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로 환원된 인간관계의 구조
“그 사람, 진짜 도움 되는 사람이야.”
“굳이 저 사람한테 뭘 바라겠어.”
“쓸모없는 인간은 피곤해.”
‘도움’과 ‘쓸모’라는 말은 언뜻 중립적이고 실용적인 평가처럼 들리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관계를 거래로 환원하는 시선이 숨어 있다. 우리는 점점 더 사람을 ‘도움이 되는가, 아닌가’로 나누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쓸모없어 보이지 않기’ 위해 누군가는 늘 배려하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유능해지려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인간관계는 기능과 성과로 평가받는다. 이 관계는 나에게 어떤 유익을 줄 수 있는가? 상대는 내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관계는 돌봄보다는 효율로, 애정보다는 성과로 환원된다. 우리는 서로를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로 정의하며, 관계는 점점 더 조건화된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점점 피로해진다. 진심보다 ‘도움이 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감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해야 하며, 존재 자체보다는 역할 수행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도움이 되는 인간’이라는 이상은 표면적으로는 칭찬처럼 보인다.
“네가 있어서 일이 수월했어.”
“덕분에 분위기가 좋아졌어.”
이런 말들은 고마움의 표현이지만 반복될수록, ‘도움이 되지 않는 순간’에 대한 불안이 자라난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자신을 검열한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쓸모 있는가? 이 관계에 기여하고 있는가? 도움이 되지 않는 나는, 과연 괜찮은 존재인가?
문제는 이러한 기준이 어디에나 적용된다는 것이다. 친구는 ‘잘 들어주는 사람’이어야 하고, 연인은 ‘정서적으로 지지해 주는 사람’으로 기능하며, 부모는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존재’로 기대된다. 우리는 서로에게 기능적 역할을 부여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기를 강요받는다.
관계가 유용성으로 환원될 때, 진짜 정서적 연결은 어렵다. 사랑은 조건적 호의로, 우정은 심리적 투자로 변질된다. 감정 표현도 역할 수행의 일부로 조정되며, 힘든 마음을 드러내는 일은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자제된다. 진정성보다 효율성이, 연대감보다 유익함이 중요시된다.
그러나 때로는 아무 쓸모도 없지만 그냥 함께 있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기대에 부응하지 않아도, 무언가 해주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관계 말이다. 바로 그것이 인간관계의 본질이며, 우리가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유일한 가치일지도 모른다.
심층 학습
‘도움이 되는 인간’이라는 말은 언뜻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관계를 ‘성과’로 평가하려는 사회 구조가 스며 있다.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기브 앤 테이크』에서 사람을 주는 사람(giver), 받는 사람(taker), 맞추는 사람(matcher)으로 나누며, 이 세 유형이 관계와 성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다. 그는 특히 ‘주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경계를 설정할 줄 아는 자기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의 『감정 자본주의』는 감정조차 자본주의의 논리 안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감정은 더 이상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라, 교환 가능한 자원이 된다. 인간관계 역시 효율과 생산성을 따지게 되면서, 감정은 ‘쓸모 있는 방식’으로 소비되도록 길들여진다.
이러한 논의는 ‘쓸모 있음’이라는 개념이 인간 존재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누군가에게 유익하지 않아도, 당장의 도움을 주지 못해도, 우리는 존재 자체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지금 당신은 누구에게 쓸모 있기 위해 존재하고 있지는 않은가?
‘쓸모없는 나’도 관계 안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관계를 당신은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우리에겐 이 질문들에 천천히, 정직하게 답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의 관계는, 너무 ‘쓸모’로만 가득하지는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