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진화』 톺아보기
『욕망의 진화(The Evolution of Desire)』는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David Buss)의 대표작으로, 인간의 성적 행동과 짝짓기 전략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분석한 저서입니다. 특히 이 책은 남성과 여성의 성적 전략이 어떻게 다르게 진화했는지를 풍부한 연구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명하면서, 우리가 오늘날 연애와 결혼, 질투와 배신, 매력과 선택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냅니다.
무엇이 우리를 욕망하게 하는가
― 유전자의 논리와 감정의 수수께끼
우리는 왜 사랑에 빠질까? 왜 누군가의 눈빛에 설레고, 누군가의 말투에 마음이 끌릴까?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거나 개인의 성향만으로 설명되기에는 너무도 정교하고 반복적이다. 데이비드 버스는 이러한 감정의 원천을 ‘문화’나 ‘개성’이 아니라, 더 깊고 오랜 시간의 층위에서 찾는다. 바로 수십만 년에 걸친 진화의 역사, 그중에서도 인간 종의 번식을 지배해 온 성 선택(sexual selection)의 메커니즘이다.
버스는 『욕망의 진화』에서 인간의 성적 행동을 ‘진화된 심리 기제(evolved psychological mechanisms)’로 정의한다. 즉, 우리가 누구에게 매력을 느끼고, 어떤 방식으로 구애하고, 어떤 특성에 끌리는지는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감정처럼 보이지만, 실은 생존과 재생산에 유리했던 전략이 오늘날 우리의 감정으로 ‘번역’된 결과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진화는 오직 생존보다도 더 본질적인 것, 즉 유전자의 전달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사랑을 갈망하는 이유는, 사랑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이 ‘짝짓기 성공률’을 높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욕망은 단지 감정의 소용돌이가 아니라, 유전자가 후세에 복제되도록 하기 위한 전략적 알고리즘이다. 가령 남성은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젊어 보이며 생식력 있는 여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여성은 자원을 제공할 수 있고 신뢰 가능한 남성을 선호한다는 통계적 경향이 수많은 실험을 통해 관찰된다. 이러한 선호는 일시적 취향이나 개인적 성격으로 간주되기보다는, 생물학적 진화의 방향성과 일치하는 전략으로 간주된다.
버스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전 세계 37개국 이상의 다양한 문화권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한다. 놀라운 것은, 문화적 배경이나 종교, 정치 체계가 달라도, 인간의 ‘성적 선호’에는 일관된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거의 모든 문화에서 남성은 평균적으로 여성보다 더 어린 파트너를 선호하고, 여성은 남성의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높게 평가한다. 물론 이는 개인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요소지만, 집단 전체의 경향성을 통해 진화심리학은 욕망의 보편적 뿌리를 찾아낸다.
그러나 버스는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성 전략이 이분법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의 흥미로운 지점은, 인간이 복수 전략(multiple strategies)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유연한 존재라는 점에 있다. 예컨대 남성은 장기적 관계를 통해 안정적인 번식을 추구하면서도 단기적 관계를 통해 유전자 확산을 꾀할 수 있다. 여성 역시 장기적 파트너와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특정한 상황에서 더 뛰어난 유전자를 지닌 상대에게 끌릴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의 욕망은 단선적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상황 의존적인 양상을 보인다.
이런 관점은 인간의 감정에 대한 낭만적 해석을 뒤흔든다. 우리가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친 이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얼굴 대칭성과 피부 톤, 어깨의 각도, 보폭의 길이 같은 ‘신호’들이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진화된 뇌를 자극했기 때문일 수 있다. 사랑은 아름다운 감정이지만, 동시에 생물학적 계산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욕망은 낭만과 냉정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인간의 감정을 전부 생물학으로 환원하는 것은 아니다. 버스는 인간의 성적 행동이 생물학적 전략으로 설계되었지만, 그것이 항상 의식적으로 작동하는 것도 아니며, 언제나 그대로 발현되는 것도 아님을 분명히 한다. 우리는 진화된 본능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조절하고 때로는 거스를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진화는 조건을 제시할 뿐이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욕망은 진화되었지만, 그 욕망을 어떻게 다루고 실현할지는 우리의 몫이다.
