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면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이 사라진 우주

by 안녕 콩코드


물리학자인 로벨리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낱낱이 분해하며, 우리가 믿어온 ‘우주’라는 질서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그의 책,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독자로 하여금 “우리는 과연 무엇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1장. 시간, 우리가 믿는 신화


우리는 시간을 ‘흐르는 것’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시계는 똑딱이며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고, ‘지금’이라는 순간은 손에 잡힐 듯하다가 곧 사라진다. 그 흐름은 너무 익숙해서, 의심할 여지조차 없다. 시간은 마치 멈추지 않는 강물처럼 흘러가고, 우리는 그 안에서 과거를 되새기고, 미래를 그리며, 현재를 살아간다.


하지만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믿는 이 개념이 과학적으로는 근본적인 오해일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그는 ‘시간이 흐른다’는 생각이 실제 실체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경험적 환상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물리학적으로 시간은 흐르는 어떤 실체가 아니라, 사건들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수학적 구조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 장은 우리 안에 깊숙이 뿌리내린 ‘시간의 흐름’이라는 신화를 해체하는 데 집중한다. 로벨리는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직관하고 받아들여 왔는지, 그리고 그 직관이 과학적 발견과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사실 ‘변화’를 설명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 시간이 독립적으로 흐르는 실체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이 신화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도 살핀다. 시간의 흐름에 대한 믿음은 우리 삶의 근간이며, 이를 부정하는 것은 단순한 과학적 논쟁을 넘어 존재와 정체성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과연 시간 없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지, 그리고 시간에 대한 신화가 깨질 때 우리의 인식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 깊이 성찰하게 만든다.


이처럼 1장은 시간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오해를 짚으며, 독자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새롭게 던지는 출발점이 된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신화에 갇혀 있었고, 그 신화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우주와 존재에 대한 더 깊고 참신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로벨리의 메시지를 마주하게 된다.


2장. 시간의 상대성, 그리고 절대적 시간의 붕괴


20세기 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고전 물리학의 근간을 뒤흔드는 획기적인 이론,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다. 이 이론은 우리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시간’의 개념을 근본부터 무너뜨렸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시간은 더 이상 모든 관찰자에게 동일하게 흐르는 고정된 배경이 아니다. 오히려 관찰자의 속도와 중력의 세기에 따라 시간의 흐름은 달라지며, 각각의 시계는 서로 다른 속도로 ‘시간’을 측정한다. 예컨대, 빛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하는 우주선 안의 시계는 지구에 있는 시계보다 더 천천히 움직이며, 이 차이는 실험적으로도 확인된 바 있다.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상대성 이론의 발견을 중심축으로 삼아, 시간의 본질적 불확실성을 조명한다. 절대적인 시간 개념이 무너진 자리에 남은 것은, 오직 상대적이고 유동적인 시간뿐이다. 이로 인해 ‘과거’와 ‘미래’라는 구분조차 관찰자마다 달라질 수 있어, 그 둘의 경계는 더 이상 명확하지 않다. 어떤 사건이 한 관찰자에게는 ‘과거’에 속하지만, 다른 관찰자에게는 ‘미래’로 인식될 수도 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시간에 대해 가져온 전통적 이해를 근본부터 흔들어 놓는다.


하지만 로벨리는 상대성 이론이 시간에 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상대성 이론은 시간의 ‘상대성’을 밝히는 데 성공했지만,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의 흐름은 왜 존재하는가’ 같은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에는 여전히 답하지 못한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은 시간의 물리적 측면을 정밀하게 설명하지만, 시간에 대한 주관적 경험과 심리적 차원, 그리고 ‘시간의 화살’ 문제까지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상대성 이론 내부에서도 시간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일부 과학자들은 시간을 4차원 시공간의 한 축으로 간주하는 ‘블록 우주론’을 지지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시간의 흐름과 변화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본다. 로벨리는 이처럼 다양한 해석들이 과학적 사실의 영역을 넘어 철학적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환기시키며, 우리가 여전히 시간에 대해 더 근본적인 이해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장은, 시간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무너뜨린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조명하는 동시에, 그 발견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의문들과 다양한 해석들에 주목한다. 과학적 설명과 인간의 경험, 그리고 철학적 사유가 만나는 지점에서 시간은 여전히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채 미궁 속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시간의 상대성을 알게 되었지만, 시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3장. 시간의 방향성, 엔트로피와 우리의 경험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명확한 방향성을 지닌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시간은 오직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이른바 ‘시간의 화살’ 현상은 물리학에서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였다. 왜 시간은 역행하지 않고, 왜 과거에서 미래로만 흘러가는가?


