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성별화와 서사의 윤리
누구의 기억으로 역사는 구성되는가
문학은 기억의 예술이다. 특히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그 시대의 고통과 갈등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더 나아가 누구의 목소리로 재현할 것인가를 묻는 행위이다. 기억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선택되고 배열된 이야기이며, 따라서 언제나 권력의 문제를 내포한다. 문학적 기억은 단지 과거를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사는 독자들에게 시대와 인간을 사유하게 하는 하나의 틀이다.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와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은 모두 한 개인의 삶을 통해 한국 사회의 구조적 폭력과 모순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전자는 식민지와 전쟁, 산업화와 분단을 거쳐 온 민중의 역사, 특히 철도 노동자로 대표되는 남성 노동자의 삶을 중심에 놓는다. 반면 후자는 가족과 사회, 일터에서 반복적으로 경험되는 젠더 불평등을 통해 일상에 침투한 구조적 억압을 고발한다. 두 작품은 모두 "개인과 사회의 교차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닮았지만, 정작 그 고통을 누가 말하고, 누구는 침묵하는가, 그리고 그 말함과 침묵을 문학이 어떻게 구성하는가에 있어서는 극명하게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
『철도원 삼대』는 남성 노동자의 기억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하며, 여성 인물들은 대체로 배경에 머무른다. 그들의 노동, 고통, 목소리는 흔히 생략되거나 기능적인 역할로 축소된다. 반면 『82년생 김지영』은 그간 문학과 사회가 외면해 온 여성의 경험을 전면에 내세운다. 김지영이라는 인물은 특정한 '사건의 주인공'이 아니라, 보편적 구조 속에서 지워지고 침묵당한 존재이며, 바로 그 평범함이 이 소설의 윤리적 힘이 된다.
결국 이 두 작품의 대비는 단지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의 차이가 아니라, 문학이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 누구의 목소리를 대표할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결정의 차이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우리는 문학이 구성하는 기억이 단지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윤리적 질문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성찰하게 된다.
서사의 중심: 남성의 고난 vs. 여성의 침묵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는 제목에서부터 남성 중심 서사의 구조를 예고한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과 분단, 군부 독재와 산업화를 거쳐 1980년대까지를 배경으로, 철도 노동자 집안의 3대에 걸친 생애를 따라간다. 각 세대의 남성 주인공은 시대의 모순과 폭력 속에서 고뇌하며, 때로는 체제에 순응하고 때로는 저항하며, 한국 현대사의 '민중'으로서의 얼굴을 문학적으로 구현한다. 그러나 이 민중의 얼굴은 철저히 남성의 것이다. 소설이 품고 있는 고통과 침묵, 의연함과 패배는 모두 남성 인물의 내부로 수렴되며, 서사의 동력은 이 남성 인물들의 윤리적 태도에 의해 형성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여성 인물들은 거의 언제나 주체적 인물이 아니라 배경적 존재로 그려진다. 어머니, 아내, 누이, 딸로 등장하는 여성들은 종종 이름도 없이 불린다. 그들은 전쟁통에 죽거나 병들어 눕고, 남성의 결단과 고통을 조용히 지켜보며, 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묵묵한 헌신을 반복한다. 어떤 인물은 성폭력을 당한 후 그 충격으로 죽고, 어떤 인물은 남편을 대신해 아이를 키우며 사회로부터 유리된다. 그러나 그들의 상처는 온전히 발화되지 않으며, 그들의 삶은 시대의 고난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말하지 않는 존재’로 위치 지워진다. 『철도원 삼대』는 의도적으로 여성 인물을 소외시킨다고 보기 어렵지만, 바로 그 무의식적 배제와 재현의 결핍이야말로, 한국문학이 공유해 온 남성 중심 역사서사의 관습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낸다.
즉, 『철도원 삼대』는 철도라는 근대의 상징물과 국가의 기틀을 닦은 '노동자-아버지'의 서사로 대표되는 한국 현대사의 정통서사에 충실하다. 이 정통성은 민중의 얼굴을 되찾는 시도였지만, 동시에 그 민중이 곧 ‘남성’으로 상정되었기에, 여성의 고통은 의도적으로든 아니든 배제되고 만다. 이는 문학이 사회의 기억을 어떻게 구성하고, 누가 그 기억의 중심에 서게 되는지를 질문하게 만든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의 위치에서 일상을 바라보고 말하는 방식으로 기존의 남성 중심 서사에 균열을 낸다. 김지영은 특별한 사건을 겪는 영웅이 아니다. 도리어 특별함이 없는, 너무나 평범하고 전형적인 여성이라는 점이 작품의 핵심이다. 그 평범함 속에 자리한 차별과 억압, 침묵의 층위는 마치 지층처럼 겹겹이 쌓여 있으며, 바로 그 지층을 더듬고 기록하는 것이 이 소설의 문학적 전략이다.
