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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코드 Apr 09. 2024

이스탄불 공항에서 국제 미아 될 뻔한 사연

경유할 때 꼭 확인해야 할 것



현지 시각 4월 6일(토) 오후 8시 5분 로마에서 출발한 여객기는 2시간 40여 분의 비행을 마치고 환승을 위해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 시각 오후 10시 45분. 7일(일) 오전 1시 45분에 이곳 이스탄불 공항에서 인천공항행 여객기를 갈아타기만 하면 된다. 환승까지는 3시간이 남았다.



3시간이면 한숨 돌리기에 충분한 시간이라 나와 지인은 일행과 떨어져 앉았다. 덜 붐비는 구역에서 발을 뻗고 앉거나 늘어지게 기지개라도 켜려는 뜻에서였다. 거기서 2시간을 머물다 출발 1시간 전에 전광판에 뜨는 탑승 게이트 번호를 확인하고 해당 게이트로 자리를 옮길 계획이었다. 전광판에 탑승 게이트 번호가 뜨는 시각은 2시간 후. 지인이 의자에 기댄 몸을 일으켰다.



- 20분만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혹 길을 잃을까 싶어 우리가 머문 곳이 D5 구역이며 구역 오른편에 스타벅스가 있으니 돌아올 때 잘 보고 오라고 말했다. 그 후 지인은 30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남은 터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지인이 나선 김에 공항 구석구석 둘러보나 싶었다. 아무리 늦어도 2시간 안에만 돌아오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때 전광판에 탑승 게이트 번호가 떴다. 예상보다 1시간 앞서 전광판에 탑승 게이트 번호가 뜬 것이다. 의아했지만 서둘러 공지하는 것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D8. 지인과 내가 머문 곳 바로 옆 구역이다.



이제 지인만 돌아오면 함께 짐을 옮길 작정이었다. 탑승까지는 아직 2시간이 남았다. 머문 자리에서 나간 뒤 1시간이 지나 돌아온 지인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현지 시각 11시 45분. 탑승시각은 다음날 오전 1시 45분이었다. 멀리서 헐레벌떡 달려온 지인은 눈이 반쯤 풀렸고 온몸이 땀에 젖었다.



- 못 오는 줄 알았어요. 아무리 찾아도 스타벅스 있는 곳이 보이지 않았어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자꾸 이상한 곳만 가리키고...... 이곳에 발이 묶이는 줄만 알았어요.



지인은 울음을 삼켰다.



-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어요. 괜찮아요.

- 1시간이 더 남았지만, 그 시각까지 돌아오지 못하는 줄 알았거든요. 기다리는 사람 생각에 정말 끔찍했어요.





얼마나 놀랐는지 지인은 내가 물을 사 오겠다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는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뱉었다. 안도감과 울상이 교차하는 얼굴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20분만 둘러보고 오겠다는 말에 다른 때와 달리 꺼림칙했었다. 그래서 이곳 위치(D5)와 식별이 쉽게 스타벅스 옆이라는 말까지 했었다. 그러고도 불안한 마음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같이 가자고 할까 싶다가 짐을 놓고 갈 순 없어서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말만 뱉었었다.



지인은 안절부절하지 절하지 못하고 기다렸을 내 생각에 미안했는지 잠깐 쉬면서 숨을 고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시간이 아직 1시간 넘게 남았으므로 난 걱정할 일이 없었다. 지인도 돌아왔고, 잠시 뒤 탑승 게이트 D8로 짐을 설설 옮기면 되었다. 난 태평하게 사태를 바라보았다. 지인은 내가 애를 태우다 못해 속이 까맣게 타고도 태연한 척하는 줄 알았는지 미안해하며 어디라도 다녀오라고 내 등을 떠밀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나는 탑승 게이트 D8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 상황이 어떤지 궁금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일행이 모였을 리 없지만 내친걸음이었다. 입구 쪽으로 늘어선 줄이 보였다. 앞서 출발하는 여객기를 타려는 줄인가 보다 싶었다. 눈을 돌리려는데 시야에 익숙한 얼굴 몇 명이 보였다. 눈을 가늘게 떴다. 일행이 섞여 있었다. 5미터 앞으로 다가갔다. 틀림없는 우리 일행이었다. 서둘러 자리로 돌아와 지인에게 캐리어를 옮기자고 말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지인은 군말 없이 내 말을 따랐다. D8 줄 맨 끝에 섰다. 차례를 기다리며 이 상황이 어떻게 된 일인지 살펴보았다. 분침이 11시 5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퍼뜩 이곳 이스탄불이 로마와 1시간의 시차가 있음을 떠올렸다. 인천행 여객기의 출발 시각은 7일(일) 오전 1시 45분이 아니라 자정을 넘긴 0시 45분이었다. 내 실수였다. 시계를 맞추는 걸 잊었다. 천운이었다. 여객기 출발 시각은 정확히 0시 45분. 지인이 자리로 돌아온 시각이 11시 45분이었다. 그 직후 놀란 지인을 달래느라 15분가량 시간이 흘렀을 터였다. 탑승 게이트 D8에 줄 선 시각은 어림잡아도 0시 5분. 출발 시각 40분 전이었다. 만에 하나 지인이 2시간 넘게 헤매다 돌아왔다면 여객기를 놓치고 말았을 시각이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지인은 출발 시각에서 1시간 남겨 놓고 돌아왔다고 해도 내가 철석같이 아직 2시간 남았다고 믿고 자리를 뭉개고 있었다면 역시 여객기를 놓치고 말았을 터였다. 예를 들어 탑승 게이트에 출발 시각인 0시 45분을 넘겨 도착하고는 태연히 일행을 기다릴 수도 있었다.



기내 좌석에 앉자마자 지인은 더 놀랐는지 연신 가슴을 쓸어내렸다. 입장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지인에게 이 모든 상황을 알려주었으니 다행이랴 싶으면서도 얼마나 놀랐을지 보지 않아도 알 만했다. 우린 그렇게 국제 미아가 될 뻔한 경우의 수를 용케 세 번이나 벗어났다.



물론 다음 여객기를 수소문해 타고 가면 되었지만, 여객기에 실은 수화물을 대신 챙기느라 족히 일행 중 한 명 이상이 인천공항에 대기할 뻔했다. 출발 시각이 다 되도록 탑승하지 않은 우리를 위해 급거 여객기에서 내렸을 누군가에겐 또 얼마나 난처하고 미안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좋게 어져도 시원치 않을 마지막날을 그렇게 망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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