선 혹 어느 한쪽이 전부 책임을 지게 될 수 있다. 특정 프로젝트를 수행한 뒤에 성적이 좋지 못하면 내부자 중 어느 한 사람이 전체를 대신해 책임을 져야 하는 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다툼이나 오해에서 비롯된 문제는 여러 갈래에서 문제가 초래되기 일쑤여서 보통은 당사들의 공동 책임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흔하다. 이 경우에도 공동 책임이니 책임의 소재에 관한 규명 없이 흐지부지 넘어가서는 곤란하다. 넓게 봐서 실패엔 책임이 뒤따르는데 책임의 소재와 비중을 굳이 따지는 이유는 같은 실패(또는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되기에 그렇다. 이와 반대로 어느 한쪽이 책임을 뒤집어쓰는(좋게 말해서 책임을 떠안는) 방식으로 서둘러 봉합하면 문제 해결은 요원해지고 만다. 이해는 간다.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돌연 등장한 문제에 책임의 경중을 시시콜콜 따지는 게 마뜩잖을 수 있다. 다른 말로 좀스러워 보인다. 괜히 그랬다가 관계가 더 악화하면 어쩔까, 싶은 불안감도 없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딱히 대수롭지 않은 문제에 이러쿵저러쿵 토를 다는 것이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연인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상황을 정리하는 편이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는 방법이라고 믿기 쉬울 수 있다. 차츰 고쳐가면 될 거라는 생각에 우선은 내가 책임을 지는 것으로 상황을 종료하려는 욕심이 작용하기도 한다. 연인의 기를 살리는 데 그보다 나은 방법이 선뜻 떠오르지 않을지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각각의 생각이나 결정은 사태 해결이 아니라 사태를 단순히 봉합하는 데 최적화되었을 뿐이다. 문제의 근원은 고스란히 남았다. 단순 봉합은 유사한 환경에서 같은 문제가 불거질 경우 활화산을 덜컥 안은 것과 같다. 혹 두세 번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문제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길게 늘어선 줄 중간에서 지인이 일행에 둘러싸여 노점상과 머플러를 흥정한다. 어느새 숄 흥정 개수가 1개에서 3개로 늘었다. 1시간 넘게 줄을 서느라 지친 일행과 주변인들에게 지인이 노점상과 팽팽하게 맞선 장면은 흥미를 자아낼 만했다. 일행은 미처 몰랐지만, 지인은 의류샵을 하고 있어 팔고 사는 사람의 심리에 밝았다. 지인은 숄 3개를 묶어 얼마에 하자고 미끼를 던졌다. 이탈리아 현지인인 노점상은 어수룩한 한국어로 지인의 말을 받았다. 안 돼요. 못 팔아요. 노점상도 만만치 않았다. 지인 역시 물러설 기색이 아니었다. 당장에라도 4개를 후려쳐서 새 값을 제시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양자가 팽팽히 맞선 상황이라 사지도 팔지도 못할 상황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일행도 얼마간 흥미를 잃고 있었다. 결국 지인은 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속마음이 읽혔는지 모르고 지인은 자꾸 흥정을 붙였다.