결국 『욕망의 진화』는 우리에게 거울을 들이댄다. 그 거울은 낭만적 사랑의 이미지가 아닌, 유전자와 전략, 경쟁과 선택의 논리로 우리를 비춘다. 그러나 그 거울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비로소 사랑이라는 감정의 정체를 더 깊이 이해하고, 그 위에서 더 자유롭고 성찰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성과 여성, 다른 전략의 공존
― 진화는 성별의 전략을 어떻게 다르게 디자인했는가
『욕망의 진화』에서 데이비드 버스가 독자에게 제시하는 가장 도발적인 명제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남자는 가능한 많은 여성과 번식하려 하고, 여자는 가장 좋은 유전자를 가진 남자를 원한다.”
이 문장은 마치 사랑이라는 고결한 감정을 성적 본능의 논리로 환원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단순화된 도식은 진화심리학이 인간 행동의 밑바닥을 들여다볼 때 사용되는 하나의 출발점일 뿐이다. 버스는 이 명제를 정교한 데이터와 사례로 뒷받침하며, 인간의 짝짓기 전략이 얼마나 복잡하고 상황의존적인지, 그리고 성별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진화했는지를 탐구한다.
먼저,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가 이 전략적 차이를 만든 근본적 요인으로 지목된다. 여성은 임신과 출산, 양육이라는 장기적이고 고비용의 투자를 감당해야 하는 존재로 진화해 왔다. 한 번의 임신은 생물학적으로 9개월 이상의 시간과 생명력을 요구하며, 출산 이후에도 유아의 생존을 위해 여성의 자원이 계속 투입되어야 한다. 반면 남성은 단 한 번의 정자 방출로 수백 명의 여성에게 유전자를 전달할 이론적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진화했다. 이 생물학적 비대칭은 곧 성적 전략의 차이로 이어진다.
여성은 자식을 낳는 데 따르는 높은 대가 때문에, 가능한 한 유전자가 뛰어나고 자원을 제공할 수 있으며 양육에 헌신적인 남성을 선별하는 전략을 발전시켜 왔다. 반면 남성은 더 많은 여성과 관계를 맺어 자신의 유전자를 폭넓게 퍼뜨리는 전략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이분법은 인간의 실제 행동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버스가 말하는 진화적 전략은 단일하지 않다. 오히려 인간은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전략을 유연하게 구사할 수 있는 ‘복수 전략의 존재자’로 묘사된다.
예를 들어, 남성은 반드시 단기적 전략(여러 여성과 관계를 맺는 것)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남성은 장기적 짝짓기 전략—즉, 특정 파트너와 안정된 관계를 형성하고 자식을 공동으로 양육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 선택은 생존율이 낮았던 고대 환경에서 자식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기 때문에, 양육적 남성성 역시 유전적으로 선호받게 되었다.
여성 또한 마찬가지로, 단기적 전략을 취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특정 시기나 상황, 예를 들어 생식력 정점에 가까운 기간 동안에는 유전적으로 매력적인 남성에게 일시적으로 끌리는 경향이 관찰된다. 특히 장기적으로는 양육 능력을 가진 남성을 파트너로 선택하되, 단기적으로는 뛰어난 유전자의 확보를 위해 별개의 상대를 선택하는 이중 전략(double mating strategy)이 진화했을 가능성도 일부 연구에서 제시된다. 이는 여성이 의식하지 못한 채 전략을 교차적으로 사용하고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버스는 이러한 전략의 다양성을 ‘정책의 모자이크’라고 표현한다. 인간은 단지 생물학적 본능의 포로가 아니라, 환경적 맥락—예컨대 자원 가용성, 사회적 경쟁, 개인의 매력도, 타인의 감시, 문화 규범—에 따라 행동 전략을 조정할 수 있는 존재다. 가난한 환경에서는 자원 공급자를 더 중요시하는 전략이 부각될 수 있고, 안정된 사회에서는 정서적 결속력이 더 큰 선택 기준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전략은 유전자에 의해 설계되었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식은 문화적, 상황적 유연성에 크게 의존한다.
