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숨기고 살아가는 어른들의 연극 같은
“그 나이면 이 정도는 참아야지.”
“화내면 결국 손해.”
“어른이니까 이해해야지.”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이런 말을 듣고, 또 스스로에게 되뇝니다. 성숙함은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인격의 조건처럼 여겨지고, 그 핵심은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것’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스림’이 과연 자발적인 자기 성찰일까요, 아니면 사회가 요구한 억압의 기술일까요?
어린아이는 울 수 있지만, 어른은 울어선 안 됩니다. 직장에서 감정을 드러내면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친구 관계에서도 솔직한 감정 표현보다 ‘배려’와 ‘눈치’가 더 중요한 미덕으로 간주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점점 자신의 감정을 연기하기 시작합니다. 슬프지 않은 척, 분노하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이런 척의 연속은 결국 하나의 공연이 됩니다. 우리는 무대 위에서 ‘성숙한 어른’이라는 배역을 맡고, 매일 감정을 정리하고 정제한 대사만을 말합니다. 피곤하다는 말 대신 “조금 바빴어”라고 말하고, 화가 났지만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깁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편집’하고 ‘관리’하는 일이 성숙함의 일부가 된 사회.
그러나 진짜 성숙함이란 무엇일까요? 감정을 억누르고 무시하는 능력일까요, 아니면 감정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 감정과 함께 살아가는 힘일까요?
감정 연기의 일상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감정을 느끼지만, 그 감정들이 다 표현되지는 않습니다. 감정을 느끼는 것과 표현하는 것 사이에는 수많은 사회적 필터가 작동합니다. 특히 성인이 된 이후에는 그 필터가 점점 더 두꺼워집니다.
직장에서는 화를 내면 감정적이라는 평을 듣고, 친구 사이에서도 지나치게 감정을 표현하면 피곤한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괜찮아요”라는 말로 자신의 감정을 눌러둡니다.
이렇게 감정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감정의 언어 자체가 줄어듭니다. 우리는 점점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반사적으로 상황에 맞는 ‘감정의 표정’을 지을 뿐입니다.
분노 대신 이해의 미소를, 눈물 대신 괜찮다는 말을 선택하는 순간들. 그것은 성숙함일 수 있지만, 너무 자주 반복되면 연극이 됩니다. 감정이 스스로의 것이 아닌 사회적 요청에 맞춘 포장으로 변할 때, 우리는 그만큼 자기 자신과 멀어지게 됩니다.
가짜 성숙, 진짜 나를 잃어가는 과정
가짜 성숙은 ‘어른스러워 보여야 한다’는 기대에서 비롯됩니다. 이 기대는 가족, 학교, 회사, 친구, 연인까지 — 우리가 속한 모든 공동체가 암묵적으로 주입합니다.
이 기대는 “진짜 감정은 어딘가 부끄러운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합니다. 슬픔을 드러내는 건 약함이고, 분노를 표출하는 건 이기적이라는 평가가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일수록 더 성숙해 보이고, 감정을 잘 숨기는 사람이 더 ‘어른스럽다’는 인정을 받습니다.
하지만 감정은 숨긴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억눌린 감정은 병이 되거나, 어느 날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터져 나옵니다. 번아웃, 불면, 우울, 관계 단절 — 감정이 입을 잃었을 때, 몸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성숙은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 데 있다
성숙함은 감정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감정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그 감정과 함께 건강하게 살아가는 능력입니다. 감정을 숨기거나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알아채고, 스스로를 돌보는 힘이 진짜 성숙입니다.
내가 지금 느끼는 불안은 어디서 왔는지, 짜증은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슬픔은 어떤 신호인지 들여다보는 일.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혼자 짊어지지 않기 위해 말로 꺼내는 일. 그것은 미성숙함이 아니라 용기입니다.
심층 공부를 위한 이야기들
브렌 브라운(Brené Brown)은 『마음 가면(Daring Greatly)』에서 “취약함은 연약함이 아니라 용기다”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성숙함을 감정 억제의 결과가 아니라, 진정성을 드러낼 수 있는 힘으로 봅니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감정을 억누르도록 길들여지는 과정은, 결국 진짜 나를 숨기는 방식이며, 이는 연결감을 약화시키고 자기 소외로 이어진다고 지적합니다.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컷(Donald Winnicott)의 ‘거짓 자아’ 개념도 참고할 만합니다. 그는 아이가 부모나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자신을 숨기면서 만들어내는 ‘거짓 자아(false self)’를 설명했습니다. 어른이 된 이후에도 우리는 사회의 기대에 따라 ‘성숙한 자아’를 연기하며 살아가고, 그 과정에서 ‘참 자아(true self)’와의 연결이 끊길 수 있습니다.
또한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리사 펠드먼 배럿은 감정이 주관적 반응이 아닌, 사회적으로 학습된 구성물임을 강조합니다. 즉, 우리가 감정을 억누르거나 표현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문화적 학습의 결과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성숙함’이라는 규범은 단순한 개인의 인격 특성이 아니라, 우리가 학습한 감정 규범의 집합체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감정을 연기하고 있나요?
그 감정은 정말 ‘불필요한’ 감정인가요, 아니면 당신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의 형태는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