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히티에 유배된 색채, 폴 고갱

타히티의 황혼을 그리다

by 콩코드
인생의 낙오자이자, 색채의 예언자
문명을 떠난 망명자, 고갱은 왜 타히티로 갔는가? 그림 속으로 사라진 남자, 그리고 남은 질문 하나


폴 고갱의 그림 앞에 서면, 우리는 낯선 색 앞에서 잠시 멈춰 서게 된다. 노랑은 더 노랗고, 보라는 더 깊으며, 피부는 짙고 붉게 물들어 있다. 그의 화폭은 유럽이 오랫동안 익숙하게 그려온 세계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고갱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문명에서 멀어질수록, 더 진실에 가까워진다.”


그는 이 말을 실제 삶으로 옮긴 사람이었다. 그림 속으로, 그리고 가장 멀고 이국적인 시간 속으로 자신을 던진 사람. 고갱은 진실을 찾아 떠났고, 그 여정의 끝에 그림이 있었다.


파리, 버려진 풍경

1848년, 폴 고갱은 파리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라틴아메리카 출신의 자유주의자였고, 아버지는 언론인이었다. 어린 시절의 일부는 페루에서 보냈고, 이후 프랑스로 돌아와 해군에 복무하며 일찍이 넓은 세계를 몸으로 경험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화가였던 것은 아니다. 한동안 그는 그림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 증권중개인으로 일하며 안정된 수입을 얻었고, 부유한 아내와 다섯 아이가 있는 가정도 꾸렸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결핍이 없는 삶이었다.


그러나 그림이 조금씩, 그리고 끈질기게 그를 불러냈다. 주말마다 붓을 잡던 손이 점점 일상으로 스며들었고, 마침내 그는 결심했다. 직장을 버리고, 삶의 방향을 통째로 틀었다.


당연히 대가는 따랐다. 가난, 이혼, 그리고 사회적 고립. 그는 하나씩, 차례로 ‘살던 삶’을 내려놓았다. 대신 그가 붙잡은 것은 단 하나,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욕망이었다.


색을 따라 떠난 사람

인상주의자들과 어울리며 그림을 배우던 고갱은 곧 그들과 멀어졌다. 그는 눈에 비친 ‘빛’보다, 그 뒤에 숨은 ‘의미’를, 단순한 ‘관찰’보다 ‘상징’을 갈망했다. 그리고 마침내 선언했다.

“나는 타히티로 간다. 유럽이 닿지 않은 인간, 그 본질을 그리고 싶다.”


1891년, 그는 타히티행 배에 올랐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세계의 끝자락으로 불리는 그곳. 그러나 그가 마주한 타히티 역시 이미 유럽의 그림자에 잠식되어 있었다. 선교사들의 엄격한 교리, 전염병과 병마, 제국주의의 냉혹한 손길, 그리고 깊은 가난. 고갱이 그려온 ‘순수한 세계’는 이미 흐려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무너진 유토피아의 잔해 속에서 새로운 시선을 건져 올렸다.

붉게 달아오른 땅,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 멍하니 서 있는 여인들, 시간을 잃은 듯한 그들의 시선.


고갱은 현실의 타히티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 새겨진 타히티를 그렸다.

그곳은 욕망과 상징, 그리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본질이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나는 야만인이 되고 싶었다”

고갱이 만약 파리에서 그림을 그렸다면, 그는 아마도 ‘인상주의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스스로 말했다.

“나는 야만인이 되고 싶었다.”


자연과 더 가까이, 문명의 병리에서 멀어진 존재가 되고 싶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고갱은 진정한 야만인이 아니었다. 그는 철저한 유럽인이었고, 식민지 타히티에서 겨우 열세 살에 불과한 소녀를 아내로 맞이하기도 했다. 그는 문명을 비판하면서도, 그 안에 기대어 살아갔다.


이 모순을 그는 외면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면으로 마주했고, 그 불협화음을 그대로 화폭에 담았다.


