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scent — 어느 기억의 냄새

소울 에세이

by 안녕 콩코드


기억엔 향기가 있다.

이름보다 먼저 떠오르고,

말보다 선명하게 시절을 불러오는 냄새.

어떤 향은 바람처럼 스쳐가지만,

어떤 향은 마음속 깊은 곳에 눌어붙어

평생 지워지지 않는 감상이 된다.


비 오는 날의 흙내음.

창문을 열자마자 스며드는 그 묵직하고도 말간 냄새는

장화를 신고 뛰어다니던 어릴 적 골목어귀를 생생하게 불러낸다.

발목을 적시던 물웅덩이,

우산 아래 까르르 웃던 친구들의 얼굴,

돌아오는 길,

신발 속에 고인 따뜻한 발냄새마저도

그 냄새 하나에 모조리 되살아난다.


할머니 집 장독대에서 퍼지던

된장과 들기름의 깊고 구수한 냄새.

늘 똑같던 점심 식탁 풍경,

마당에 앉아 콩을 까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등,

그 시간은 사진으로 남지 않았지만

냄새로는 여전히 선명하다.

향기란, 그렇게

지워지지 않는 시간의 언어가 된다.


그리고 첫사랑.

교복 깃 사이로 번지던 은은한 향수,

한여름 햇살 아래,

조심스레 닿은 어깨와 터질 것 같은 심장 사잇길로

향기가 불쑥 깃들곤 한다.

지하철에서 스친 누군가의 뒷모습에,

거리에서 우연히 지나친 사람의 잔향에.

향기는 사람이 아니라

숨결을 기억하게 한다.


나는 종종,

향기를 따라 과거로 돌아간다.

말로는 꺼낼 수 없는 기억들,

기록하지 못한 감정들이

냄새 하나에 부드럽게 피어난다.

그래서 나는

향수병을 조심히 열고,

빗방울 떨어지는 거리를 깊이 들이마시고,

오래된 옷장에서 꺼낸 낡은 니트 속에서

누군가의 체취를 불쑥 떠올린다.


사람은 잊는다.

얼굴도, 목소리도, 이름조차도 흐려진다.

하지만 향기만은

그 기억의 문을 여는 조용한 열쇠가 된다.


어느 날 문득,

그리움이 향기로 피어오르면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선다.

그리고 속삭인다.

“그래, 이 냄새였지.

그때 그 마음, 나 아직 잊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