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김치 통에 담긴 무게

by 안녕 콩코드

23kg의 한계와 실랑이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의 출발 층은 늘 이별의 예감이 부유하는 거대한 정거장 같았다. 높은 천장 아래로 울려 퍼지는 무미건조한 안내 방송과 캐리어 바퀴가 바닥을 긁는 날카로운 소음들. 그 소란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바삐 움직였지만,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이들의 발걸음만은 유독 무겁고 느렸다. 나 역시 그 무거운 흐름 속에 섞여 있었다. 낯선 이국땅에서의 유학 생활을 앞둔 나의 마음은 설렘보다는 막연한 공포와, 그 공포를 들키지 않으려는 신경질적인 방어기제로 가득 차 있었다.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 앞, 전광판에 표시된 숫자는 냉정했다. '23.0kg'.


​그것은 항공사가 허용한 수하물의 한계치이자, 내가 고국에서 가져갈 수 있는 과거의 총량이었다. 나는 이미 가방을 몇 번이나 열고 닫으며 무게를 조절했다. 전공 서적 몇 권을 빼낼 때마다 미래의 한 조각을 포기하는 기분이었고, 두꺼운 코트를 내려놓을 때마다 닥쳐올 추위가 겁이 났다. 그 치열한 무게와의 전쟁 속에서, 어머니는 내 가방 틈새로 기어코 플라스틱 통 하나를 밀어 넣으셨다.


​"이거 하나만 더 넣어라. 가서 밥은 제대로 먹어야지."


​어머니의 손에는 수십 겹의 투명 랩으로 칭칭 감겨 형태조차 불분명해진 김치 통이 들려 있었다. 랩 위로는 다시 노란 테이프가 단단하게 감겨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절대 열려서는 안 될 금기된 보물이나 혹은 지독한 저주를 봉인해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가방의 지퍼를 억지로 닫으려 애쓰며 어머니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엄마, 제발 좀! 거기 가도 한국 마트 다 있다니까? 이거 넣으면 무게 초과야.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터지기라도 하면 가방 안에 있는 옷 다 버려야 해. 냄새는 또 어떡하고!"


​나의 날 선 반응에도 어머니는 대답 대신 무릎을 굽히고 앉아 테이프를 끊어내셨다. 어머니의 거친 손마디가 랩의 표면을 꾹꾹 누를 때마다, 그 안에서 발효된 김치의 붉은 기운이 꿈틀거리는 듯했다. 어머니에게 그 통은 음식을 담는 용기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당신의 품을 떠나 만 리 타국으로 향하는 자식의 짐 속에 강제로라도 끼워 넣고 싶은 당신의 분신이자, 자식이 굶주릴까 봐 노심초사하는 불안의 실체였다.


​결국, 나는 어머니의 고집에 못 이겨 전공 서적 한 권을 빼내고 그 자리에 김치 통을 집어넣었다. 가방의 지퍼가 비명을 지르듯 간신히 잠기는 순간, 나는 그 묵직한 무게가 어머니의 집착처럼 느껴져 괜스레 가방을 발로 툭 찼다. 23kg을 조금 넘긴 저울의 숫자가 깜빡거렸다. 직원은 마지못해 통과시켜 주겠다는 듯 수하물 태그를 붙였다.


​검은 컨베이어 벨트 위로 내 가방이 멀어져 갔다. 그 가방 속에는 나의 야심 찬 계획들과 세련된 옷가지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압도하는 무게로 자리 잡은 냄새나는 김치 통이 들어 있었다. 멀어지는 가방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저 무거운 것이 나의 발목을 잡지는 않을까. 낯선 땅에서 나는 저 냄새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어머니는 가방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까치발을 들고 서 계셨다. 게이트로 향하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어머니의 모습이 멀어질수록, 내 어깨를 누르는 것은 자유의 무게가 아니라 방금 보낸 가방 속에 담긴 그 지독하게 끈적거리는 사랑의 무게였다. 비행기 트랩을 오르며 나는 코끝을 스치는 듯한 환청 같은 김치 냄새를 맡았다. 그것은 떠나는 자의 불안과 남겨진 자의 염려가 뒤섞인,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도 슬픈 냄새였다.


랩 속에 갇힌 그리움의 냄새

비행기는 만 이천 킬로미터의 고도를 가로질러 낯선 대륙의 공항에 나를 내려놓았다. 입국 심사대의 서늘한 공기와 알아들을 수 없는 억양의 언어들 속에서, 나는 철저히 이방인이었다. 수하물 수취대 위로 내 가방이 나타났을 때, 나는 안도감보다 먼저 코끝을 예민하게 세웠다. 다행히 겉으로 새어 나온 액체는 없었지만, 가방 근처에 다가가는 순간 미세하게 진동하는 그 익숙하고도 이질적인 내음을 나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기숙사 방에 도착해 짐을 풀기 시작했을 때, 우려했던 일은 현실이 되었다. 가방의 지퍼를 열자마자 좁은 방안은 순식간에 강렬한 김치 냄새로 가득 찼다. 밀폐된 가방 속에서 기압의 변화를 견디며 발효된 생명의 기운은 수십 겹의 랩과 테이프라는 봉인조차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고향의 냄새였지만, 동시에 이 세련되고 낯선 도시에서는 결코 환영받지 못할 **'침입자의 냄새'**였다.