또한 이 책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경쟁과 속임수의 심리를 짝짓기 전략에 포함시킨다는 점도 지적한다. 남성은 다른 남성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자원, 지위, 유머감각, 신체적 강인함 등 여러 요소를 강조하고 과장하려는 경향이 있다. 여성 또한 경쟁적인 환경에서는 자신의 외모를 과장하거나, 상대 여성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성 간뿐 아니라 성 내 경쟁(intrasexual competition) 역시 진화의 일부로 해석된다.
이러한 분석은 인간의 연애와 결혼을 단순히 '사랑'이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바라보던 시선에 균열을 만든다. 버스의 시각에 따르면, 사랑은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진화적 설계에 따라 작동하는 복잡한 알고리즘의 일부이다. 이를테면 질투는 파트너의 이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감정이고, 배신에 대한 분노는 자신이 투자한 자원의 손실을 방지하려는 반응이다. 짝의 선택, 매력의 판단, 관계의 유지와 해체—이 모든 것은 개인의 심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수십만 년 동안 축적된 생존 전략의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화의 전략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버스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전략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그 전략에 휘둘리기보다는 그 위에 서서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얻게 된다. 사랑은 진화의 산물이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고 실행할지는 인간의 자율성에 달려 있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냉혹한 본능의 지배가 아니라, 그 본능을 성찰할 수 있는 인식의 힘이다.
질투, 속임수, 그리고 경쟁
― 사랑의 어두운 그림자는 왜 진화했는가
우리는 흔히 사랑을 고결한 감정으로, 질투를 그 그림자로 여긴다. 사랑은 고양되고 정결하며 윤리적인 반면, 질투는 추하고 파괴적이며 도덕의 바깥에 놓여 있는 감정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욕망의 진화』에서 데이비드 버스는 이 익숙한 이분법에 과감히 반기를 든다. 그에게 질투는 사랑의 실패가 아니라, 사랑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 반응이다.
그는 말한다.
“질투는 인간 진화의 가장 치열한 전장에서 생겨난 감정이다.”
이 감정은 도덕의 결핍이 아니라, 유전자의 손실을 막기 위한 감각기관이다. 즉, 질투는 생물학적으로 진화한 정교한 경보 시스템이며, 짝을 지키고 경쟁자를 견제하는 생존 전략 중 하나로 작동한다.
버스는 인간의 질투 반응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진화했음을 수십 년간의 실험과 데이터를 통해 보여준다. 그의 대표적인 연구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은 가상 시나리오 실험이다. 피실험자에게 다음 중 무엇이 더 고통스러운지를 선택하게 한다.
① 당신의 연인이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가졌다.
② 당신의 연인이 다른 사람과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맺었다.
놀랍게도, 남성은 대부분 ①번을, 여성은 ②번을 더 고통스럽게 여겼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사회적 학습의 결과라기보다는, 성별에 따른 생식 투자 비용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버스의 설명이다.
남성에게 있어서 가장 큰 두려움은 자신의 유전자가 아닌 아이를 키우게 되는 것, 즉 ‘부정(父情)의 위험’이다. 진화적으로 이는 자원과 시간, 보호 본능의 낭비이며 유전자의 단절을 의미한다. 반면 여성은 이미 자신이 아이를 낳기 때문에 유전자 문제에서는 안전하다. 하지만 남성이 정서적으로 다른 여성에게 이끌려 자원을 분산시킬 가능성이 생기면, 생존과 양육에 필요한 자원을 잃을 수 있다.
