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책과 사람 28화

회사의 탈을 쓴 괴물

빅테크 시대에 되살아난 동인도회사의 유령

by 안녕 콩코드
기업의 탈을 쓴 권력의 기관차

​이 책은 기업을 권력으로 바꿔 읽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역사상 전례 없는 이 기업 제국의 이야기는 곧 통제되지 않는 권력의 이야기입니다.

​폭주하는 기관차는 결국 멈춰섭니다. 브레이크를 잃은 기관차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동인도회사는 오직 탐욕만을 연료로 삼아 질주했던 기관차였습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제국을 집어삼킬 만큼 강력했지만, 그 브레이크를 스스로 제거하고 국가 위에 군림하려 했을 때, 그 종말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윌리엄 달림플의 이 역작은 바로 그 기관차가 굉음을 내며 질주하고, 마침내 처참하게 멈춰 서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파괴적인 질주가 오늘날에도 다른 형태로 반복되고 있음을 경고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펼쳐봅니다.



회사의 탈을 쓴 괴물: 빅테크 시대에 되살아난 동인도회사의 유령

​"인도는 영국이 아니라 한 회사에 정복당했다."

​– 윌리엄 달림플, 《동인도회사: 제국이 된 기업》


​이 한 문장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 상식을 단번에 뒤엎습니다. 인도를 식민지배한 것이 대영제국, 즉 영국 왕실과 정부가 아니었단 말입니까? 놀랍게도 1757년부터 1858년까지, 인도의 광대한 영토와 수많은 인민을 통치하고 착취한 주체는 '동인도회사(EIC, East India Company)'라는 이름의 평범한 무역 회사였습니다. 역사상 전례 없는, '회사 권력의 괴물 같은 사례'입니다.


충격적인 서막: 1765년 8월, 알라하바드 조약

​시간을 1765년 8월의 인도로 되돌려 봅시다. 장소는 힌두교의 성지, 갠지스 강변의 고대 도시 알라하바드에 설치된 초라한 영국군 캠프.


​그곳에는 무굴 제국의 젊은 황제 샤 알람 2세가 초췌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던 제국의 상징이었던 그는 이제 굴욕적인 문서에 서명해야 했습니다. 그의 맞은편에는 39세의 영국인 남자, 로버트 클라이브가 의기양양하게 서 있었습니다. 클라이브는 왕이 아니라, 동인도회사 벵골 총독이라는 직함을 가진 일개 기업의 직원에 불과했습니다.


​이날 체결된 것이 바로 알라하바드 조약입니다.


​조약의 핵심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샤 알람 2세는 무굴 제국에서 가장 부유하고 비옥한 지역인 벵골, 비하르, 오리사의 디와니(Diwani)의 세금 징수권과 민간 행정권을 영원히 동인도회사에 양도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무역을 목적으로 세워진 주식회사가, 마치 국가처럼 한 나라의 국가 예산 핵이자 통치 권력의 핵심인 세금 징수권을 통째로 넘겨받은 것입니다. 동인도회사는 상업 이윤 추구를 넘어, 인도의 땅과 사람들을 지배하는 통치 기구로 변모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국가 위에 군림하는 '기업 제국'의 섬뜩한 시작이었습니다.


​회사는 세금으로 거둔 돈으로 상품을 사들였고, 이를 영국에 팔아 막대한 이윤을 남겼습니다. 자체 군대를 창설하고, 사법권을 행사하며, 심지어 독자적인 외교 정책까지 펼쳤습니다. 전쟁, 외교, 통치, 재정 등 국가의 모든 기능이 오직 주주 이익의 극대화라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가진 사기업에 의해 독점된 것입니다.


문제 제기: 회사는 어떻게 국가를 집어삼켰는가?

​윌리엄 달림플은 이 책 《동인도회사: 제국이 된 기업》을 통해 이 기이하고 충격적인 역사의 전말을 파헤칩니다.

​무역 상인들이 어떻게 거대한 군대와 포병대를 거느리게 되었는가?

​초기에는 무굴 황제 앞에서 굽실거렸던 초라한 상인들이 어떻게 100년도 채 안 되어 황제를 굴복시켰는가?

