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름의 여행

서두르지 않고 오래 머물러야 느낄 수 있는 여행의 깊이

by 콩코드

여행을 준비할 때 우리는 습관처럼 마음속에 리스트를 그린다. 가야 할 곳, 찍어야 할 사진, 맛보아야 할 음식들. 그 리스트를 모두 채워야만 비로소 ‘성공적인 여행’을 한 것처럼 느낀다.


낯선 땅에 도착한 첫날부터 우리는 서두른다. 아침 일찍부터 일정표를 확인하고,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급히 발걸음을 옮긴다. 그 사이사이마다 카메라 셔터를 쉴 새 없이 눌러대며, 풍경을 차곡차곡 ‘기록’해 간다.


그러나 정작 돌아와 앨범을 펼쳐 보면, 그 사진들이 하나같이 비슷하게 겹쳐 보일 때가 있다. 풍경은 분명 달랐지만, 그 속의 나와 내 마음은 늘 같은 표정으로 서 있다. 그제야 깨닫게 된다. 나는 그 풍경을 ‘본’ 것이 아니라, 그저 스쳐 지나가며 ‘소비’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어느 여행지에서였다. 거대한 유적과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를 바쁘게 헤매던 나의 시선이, 문득 한곳에 멈춰 섰다. 사람들로 붐비는 길에서 조금 떨어진 바위 위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그 모습은 낯설고도 묘하게 평화로웠다. 주변의 소란과 속도를 거부하듯, 그는 유적을 ‘보는’ 대신 그 자리에 자신의 시간을 ‘머물게’ 하고 있었다. 마치 그곳의 바람과 햇살, 그리고 천 년의 세월 속에 자신을 살며시 내려놓은 듯했다.


그 장면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잔향처럼 남았다.그 이후로 나는 여행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여행이 반드시 ‘쉼’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끝없는 달리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많이 본다고 해서 반드시 깊이 경험하는 것이 아니고, 빠르게 움직인다고 해서 반드시 멀리 가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여행의 본질은 풍경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나 자신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한 장면 앞에 멈춰 서서 오래 바라보거나, 그 자리의 공기와 빛을 온몸으로 느낄 때, 비로소 그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나만의 장소가 된다.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그 머묾 속에서 드러난다.


돌아보면, 삶 속에서도 우리는 늘 서두른다. 더 많은 성취, 더 많은 경험, 더 많은 기록을 위해 끊임없이 달린다. 하지만 때로는 한 페이지의 책처럼, 한 장의 풍경처럼,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아 머무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고요 속에서야 우리는 다시금 나아갈 힘을 얻는다.


언젠가 나도 여행지에서 그 사람처럼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을 것이다. 그곳의 바람과 햇살이 나를 스치게 두고, 땅의 시간이 내 안으로 천천히 흘러드는 것을 느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깊이 있는 여행을 하는 법을 배워보고 싶다.





맺음말

여행은 늘 우리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눈앞의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는가입니다. 잠시 멈추어 한 장면을 오래 바라보고, 그 자리의 공기와 빛을 몸으로 느껴보세요. 사진에 담기지 않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 그리고 마음속에 남는 잔향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의 선물입니다.


조금 느려지고, 조금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깊이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다음 여행에서 한 장면 앞에 오래 머물러 보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해 보세요. 그곳에서 당신만의 시간을 발견하는 순간,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내 안의 여정이 됩니다. 저와 여러분의 부산행이, 때론 제주도가, 더하여 고베가 그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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