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정의 집행이 만드는 위험과 모순
공적 정의의 부재와 현실
도시의 한 골목, 늦은 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한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거칠게 주먹을 휘두른다.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상황을 해석한다.
“무슨 잘못을 했길래 저렇게 맞는 걸까?”
“아마 맞을 만한 짓을 했겠지.”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 판단의 기준은 누가 정했는가? 그 남자가 처벌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누가, 어떤 절차로 확인했는가? 그곳에 있어야 할 법은 어디에 있고, 이들을 제지할 경찰은 왜 나타나지 않는가?
그 짧은 순간, 우리는 ‘공적 정의의 부재’와 ‘사적 정의의 위험’을 동시에 목격하게 된다.
오늘날 사회에서 공적 정의는 법과 규범, 그리고 그것을 집행하는 여러 제도적 장치들로 구현된다. 경찰, 검찰, 법원, 행정기관 등은 우리가 공동체의 이름으로 위임한 힘을 행사하며, 최소한의 질서와 정의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러한 제도적 정의가 완벽하게 작동하는 경우는 드물다. 예산 부족, 인력 문제, 복잡한 절차와 그로 인한 지연, 정치적 이해관계의 개입,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이 가진 본질적인 한계로 인해, 제도는 종종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사적 정의의 본질과 역사적 사례
공적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스스로 정의를 구현하려 한다. 이를 흔히 ‘사적 정의’라고 부른다. 개인이 직접 잘못을 바로잡고, 범죄를 처벌하며, 부당함에 대응하는 행위다. 언뜻 보면 용기와 정의감의 발현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치명적인 모순이 숨어 있다.
첫째, 판단의 편향성과 오류가 필연적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과 감정, 그리고 선입견에 따라 사건을 해석한다. 법은 증거와 절차를 통해 사실을 확인하려 하지만, 사적 정의는 즉각적인 분노와 감정에 의해 작동한다. 이 과정에서 억울한 희생자가 생기기 쉽다.
둘째, 폭력과 갈등이 확산될 위험이 크다. 공적 장치가 부재한 상황에서 개인의 정의 집행은 곧 물리적 힘의 사용으로 이어진다. 그 힘은 다시 보복과 보복을 낳으며, 공동체 전체를 끝없는 악순환 속에 빠뜨린다.
역사를 돌아보면, 사적 정의가 만연한 사회는 늘 혼란을 겪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국가의 법적 제도가 미약해, 마을 공동체가 범죄자를 직접 단죄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과정이 불충분했기에, 무고한 시민이 마녀로 몰려 화형 당하거나 억울하게 처벌받는 일이 잦았다.
19세기 미국 서부에서도 법 집행이 느리거나 불가능했기 때문에, 카우보이와 마을 주민들이 ‘자경단’을 꾸려 스스로 복수를 자행했다. 오늘날 서부극에서 흔히 등장하는 ‘보안관 없는 땅에서의 정의’는 단순한 픽션이 아니라, 무법 상태가 빚어낸 실제 역사적 현실의 반영이었다.
사적 정의는 언제나 질서와 폭력 사이의 경계선 위에 놓인다. 공적 정의가 무너진 자리를 대신 메우지만, 그 방식이 곧 또 다른 부정의로 이어지며, 결국 공동체 전체를 더 깊은 혼란으로 몰아넣는다.
현대 사회와 온라인에서의 사적 정의
현대 사회에서도 사적 정의의 문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는 그 양상이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인터넷이라는 익명성과 즉시성이 결합되면서, 한 집단이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향해 ‘정의 구현’을 명분으로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붓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이버불링, 리뷰 조작, 집단적 신상 털기 등이다. 이 모든 행위는 공적 제도가 즉각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거나, 법적 절차가 느리고 미비하다는 현실 속에서 개인들이 스스로 정의를 실현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건의 진실은 왜곡되기 쉽고, 피해자는 오히려 더 무방비한 상태에 내몰린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행위가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분노와 확신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결과적으로 공적 제도의 권위를 더욱 약화시킨다. 그 결과 사회는 점점 더 파편화되고, 신뢰의 기반이 무너진다.
온라인에서의 사적 정의는 결국, 공적 정의의 실패와 디지털 군중심리가 결합해 만들어낸 현대적 비극이다. 이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문제를 넘어, 우리 모두가 속한 공동체가 어떻게 정의를 유지하고 집행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적 정의가 사회 질서에 미치는 영향
사적 정의의 위험은 단순히 한 개인의 폭력적 행동에 그치지 않는다. 그 파급력은 공동체 전체에 미치며, 사회의 기반을 흔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범죄가 발생했을 때, 시민들이 경찰 대신 직접 범인을 폭력으로 제압하거나 단죄한다면 어떻게 될까? 순간적으로는 ‘정의가 실현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결과는 제도의 권위를 갉아먹는다.