​압도적인 문명과 경제력을 가진 무굴 제국이 어떻게 런던의 작은 주식회사에 의해 산산조각 났는가?


​달림플은 런던과 뉴델리의 방대한 사료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서구 중심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무굴 측의 페르시아어 사료까지 치밀하게 교차 검증하며 이 질문에 답합니다. 그의 결론은 명쾌합니다. 동인도회사는 탐욕, 부패, 그리고 끝없는 폭력을 바탕으로 인도의 내부 분열과 혼란을 교묘하게 파고들었으며, 이 과정에서 '회사의 탈을 쓴 괴물'로 변모했다는 것입니다.


현재와의 연결: 빅테크 시대에 되살아난 유령

​우리는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글로벌 기업, 특히 구글, 애플, 아마존, 메타와 같은 빅테크 기업은 전 세계의 데이터, 플랫폼, 자본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시가총액은 웬만한 국가의 GDP를 능가하며, 로비를 통해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국가 간의 규제망을 교묘하게 피해 나갑니다.


​윌리엄 달림플은 이 책의 서문에서 현대 사회에 대한 섬뜩한 경고를 보냅니다.


​"21세기에도 막강한 기업 하나가 18세기 동인도회사가 그랬던 것만큼 아주 효과적으로 한 나라를 압도하거나 무너뜨릴 수 있다."


​국가 권력을 위협하고, 공공의 선보다는 주주 이익만을 절대적인 선으로 여기는 거대 기업의 행태를 볼 때, 동인도회사의 유령은 결코 과거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동인도회사: 제국이 된 기업》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자본의 폭주가 민주주의와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섬뜩한 경고장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경고장을 펼쳐, 작은 상인들의 모임이 어떻게 탐욕과 권력을 집어삼킨 괴물이 되어 한 제국을 멸망시키고 수많은 비극을 초래했는지 그 폭주를 따라가 볼 것입니다.


동인도회사의 영국 본사(런던)

탄생: 작은 상인들의 모임, 칼을 잡다

​런던의 작은 사무실에서 세계의 주인이 되다(1599년)

​윌리엄 달림플의 서사는 16세기 말, 런던의 안개 낀 한 사무실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영국 상인들에게 인도는 상상 속의 황금 땅이었지만, 해상 무역은 이미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에 의해 장악된 상태였습니다. 네덜란드의 성공에 자극받은 런던의 상인들은 1599년, 인도 무역의 독점권을 따내기 위해 힘을 모았습니다.


​그들이 고안해낸 것은 바로 주식회사(Joint-Stock Company)라는 혁신적인 금융 구조였습니다.

핵심 혁신: 주식회사 (Joint-Stock Company)

​이 회사는 개인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여러 투자자가 자본(주식)을 분할하여 투자하고 이익을 나누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구조는 대규모의 자본을 안정적으로 모으는 동시에, 항해와 무역의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혁신적인 자본 동원 방식이야말로 동인도회사가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거대한 사업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발판이었습니다.


​초기의 초라함

하지만 초창기 동인도회사는 결코 강자가 아니었습니다. 1600년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왕실 독점 무역 특허를 받았지만, 회사의 초기 무역 대상지는 인도가 아닌 동남아시아의 향신료였습니다.


​그들이 마주한 무굴 제국은 당시 오스만 제국보다 4배 많은 인구를 거느린, 세계 제조업과 경제의 중심지였습니다. 면직물, 비단, 향신료 등 세계 최고 품질의 상품을 생산하는 무굴 앞에서, 동인도회사 선원들은 황제 앞에서 굽실거리는 초라한 외국인 상인에 불과했습니다.



​무굴의 몰락과 회사의 위험한 성장통

​동인도회사는 17세기 동안 인도 서부의 수라트, 첸나이 근처의 포트 세인트 조지(마드라스), 벵골 지역의 포트 윌리엄(캘커타) 등 해안가에 무역 거점(Factory)을 확보하며 천천히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초기에는 무굴 관료들에게 뇌물을 바치거나 군대의 보호를 받는 조건으로 사업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회사는 다음과 같은 위험한 성장통을 겪기 시작합니다.