따라서 여성은 정서적 배신에, 남성은 성적 배신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인간 감정의 가장 은밀한 층위를 밝혀내는 동시에, 도덕적 판단과 진화적 본능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우리는 성적 충실을 윤리로 간주하지만, 그 윤리는 유전자를 지키기 위한 본능과 충돌하거나, 때로는 그것을 감싸 안는다. 질투는 이 충돌의 최전선에서, 욕망의 불꽃을 지키려는 경고음처럼 울린다.
그러나 질투는 단지 방어기제에 그치지 않는다. 버스는 인간이 사랑을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속임수(deception)와 이중 전략(double strategy)도 진화적 맥락에서 설명한다.
예컨대, 일부 여성은 장기적 파트너에게는 정서적 헌신을 약속하면서도, 특정 시기—특히 배란기에—유전적으로 더 매력적인 남성에게 일시적으로 끌릴 수 있다. 이 전략은 생식력 높은 유전자를 확보하면서도 안정적인 양육 자원을 유지하기 위한 복합적 진화 전략일 수 있다. 이중 전략은 불륜이나 배신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최적화된 선택의 산물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남성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일부 남성은 단기적 관계를 원하면서도 장기적 헌신을 위장하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정서적 친밀감이나 결혼에 대한 희망을 언급하며 여성을 유혹하지만, 그 목적은 유전자 전달에 있다. 이와 같은 속임수는 도덕적으로는 비난받을 일이지만, 진화적으로는 ‘게임의 일부’였다. 짝을 얻고, 경쟁자를 따돌리며, 더 많은 자손을 남기기 위한 심리적 도구들이 진화된 것이다.
경쟁 또한 이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인간은 결코 고립된 존재로 짝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항상 경쟁자와 비교되는 상황에서 선택을 받는다. 이 경쟁은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며, 남성은 자원과 지위, 유머 감각, 신체적 건강 등 자신의 강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여성은 외모의 대칭성, 젊음, 피부의 건강 등을 통해 생식 가능성의 신호를 보낸다. 이러한 신호는 문화마다 세부 양상은 다르지만, 핵심은 동일하다. 그것은 모두 상대방에게 유전자 적합도를 증명하고 선택을 유도하는 행위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적극적으로 경쟁자를 견제하기도 한다. 남성은 다른 남성을 조롱하거나 배제하고, 여성은 경쟁 상대의 명예를 떨어뜨리려 하기도 한다. 이른바 성내 경쟁(intrasexual competition)이 그것이다. 실제로 많은 불화, 모욕, 험담, 심지어 폭력까지도 짝을 얻기 위한 경쟁의 부산물일 수 있다. 버스는 이처럼 인간이 지닌 어두운 감정과 행위조차, 무작위적 파괴가 아니라 정교한 진화 전략의 표현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러한 주장은 인간 본성에 대한 낭만주의적 신화를 해체한다. 우리는 단순히 사랑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유전자를 선택하고, 전달하고, 방어하고, 경쟁하는 존재다. 그러나 버스는 이를 통해 비관이나 체념을 유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말한다. 우리가 그 메커니즘을 이해할수록, 우리는 더 자유롭고 정직하게 사랑을 구성할 수 있다고.
질투는 단지 질투일 뿐일까? 아니면 오래전부터 우리의 유전자가 삐걱거리며 보내던 구조 요청일까?
속임수는 비열함일까, 생존의 흔적일까?
버스의 시선은 이 물음들을 도덕의 경계 너머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빛과 어둠 모두가 진화의 무대 위에서 형성된 것임을 깨닫는다.
결국 이 장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 하나다. 인간은 사랑을 꿈꾸는 동시에, 그것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감정을 발달시켜 온 진화적 존재라는 것. 우리가 느끼는 질투와 욕망, 애증의 복합성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유전자의 생존을 위한 전략적 감정의 지도 위에 새겨진 오래된 흔적이라는 것이다.