그의 그림은 가짜 유토피아를 찬양하는 대신, 욕망과 이상이 맞부딪히는 현장을 담아낸다. 고갱은 환상을 그리면서도, 그것이 환상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고통의 끝에서 그린 대작

1897년, 딸 아이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그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는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남은 고통과 슬픔을 모두 붓에 쏟아부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고갱의 걸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이다.


세로 1.4미터, 가로 3.7미터에 이르는 대형 캔버스 위에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인간의 삶이 흐른다. 갓 태어난 아이에서 시작해 노인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속에는 종교도, 철학도, 자연도 없다. 오직 시간과 생명만이 조용히 흐를 뿐이다.


이 그림은 고갱의 예술적 유언과도 같았다. 그는 작품을 완성한 후 편지에 이렇게 썼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릴 것이 없다.”


그림 속으로 사라진 사람

고갱은 1903년, 마르키즈 제도의 외딴섬에서 생을 마감했다. 병마에 시달리고 가난했으며, 타히티 정부와의 갈등 속에서 홀로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 생전 그는 거의 인정받지 못했지만, 죽음 이후 비로소 ‘예술가’로 불리게 되었다.


오늘날 그의 이름은 야수파와 표현주의의 거대한 씨앗으로 기억된다. 피카소와 마티스는 고갱의 대담한 색채에서 자유를 보았고, 그의 독특한 구도에서 예술적 해방감을 느꼈다.


하지만 무엇보다 고갱은, 스스로에게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사람이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문명을 떠나 예술 속으로, 다시 말해 그림 속으로 들어간 사람. 그는 삶을 피하지 않았고, 회화를 통해 존재의 물음을 끝까지 좇아갔다.


붓으로 그은 망명선

고갱의 삶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그의 붓끝은 현실을 외면한 도피가 아니라, 부딪치고 흔들리는 고통의 기록이었다. 그는 문명을 떠났고, 가족을 떠났으며, 결국 자신 안으로 깊숙이 침잠해 들어갔다.


타히티의 해변, 황혼이 내려앉은 숲, 말없이 앉아 있는 여인들. 그 풍경들 속에서 고갱은 자주 혼자 서 있다. 아니, 때로는 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그는 이미 그림 속 어딘가에 녹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 그림은 남았고, 그는 사라졌다. 그러나 그가 남긴 질문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작품 속으로: 고갱의 대표작 3점


1.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897)

이 작품은 고갱이 딸의 죽음을 겪은 뒤, 자살을 시도하고 살아남은 직후 완성한 대작이다. 삶의 총결산이라는 심정으로 그린 이 그림은, 타히티 체류 중 제작되었으며 가로 3.7미터, 세로 1.4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유화다.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고갱 자신의 삶과 예술 전체를 상징하는 유서와도 같은 작품이다.


화면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시간의 흐름을 따라 전개된다. 오른쪽에는 막 태어난 아기가 있고, 중앙에는 과일을 따는 젊은 여인들이 등장하며, 왼쪽에는 고요히 죽음을 기다리는 듯한 노인이 앉아 있다. 이 세 인물을 따라가며 우리는 인간의 탄생, 삶, 죽음을 차례로 마주하게 된다. 그 위로는 신비로운 새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징적 형상들이 배경처럼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인간 존재 너머의 초월적 세계를 암시한다.


색채는 그림자 없이 평면적으로 칠해졌고, 윤곽선은 굵고 장식적으로 처리되었다. 인물들의 표정은 정지된 듯 무표정하며, 각자의 포즈는 개별 감정보다는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태도로 읽힌다. 고갱은 이 그림을 통해 삶과 죽음, 종교와 신화, 존재의 본질에 대한 거대한 물음을 회화적 언어로 압축해 냈다.

작품을 완성한 뒤, 그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릴 것이 없다.”


말로는 도달할 수 없는 감정과 질문이, 이 그림 안에는 색과 형상으로 고요히 머물러 있다.


