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전에 꼭 챙기는 게 있습니다. 여행 목적에 맞게 책을 고르고, 여행지에서 짬을 내 가져간 책을 어떻게든 읽고 오는 거죠. 이번엔 여행 목적을 휴식으로 정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날을 세울 일이 적잖아 신경이 많이 예민해졌거든요. 진정도 필요하고 환기도 필요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결행했습니다.
그새 일정이 코 앞입니다. 하루 반나절 뒤인 토요일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에 인천공항을 출발합니다. 파리에는 토요일 오전 11시 30분 무렵에 도착하고요. 총 8박 9일의 일정입니다.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내내 딴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저와 제 일부에게 충실한 여행이 이번 여행의 궁극 목적입니다.
서유럽 3개국 8박 9일 - 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
책은 수필과 인문학 서적 각 한 권씩 총 두 권을 가져갈 생각인데 물망에 오른 책은 아직 없습니다. 특히나 이번엔 대강조차 떠오르지 않아 멋쩍습니다만, 조만간 가닥이 잡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 안 떠오르면 제 서가 앞에 서서 답이 나올 때까지 노려보면 되니까 딱히 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책 두 권을 가져가면서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 싶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같은 습관을 수십 년간 버릇처럼 이어오면서 제겐 특별한 의식처럼 자리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가방은 거의 쌌습니다. 오늘 저녁에 구입할 몇 개 품목을 빼면 중요 물품도 빠짐없이 챙겼습니다. 쌕에 넣을 책 두 권만 선정하면 다 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헤밍웨이를 기리는 뜻으로 《노인과 바다》를 가져갈 생각이었습니다.
수필과 인문학 서적을 가져가기로 결정하면서 당초 계획에 변화가 불가피해졌습니다. 수필은 성찰과 장래 계획에 가이드가 될 만한 중수필로 하고 인문학은 유럽의 현실을 주제로 역사와 전망을 내놓은 도서가 적당하겠습니다. 막히면 돌아가라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들어오니까 실타래가 풀린 듯합니다.
언뜻 떠오르는 책이 있습니다. 올리비아 랭의 《이상한 날씨》와 도널드 서순의 《유럽 문화사 1》입니다. 결국 인문학 서적과 역사서가 선정되었네요. 새삼 느끼는 거지만 계획대로 잘 안 됩니다. 위기의 시대를 헤쳐 나갈 예술의 방향을 고민하고 생산, 유통, 판매, 소비되는 문화의 상품성에 천착한 작품입니다. 문화와 예술을 사선에서 비껴보는 관점이라 유쾌한 긴장감이 상당할 거 같습니다. 그거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