나는 눈살을 찌푸린 채 지인 앞으로 바싹 다가섰다. 그전에도 눈짓으로 지인에게 (어디서 보관했다가 가져왔는지 모르고 이미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만큼) 더러워 사지 말라는 뜻을 비쳤다. 지인은 보고도 본체만체했다. 그 과정이 10여 차례 반복되자 더는 안 되겠다 싶었던 것이다. “사지 말라니까.” 아주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주변에 있던 일행은 물론 외국인들이 소리를 들었다. 상황은 종료되었다. 잠시 카페에 다녀오자는 말에 따라나섰다가 지인의 거침없는 언사를 꼼짝없이 받아내야 했다. 왜 조용히 다가와 귀엣말로 더러우니 사지 말라고 하면 될 일을 그렇게 공개적으로 떠들면 어떡하느냐고 타박했다. 지인은 내가 공개리에 나서는 바람에 자신이 여러 사람 앞에서 망신당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지인이 사지 않는 것으로 일단락되어 다행이다 싶었던 나는 지인의 화 세례에 적잖이 당황했다. 지인은 자초지종에 대한 말을 듣고도 같은 말을 계속 반복했다. 자신이 두르거나 혹 팔려는 뜻으로 사려던 게 그렇게 못마땅했느냐고 쏘아붙였다. 문제의 원인을 전부 내게 투사하는 지인의 태도가 신물 났지만 참았다. 멀리 나와서 싸우느라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그날 저녁 지인의 말마따나 내가 귀엣말로 뜻을 전하지 않은 책임을 졌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지인에게 했다. 지인은 내가 자신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인 것에 만족했고 화를 풀었다. 문제는 그렇게 봉합되었다. 다른 문제에 기름을 부을 단초가 될 여지를 남긴 채.



문제를 피해 가지 말고 이렇게 야 했다. 현지인을 포함해 수많은 관광객이 줄 서는 대표 관광지에서 굳이 노점상에게 출처를 알 수 없는 물건을 사는 게 적절치 않으며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말이 서툰 외국인과 언제 끝날지 모를 흥정을 벌이는 모습이 썩 내키지 않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가십거리로 여겨지는 풍경이 불편했다는 말을 야 했다. 서둘러 지인을 그 상황에서 빼내려 눈짓과 손짓으로 그만두라고 했음에도 지인이 멈추지 않아 급기야 공개리에 싫은 소리를 내뱉게 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야 했다. 지인은 한사코 내 행동을 보지 못했다고 발뺌했다. 일행들이 내 눈짓과 손짓이 결국은 통하지 않은 것을 알아챈 표정에서 내가 모멸감을 느낄 수도 있었던 점을 지적하는 부분도 필요했을 것이다. 로의 입장 차만 확인할 게 아니라 서로에게 그런 면도 있을 수 있다는 성찰이 필요했지만 나와 지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면 지인의 말대로 다가가 귀엣말하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라면 눈짓이나 손짓을 보낼 테니 잠시 하던 일을 멈추라는 말도 덧붙여야 했다. 혹 같은 결과에 봉착하면 관계가 틀어질 수 있다는 점도 명백히 했어야 했다. 그런 말을 생략한 채 전적으로 책임을 내게로 돌렸다. 당장은 훈훈한 마무리였다.





- 이 골프채가 맞는지 확인해 주면 안 될까?



지인 먼저 들여 보내고 나는 골프숍 외부 주차장에 남았다. 용인시에 있는 온천에 가는 길이었다. 골프숍은 분당 정자역 근처에 있었다. 몇 달 전에 그곳에서 지인은 특정 골프채 세트의 가격을 물었고, 길 건너에 있는 샵 서너 곳에도 들러 가격조사를 했다. 이어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 전문성이 있다는 서초 인근 샵을 알게 되었다. 몇 번 통화를 하고 급기야 찾아가더니 서초 샵 대표가 분당보다 훨씬 싼 가격을 제시했다고 지인은 무척 좋아했다. 얼핏 들어도 반값에 가까웠다. 최종 결정까지 며칠이 흘렀고 막상 구입하러 서초 샵에 간 날, 원하는 구성의 골프채 중 일부가 행사종료되었다는 난감한 소식을 전했다. 지인이 구입하려던 세트 구성은 대표가 지인의 신체조건과 구력을 따져 추천한 것이었음에도 대표는 행사가 종료되지 않은 제품 중에서 대체할 만한 것들을 찾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사용하기에 큰 문제가 없어요. 지인의 확고한 구매 이사를 확인한 대표가 당초 약속과 달리 가격 할인율과 사은품 종류를 낮추거나 이미 손해를 보며 파는 거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에 기분 상했었다. 결국 다음 행사를 기약하며 샵을 빠져나왔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나는 지인이 대표를 지나치게 믿는 것에 경계가 필요하다는 의사를 폈다. 이만한 가격에 사은품을 이 정도로 주는 곳은 없어. 친절하고 설명도 짜임새가 있고. 지인은 단호했다. 그새 한 달이 흘렀다.