『82년생 김지영』은 유년기부터 이어진 여성차별의 연속성을 묘사하며, 그것이 단지 개인의 불운이나 특정 사건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화된 억압 시스템임을 밝힌다. 교실 안의 남아선호 문화, 딸이라는 이유로 양보를 강요받는 가정 분위기, 회사에서 결혼이나 임신 때문에 '눈치'를 보게 되는 현실, 육아를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고 경력단절 여성이 되는 경로까지. 이 모든 일상은 누군가에겐 사소한 일처럼 보일 수 있지만,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가시화된 구조의 고통이자 시대의 문제로 드러난다.
특히 주목할 점은, 『82년생 김지영』이 여성의 이야기를 단지 '피해자 서사'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 소설은 여성의 고통을 반복해서 재현하는 방식보다는, 그 고통이 말해지지 않았던 방식, 즉 침묵의 구조 자체를 폭로한다. 김지영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기 시작하는 장면은 단순한 정신적 이상 현상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평생 억압받고 침묵당해 온 내면이 비로소 ‘말’을 찾기 시작한 사건이다. 그 말하기는 명료하지 않고 중첩되어 있으며, 타인의 기억을 끌어오기도 한다. 이처럼 『82년생 김지영』은 말하지 못했던 삶들의 총합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는다. 침묵했던 삶이 주체적으로 말하기 시작할 때, 문학은 새로운 층위를 갖게 된다.
또한 조남주는 이 소설에서 단지 김지영이라는 한 개인만이 아니라, 수많은 김지영들의 존재를 가시화한다. 소설의 말미에 등장하는 정신과 의사의 시선 역시 이 이야기가 한 사람의 사례에 머무르지 않음을 암시한다. 즉, 이 소설은 ‘여성 1인칭 서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여성 집단의 서사, 더 나아가 사회구조에 대한 고발문이기도 하다. 이것이 『82년생 김지영』이 『철도원 삼대』와 본질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철도원 삼대』는 개인의 고난을 민중의 윤리로 치환해 영웅적 도상으로 재구성하지만, 『82년생 김지영』은 개개인의 경험을 통해 오히려 구조의 폭력과 반복 가능성을 드러낸다.
요컨대 두 작품은 시대의 고통을 주제로 삼고 있음에도 서사적으로 중심에 놓이는 인물의 위치와 재현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철도원 삼대』는 민중적 영웅이자 남성적 주체를 중심에 두고 역사를 구성하는 방식이라면, 『82년생 김지영』은 역사에서 배제되고 주변화된 여성들의 침묵을 말하게 함으로써, 서사의 재편성과 기억의 재구성이라는 새로운 윤리적 지점을 획득한다. 이 비교를 통해 우리는 문학이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 창이 아니라, 지금까지 말해지지 않았던 존재들을 누구의 목소리로, 어떤 방식으로 소환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윤리와 정치성을 띨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기억의 정치학: 침묵의 공간과 말하기의 전략
문학은 언제나 기억과의 싸움이다. 기억이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선택되고 조직되며 맥락화되는 일종의 권력 작용이다.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누구의 기억이 기록되고 전해질 것인가는 곧 사회적 구조 속에서의 서열화된 기억의 위계를 드러낸다. 이 지점에서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와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은 각기 다른 전략과 태도를 통해 기억을 문학적으로 구현한다. 전자가 기억의 숭고화와 남성 주체화를 통해 시대를 말한다면, 후자는 말해지지 못한 기억과 침묵의 정치성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한다.
『철도원 삼대』는 기본적으로 남성 화자의 회상 구조를 따른다. 작품은 손자의 시선을 통해 조부와 부친의 생애를 복원하고, 이를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재구성한다. 이 회상은 단지 가족의 기억이 아니라, 민중의 고통과 역사의 흐름을 연결하는 상징적 장치로 기능한다. 철도는 이들 삶을 연결하는 매개이자, 국가 근대화의 상징물로 등장하며, 그 선로 위를 걷는 철도원들의 윤리적 선택은 곧 국가의 역사와 도덕성을 대변하는 듯한 서사로 숭고화된다.