​자체 군사력 확보

해적의 위협이나 경쟁국(프랑스, 네덜란드) 상인들과의 충돌을 명분 삼아, 회사는 점차 용병을 고용하고 요새를 건설하며 군사력을 키웠습니다.


​정치 개입의 시작

18세기 초, 강력했던 무굴 황제 아우랑제브의 사망(1707년) 이후 제국은 분열하며 혼란에 빠졌습니다. 동인도회사는 이 혼란이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돈과 무기를 빌려주며 현지 군벌들 사이의 정쟁에 노골적으로 끼어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동인도회사라는 이름의 사기업은 단순한 무역상을 넘어, 군사력과 외교술을 갖춘 정치적 행위자로 변신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더 이상 안전한 무역이 아니라, 인도 정치의 불안정성을 이용해 독점적인 통치 권한을 얻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1700년 무굴제국 최대 영토 / 로버트 클라이브 (Robert Clive, 1725-1774)

​탐욕의 화신, 로버트 클라이브의 등장

​이러한 격변기에 동인도회사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꾼 인물이 나타납니다. 바로 로버트 클라이브(Robert Clive)입니다.


​클라이브는 동인도회사 사무원으로 시작했지만, 타고난 군사적 재능과 무모한 야심으로 빠르게 군사 지도자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도박 중독과 자살 시도 전력이 있을 만큼 불안정했지만, 전장에서는 누구보다 냉철하고 잔혹했습니다.


​클라이브는 회사의 목표를 "권력을 확보하라"로 명확히 규정했습니다. 무역 이윤을 얻는 것을 넘어, 아예 통치권을 장악해 이윤의 원천 자체를 독점하겠다는 야심이었습니다.

분수령, 플라시 전투 (Battle of Plassey, 1757)

​로버트 클라이브의 야심이 현실이 된 곳이 바로 플라시 전투입니다.


​당시 벵골은 무굴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고, 태수 시라지 우드 다울라(Siraj ud-Daulah)는 회사의 월권 행위를 경계했습니다. 클라이브는 이에 맞섰습니다.

​승리의 비결: 배신 공작: 1757년 6월 23일, 플라시 평원에서 클라이브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군사 전략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태수의 군사령관 미르 자파르(Mir Jafar)를 비롯한 고위 인사들을 막대한 뇌물과 미래의 벵골 태수직을 약속하며 매수하는 대규모 배신 공작을 펼쳤습니다.

​전쟁의 전개: 전투가 시작되자, 뇌물을 받은 태수 군대의 핵심 병력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거나 퇴각했습니다. 미르 자파르가 이끄는 대규모 병력이 방관하면서, 클라이브는 손쉽게 승리했습니다.


​플라시 전투의 의미

이 전투의 승리는 동인도회사가 벵골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등극했음을 의미했습니다. 클라이브는 약속대로 미르 자파르를 꼭두각시 태수로 앉혔고, 태수는 회사에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이 순간, 동인도회사는 단순한 상인 조직에서 군대를 동원하고 왕을 세우며, 국가를 운영하는 '전쟁 수행 기업'으로 완전히 변신했습니다. 이는 후에 벌어질 약탈과 비극의 서막이었습니다.


무굴제국 황제 샤 알람이 영국 동인도회사와의 북사르 전투에서 패배한 이듬해인 1765년 이 회사의 군인 정치가 클라이브 경에게 디와니(세금 징수권)를 비롯한 통치권을 넘겨주고 있다

폭주: 주주들의 배를 불린 탐욕의 엔진

​알라하바드 조약: 기업이 제국을 통치하다

​플라시 전투(1757년) 이후 동인도회사는 벵골의 실질적인 권력을 쥐었지만, 공식적인 통치권을 원했습니다. 꼭두각시 태수를 통한 간접 통치는 이익 극대화에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욕망은 7년 뒤 일어난 북사르 전투(Battle of Buxar, 1764년)에서 완전히 충족됩니다. 이 전투에서 동인도회사는 무굴 황제 샤 알람 2세가 이끄는 연합군까지 격파하며 인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 주체임을 입증했습니다.


