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인들이 워낙 말하기를 좋아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 독일인과 이탈리아인이 전쟁포로로 잡혔다. 누가 먼저 불었을까? 고문에 지친 독일인 포로는 얼마 못 가 극비 사항을 털어놓았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몇 배의 고문을 가해도 이탈리아인 포로는 입도 벙끗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기 좋아하는 이탈리아인이 끔찍한 고문을 견디다니 이해할 수 없었던 고문 기술자는 방침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뒤로 묶은 포로의 손을 풀어주고 며칠을 기다리기로 했다. 포로가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하면 회유해 볼 작정이었다. 손이 풀리자마자 이탈리아인 포로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고문 기술자는 경악했다.
누구든 손발이 묶이면 기겁하거나 심리적으로 위축되게 마련이지만 이탈리안인은 달랐다. 이탈리아인에게는 발이 문제가 아니었다. 손이 묶인다는 건 이탈리아인에게 입을 봉쇄당하는 느낌 그 이상의 끔찍한 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사라진 도시 폼페이
이탈리아인들이 말하는 모습에서 특이한 동작 하나를 볼 수 있는데 그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끊임없이 손을 쓴다는 것이다. 욕할 때는 물론이고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손동작이 거의 동시에 등장한다. 말에 앞서 등장하는 그들 특유의 손동작(제스처)은 그렇게 누대에 걸쳐 이탈리아인들의 습속으로 자리 잡았다. 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채 마이크를 건네면 이탈리아인들은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고한다.
그런 이탈리아인의 손을 묶었으니 뼈가 으스러지는 고문을 가한들 발설할 수 있었겠나? 사실이냐고 묻지 마시라. 22년 동안 이탈리아에 살며 우리 일행의 로마 사흘 일정을 맡은 현지 가이드가 한 말이다. 설마 그런 가이드가 우리를 상대로 사기를 쳤겠는가?
연설로 군중을 사로잡은 히틀러는 두드러진 제스처로 군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일 히틀러'와 함께 등장하는 손동작은 워낙 유명하다. 대중 연설에서 히틀러는 특유의 손동작으로 대중의 시선을 그러모은 뒤 대중을 향해 사자후를 토했다. 군중은 열광했다. 대중의 심리 상태를 한껏 고조시킨 히틀러는 대중을 자신의 입맛대로 요리할 수 있었다. 아시는 것처럼 히틀러는 이탈리아 사람이다. 독일인으로 착각하는 분들이 꽤 많다. 이탈리아 누대에 걸쳐 유전자에 각인된 손동작이 이탈리아 전역과 서유럽의 절반을 농락했다면 억측일까?
이탈리아 폼페이(레스토랑 배수비오 앞)
음주
이탈리아에 음주운전 사고기록이 많지 않은 이유
이탈리아만큼 음주에 관대한 나라가 있을까? 어느 정도냐면 술에 꼴딱 취해 운전을 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고. 그런 경우가 워낙 많다 보니까 다들 음주 운전을 심상하게 여기는 편이란다.
가이드발 보고에 따르면 지인이 술에 취해 운전을 하다가 도로 앞 논두렁에 처박혔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출동한 경찰이 운전 미숙으로만 처리했다. 음주운전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음주단속의 근거법인 이유 EU 법이 통과되었지만 음용수를 얻기 힘든 이탈리아 내 환경이 바뀐 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물값이 주류 가격을 웃돌았다. 비싼 물을 사서 먹기보다는 반주를 겸해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는 관행이 오랜 세월 습관으로 굳어졌다. 한두 잔이 서너 잔이 되고 급기야 병나발을 부는 일이 종종 벌어졌고, 굴로 떡이 된 상태로 차를 끌고 도로에 나오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목격되기도 했다.
신호등 앞에 (운전자가) 퍼진 상태로 발견된 차는 경찰이 갓길에 세웠다. 그렇다고 과태료를 물리진 않았다고. 대여 섯 시간 술을 깨고 운전하도록 계도할 뿐이었단다. 그 외의 경우엔 비틀거리며 마주 오는 차량을 알아서 피하는 게 일종의 풍속도처럼 굳어진 면이 없지 않았다. 술 퍼마시고 운전한 경험이 한두 번씩 있고 보면 음주운전자를 힐난만 할 수 없기도 했다. 위험 천만한 일이지만 술에 관대한 문화는 그렇게 형성되었다. 하루아침에 문화가 바뀌길 기대하는 건 지나치게 낭만적인 사고일 것이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위험성을 자각할 날이 오겠거니 싶다. 그때까지만이라도 무사고를 빌뿐이다.
물론 피치 못할 사정도 있다. 대중교통이 발달되지 않은 비도시권에선 승용차가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등학생만 돼도 차를 운전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렇게 일찍부터 차를 몬 덕에 이탈리아인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능숙하게 운전을 하게 되었단다. 음주운전을 하게 된 동기나 근거를 거기서 찾을 수 있을까?
말이 안 되는 얘기다. 관계당국이나 직접 당사자들의 고심이 깊어지는 지점이다. 당장은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가 많지 않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가 터질지 모를 일이다. 사고가 나면 보통은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 음주운전의 특징이다. 국토가 넓지만 도시로 몰리는 인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비도시권 인구에 어떤 변화가 올지 장담할 수 없다. 장차 예상되는 혼란을 막으려면 이제부터라도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당장은 물을 싸게 팔거나 주류 가격을 높이는 정책 도입이 필요할 것이다. 혹은 그 둘 모두를 택하거나. 하지만 인간사가 정답처럼만 되면 얼마나 좋겠나? 뾰족한 수가 없는 건 야기나 거기나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