욕망의 현대적 역설
― 우리는 왜 ‘현대’를 살면서도 ‘고대’의 본성으로 사랑하는가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스마트폰 속의 데이팅 앱 하나로 몇 초 안에 수십 명의 이성과 연결될 수 있고, 인공지능이 대화를 대신하며, 성별과 관계의 규범은 점점 해체되고 있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 인간은 여전히 고전적인 감정에 휘청이고, 질투하고, 집착하며, 누군가의 짧은 눈빛에 울고 웃는다. 이 모순을 데이비드 버스는 명확히 짚는다.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살지만, 구석기 본성으로 사랑하고 있다.”
『욕망의 진화』가 출간된 지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 책의 통찰은 오히려 지금 더욱 절실하다. 기술은 인간관계의 형식을 바꿨지만, 그 안에서 작동하는 본능의 알고리즘은 별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점점 더 빠르게, 더 넓게, 더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더 혼란스럽고 더 피로하며 더 외로워진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장은 그 이유를 탐색한다. 진화의 힘이 지금 이 순간의 욕망을 어떻게 이끌고 있으며, 그 힘이 오늘날의 문화적 가치와 어떤 충돌을 일으키는지를.
욕망의 알고리즘, 여전히 작동 중이다
버스는 인간의 성적 행동을 유전자 복제의 전략으로 설명한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짝을 찾기 위해 설계된 존재다. 그리고 그 짝 찾기의 전략은 수십만 년 전, 사바나에서 형성된 방식 그대로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 다만 지금은 ‘동굴’이 아닌 ‘앱’ 속에서, ‘사냥’이 아닌 ‘스와이프’로 바뀌었을 뿐이다.
남성은 여전히 시각적 단서를 통해 건강과 젊음을 판단하려 하고, 여성은 안정성과 신뢰, 자원 능력의 신호를 찾는다. 물론 이제는 여성도 자원을 스스로 획득할 수 있고, 남성도 양육에 적극적이며,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하지만 데이팅 앱에서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때로는 그 담론의 발전보다 훨씬 원초적이다. 외모 중심의 첫인상, ‘매력도’ 점수에 의존한 결정, 관계의 즉각성과 소비성—이 모든 것들은 진화심리학의 시선을 빌리면 너무나 낯익은 장면이다. 우리는 여전히 생존과 번식에 최적화된 시그널을 무의식적으로 추적하고 있는 셈이다.
'선택의 과잉'과 '정서의 빈곤'
흥미로운 점은,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만족도가 줄어든다는 심리학적 역설이 욕망에서도 반복된다는 것이다. 데이팅 앱은 수십 명의 이성을 한눈에 보여주지만, 오히려 한 사람과의 깊은 연결은 어려워진다. 버스의 이론대로라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제한된 자원 속에서 최적의 선택을 하도록 설계되었기에, 무한한 선택의 환경에 놓이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끊임없이 더 나은 대안을 찾게 된다.
또한 SNS는 외모, 사회적 지위, 파트너의 존재 등을 실시간으로 비교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는 진화적으로 내면화된 성내 경쟁(intrasexual competition)을 강화한다. 남성은 더 멋진 차, 더 멋진 휴양지, 더 완벽한 연인을 과시하고, 여성은 더 젊고 건강하며 매력적인 자신을 연출한다. 그 결과, 우리의 타임라인은 현대적 기술 위에 펼쳐진 고대적 경쟁의 무대가 된다.
이 경쟁은 지친다. 관계는 깊어지기보다 얕아지고, 속도는 빨라지되 지속성은 짧아진다. 누군가는 “모두가 사랑을 원하지만, 아무도 사랑에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피로는 ‘자유로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감추어진, 진화적 전략과 현대의 가치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긴장일지도 모른다.
성 평등 담론과 진화적 본성의 불화
오늘날 우리는 성 평등을 위한 다양한 사회적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여성은 더 이상 남성의 자원을 필요로 하지 않고, 남성 역시 더 이상 여성의 순결이나 양육성에만 관심을 갖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관계는 상호적이고 평등해야 하며, 성적 선택도 자유롭고 자율적이어야 한다는 담론은 분명 중요하고 절박하다.
