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평생을 자신과 함께 살아가지만,
정작 진짜 ‘나’와 마주하는 순간은 드물다.
거울을 보고, 사진을 찍고, 일기를 써봐도
‘나’라는 존재는 늘 어딘가 흐릿하고, 낯설기만 하다.
그러나 뜻밖의 순간,
잊고 지냈던 나 자신과
느닷없이 마주하게 되는 때가 있다.
나에게 그 순간은
한층 습한 어느 날 밤이었다.
대학교 3학년 겨울,
생애 첫 면접에서 떨어지고 돌아온 날이었다.
하루 일과를 모두 끝낸 거리를 뒤로 하고
지하철에 몸을 싣고,
말없이 집까지 걸어왔다.
방에 불도 켜지 않은 채
책상 앞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눈물이 났다.
크게 울지도, 흐느끼지도 않았다.
그저 고요하게, 아무 말 없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 순간,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내 마음의 무게와
처음으로 마주했다.
그건 좌절이라기보다는,
살아 있다는 증거 같았다.
‘나는 왜 이렇게 초라해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렇게 울고 있는 나를
어쩐지 미워할 수 없었다.
오히려 마음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괜찮아"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아주 조용히,
나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라도 울 수 있다는 건,
네가 아직 잘 버티고 있다는 증거야.”
누구도 해주지 않았던 위로의 말을
그날, 내가 나에게 처음으로 건넸다.
그 후,
나는 달라졌다.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겁이 많았고,
망설이는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내 마음을 조금 더 들여다보게 되었고,
나의 속도를
조금 더 존중하게 되었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마음을
오직 나만이 알아봐 주는 순간이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고독이라 부르기도 하고,
성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그 순간을
‘내가 나를 만난 시간’이라고 부르고 싶다.
누군가는 첫 입사하던 날,
누군가는 사랑을 끝내던 날,
또 누군가는 새벽길을 홀로 걷던 그 밤,
자기 자신과 마주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만큼은
타인의 기준과 시선도,
세상의 소음도 모두 사라지고,
오직 나와 나만이
존재한다.
그 짧지만 선명한 순간들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날의 표정과 숨결은
기억 속에 오래 머문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소울 모먼트’를 하나둘 모아
비로소 ‘나’라는 사람을
완성해 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