이 과정에서 기억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공동체적, 민족사적 위상으로 격상된다. 그러나 바로 그 ‘숭고함’이 문제적이다. 이 서사에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기억되지 않는 인물들이 있다. 바로 여성들이다. 아내, 어머니, 누이로 존재하는 여성 인물들은 서사의 맥락 안에서 언제나 주변적이고 침묵하는 존재로 남는다. 이들은 전쟁 중 죽거나,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가정을 지탱하거나, 성폭력의 피해자로 등장하지만, 그들의 고통은 기억되지 않고 해석되지 않으며, 문학적 의미로 승화되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생략이 아니다. 이것은 기억이 남성 중심으로 선택되고 구성되는 방식, 즉 기억의 젠더화된 권력 구조를 드러낸다.
『철도원 삼대』의 회상 구조는 어쩌면 ‘말할 수 있는 자’와 ‘말할 수 없는 자’ 사이의 위계를 무의식적으로 고착화한다. 남성은 고통을 서사로 바꿀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지닌다. 반면 여성은 고통을 감내하지만, 그것이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다. 이러한 기억의 구성 방식은 결국 문학 내부에서도 역사 기록에서의 배제와 침묵을 반복하게 만든다. 여성의 고통은 역사화되지 않으며, 따라서 그 기억은 잊히거나 왜곡된다.
이에 반해 『82년생 김지영』은 바로 그러한 침묵의 구조를 문제 삼으며 출발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의 핵심은 말하지 못하는 삶, 혹은 말할 수 없도록 강요받은 존재가 어떻게 언어를 회복해 나가는가를 그리는 데 있다. 김지영은 정신적 증상을 겪으며, 자신이 아닌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기 시작한다. 언뜻 보기엔 병리적 현상이지만, 이 장치는 억눌렸던 집단의 기억이 한 개인의 내면에서 폭발하는 장면이자, 억압된 주체의 저항적 말하기의 시작이다.
『82년생 김지영』에서 기억은 단선적 회상이 아니다. 오히려 다성적이며 집단적인 구조를 가진다. 김지영이 발화하는 여성들은 모두 실존적 고통을 겪은 인물들이다. 죽은 할머니, 아이를 잃은 엄마, 육아로 경력을 중단한 언니. 이들은 김지영 안에서 말하고자 하며, 김지영은 그 기억의 통로가 된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한 개인의 말하기’가 아니라, 말해지지 못한 다수의 기억이 하나의 신체를 통해 말해지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이 구조는 곧, ‘기억의 민주화’를 실현하려는 문학적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더욱이 이 소설은 정신과 의사의 관찰 기록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이 의사는 김지영의 상태를 의학적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동시에 그 서술 속에는 성찰 없는 사회적 시선의 한계가 드러난다. 결국 『82년생 김지영』은 의사-환자라는 구조 역시 말하는 자와 말해지는 자 사이의 위계임을 보여주며, 독자에게 그 시선을 다시 물음으로 되돌린다. 말하자면, 이 소설의 기억은 단지 ‘기억해 낸다’는 행위에 머물지 않고, 그 기억을 누가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윤리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두 작품은 모두 시대의 고통을 기억하는 서사이다. 그러나 그 고통이 ‘어떻게’ 기억되며, ‘누구에 의해’ 말해지는가에 따라 그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철도원 삼대』가 숭고한 노동의 기억을 통해 남성 주체의 영웅화를 완성한다면, 『82년생 김지영』은 일상의 파편에서 시작된 침묵의 기억을 해체하며, 새로운 말하기의 가능성을 연다. 전자가 기억의 중심에 있는 인물의 목소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면, 후자는 그 당연함 자체를 비틀고 의심하며 여성 주체가 말할 수 있는 자리에 다다를 때까지의 과정을 추적한다.
결국 이 두 작품의 차이는 문학이 기억을 다루는 방식의 윤리성을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 기억이란 단지 과거의 환기가 아니라, 그 기억이 어떻게 선택되고 구성되었는지를 성찰하는 작업이다. 『철도원 삼대』는 분명 한국문학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그 서사에서 배제된 존재들이 누구였는지를 성찰하게 만든다. 반대로 『82년생 김지영』은 그 배제된 존재들의 침묵을 말하게 함으로써, 문학이 기억의 공공성과 표현의 민주성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요컨대, 『철도원 삼대』가 보여준 것은 말해진 기억의 위엄이고, 『82년생 김지영』이 보여준 것은 말하지 못했던 기억의 윤리이다. 문학은 이제 어느 쪽에 더 큰 책임을 져야 하는가?