하지만 버스는 이 지점에서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진화된 성 전략을 완전히 ‘이성’으로 넘어설 수 있는가? 성적 선택에 있어 남성과 여성의 경향이 여전히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단순한 사회적 훈련 때문일까, 아니면 깊이 각인된 생물학적 기제일까?
버스는 우리가 단순히 진화심리학을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오용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 본성의 차이를 무시하거나 억누르는 방식으로 평등을 추구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차이를 인정하되 차별로 연결하지 않는 태도이다. 진화적 본성과 문화적 규범은 늘 긴장 속에 공존해 왔고, 진화는 단지 경향성을 설명할 뿐, 우리의 선택을 결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본능의 포로가 아니라, 그 본능을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현대 사회에서 욕망을 성찰한다는 것
『욕망의 진화』는 단지 인간의 본성을 해부하는 과학서가 아니다. 이 책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거울을 들이댄다. 그 거울에는 우리가 부인하고 싶었던 질투, 집착, 과시, 불안, 거짓, 욕망의 민낯이 비친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진화의 흔적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우리가 그 흔적을 읽을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본능에 끌려다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들여다보고, 물을 수 있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왜 끌리는가?"
"이 감정은 어디서 왔고, 나는 그것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현대의 욕망은 단지 더 많은 자유와 선택을 얻는 것이 아니다. 그 자유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더 정교한 성찰의 지도가 필요하다. 버스의 이론은 그 지도 중 하나이며, 우리가 고대의 본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음을 인정하되, 그 위에 더 나은 인간관계를 구축하려는 시도의 출발점이 된다.
우리는 지금도 사랑한다. 하지만 이제는 사랑하는 이유를, 그 메커니즘을, 그 조건을 물어야 할 때다.
『욕망의 진화』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당신의 욕망은 고대의 언어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당신은, 그 언어를 이해하고 다시 써 내려갈 수 있는 현대의 존재다.”
비판과 반론의 지점들
― 진화심리학의 매혹, 그 이면의 물음들
『욕망의 진화』는 인간 본성을 둘러싼 여러 이론 중 가장 도발적이고도 설득력 있는 진화심리학의 모델을 제시한 책이다. 동시에, 이 책이 내세우는 설명 방식—곧 인간의 사랑과 성욕, 질투, 속임수 같은 감정과 행동을 유전적 생존 전략으로 환원하는 관점—은 학계와 대중 모두에게 크고 작은 불편함을 야기했다. 왜일까?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단지 과학적 논쟁을 넘어, 우리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철학적 고민으로 이어진다. 이 장은 『욕망의 진화』에 제기된 대표적인 세 가지 비판—문화결정론의 반론, 성차별적 오해 가능성, 생물학적 환원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을 차례로 살펴보며, 진화심리학의 의미와 한계를 되짚어본다.
문화 결정론자들의 비판: 모든 욕망은 진화로 설명될 수 있는가?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행동을 ‘보편성(universality)’이라는 관점에서 본다. 즉, 인간이 지닌 감정과 선택에는 공통된 심리적 기제가 있으며, 이는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버스는 여러 문화권에서 반복되는 성차(性差) 행동의 패턴—남성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선호하고, 여성은 지위와 자원을 지닌 남성을 선호한다는 실험 결과—를 이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다. 그는 이를 “문화가 달라도 본성은 같다”는 관점으로 읽는다.
그러나 문화 결정론자들은 이 지점에서 이의를 제기한다. 이들은 인간 행동의 문화적 다양성과 유연성을 강조하며, 버스의 진화론적 설명이 사회 구조와 문화적 맥락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일부 문화에서는 여성이 경제활동의 중심에 서고 남성이 육아를 전담하기도 하며, 짝짓기의 선호 기준이 나이나 외모보다 사회적 평판이나 지적 능력일 때도 있다. 이러한 다양성은 단지 ‘문화적 예외’로 치부될 수 없으며, 오히려 인간 행동이 얼마나 상황과 제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또한, 심리학자들은 욕망과 선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학습과 경험에 의해 변화 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여성의 경제적 독립도가 높아질수록 남성의 경제력에 대한 선호가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며, 이는 진화심리학의 설명이 시대와 구조에 따라 변하는 욕망의 양상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문화 결정론자들은 인간 욕망의 기원을 단일하게 환원하기보다, 다층적이고 가변적인 상호작용의 장으로 이해할 것을 주장한다. 그들은 질문한다.