​1765년 8월, 알라하바드 조약

압도적인 군사력 앞에 황제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국의 명목상 수장인 황제가 영국의 한 회사에 벵골, 비하르, 오리사의 디와니(Diwani), 즉 세금 징수권과 민간 행정권을 넘겨주는 문서에 서명했습니다.


​이 사건은 인류 역사상 가장 기괴한 권력 이동 중 하나였습니다.


국가가 된 회사

이제 동인도회사는 무역만을 주업으로 하는 사기업이 아니었습니다. 무굴 제국의 주요 수입원인 세금을 거두고, 공무원(세무원, 행정관)을 임명하며, 사실상 통치 기구로 기능하게 된 것입니다. 런던의 리든홀 스트리트에 있는 회사 이사회 회의실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인도 아대륙 3천만 인구의 운명이 결정되는 기괴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통치 기준은 오직 이윤

동인도회사의 통치는 공공의 복리나 인도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회사의 유일한 목표는 주주 이익의 극대화였습니다. 그들은 효율적이고 무자비한 방식으로 세금을 징수하여 주주들에게 막대한 배당금을 지급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공공의 이익을 추구해야 할 국가의 기능이 사적인 이윤 추구라는 렌즈로 왜곡된 것입니다.


​클라이브와 탐욕의 시대: 나보브(Nabob)의 등장

​인도의 막대한 부와 통치 권력을 손에 넣은 동인도회사 직원들은 문자 그대로 '벼락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인도의 부를 상상 이상으로 착취하고 약탈했습니다.


​나보브(Nabob)의 등장

인도에서 엄청난 부를 쌓아 영국으로 돌아온 동인도회사 관리들을 영국 사회에서는 경멸과 질투를 담아 '나보브(Nabob, 인도어 '나와브'에서 유래된 신흥 부자)'라고 불렀습니다. 로버트 클라이브는 이 나보브들의 정점에 서 있었으며, 벵골 태수로부터 받은 뇌물과 착취로 당시 세계 최고 부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탐욕의 사슬(정경유착의 표본)

이 나보브들은 착복한 돈으로 영국 의회의 의석을 매수하고 선거구를 장악했습니다. 이는 곧 정경유착의 극단적인 표본이었습니다.

​회사 → 정치: 회사는 돈으로 영국 의회의 의원들을 주주나 로비스트로 만들어 자신들의 무자비한 운영을 옹호하게 했습니다.

​정치 → 회사: 영국 의회는 회사의 독점적 권한을 법적으로 보장해 주었고, 국가는 회사의 막대한 세수에 의존했습니다.


​달림플은 이 '나보브'들의 시대가 회사가 국가 권력의 통제를 벗어나 폭주하게 만드는 공생 관계이자 기생 관계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임을 강조합니다. 탐욕이 어떻게 시스템 전체를 갉아먹는지 보여주는 표본인 것입니다.


​비극의 정점, 벵골 대기근 (1769-1773)

​동인도회사의 무자비한 통치와 탐욕의 결과는 곧 벵골 주민들의 대규모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인재(人災)가 된 재해: 1769년부터 벵골 지역에 가뭄이 들면서 식량 생산량이 급감했습니다. 하지만 이 자연재해는 동인도회사의 착취적인 세금 징수 정책과 만나면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인재(人災) 중 하나로 변질되었습니다.

​주주 이익 우선의 잔혹성: 회사는 기근이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금 징수 목표를 낮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금을 현물(식량)로 받거나, 이익 극대화를 위해 곡물을 비축하고 가격을 통제하며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수백만 명이 굶주려 죽어갔지만, 회사의 벵골 관리들은 기근을 이용해 곡물 가격을 조작하여 더 많은 이윤을 남기려 했습니다. 충격적인 사실은 대기근이 절정에 달했을 때, 동인도회사의 주가는 폭등했고, 주주 배당금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끔찍한 결과: 이 대기근으로 벵골 지역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1,0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었습니다. 길거리에는 시신이 넘쳐났고, 인도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달림플은 이 비극을 통해 인간의 생존과 공공의 안녕보다 주주들의 이익이 최우선 목표가 될 때, 시스템이 어떻게 극단적으로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벵골 대기근이 피로써 증명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폭주와 비극 속에서 동인도회사는 서서히 몰락의 그림자를 맞이하게 됩니다


몰락과 경고: 괴물이 남긴 교훈

​동인도회사의 폭주가 영원할 수는 없었습니다. 탐욕은 주주들의 배를 불렸지만, 결국 회사라는 거대한 구조를 안에서부터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이 회사의 몰락은 기업 권력이 국가 권력을 침범했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한 최종적인 역사적 교훈을 던져줍니다.