서사의 구조와 윤리적 시선
문학은 인간의 삶을 서사라는 틀로 조직하는 행위이다. 이때 서사의 구조는 단순히 기술적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삶이 기록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가, 혹은 어떤 인물이 이야기의 중심에 놓일 수 있는가를 결정짓는 윤리적, 정치적 선택이다. 그런 점에서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와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전자가 근대사의 ‘기념비적 서사’를 재현하는 데 주력한다면, 후자는 그 기념비성 바깥에서 침묵당한 존재의 삶을 서사로 끌어올린다. 이 차이는 단지 이야기의 내용이 아니라, 이야기되는 방식 자체의 윤리성을 문제 삼게 한다.
『철도원 삼대』는 명백히 기념비적 서사 구조를 따른다. 이 소설은 노동자 삼대, 즉 조부-부친-손자로 이어지는 남성 계보를 통해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분단, 산업화를 거치는 한 세기의 역사를 압축한다. 이 연대기는 단순한 가족사이자 노동사라기보다는, 민중의 윤리와 고난을 형상화한 근대 민족 서사의 재현이다. 등장하는 남성 인물들은 하나같이 도덕적 갈등 앞에서 침묵하거나 고뇌하며, 그 침묵은 곧 역사적 윤리의 무게로 상징화된다. 철도라는 공간은 단순한 생계의 장소를 넘어 국가의 운명과 나아갈 방향을 운반하는 매개로 전환되며, 철도 노동자는 그 운명을 어깨에 짊어진 ‘주체’로 서사화된다.
이와 같은 구조는 소설이 다루는 역사적 상처를 집단적 신화로 변환시키는 서사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서사’로 대표되는 이 기념비적 서사에는 위엄과 숭고함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숭고함이 어디까지 포용력을 가지는가이다. 『철도원 삼대』의 기념비성은 동시에 누가 기억되고, 누가 재현되지 않는가를 가르는 위계 구조를 만든다. 여성 인물들은 이 서사에서 대개 기억을 전하는 자도, 기억의 주체도 아닌 조력자이거나 수동적 희생자에 머문다. 이들의 이야기는 주변에 머무르거나, 주인공 남성의 고뇌를 부각하는 장치로 기능할 뿐이다. 그 결과, 『철도원 삼대』는 시대의 고통을 말하면서도 그 고통의 절반 이상을 겪은 존재들을 서사에서 침묵시킨다.
이에 반해 『82년생 김지영』은 비기념비적 서사를 통해 정반대의 서사적 윤리를 지향한다. 김지영은 역사의 거대한 사건과는 무관한 인물이다. 그는 혁명도 하지 않았고, 이념적 투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주어진 일상을 살아내려 노력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일상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가장 치밀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뛰어난 정치성을 지닌다. 김지영의 삶은 눈에 띄지 않는 차별과 억압, 배제와 침묵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수많은 작고 개인적인 고통의 편린들은, 결국 전체 구조를 비추는 거울이자 구조적 폭력의 총합으로 기능한다.
『82년생 김지영』은 “누구든 기억될 수 있다”는 문학의 민주적 이상을 실천한다. 이 서사에는 위대한 영웅도, 숭고한 희생도 없으며, 말없이 아이를 키우고, 커리어를 중단하고, 스스로를 설명하기 위해 애써야 했던 한 여성의 ‘평범한’ 삶만이 있다. 그러나 이 평범함은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기에 더 정치적이다. 이 소설은 역사에서 배제되어 온 목소리, 특히 여성의 일상적 경험이야말로 제대로 기록되고 말해져야 할 삶이라는 사실을 문학적으로 증명해 낸다.
또한, 이 소설은 기념비화의 서사 구조 자체를 전복한다. 김지영은 병을 앓고 있는 인물이며, 그녀의 말하기는 이따금 타인의 목소리를 빌린다. 이 병리적 설정은 여성의 삶에 내재된 억압을 드러내는 장치인 동시에, “기억되지 못한 자들이 한 몸을 빌려 나타난다”는 다성적 기억의 형상화다. 이는 단일한 영웅 서사나 가족 중심의 남성 계보 서사와 달리, 기억의 집합성, 다층성, 그리고 주체의 불안정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서사적 전략이다.
『철도원 삼대』의 구조가 국가와 민중, 아버지와 아들로 이어지는 수직적 전승의 윤리라면, 『82년생 김지영』은 어머니와 딸, 동료 여성들 간의 기억이 교차하는 수평적 연대의 윤리를 구현한다. 이는 단순한 구조적 차이를 넘어, 문학이 선택하는 세계 인식의 방식에 대한 차이이기도 하다. 역사를 기록하는 문학 vs. 침묵을 해체하는 문학이라는 구도로 이해할 수 있으며, 후자는 기존 문학에서 '재현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영역을 재현 가능한 서사로 만들어낸다.