"욕망은 유전자의 명령인가, 사회의 기대인가?"
이 물음은 진화심리학이 반드시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도전이다.
성차별적 오해 가능성: 차이를 말할 때, 차별은 어떻게 피할 것인가?
『욕망의 진화』는 남성과 여성의 성적 전략이 다르다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한다. 남성은 더 많은 파트너와의 관계를 통해 유전자를 퍼뜨리려 하고, 여성은 더 안정적인 자원을 가진 남성을 선호한다는 주장은, 처음 접한 독자에게 인간관계의 근본을 흔드는 듯한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단지 설명의 충격이 아니다. 이러한 설명이 자칫 잘못 해석될 경우,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거나 성차별적 인식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논쟁이 일어난다.
예컨대 “남자는 본능적으로 바람기를 지녔다”거나, “여성은 원래 안정적인 삶을 원하기 때문에 경제력 있는 남성을 택한다”는 식의 해석은, 성역할에 대한 편견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공고히 할 수 있다. 특히 사회적 불평등이나 권력구조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설명은 기존 질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할 우려가 있다.
이에 대한 반론은, 진화심리학이 말하는 ‘차이’는 통계적 경향일 뿐, 규범적 명령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남성이 대체로 이런 경향이 있다”는 말은 “모든 남성은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이 차이를 읽어내는 데는 높은 해석력과 문화적 감수성이 필요하다.
버스 본인도 이 책에서 명확히 언급하듯이, 진화심리학은 “존재하는 것을 설명하려는 것이지, 존재해야 할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진화는 행동의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가 그 ‘차이’를 말할 때, 그 말이 어디에 닿는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우리가 성별 간 차이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될지, 아니면 그것을 변명의 근거로 삼을지는 독자의 몫이다. 그래서 이 이론은 과학이면서 동시에 윤리적 독해를 요구하는 사유의 장이다.
생물학적 환원주의 비판: 유전자가 전부일 수는 없다
가장 근본적인 비판은 이 책의 전체적 설명 방식이 생물학적 환원주의(biological reductionism)에 지나치게 기울어 있다는 점이다. 즉, 인간의 사랑과 감정, 관계와 문화를 지나치게 유전자 중심적 논리로 해석하려는 태도가 인간 정신의 풍요로움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유전자 복제 전략의 부산물인가?
질투는 단지 경쟁자 제거를 위한 감정인가?
버스의 이론은 이러한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지만, 많은 인문학자와 철학자들은 “그렇지만 그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욕망은 단순한 생식의 도구가 아니라, 때로는 무용하고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 우리는 생식과 무관한 사랑에 빠지고,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관계에서도 정서적 충만을 경험하며, 때로는 자기 파괴적 사랑에 모든 것을 던진다. 이런 감정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예술과 문학, 철학은 오랜 세월 동안 욕망의 모순성과 아름다움을 그려왔다. 그 속에서 욕망은 단지 유전자에 종속된 메커니즘이 아니라, 고통과 자유, 헌신과 상실이 교차하는 인간적 장으로 묘사된다. 생물학은 이 서사를 설명할 수 있는가? 버스의 이론이 뛰어난 통찰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 경험의 총체성을 설명하는 데 한계를 갖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결국, 진화심리학은 인간을 이해하는 하나의 유력한 도구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유전자와 문화, 본능과 선택, 통계와 개별성—이 모든 요소를 함께 고려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복잡한 인간의 욕망을 이해할 수 있다.
마무리 성찰
― 진화 위에서 사랑을 다시 쓰는 존재들
『욕망의 진화』는 사랑과 성, 짝짓기라는 인간 행위의 근원을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파고드는 책이다.