탐욕이 부른 자멸과 통제 시도

​벵골 대기근(1769~1773년)은 동인도회사에 대한 영국 내 여론을 급격히 악화시키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인도에서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동안, 회사 관리들은 막대한 부를 쌓아 영국으로 돌아왔고, 회사는 여전히 고율의 배당금을 지급했다는 사실은 영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회계 장부의 붕괴: 문제는 회사의 무자비한 약탈과 착취가 현지 경제를 피폐하게 만들어, 결국 세금 징수액마저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경영진과 직원들의 극심한 부정부패와 사치로 인해, 겉으로는 부유해 보였던 동인도회사는 재정적으로 파산 위기에 몰리게 됩니다.

​영국 정부의 개입: 1772년, 동인도회사는 파산을 면하기 위해 영국 정부에 막대한 규모의 구제금융을 요청해야 했습니다. 바로 이 순간이 영국 정부가 기업의 통치권을 되찾아올 결정적인 기회였습니다. 영국 의회는 "어떻게 무역회사가 한 제국을 통치할 수 있느냐"는 명분을 내세워 회사에 대한 규제와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통치권 박탈의 시작: 영국 정부는 규제법(Regulating Act, 1773년)을 통과시켜, 초대 인도 총독으로 워런 헤이스팅스(Warren Hastings)를 임명하며 회사의 행정권을 제약했습니다. 이후 피트의 인도법(Pitt's India Act, 1784년)을 통해 회사의 정치적, 군사적 활동을 감독하는 통제 위원회를 설치하며 사실상 통치권을 박탈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동인도회사의 탐욕과 무능이 빚어낸 자기모순의 결과였습니다. 회사가 너무 커져서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 되자, 결국 국가 권력이 그 권한을 회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포이 항쟁 (1857): 피로 물든 종말

​영국 정부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동인도회사의 지배는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통치는 여전히 폭압적이었고, 특히 현지 문화와 종교에 대한 몰이해와 무시가 만연했습니다.

​용병의 분노: 회사의 군대는 대부분 인도 현지 용병, 즉 세포이(Sepoy)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세포이들은 낮은 임금, 열악한 대우, 그리고 특히 종교적 관습을 무시하는 회사 정책(예: 새로 보급된 소총 탄약통에 돼지나 소의 기름이 발라져 있다는 소문. 이는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모두에게 금기시되는 행위)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습니다.

​대봉기의 발발: 1857년, 이 불만은 마침내 거대한 봉기, 즉 세포이 항쟁(Sepoy Mutiny, 인도에서는 '1차 독립전쟁')으로 폭발했습니다. 봉기는 인도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이는 동인도회사가 인도를 지배한 100년간의 폭력과 착취에 대한 현지 민중들의 격렬한 저항이었습니다.

​기업 제국의 소멸: 동인도회사는 이 항쟁을 1년여에 걸쳐 잔혹하게 진압했지만, 이 사건은 더 이상 회사가 인도를 통치할 자격이 없음을 전 세계에 증명했습니다. 1858년, 영국 의회는 동인도회사 해체 법안을 통과시키고, 회사의 잔여 자산과 통치권을 영국 왕실(British Raj)로 완전히 이관했습니다.


​이로써 무역을 위해 태어나 제국이 되었다가, 탐욕과 폭력으로 얼룩진 동인도회사라는 기괴한 '기업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동인도회사의 유령은 살아 있는가

​윌리엄 달림플의 《동인도회사: 제국이 된 기업》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을지라도, 그 교훈은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달림플은 동인도회사를 통해 통제받지 않는 거대 기업 권력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오늘날의 빅테크(Big Tech) 기업과 동인도회사의 섬뜩한 유사성을 지적합니다.