유럽에 다녀온 뒤로 지인은 다시 골프에 의욕이 불탔다. 한 번 더 서초 샵에 가서 원하는 구성의 골프채가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 샵 대표도 일간 들러보라고 했단다. 지인은 대표가 전산에 입력해 봐야 재고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재고 여부는 지인이 가지 않아도 대리점 차원에서 확인하기 어렵지 않다는 생각에 의아했다. 더군다나 한 달 전 해당 골프채가 소진되어 더 없다는 말은 대표가 강조하며 한 말이었다. 석연치 않은 낌새를 눈치챈 나는 지인에게 먼저 대표에게 전화하라고 재촉했다. 기대하며 묻는 지인의 말에 대표는 예상대로 행사 종료로 구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바로 그날 그러면 당장 필요한 아이언이라도 가격을 알아보자고 분당 샵에 들른 것이다. 다른 용무로 장시간 들를 곳이 더 있어 늦지 않게 귀가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 맞아. 서초 샵에서 사려던 세트 제품이야.

- 250만 원 이래.



점원이 우리 뒤에 다가섰다. 지인은 점원에게 같이 진열된 골프채의 가격을 굳이 물었고 이어 3번과 5번 아이언 외에 다른 아이언을 사용하면 내게 맞겠느냐 아니냐를 물었다. 서초 샵에는 3번과 5번이 전부 없었다. 빨리 대화를 그쳐줬으면 좋겠는데 그 후에도 지인은 점원 앞에서 머뭇거렸다. 지인의 대화 특성-끝날 듯 끝날 듯 이어지는 대화법-인 줄 알면서도 답답했다.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이 따로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우선 이곳에서 제시한 세트 가격이 서초 샵의 그것보다 낮은 지 혹은 높은 지부터 확인하고 싶었다. 만약 낮으면 다시 방향을 바꿔 세트 구입을 서두르는 편이 낫다. 이외 내게 뭐가 좋으니 나쁘니 하는 건 부차적인 문제라고 판단했다. 귀가 시간에 맞추려면 되도록 샵에서 일찍 나서야 하는 조건에서 그런 질문은 나중에 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인에게 그만 질문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지인은 내 눈짓을 보고도 여전히 점원에게 물었고 또 머뭇거렸다. 나는 눈짓을 가까이 점원이 있어서 다른 곳보다 싸니 비싸니 하는 말이 적절치 않다는 뜻으로 썼다. 지인은 그런 내 눈짓이 불편했을 수 있다. 알고 싶은 것이 더 있는데 자꾸 내가 신호를 준 것에 불쾌했을 수 있다. 사고의 차에서 비롯된 문제지만 그 부분을 지인과 나는 다루지 않았다. 껄끄러워도 한 번 이상은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했다.



샵을 나온 뒤 지인은 또다시 불같이 화를 냈다. 내가 묻는 말이 얼마나 못마땅했으면 눈을 위아래로 치켜뜨며 그만두라고 했겠느냐고 소리쳤다. 이곳에서 제시한 가격이 서초보다 싼 지 비싼 지 서로 확인하는 게 순서인데 자꾸 곁가지를 묻느라 시간을 보내고 있어 눈짓한 것이 그렇게 문제냐며 나도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번 일이 마치 기시감처럼 재연되고 있었다. 이후 과정은 부연하고 싶지 않다. 반복되는 문제 앞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처음 계획대로 지인과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거기서 나는 거의 정신줄을 놓고 저간의 일을 되짚었다.



- (이런 상태로는 안 되겠어.)



시간이 필요했다.



- 이러다가는 언제 곪아 터질지 모릅니다. 생각할 시간을 가집시다.



한참 뒤 지인은 카톡으로 동의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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