2. 《타히티의 여인들》(1891)

《타히티의 여인들》은 고갱이 타히티에 도착한 직후 그린 초기 대표작 중 하나로, 그가 유럽을 떠나 찾아간 ‘이국의 낙원’에 대한 첫인상과 환상이 오롯이 담긴 작품이다. 겉보기에 이 그림은 원주민 여성들의 평범한 일상 장면을 담고 있는 듯하지만, 그 배치와 구도, 색채의 사용은 철저히 고갱의 내면에서 걸러진, 비현실적이고 상징적인 세계를 드러낸다.


화면에는 나무 아래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두 여성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교감하지 않는다. 시선은 엇갈리고, 표정은 말이 없으며, 둘 사이에는 묘한 정적이 흐른다. 주변 배경은 자연 풍경이지만 실제 장소라기보다는 장식적이고 추상적인 무대처럼 보인다. 강렬하고도 단조로운 색채, 음영 없는 평면적 묘사, 그리고 윤곽선이 뚜렷한 형태는 회화라기보다 하나의 벽화처럼 느껴진다.


두 여성은 고갱이 꿈꾸던 ‘자연 속의 인간’—문명 이전의 순수한 존재—를 상징한다. 그들은 유럽 사회가 요구하는 미의 기준이나 감정 표현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며, 스스로를 설명하지도, 포장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무표정한 얼굴과 고요한 자세 속에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서려 있다. 마치 외부의 시선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혹은 그 시선을 견디고 있는 듯한 침묵이 느껴진다.


고갱은 이 작품을 통해 이국적 풍경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문명과 야만,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은 인간의 모습을 탐색한다. 타히티는 그에게 낙원이 아니라, 정체성과 욕망이 충돌하는 공간이었으며, 이 그림은 그 복잡한 감정의 단면을 보여주는 첫 장면이다.


3. 《죽음의 정령이 지켜본다》(Manao Tupapau, 1892)

죽음의 정령이 지켜본다》는 고갱의 작품 중에서도 유독 긴장감이 응축된 그림이다. 타히티에서의 초기 체류 시기, 그는 열세 살 소녀 ‘테하마나’와 동거를 시작했고, 이 작품은 그녀를 모델로 삼아 제작되었다. 이 그림은 단순한 초상을 넘어선다. 이방인의 욕망과 낯선 땅의 신화, 억압된 무의식이 한 화면 안에서 서로 부딪치며 뒤얽혀 있다.


캔버스 위, 옷을 벗은 소녀가 옆으로 누워 있다. 그녀의 시선은 정면을 향해 있다. 놀람과 공포가 섞인 눈빛이다. 침묵 속에 고여 있는 듯한 그 눈빛은, 마치 무언가를 보았거나, 무언가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녀의 등 뒤, 어둠 속에서 검은 형상이 일어선다. 그것은 정령이다. 혹은 환영. 혹은 두려움 그 자체.


고갱은 이 그림에서 타히티 신화 속 ‘죽음의 정령(Manao Tupapau)’을 끌어왔다. 하지만 그는 민속화를 그리려 한 것이 아니다. 화면에 등장한 검은 형상은 죽음의 기운이기도 하고, 어린 소녀의 불안이기도 하며, 이방인의 시선에 짓눌린 몸이 만들어낸 환상일 수도 있다.


화면 전체는 어둡고 눌려 있다. 보라색과 어두운 적갈색이 칠해진 공간은 불안정하고, 윤곽조차 흐릿한 정령은 현실과 꿈의 경계를 흩뜨린다. 이 그림에서 가장 현실적인 것은 오히려 소녀의 시선이다. 말하지 않지만, 분명히 말을 건네는 눈. 그 침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멈칫하게 만든다.


고갱은 이 작품을 통해 타인의 공포, 식민지 시선, 남성적 욕망, 그리고 죽음에 대한 무언의 감각을 한 화면에 포개었다. 《죽음의 정령이 지켜본다》는 이국적 풍경의 틀을 넘어, 인간 무의식의 어두운 바닥을 직시하는 작품이다. 초현실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감정은 생생하고, 침묵은 오히려 목소리보다 강하게 들린다.


이 그림은 보는 이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정령은 정말 깨어 있는가? 혹은, 그 정령을 깨어 있게 만든 것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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