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경로를 바꾼 순간들은 과연 몇 번이나 있었을까요? 돌이켜보면 그 결정적인 순간들은 생각보다 적지 않았습니다. 의식적인 '결심'을 통해서든, 아니면 예상치 못한 사건에 의해 떠밀려 이루어졌든 말입니다.
우리가 자주 잊고 사는 것은, 삶의 경로는 늘 일정하고 예측 가능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입니다. 굳게 다진 계획과 익숙한 궤도를 따라가야만 성공이라 속삭이는 사회의 목소리 때문이겠죠. 그러나 그 굳건해 보이던 지도가 갑자기 찢어지고, 발밑의 땅이 흔들리는 듯한 경로 이탈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당황하고 불안해하며, 익숙했던 길 앞에서 주춤합니다.
낯선 길의 고통, 김소월의 뒷모습이 머무는 자리
경로 이탈이 가져오는 고통은 실로 엄청납니다. 익숙한 풍경을 잃고 낯선 바람을 맞아야 하는 외로움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 불안감이야말로 우리가 흔히 '삶의 실패'라고 섣불리 단정하는 감정의 실체일지도 모릅니다.
이 낯선 길 위에서 저는 시인 김소월의 그림자처럼 고독한 뒷모습을 떠올리곤 합니다. "길"이라는 시에서 그는 묻습니다. "길은 가도 가도/ 붉은 황혼 / 어이하라고 휜 길을 따라가랴." 시인이 바라본 길은 명확한 목적지나 환한 희망이 아니라, 흐릿하고 붉은 황혼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막막함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소월의 '휜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기에 불안하지만, 바로 그 예측 불가능성 덕분에 우리는 주어진 경로에 갇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해진 길을 벗어났을 때의 고통은 외부적인 손실보다는,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내면의 산통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고통이 우리를 잠시 멈춰 세우고, 지금까지 걸어온 경로가 '타인의 지도'가 아니었는지 성찰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숲, 그리고 '나다움'을 향한 선택
경로 이탈이 고통스러운 것은 분명하지만, 그 순간이야말로 우리를 점점 더 나답게 만들어가는 귀한 '산고(産苦)'의 시간일지 모릅니다. 익숙한 궤도를 벗어났기에 비로소 주변을 돌아보게 되고,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면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고유한 방향을 따라 걸을 용기를 얻게 됩니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는 그의 유명한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에서 숲속의 두 갈래 길 앞에 선 화자의 숙명적인 선택을 포착했습니다.
"나는 사람이 적게 밟은 길을 택했다네, / 그리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지."
프로스트의 시는 길의 선택이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결정적 순간임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인이 택한 길이 '더 좋거나 쉬운 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단지 '사람이 적게 밟은 길'이었고, 그 '선택' 자체가 화자의 고유한 정체성을 완성했습니다.
우리 삶의 경로 이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더 나은 직장이나 더 쉬운 성공으로 향하는 길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감한 이탈은 우리를 세상의 보편적인 지도가 아닌, 내 색깔과 내 리듬에 맞춰진 세계로 이끌어줍니다. 고통을 감수하고 내가 만든 틈, 그곳에서 비로소 '나다운 세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가장 잘 어울리는 세계로 들어서는 통행증
우리는 경로 이탈을 실패라고 섣불리 단정하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경로 이탈은 실패가 아니라, '나의 본질'을 향한 가장 용감하고 정직한 전진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이 낯선 길이 불편하고 불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자발적으로 새로운 지도를 그릴 힘을 기르게 됩니다. 이 지도는 남이 건네준 것이 아니라, 내 발자국, 내 고민, 내 눈물로 직접 새겨진 가장 진실한 삶의 기록입니다.
경로 이탈은 결국 우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특별한 '통행증'입니다. 그것은 외부의 인정을 위한 화려한 길이 아닐지라도, 내면의 평화와 충만을 가져다주는 나만의 고유한 궤도입니다.
그러니 지금 삶의 경로가 흔들리거나 정해진 길에서 벗어났다고 느껴진다면,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 낯선 길 위에서 당신은 가장 깊고, 가장 진실하며, 가장 자유로운 '당신 자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