​나는 당황하여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차가운 이국의 바람이 들어왔지만, 바닥에 들러붙은 냄새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혹여나 복도를 지나가는 옆방 친구들이 이 냄새를 맡고 인상을 찌푸리지는 않을까, 나를 '냄새나는 동양인'으로 규정해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공포가 엄습했다.


​나는 서둘러 김치 통을 꺼냈다. 랩 위로 끈적하게 배어 나온 국물을 닦아내며, 나는 어머니를 원망했다.

'거봐, 마트 다 있다니까. 왜 굳이 이걸 넣어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어.'


​나는 그 통을 비닐봉지에 세 겹으로 더 싸서 냉장고 가장 깊숙한 구석, 다른 이들의 식재료 뒤편에 보이지 않게 숨겼다. 그것은 단순히 음식을 보관하는 행위가 아니라, 나의 남루한 과거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감추고 봉인하는 행위였다. 유학 생활의 시작과 함께 나는 철저히 현지인처럼 보이고 싶었다. 치즈와 빵 냄새에 익숙해지려 애썼고, 식당에 갈 때면 일부러 향이 강하지 않은 메뉴만 골랐다.


​그 시절의 나에게 김치는 **'버리고 싶은 짐'**이었다. 세련된 전공 서적과 최신형 노트북 사이에서, 그 플라스틱 통은 나의 빈곤한 내면과 촌스러운 배경을 폭로하는 밀고자와 같았다. 가방 바퀴를 망가뜨렸던 그 묵직한 무게는 이제 내 자존감을 짓누르는 바윗덩이가 되어 냉장고 구석에서 소리 없이 익어갔다.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걸 때마다 "김치는 좀 먹었느냐"는 물음이 돌아왔지만, 나는 매번 "아직 안 열어봤어, 바빠서"라며 차갑게 전화를 끊었다.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은근히 풍겨 나오는 그 냄새가 싫어 냉장고 문을 여닫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랩 속에 갇힌 것은 김치만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내가 외면하고 싶었던 고향의 서정과, 어머니의 구차한 걱정과, 나의 나약한 본심이 함께 갇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도시의 밤은 길고 차가웠다. 창밖으로는 화려한 불빛이 흐르고 낯선 음악 소리가 들려왔지만, 방안의 공기는 늘 건조하고 서먹했다. 나는 완벽하게 이 도시의 부속품이 된 듯 행동했으나, 마음 한구석은 늘 허기진 상태로 비어 있었다. 냄새를 숨기기 위해 봉인해둔 그 통처럼, 나의 진심도 여러 겹의 가식 속에 꽁꽁 묶인 채 서서히 시큼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가장 외로운 밤, 봉인 해제의 순간

​유학 생활의 낭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화려한 이국의 거리도, 고풍스러운 강의실도 익숙해지고 나니 그저 견뎌야 할 일상의 배경일 뿐이었다. 언어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고, 강의실에서 마주하는 현지인들의 무심한 시선은 겨울바람보다 서늘했다. 나는 매일 밤 침대에 누워 내가 이곳에 왜 왔는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있는지 자문하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독한 몸살감기가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머리는 깨질 듯 울리고 사지는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은 듯 저릿했다. 타지의 겨울은 한국보다 습하고 뼛속까지 시렸다. 나는 기숙사 좁은 침대에 누워 덜덜 떨며 며칠을 앓았다. 곁에서 이마에 수건을 얹어줄 사람도, 따뜻한 물 한 잔 건넬 사람도 없었다. 휴대폰 너머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면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아 전화를 걸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사흘째 되던 밤, 지독한 허기가 찾아왔다. 며칠간 굶은 탓에 속은 쓰렸지만, 주방 선반 위 딱딱하게 굳은 빵이나 차가운 시리얼은 도저히 목구멍을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기어 다니듯 주방으로 나와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냉장고 가장 깊숙한 곳, 다른 유학생들의 식재료 뒤편에 검은 비닐봉지로 꽁꽁 싸매 숨겨두었던 그것을 발견했다.


​수십 겹의 랩으로 봉인되었던, 어머니의 김치 통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검은 비닐을 벗겨냈다. 그리고 노란 테이프를 뜯고 랩을 한 겹 한 겹 벗겨내기 시작했다. 랩이 하나씩 제거될 때마다, 나는 이 도시의 그 어떤 향수보다도 강렬한 향기에 휩싸였다. 그것은 내가 그토록 부끄러워하며 숨겼던 '냄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늦가을 새벽 시장에서 배추를 고르던 어머니의 숨가쁜 입김이었고, 고무장갑을 낀 채 빨간 양념을 치대던 억센 손길이었으며,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며 쏟아냈던 기도의 소리였다. 랩이 완전히 벗겨지고 플라스틱 뚜껑을 연 순간, 잘 익은 김치의 붉은 빛깔이 주방의 창백한 형광등 아래에서 보석처럼 빛났다.