카를로 로벨리는 이 질문에 대해 열역학 제2법칙, 즉 엔트로피 법칙을 중심으로 답을 모색한다. 이 법칙은 닫힌 계에서 엔트로피, 즉 무질서도가 항상 증가한다고 말한다. 자연이 점점 더 무질서해지는 이 방향성이 바로 시간의 흐름 방향을 결정하는 근본 원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로벨리는 엔트로피 증가만으로는 인간이 경험하는 시간의 흐름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우리의 의식 속 시간은 단순한 무질서의 증감이 아니라, 기억과 기대, 감정과 선택 같은 복합적인 요소들이 얽혀 있는 현상이다. 따라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과 우리의 심리적 시간 흐름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꿈속이나 깊은 명상 상태에서 경험하는 시간은 물리적 시간과 전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자연의 법칙들―예컨대 뉴턴 역학이나 양자역학의 기본 방정식―은 시간에 대해 대칭적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물리 법칙은 시간이 앞에서 뒤로, 혹은 뒤에서 앞으로 흐르는 것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 속 시간은 철저하게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이 극명한 차이는 시간의 방향성이 과학적 사실과 인간 경험 사이에 놓인 복잡하고도 본질적인 문제임을 드러낸다.


로벨리는 이러한 이유로 ‘시간의 화살’ 문제는 순수한 물리학적 접근만으로는 완전한 해답을 찾기 어렵다고 본다. 그는 시간의 방향성을 이해하기 위해 철학적, 심리학적, 나아가 생물학적 차원에서의 탐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결국 시간의 방향성은 물리 법칙과 주관적 경험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드러나는, 본질적으로 다층적인 문제다.


이 장은 시간의 방향성에 관한 과학적 발견과 인간 경험 사이의 간극을 통해,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얼마나 복합적이며 여전히 미완성인지를 보여준다. 단지 엔트로피 법칙만으로는 시간의 신비를 모두 설명할 수 없으며, 시간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깊은 사유와 다양한 학문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4장. ‘지금’의 환상과 뇌의 역할


우리가 시간 속에서 가장 확신하는 순간은 단연 ‘지금’이다. 하루 동안 무수히 반복되는 이 ‘현재’는 우리에게 가장 생생하고 실재하는 경험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느끼고, 행동하고, 생각이 일어나는 모든 시간의 지점은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이 ‘지금’이라는 개념이 결코 우주적 실체가 아닐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뇌과학과 인지과학은 ‘현재’라는 개념이 실제 물리적 현실이라기보다, 뇌가 복잡한 정보를 통합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일종의 ‘환상’에 가깝다는 점을 보여준다. 뇌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자극을 함께 처리하면서, 약간의 시간차를 둔 ‘지금’을 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인식하는 ‘현재’는 사실 지속적인 정보 처리의 산물이며, 물리적으로 고정된 하나의 ‘순간’은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로벨리는 ‘지금’이 시간의 흐름을 체험하게 만드는 하나의 심리적 기제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지금’을 중심으로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시간의 연속성을 경험하지만, 이는 뇌가 구성한 편의적인 구조에 불과할 수 있다. 실제 물리적 우주에서 시간은 상대적이며, 어떤 한 순간이 고정되어 확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관찰자에 따라 시간은 다르게 나타나며, 따라서 우리가 직관적으로 믿는 ‘현재’는 우주 차원에서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개념일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논의는 인간의 시간 경험과 우주의 물리적 현실 사이에 깊은 간극이 존재함을 뚜렷이 드러낸다. 우리는 ‘지금’을 가장 확실한 실재로 느끼지만, 과학적으로 그것은 단지 뇌의 신경학적 구성 과정에 불과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시간은 객관적 사실이라기보다, 오히려 주관적 체험이라는 성격이 더욱 부각된다.