결국 이 두 작품은 문학의 윤리적 시선이 어떻게 서사를 구성하는가를 명확히 보여준다. 『철도원 삼대』는 민중의 고난과 윤리를 기념비화하며, 그 속에서 여성은 침묵의 장치로 남는다. 반면 『82년생 김지영』은 말하지 못했던 존재들의 침묵을 해체함으로써, 서사가 누구를 기억하고, 누구를 배제해 왔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윤리적 장치로 기능한다.
오늘날 문학은 더 이상 위대한 서사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삶이 말해질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누구의 기억도 배제되지 않는 서사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철도원 삼대』와 『82년생 김지영』의 대비는 단지 한 세기의 사회상이나 젠더 의식의 차이가 아니라, 문학이 윤리적으로 진화해 온 방식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문학은 결국 질문하게 만든다. 당신이 기억하고 싶은 존재는 누구인가?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 속에서, 누구는 아직도 말하지 못한 채 침묵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제는 여성도 기억될 권리가 있다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는 분명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제작이다. 이 작품은 ‘민중’이라는 집합명사를 실체화하고, 국가의 거대한 서사에서 배제되었던 하층 노동자의 삶을 문학의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역사적 전환기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묵묵히 생계를 유지하며, 시대의 윤리적 균열을 온몸으로 감내했던 이들의 얼굴에 문학적 이름을 부여한 것은 분명한 성취다. 『철도원 삼대』는 한국 현대사를 살아낸 이름 없는 남성 노동자들을 고통과 윤리의 주체로 서사화했다는 점에서, 민중문학의 기념비로 불릴 만하다.
그러나 그 기념비성은 역설적으로 여성의 침묵을 공고히 한 구조이기도 했다. 이 소설에서 여성은 언제나 주변부에 있다. 어머니, 아내, 누이로 등장하며 가족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희생을 감내하지만, 그 고통은 문학적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여성의 죽음이나 성적 피해는 남성 주인공의 서사적 각성을 위한 장치로 소모될 뿐, 독립된 서사의 동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는 한국 근대문학 전반에 걸쳐 반복되어 온 젠더 불균형의 축소판이자, ‘말할 수 있는 자’에 대한 무의식적 배제를 보여주는 예다. 문학이 ‘누구를 말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적 기억의 문제에 관여한다면, 『철도원 삼대』는 그 선택에서 여전히 남성을 중심에 놓고 있다.
반대로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은 이 오래된 결핍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 작품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끝없이 조용해져야 했던 존재, 너무나 평범했기에 기억조차 되지 못했던 개인의 삶을 문학의 중심에 위치시킨다. ‘김지영’이라는 인물은 고유명사이자 보통명사이며, 한 여성의 인생이자 수많은 여성의 경험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 소설은 단지 여성의 고통을 드러내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고통이 왜 말해지지 않았는지, 그 침묵은 어떻게 강요되었는지, 말할 수 없었던 기억은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문학적으로 사유하는 작품이다.
두 작품의 대조는 단지 남성과 여성, 노동자와 주부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말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 문학이 누구의 고통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윤리의 문제다. 『철도원 삼대』가 역사의 중심에서 말하던 목소리를 기록했다면, 『82년생 김지영』은 그 역사에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를 복원한다. 전자는 말해진 자의 서사이고, 후자는 말하지 못한 자의 말하기를 가능하게 만드는 서사이다.
오늘날 문학은 단지 기억을 저장하는 창고가 아니다. 문학은 어떤 기억을, 어떤 고통을, 어떤 존재를 사회적으로 ‘기억 가능하게’ 만드는 실천의 장이다. 더는 거대한 사건과 영웅적 인물만이 문학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사소하고 평범한, 그러나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고통 또한 이야기되어야 하며, 그 말하기에는 누구도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이제는 말해야 한다. 여성도 기억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단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이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윤리의 감각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보편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문학은 그 질문을 가장 근본적인 방식으로 묻는 예술이며, 『82년생 김지영』은 바로 그 물음을 되살리는 오늘의 문학적 응답이다. 반면 『철도원 삼대』는 그 물음이 제기되기 전의 문학적 좌표를 보여준다.
문학은 늘 늦게 도착한다. 그러나 진실한 문학은, 언젠가 반드시 말하지 못했던 자들의 목소리를 발견한다. 그때 우리는 다시 묻게 될 것이다. 이제는 누구의 차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