​나는 냄비에 물을 올렸다. 찬밥 한 덩이를 넣고 푹 끓여낸 흰죽 위에, 어머니가 꾹꾹 눌러 담아 보낸 김치 한 점을 올렸다. 아삭.


​입안 가득 퍼지는 알싸한 매운맛과 시큼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이 혀끝을 자극했다. 그 순간, 막혔던 코가 뻥 뚫리고 온몸의 감각이 깨어나는 듯했다. 단순히 음식을 먹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무너져 가던 나의 **'자아'**를 단단히 결속시키는 의식이었다. 그 김치 한 조각은 "너는 혼자가 아니다", "너의 뿌리는 이토록 단단하다"라고 내 온몸에 외치고 있었다.


​내가 냄새날까 두려워 숨겼던 그 김치 통은 실은 나를 이 낯선 땅에 뿌리 내리게 하는 유일한 생명선이었다. 세련된 옷이나 유창한 외국어는 나를 지켜주지 못했지만, 어머니가 가방 무게를 초과하면서까지 밀어 넣었던 그 묵직한 김치만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나는 뜨거운 죽을 삼키며 쉼 없이 눈물을 흘렸다. 김치의 매운맛 때문인지, 아니면 어머니의 마음을 이제야 알아챈 미안함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냉장고 구석에 김치를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당당히 두었다. 이 냄새는 부끄러운 얼룩이 아니라, 내가 이 낯선 세상에서 살아남고 있다는 가장 뜨겁고 향기로운 증거였기 때문이다.


냄새나는 짐에서 삶의 무게로

​세월은 김치가 익어가는 속도보다 빠르게 흘렀다. 그 지독한 몸살과 함께 열어젖혔던 김치 통이 바닥을 보일 즈음, 나는 비로소 그 낯선 도시의 공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도시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차가움을 견뎌낼 내면의 근육이 생겨 있었다. 어머니의 김치 한 조각이 내 혈관을 타고 흐르며 만들어낸 **'생존의 근육'**이었다.


​수년이 지나 다시 찾은 인천공항의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체크인 카운터 앞에는 무게를 줄이려 캐리어를 열어젖힌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들의 얼굴에는 떠나는 자의 비장함과 남겨진 자의 애잔함이 교차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곳에서 가방의 무게를 조절하는 이들을 비웃거나 짜증 섞인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그들이 가방 틈새로 기어코 밀어 넣는 보잘것없는 보따리들의 정체를 짐작하며 조용히 미소 짓는다.


​이제 나는 안다. 어머니가 그토록 무겁게 랩을 감고 또 감았던 이유는, 단순히 김치 국물이 샐까 봐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타지에서 자식의 마음이 샐까 봐, 외로움이라는 틈새로 찬바람이 들이닥칠 때 자식의 영혼이 감기에 걸릴까 봐 당신의 사랑을 단단히 밀봉하셨던 것이다. 수십 겹의 랩은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바친 수천 번의 기도였고, 가방 바퀴를 망가뜨렸던 그 묵직한 무게는 당신이 평생을 짊어지고 온 **'어머니라는 이름의 중량'**이었다.


​어머니의 김치 통은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산다는 것은 때로 부끄러운 냄새를 풍기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냉장고 깊숙이 자신을 숨겨야 하는 고독한 과정이지만, 결국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가장 투박하고 본질적인 **'고향의 맛'**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세련된 스테이크나 달콤한 디저트가 채워줄 수 없는 마음의 허기는, 맵고 짠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해 본 김치만이 채워줄 수 있는 영역이었다.


​공항 수하물 수취대 벨트 위를 돌아가는 수많은 가방을 바라본다. 그중 유독 뚱뚱하게 배가 부른 가방,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은 박스들 속에는 어김없이 누군가의 김치가, 혹은 누군가의 된장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 땅의 모든 떠나가는 자들이 짊어진 **'사랑의 총량'**이자, 우리가 지구 반대편 어디에 떨어져 있든 결코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가장 향기로운 이정표다.


​이제 나는 누군가에게 짐을 챙겨줄 때, 가장 먼저 묵직한 통을 준비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러하셨듯, 랩을 감고 또 감으며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이 무게가 너를 지치게 하겠지만, 동시에 너를 단단하게 붙들어 줄 거야.'


​가방 지퍼가 간신히 잠길 때 느껴지는 그 팽팽한 저항감이야말로 살아있는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책임감임을 이제는 안다.


​23kg의 한계를 넘어, 사랑은 언제나 초과 수하물이 되어 우리를 따라온다. 그 냄새나고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짊어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맛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이자 다시 돌아올 곳이 있다는 안도감의 실체다. 공항의 차가운 바닥을 구르는 캐리어 소리가 오늘따라 둔탁하면서도 따뜻하게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