이 장은 ‘지금’이라는 순간을 둘러싼 우리의 착각을 해체하며, 시간과 의식, 그리고 뇌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우리는 시간의 신비를 단지 우주의 물리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뇌의 작용과 인지 메커니즘이라는 내부 세계의 관점에서도 함께 성찰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5장. 양자역학과 시간의 불확정성


20세기 초, 물리학의 또 다른 혁명인 양자역학은 우주와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바꿔 놓았다. 양자역학은 입자의 위치나 운동 상태뿐 아니라, 시간조차도 고전적이고 확정적인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이러한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들을 바탕으로, 시간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 이해가 어떻게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바로 ‘중첩’ 상태다. 입자는 둘 이상의 상태가 동시에 겹쳐 있는 중첩 상태에 있으며, 관측이 이루어지는 순간에만 그중 하나의 상태로 ‘붕괴’한다. 이러한 상태를 기술하는 파동함수 역시 시간에 따라 변화하지만, 그 시간 변화는 고전 물리학에서 상상하던 일정하고 연속적인 흐름과는 다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불확정적이며, 확률적인 성격을 지닌다. 다시 말해, 시간 자체도 입자의 상태와 함께 양자적 불확실성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로벨리는 이러한 양자 시간론이 고전적 시간 개념과 충돌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철학적 질문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시간은 더 이상 직선적이고 연속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며, 미시세계에서는 확정되지 않은 가능성의 영역에 가까워진다. 이로써 시간의 본질은 단일하고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불확실하고 다층적인 구조를 지닌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그러나 로벨리는 동시에 이 분야가 여전히 연구와 논의가 진행 중인 영역임을 솔직히 인정한다. 시간과 공간의 양자적 성질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 이론, 예컨대 양자중력 이론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며, 양자역학 자체도 시간에 대한 여러 해석이 병존하는 상황이다. 결국 양자역학은 시간에 대한 기존의 단순한 개념을 강하게 뒤흔들지만, 아직까지는 그에 대한 완전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이 장은 양자역학이 시간에 제기하는 근본적인 도전과, 그 도전이 과학과 철학 사이에 가로놓인 깊은 미스터리를 어떻게 다시 비추는지를 보여준다. 시간의 불확정성은 단순한 물리학적 이슈를 넘어, 존재와 인식에 관한 본질적인 질문을 다시 제기한다. 우리는 양자 세계 속에서 시간의 낯선 얼굴을 마주하게 되며, 이 신비롭고도 미완의 영역을 더욱 깊이 탐구해야 할 필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6장. 기억과 의식이 빚어내는 시간


우리는 매일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상상하며, 지금 이 순간을 인식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 경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물리학적으로 정의된 시간과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시간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이 차이를 깊이 탐색하며, 인간의 시간 경험이 물리 법칙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될 수 없는 고유한 인식의 영역임을 강조한다.


그 중심에는 기억과 의식이 자리한다. 로벨리는 우리의 시간 감각이 뇌의 기억 작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는 과거를 직접적으로 감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뇌에 남겨진 기억의 흔적을 통해 과거를 ‘구성’한다. 이 기억은 단순한 정보의 저장이 아니라 해석과 재구성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과거란 언제나 현재의 관점에서 재편된 서사에 가깝다.


한편, 의식은 이러한 기억들을 하나의 연속된 ‘내러티브’로 엮어내며, 우리가 시간의 흐름을 체험하도록 만든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이를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라 불렀고, 현대 인지과학자들 역시 인간의 의식이 과거의 기억, 현재의 감각, 미래의 예측을 실시간으로 통합함으로써 시간의 ‘연속성’을 구성한다고 설명한다.


