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에세이
살다 보면, 문득 마음을 붙드는 얼굴 하나를 만난다.
그 얼굴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미처 알지 못했던 내 모습이 떠오르고,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잠시 잊고 지냈던 나를 다시 기억하게 된다.
내게도 그런 얼굴이 하나 있다.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한때 오래 바라본 적 있는 누군가의 얼굴.
가족도, 연인도 아니었지만
그 얼굴은 내 안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
조용한 거울이었다.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조별 과제로 처음 마주했다.
말수가 적었고, 발표 수업이었는데도
끝까지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조별 과제 발표를 앞두고
도서관에서 밤샘 회의를 하던 중,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실… 나는 말을 잘 못 해.
대신, 글로 좀 써봤어.”
그가 내민 노트엔
그의 조용한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맑고도 단단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그보다 더 놀라웠던 건,
그 문장들 속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날 이후, 나는 자주 그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다.
말수는 적었지만, 깊이 생각하는 사람.
말 대신 마음을 쓰는 사람.
남의 감정을 조용히 읽어내는,
그런 얼굴이었다.
어쩌면 그 얼굴은
내가 되고 싶었던 ‘나’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밝고 익숙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늘 흔들리던 내 모습과는 달리,
그는 언제나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자꾸만 그의 얼굴을 바라보게 된 건,
아마도 내 안 어딘가에서
그런 단단함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그가 문득 이런 말을 했다.
“넌 말없이 먼 데를 바라볼 때, 그때 얼굴이 가장 솔직해 보여.”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누군가가 내 웃는 얼굴이 아닌,
허공을 응시하는 얼굴을 기억한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읽어냈다는 것.
마치, 내가 모르는 나를
그가 먼저 알아봐준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종종 거울 속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나의 눈빛을,
무표정한 입매를,
그리고 혼자 있을 때의 그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 속에는 웃음도 있었고,
지치고 쓸쓸한 마음도 담겨 있었으며,
아직 꺼내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아, 이 얼굴로 나는 세상을 견뎌냈구나.’
누군가의 얼굴은
내 안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에 비친 나의 모습,
친구의 미소에 담긴 나의 기억,
엄마의 주름 속에 스며 있는 나의 시간.
그 얼굴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가끔은,
거울 속에 비친 나 자신의 얼굴이
가장 솔직한 소울 미러가 된다.
화장을 지우고 난 후의 얼굴,
퇴근 후, 긴 한숨과 함께 흐려진 표정,
비 오는 날, 아무 약속 없이 홀로 맞이한 오후의 얼굴.
그 얼굴이야말로
가장 나다운 얼굴일지 모른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얼굴들을 마주친다.
사랑했던 얼굴, 미워했던 얼굴,
그리고 이제는 이름조차 희미해진 얼굴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얼굴이 있다.
그 얼굴은 언제나 조용히 나를 닮아 있었고,
내가 나 자신을 알아보게 해준
가장 처음이자 가장 깊은 거울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수많은 얼굴 사이에서
나를 찾아가고 있다.
누구의 눈에 비친 내가 진짜일까,
내가 가장 나답게 웃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가끔은 사진 속 나를,
가끔은 거울 속 나를 바라보며,
그 질문들을 조용히 곱씹는다.
소울 미러는 결국, 얼굴이 지닌 힘이다.
말보다 먼저 마음을 건네고,
침묵 속에서도 많은 것을 말해주는 힘.
그 얼굴을 통해
나는 나를 다시 마주하고,
잊고 지낸 나를 조용히 떠올린다.
문득—
그 얼굴이, 다시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