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막혔다. 죽을 맛이다. 버텨본다. 살 만은 하다. 여러 날이 지났다. 이골이 났다. 그뿐인가 싶었다. 새옹지마. 틀렸다. '새옹의 말'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어 사방이 안쪽으로 조여 온다. 오싹하다. 찬 금속성 소리가 귓속을 판다. 오차 없이 차곡차곡. 고통도 이런 고통이 없다. 피가 마른다. 말초 신경이 시뻘겋게 분다. 터졌다. 사인은 죽음에 이르는 병, 두려움이었다.
개미 한 마리가물웅덩이 근처에서 물을 어르며 논다. 웅덩이 곁을 떠날 기색은 없다. 한 눈에도 흥겨워 보인다. 이때 누군가가손가락 끝으로 물을 끌어당겨 개미를 둘러친다. 고작 5초 만에 그 안에 개미가 갇혔다. 사태를 알아차린 개미가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 사방 여기저귀로 발을 구른다. 없다. 설상가상. 이번엔 그 누군가가 같은 방식으로 개미의 생존영역을 반으로 갈랐다. 숨 막히는 고통. 절망의 순간을 직감한 개미가 발버둥 친다. 방향감각마저 잃었다. 점차 조여 오는 원형의 물길. 개미가 딛고 선 마른땅을 전부 뒤덮을 기세다.
절망은 고통을 넘어 죽음을 부른다. 사자가 당도했다고 느낀 순간, 체념은 극에 달한다. 더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걸까? 마침내 개미가 움직임을 멈췄다. 이윽고 물이 개미의 시선이 가닿은 땅을 모조리 삼켰다. 비극의 끝이었다.
개미 위로 물이 덮쳤다. 개미는 몇 번의 호흡곤란을 거쳐 사경을 헤매다 스르륵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말 것이었다. 재미 삼아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을 수 있다. 허공을 가르며 맹렬히 날아오는 돌에 공포를 느끼지 않을 개구리는 없다. 요리조리 피하는 것도 한두 번이다. 작정하고 덤벼드는 상대를 당해낼 재간은 별로 없다. 피하는 게 상책일 뿐. 쓸만한 구원의 수단이 없다. 더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고 느낀 순간. 두려움은 절망으로 화학변화한다. 죽음에 이르기 전 먼저 깃드는 우악스러운 공포. 끝은 예견하는 바다.
한 번 더 힘을 쥐어짜야 할 순간이 있다. 더는 빠져나갈 길 없는 고통이 엄습한 때다. 고통 위로 켜켜이 공포가 내려앉았을 터러 대단히 허망한 순간이다. 단기필마의 발버둥일망정 힘을 내봐야 한다. 0.1%의 가능성이라도 흘려보내선 안 된다. 강을 건너려면 먼저 발을 강물에 담가야 하는 것과 같다. 머리 꼭대기로 차오른 물살에 휩싸이자 개미는 힘을 쥐어짰다. 체념을 동반한 발버둥임을 누군들 모르겠나. 그래도 다리에 힘이 붙었다. 물 위로 몸이 떠올랐다.
페이스북에서 동영상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링크 복사했다. 이어 이 글 본문 일부를 복사해서 부제에 붙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허망하게도 나중에서야 알았다. 링크 복사한 부분을 적당한 위치에 붙여 넣자 화면에 부제가 깜빡였다.후입선출. 나중에 복사한 본문의 일부가 화면에 양각된 건 당연한 결과였다. 당연히 먼저 복사한 동영상 링크 부분은 날아갔다. 서둘러 페이스북에들어갔다. 문제의 동영상은 없었다. 이리저리 앞으로 돌리고 뒤로 넘기고도 동영상을 찾지 못했다. 그 덕에 영상에 담긴 장면과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세부 묘사에 신경 써야 했다.
불안은 쉽게 두려움에 멍석을 내준다. 그 위에서 망나니가 칼춤을 춘다. 시간문제다. 공포가 몰려올 때는 숨을 고를 것. 앞과 옆만 보면 사방이 에워싸인 듯한 광경만 눈에 들어온다. 생각을 가다듬기 쉽지 않다. 공포와 체념 사이에 서둘러 다리를 놓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자. 안다.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 과정이 정말 필요하다. 남은 힘을 쥐어짜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전해주고 싶다. 그렇게 끌어올린 한 번의 시도가 이후를 가른다. 끝날 때까지는 정말 끝난 게 아니다. 결과가 됐든 과정이 됐든 오차는 크지 없다. 널리 보면 그런 신념이산을 깎는다. 막힌 들에 길을 낸다. 두려움은 톺아보면 강렬한의지의 퍼포먼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