데이비드 버스는 인간의 욕망을 낭만의 언어가 아닌, 자연선택과 성선택의 언어로 해석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이끌리고, 질투하고, 배신에 상처받고, 때로는 계산적으로 다가가는 모든 감정과 행동은 생존 그 자체가 아닌, 유전자의 복제를 위한 전략적 결과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사랑이라는 감정의 뿌리가 생각보다 훨씬 오래되고, 훨씬 차가우며, 놀랍도록 정교하게 진화되어 왔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기도 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운명처럼’ 느낄 때조차, 사실은 무의식적으로 특정 유전자 구성이나 양육 가능성을 감지하고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사랑의 시적 표현 뒤에, 진화적 알고리즘이 숨어 있다는 이 불편한 진실은 우리의 자아상을 흔든다.
“나는 정말 내 자유의지로 사랑하고 있는가?”
“내가 느끼는 이 강렬한 끌림은, 나만의 것이 맞는가?”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책은 역설적으로 자유의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욕망의 기원이 진화에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능력은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다. 우리는 단지 ‘사랑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을 이해하려는’ 존재다. 우리는 본능에 의해 움직이지만, 그 본능의 작동 방식을 알아차리고, 때로는 그것을 의심하고 유예하며, 수정하거나 초월할 수 있다.
버스의 이론은 우리의 감정을 환원시키기보다, 그 감정을 보다 정교하게 성찰하게 만든다. 예컨대, 왜 어떤 이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강한 질투심을 유발하는가? 왜 어떤 이에게는 반복적으로 끌리는가? 왜 우리는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지만, 사실상 특정한 환경과 자극에 의해 쉽게 영향을 받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단지 과학적 탐구를 넘어서, 우리의 삶의 태도와 인간 이해의 방식 자체를 바꿔놓는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버스가 인간의 욕망을 단순히 ‘본능’이라 명명하지 않고, 그것을 수십만 년간의 생존과 번식의 압력 속에서 정제된 심리 기제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우리가 느끼는 사랑과 성적 선호, 정서적 친밀감, 심지어는 이별의 아픔과 상실감까지도 진화가 만들어낸 복잡한 심리 장치의 일부라는 통찰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깊이를 새롭게 인식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단순한 과학서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 묻는 인간학적 텍스트로도 읽힌다.
물론, 이 이론이 인간 욕망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앞선 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문화와 사회, 역사와 제도는 인간의 행동에 복잡한 영향을 미친다. 욕망은 진화되었지만, 그 표현 방식은 문화적으로 번역된다. 누군가는 전통적인 결혼 제도를 따르지만, 다른 누군가는 비혼이나 다자간 관계를 선택한다.
누군가는 가정을 꾸미고 아이를 기르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아이를 갖지 않고도 깊은 애정을 지속한다.
욕망의 기원이 하나일지라도, 그 양상은 무수히 다양하다. 우리는 그 다양성 속에서 자기 삶의 방식과 관계의 형태를 끊임없이 새롭게 구성해 나가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욕망의 진화』는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 ‘법칙’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관계의 풍경을 보다 넓고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도’를 제공한다. 그 지도 위에서 우리는,
무엇이 나를 끌어당기는지, 왜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어떤 욕망은 나의 것이고, 어떤 욕망은 사회가 각인한 것인지, 그 복잡한 감정의 길을 스스로 더듬어 나갈 수 있다.
이 책이 말하는 것은 하나다. 욕망은 진화되었고, 우리는 진화 위에서 사랑을 다시 쓰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수십만 년의 본성을 지닌 채, 21세기의 윤리와 문화 속에서 살아간다. 그 사이의 긴장을 인식하고, 그 위에 서서 타인을 이해하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다면, 욕망은 더 이상 운명이 아니라, 이해와 선택의 언어가 된다.
사랑은 본능이다. 그러나 사랑은 또한 질문의 능력이기도 하다. 그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욕망의 진화』는 단단한 거울이자, 조심스러운 나침반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