“내가 직접 해결하면 된다”는 사고가 퍼지면, 법은 더 이상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선택적 권위로 전락한다. 결국 공적 정의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고, 사회 질서의 근간도 함께 붕괴한다. 이렇게 되면 정의의 기준 자체가 모호해지며, 사회는 각자의 정의가 충돌하는 ‘정의의 혼돈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적 정의를 선택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공적 정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법은 느리고 복잡하며,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끼기 쉽다. 또한 반복되는 불공정과 제도의 무력화는 사람들을 ‘직접 행동’으로 내몬다. 그러나 그 행동의 결과는 결코 예측할 수 없다. 해결을 위해 나선 행동이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처음의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한 분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사적 정의의 근원에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지닌 ‘공정성 감각’이 자리한다. 사람은 불공정한 상황을 목격하면 강한 분노를 느끼며,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경우 즉각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감정에 기초한 판단은 이성적 판단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편향과 오류가 뒤섞인 판단은 쉽게 폭력으로 이어지며, 일시적인 심리적 만족감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회적 안정에는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사적 정의가 가지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권력의 독점’과 직결된다. 누가 사적 정의를 행사할 권리를 갖는가? 만약 힘과 자원이 풍부한 이들이 자신들의 정의를 집행한다면, 이는 곧 또 다른 불평등과 폭력을 탄생시킨다. 결국 사적 정의는 공적 정의의 공백을 메우는 이상적인 도구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힘의 불균형을 그대로 반영하며, 그 격차를 더욱 확대한다.
결국, 사적 정의는 정의의 이름으로 포장되었을 뿐, 그 본질은 통제되지 않는 힘의 발현이다. 그것은 사회를 단단히 묶어주는 공적 규범을 무너뜨리고, 공동체를 각자의 정의가 충돌하는 무질서한 공간으로 전락시킨다.
제도적 문제와 신뢰 회복
공적 정의가 무력화되는 상황은 단순히 시민의 불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그 근본 원인은 제도 자체의 결함에 있다. 법과 제도의 절차적 지연, 정치적 편향, 부패, 그리고 불투명성은 시민들에게 깊은 회의감을 심어준다.
“법은 결국 강자에게만 유리하게 작동한다.”
“제도는 우리를 보호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인식이 확산되면, 사람들은 점점 법을 신뢰하지 않게 되고, 그 빈자리를 사적 정의가 채우게 된다. 이렇게 제도의 한계가 방치될수록 사적 정의는 확산되고, 사회 전체의 갈등과 불신은 점점 더 증폭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사적 정의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제도적 정의가 언제나 즉각적이고 완벽하게 작동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사적 정의의 발생을 최소화하고, 시민들이 직접 행동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핵심이다.
첫째, 제도의 신뢰 회복이다. 제도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작동한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시민들은 사적 정의를 내려놓을 수 있다.
둘째, 시민 의식의 강화이다. 공적 정의가 완전하지 않더라도, 시민들이 감정적 대응 대신 제도적 절차를 존중하도록 사회적 교육과 공론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여러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법적 절차를 단순화하고, 피해자 보호 장치를 강화하며, 공공의 감시와 참여를 확대하는 방식이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는 새로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온라인 신고 시스템, 실시간 모니터링, 그리고 시민 참여 재판 등은 사적 정의의 충동을 제도 안으로 흡수할 수 있는 방안이 된다. 이러한 장치가 촘촘히 작동할 때, 사람들은 더 이상 ‘내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느끼지 않게 되고, 사적 정의의 확산도 자연스럽게 억제된다.
결국, 사적 정의를 억누르는 힘은 억압이 아니라 신뢰다. 시민이 법과 제도를 믿을 수 있을 때, 정의는 다시 공적 영역에서 작동하고, 사회는 혼란이 아닌 질서 속에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
결론: 정의의 의미와 사회적 책임
공적 정의와 사적 정의의 문제는 단순히 법과 폭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신뢰, 인간 심리, 윤리적 책임, 그리고 공동체의 미래와 직결된다. 정의의 의미가 무너진 사회에서 사적 정의는 일시적 만족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해악을 남기며, 그 결과 공적 정의의 회복은 더욱 어려워진다.
사적 정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이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지만, 사실 그는 공동체의 윤리적 토대를 흔들고 있다. 공적 정의가 부재한 상태에서 사적 정의가 폭발할수록, 사회는 법과 규범의 경계를 잃고, 불신과 혼란이 일상화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적 정의의 충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도의 한계, 불공정한 현실, 그리고 감정적 공정성의 욕구는 인간 본연의 반응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충동을 사회적 안전과 윤리적 책임과 결합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사적 정의의 위험을 최소화하고, 공적 정의를 복원하며, 시민이 안전하게 신뢰할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이 글은 단순한 제도 비판이나 폭력 옹호가 아니다. 정의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공적 장치와 시민의 역할 사이 균형을 고민하자는 초대다. 공적 정의의 실종과 사적 정의의 모순을 직시할 때, 우리는 법과 제도, 그리고 인간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사적 정의의 그림자 속에서, 우리는 제도적 정의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법과 사회 규범, 그리고 타인과의 신뢰를 지켜나갈 때, 비로소 정의는 제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오늘도 누군가는 골목길에서, 온라인 공간에서, 또는 일상의 선택 속에서 사적 정의의 유혹과 맞서고 있다. 그 순간, 우리는 묻는다.
“정의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공적 정의의 회복과 사적 정의의 위험 사이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사회적 화두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