즉, 우리가 느끼는 시간은 실제 세계의 고정된 구조라기보다, 뇌가 세계를 해석하고 그 안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지각 장치에 가깝다. 이 지각 체계 속에서 우리는 ‘이전’과 ‘이후’, ‘지금’을 구분하고, 사건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론하며, 자아를 시간 위에 놓인 연속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로벨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시간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새로운 깊이를 부여한다. 시간은 물리적으로는 환원 가능한 개념일지 모르지만, 인간의 경험 세계에서는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중심적 구조로 남아 있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가 단순히 ‘시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고 보았고, 헨리 베르그송은 기억과 지속(durée)의 개념을 통해 시간의 질적 흐름과 내면적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이 장은 과학, 철학, 심리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한층 심화시킨다. 과거는 기억에 의해 구성되고, 의식은 그 과거를 현재와 연결하며, 미래를 상상함으로써 우리는 시간이라는 흐름 속에 존재하게 된다. 시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의식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가능하게 하는 인식의 구조이자, 삶의 조건이다.


7장. 블록 우주론과 시간의 해체


우리는 일상에서 늘 시간의 흐름 속에 있다고 느낀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현재는 지금 이 순간이며, 미래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은 이러한 직관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그 대표적인 이론이 바로 블록 우주론(Block Universe Theory)이다.


블록 우주론은 시간을 공간과 마찬가지로 고정된 하나의 차원으로 본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4차원 덩어리, 즉 ‘블록’으로 존재하며, 그 안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사건이 동등하게 실재한다. 시간의 ‘흐름’은 실체가 아니라 단지 우리의 의식이 만들어낸 착각에 불과하다. 즉,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블록 속의 한 지점에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블록 우주론을 소개하며, 우리가 일상적으로 갖는 시간 개념—즉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방향성을 지닌 시간—이 물리학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구조일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특히 상대성 이론의 시공간 개념은 ‘현재’라는 특권적 순간이 존재하지 않음을 시사하며, 블록 우주론은 이러한 사유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이론이다.


하지만 로벨리는 이 이론이 지닌 철학적 난점과 심리적 충돌 역시 함께 짚는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과거를 알고, 기대를 통해 미래를 바라보며, 자아는 ‘시간을 따라 움직이는’ 감각 위에 세워져 있다. 그런 우리에게 모든 시간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관점을 받아들이기는 결코 쉽지 않다. 블록 우주론은 우리의 직관적이고 정서적인 경험과 극단적으로 배치되며, 시간 속에 산다는 자각 자체를 부정하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은 블록 우주론을 두고 뜨겁게 논쟁해 왔다. **에터널리즘(Eternalism)**은 블록 우주론과 맥을 같이하며, 모든 시간이 ‘이미 존재’하며 시간의 흐름은 단지 심리적 구성물이라 본다. 반면, 프레젠티즘(Presentism)은 ‘현재만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며 블록 우주의 시간 해체를 비판한다. 또 다른 입장인 성장 우주론(Growing Block Theory)은 과거와 현재는 실재하지만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이처럼 블록 우주론은 물리학적으로는 정합성을 갖지만, 실존적·윤리적·감정적 차원에서는 큰 충격을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모든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다면 자유의지나 선택의 의미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정해진 운명을 따라 살아가는 것일까?


로벨리는 이 장에서 블록 우주론을 단순한 과학적 모델로 보지 않고, 인간 이해의 한계와 가능성을 시험하는 철학적 사유로 제시한다. 이 이론은 우주의 구조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동시에, 우리가 시간을 살아간다는 감각을 근본부터 다시 성찰하게 만든다.


이 장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만약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가?”


8장. 시간 없는 존재, 가능할까?


우리는 늘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감각에 익숙하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를 지나며,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기대하며, 현재를 살아간다. 그러나 만약 시간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해하는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카를로 로벨리는 이 장에서 바로 그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시간은 존재의 조건인가, 아니면 존재와는 별개로 사유될 수 있는가?


로벨리에 따르면, 현대 이론물리학—특히 루프 양자중력이론과 같은 시간 없는 모델—은 우주를 설명하는 데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론의 수식 안에서 시간은 더 이상 중심적인 개념이 아니며, 존재는 거대한 관계망 속에서 얽힌 상호작용들의 패턴으로 설명된다. 이런 관점에서 시간은 배경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부차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유는 고전적 존재론과는 명백히 충돌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서구 철학은 존재를 언제나 변화와 시간 위에 놓인 것으로 전제해 왔다.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 자체가 본질적으로 시간적 구조를 지닌다고 주장하며, ‘존재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해석하고 미래를 지향하며 현재를 실현하는 시간적 운동이라고 보았다.