권력의 원천
- 동인도회사(18세기): 왕실 독점 특허, 군사력, 세금 징수권
- 빅테크 기업 (21세기): 데이터 독점, 플랫폼 장악, 알고리즘 통제력

국가와의 관계
- 막대한 부로 의회를 매수하고 정책을 좌우하는 정경유착
- 로비와 세금 회피를 통해 정부의 규제를 무력화

책임 회피
- 벵골 대기근에서 주주 이익만 추구하고 인명 피해 외면
- 기후 위기, 노동 착취, 불평등 문제에 대한 책임 회피 및 축소

운영 방식
- 이윤 극대화가 유일한 통치 기준
- 사용자 만족보다 '성장'과 '주가'를 우선시


동인도회사가 무력을 사용하여 통치했다면, 오늘날의 거대 기업들은 데이터와 자본력이라는 훨씬 더 은밀하고 강력한 무기로 한 국가의 경제와 사회 구조를 장악하려 합니다. 그들은 국경을 초월하며, 어떤 단일 국가의 법률로도 완전히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궁극적인 질문

동인도회사의 비극은 권력이 사유화될 때 민주주의와 공공의 이익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우리는 기업의 효율성과 혁신을 환영하지만, 그들이 국가 권력을 능가하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폭주하기 시작할 때, 수백 년 전 인도에서 벌어졌던 비극이 다른 형태로 재현될 수 있다는 달림플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역사의 거울을 보다

​윌리엄 달림플의 이 책은 영국이 인도를 식민화한 역사를 서술하는 것을 넘어, 방대한 인도와 페르시아어 사료를 발굴하고 교차 검증하여 기존의 서구 중심 역사관을 전복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무굴 황제, 귀족, 서기들이 남긴 기록들을 생생하게 되살려 피해자들의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합니다.


​《동인도회사: 제국이 된 기업》은 독자들에게 '자본의 폭주'라는 괴물을 직시하라고 요구합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과거의 역사를 배우는 것을 넘어, 우리 시대의 거대 기업 권력이 민주주의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성찰하는 역사의 거울을 들여다보게 될 것입니다.




숨겨진 이야기: 클라이브의 자백과 '경악'

​동인도회사의 폭주를 가장 잘 상징하는 인물은 단연 로버트 클라이브입니다. 그는 플라시 전투의 영웅이자 벵골의 실질적인 지배자였으며, 영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인물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의 부가 문제가 되자, 1772년 영국 의회는 그를 청문회에 소환했습니다. 의원들은 클라이브가 벵골에서 얼마나 많은 뇌물과 재산을 축적했는지 추궁했습니다.


​청문회장에서 클라이브는 당당하게 자신이 엄청난 부를 모았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유명한 발언을 남겼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경악했습니다(I am astonished at my own moderation)."

​"보십시오! 제 발 앞에 한 나라의 부(富)가 쌓여 있었습니다. 수많은 보석과 금은보화가 가득했고, 그곳에는 제 주머니를 채우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한 도시의 태수와 거래를 했고, 그 대가로 막대한 보물을 받았습니다... 저는 단지 (그 보물 중) 수십만 파운드를 취했을 뿐입니다."


​클라이브는 자신이 벵골의 권력을 장악했을 때, 마음만 먹었으면 인도 전체의 국고를 털어 훨씬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는데도, '겨우' 그 정도만 가져온 자신의 '자제력(moderation)'에 스스로 경악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오만하고 기괴한 '자백'은 당시 동인도회사 관리들이 인도의 부를 얼마나 당연하게, 그리고 얼마나 무자비하게 약탈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탐욕은 그들의 도덕적 기준을 완전히 마비시켰던 것입니다.


​결국 클라이브는 청문회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그의 건강과 명성은 추락했고, 몇 년 뒤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 이야기는 동인도회사가 바로 탐욕과 권력의 합법적 결합이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달림플의 책은 이 괴물의 탄생, 폭주, 그리고 비극적인 종말을 쫓아감으로써, 독자들에게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난 거대 기업 권력이 얼마나 위험한지 뼈저리게 깨닫게 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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