로벨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을 뒤집는다. “그렇다면, 시간이 없는 존재도 가능한가?” 시간이라는 축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은 단순한 물리학적 논쟁을 넘어, 존재론의 근본 구조 자체를 다시 쓰는 도전이다.


이러한 물음을 철학적으로 깊이 사유한 인물 중 하나가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다. 그는 존재를 고정된 실체가 아닌 관계적 사건(process)으로 보았으며, 변화를 존재의 본질로 여겼다.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 없는 존재론’도 이와 많은 닮은 점을 지닌다. 즉,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시간이 없어도 성립 가능한 구조적 패턴이나 정보의 흐름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우리에게 매우 낯설고 불편하게 다가온다. 시간은 단순한 물리적 배경을 넘어, 우리의 기억과 자아, 윤리, 선택과 책임 같은 삶의 중요한 개념들을 가능하게 하는 해석의 틀이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존재가 이미 고정되어 있고, 시간이 단지 착시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 존재일까? 변화는 진짜일까? 선택은 가능한 걸까? 이러한 질문들은 과학의 영역을 넘어, 깊은 실존적 성찰로 이어진다.


로벨리는 이에 대해 단정적인 해답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존재의 조건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며, 우리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시간 없는 세계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더 이상 변화하는 자아나 미래를 향한 열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 존재의 서사적 구조 자체를 새롭게 재구성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없다면,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을 넘어서 존재의 조건을 묻는 형이상학적 사유의 핵심이다. 로벨리는 우리를 바로 그 문턱까지 이끈다.


9장. 결론 ―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카를로 로벨리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도발적인 주장은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과학 이론을 넘어, 우리가 지금껏 세계를 인식하고 삶을 이해하며 존재를 체감하는 방식을 근본부터 다시 써야 한다는 요청이다. 시간의 흐름은 눈으로 확인하고 감각으로 체험하는 가장 강렬한 실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과학은 그것이 허상일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이 결론은 물리학의 영역을 넘어선다. 인간 존재는 시간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의 삶을 구성한다. 우리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정체성을 세우고, 미래를 향해 계획하며, 현재를 ‘지금 여기’로 경험한다. 그런데 만약 이 시간이라는 무대가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 위에 세워진 자아와 삶의 의미는 어디로 향하는가?


로벨리는 물리학이 드러낸 이 불편한 진실 앞에서, 우리가 두 가지 태도를 가질 수 있음을 제시한다. 하나는 시간의 환상을 과학의 승리로 받아들이며 기존 세계관을 포기하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이 사라진 뒤에도 남는 기억, 관계, 변화의 감각, 그리고 서사로서의 삶을 새롭게 성찰하는 태도다.


이 장은 후자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시간이라는 틀 없이도 우리는 여전히 변화하고, 타인을 만나며, 선택하고, 후회하고, 사랑한다. 물리학적으로 ‘현재’라는 개념이 부재하더라도, ‘살아 있음’의 감각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의 해체는 삶을 보다 본질적이고 날것의 차원에서 새롭게 사유하게 만든다.


로벨리는 시간을 잃은 자리에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도록 이끈다. 우리가 경험하는 ‘흐름’이란 과연 무엇인가? 기억과 의식, 선택과 책임은 시간 없이도 설명될 수 있는가? 만약 시간이 환상이라면,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가 되는가?


이는 단순히 과학적 ‘정보’를 넘어, 존재에 대한 철학적 ‘태도’를 요구하는 질문들이다. 로벨리는 이 질문들에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물리학자로서, 철학자가 되어 사유할 것을 독자에게 권한다.


그 초대는 실험실이나 수식의 세계가 아니라,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시간의 체험을 다시 묻는 일이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흐른다고 느끼며 살아간다. 바로 그 간극 속에서 우리는 사유하고, 믿고, 사랑하며, 존재한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책은 이 물음에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로벨리는 조용히 말한다. 질문을 진지하게 붙잡고 살아가는 태도, 그 자체가 시간 없는 세계 속에서도 우리가 자신을 이해하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실마리일지 모른다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