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속에 갇힌 명절 아침
그해의 첫날이자 민족의 명절인 설 아침, 도시는 기이할 정도로 평온하고도 낯선 정적에 잠겨 있었다. 평소라면 창문을 흔들었을 출근길의 경적 소리, 이웃집 아이들의 뜀박질 소리, 그리고 길 건너 상가에서 흘러나오는 활기찬 음악 소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소거된 상태였다. 텅 빈 거리는 투명한 겨울 햇살만이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 정적은 마치 고요한 수면처럼 내 방 안까지 밀려 들어와 발등을 적셨다.
나는 침대 머리맡에서 한참 동안 천장을 바라보았다. 텔레비전을 켜자 화면 속에서는 고속도로의 붉은 정체 행렬과, 대가족이 모여 복작거리는 고향 집 풍경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었다. 화려한 한복을 입은 진행자들의 밝은 목소리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소란함은 내 방의 적막을 더욱 견고한 벽으로 탈바꿈시켰다. 명절은 이처럼 '함께'인 사람들에게는 축제이지만, '홀로'인 이들에게는 자신의 고독을 가장 선명한 해상도로 마주하게 하는 잔인한 거울이 되기도 한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혹은 이제는 돌아갈 마음의 고향이 희미해져 버려 선택한 자발적 고립. 하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이 평범한 주말이 아니라, 무언가 마땅히 행해야 할 의식이 필요한 특별한 아침이라는 것을.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 냉동실 구석, 지난 가을쯤 넣어두었던 떡국 떡 한 봉지가 손에 잡혔다.
봉지를 뜯어 떡알들을 볼에 쏟아붓자, 딱딱하게 얼어붙은 떡들이 서로 부딪히며 '챙그랑' 하고 서늘한 마찰음을 냈다. 그 소리는 마치 텅 빈 내 방 안에서 "너는 지금 철저히 혼자다"라고 일깨우는 명절의 첫 인사말 같았다. 차가운 물에 떡을 담가 불리는 동안, 나는 창가에 서서 텅 빈 도심을 내려다보았다.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 단지들의 창문마다 집집이 피어오르는 연기들이 보였다. 저 연기들 아래에서는 지금쯤 수십 명의 가족이 모여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국 그릇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명절 아침의 부엌은 이토록 고요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칼질 소리와 솥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 그리고 온 집안을 가득 채웠던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나를 깨우곤 했다. 그때의 명절은 당연하게 주어지는 축복이었고, 나는 그 축복을 누리기 위해 아무런 대가도 치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맞이하는 홀로의 명절은 다르다. 이 정적 속에서 나를 대접하고, 나를 먹이고, 나를 위로하는 일은 오로지 나의 몫이었다.
나는 가스레인지 위에 작은 냄비를 올렸다. 정적 속에 갇힌 명절 아침, 나를 위한 단출한 예식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헌신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내 손으로 끓여내는 이 한 그릇의 떡국이 오늘 나의 외로움을 어떻게 만져줄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불꽃이 파랗게 피어오르는 것을 보며 나는 아주 조금씩, 이 고독한 풍경과 화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억 속의 소란스러운 떡국
물을 담은 볼 속에서 딱딱하던 떡알들이 서서히 몸을 불리고 있었다. 투명한 물 아래 가라앉은 하얀 편강(片剛)들을 내려다보는 사이, 나의 의식은 20여 년 전, 매캐한 연기와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던 시골 할머니 댁의 주방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 시절의 명절 아침은 '고요'라는 단어가 설 자리가 없는 거대한 소란의 장이었다.
주방 한가운데에는 어른 무릎 높이까지 오는 커다란 가마솥이 며칠째 사골 국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뽀얗게 우러난 국물은 흡사 우유처럼 진했고, 그 증기가 천장에 닿아 이슬처럼 맺혔다가 다시 뚝뚝 떨어지곤 했다. 어머니와 숙모들은 새벽부터 일렬로 늘어서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누구는 쉬지 않고 지단을 부쳤고, 누구는 전날 삶아둔 소고기 양지를 결대로 찢었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고명들은 하나의 예술작품에 가까웠다. 노란색과 흰색이 엄격하게 분리된 달걀 지단은 자를 대고 썬 듯 정갈했고, 간장과 마늘 향이 배어든 소고기 고명은 떡국 그릇의 정중앙을 차지하기 위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 곁에는 초록색 파와 붉은 실고추가 화룡점정처럼 놓였다. 오색(五色)의 고명이 얹어진 떡국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한 해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화려한 제의(祭儀)'였다.
아이들에게 그 소란함은 최고의 놀이터였다. 사촌 형제들과 좁은 방 안을 뒹굴며 장난을 치다가도, 주방에서 "떡국 먹자!" 하는 소리가 들리면 약속이라도 한 듯 우르르 몰려나갔다. 어른들은 나이 한 살을 더 먹으려면 이 떡국을 남김없이 비워야 한다고 엄포를 놓으셨다. 어린 나는 그 말이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들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욕망에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경쟁하듯 그릇을 비웠다.
그때의 떡국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밤샘 노동과, 뜨거운 김에 데인 붉은 손등과, 자식과 조카들이 배불리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던 어른들의 거짓말 같은 헌신 위에 얹어진 선물이었다. 나는 그저 차려진 상 위에 숟가락을 얹는 것만으로도 완전한 소속감과 안전함을 느꼈다. '가족'이라는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 나는 세상의 추위나 고독 따위는 영영 모를 것처럼 자랐다.
회상 속의 주방은 너무나 뜨거워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지금 내 앞의 주방은 서늘하기만 하다.
불려진 떡을 건져 올리며 나는 깨달았다. 소란스러웠던 그 시절의 떡국이 '타인의 사랑'을 확인받는 시간이었다면, 지금 내가 홀로 준비하는 이 떡국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시험받는 시간이라는 것을. 화려한 오색 고명 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그 치열했던 노동의 온기를 이제야 내 차가운 손끝으로 직접 만져보고 있었다.
나는 냄비에 물을 붓고 가스레인지 불을 켰다. 파란 불꽃이 냄비 바닥을 핥으며 조용히 타올랐다. 거대한 가마솥의 소리는 아니지만, 작은 냄비 안에서도 기포가 올라오며 조금씩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과거의 소란함은 이제 내 기억 속에만 박제되어 있었고, 나는 그 기억의 잔상을 뒤로한 채 현재의 정적과 마주 앉았다.
떡을 넣을 시간이 되었다. 이제 나는 과거의 선물 받았던 맛이 아닌, 오늘을 버텨내게 할 '나만의 맛'을 찾아가야 했다.
나를 위한 단출한 예식
냄비 속의 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과거의 어머니처럼 며칠 밤낮을 고아낸 진한 사골 육수는 없었지만, 편의점에서 사 온 1인분용 육수 팩 하나가 그럴싸한 우윳빛을 내며 거품을 일으켰다. 나는 물에 불려두었던 떡국 떡을 조심스레 냄비 안으로 밀어 넣었다. '퐁당, 퐁당.' 맑은 액체 속으로 가라앉았던 하얀 떡알들이 뜨거운 열기를 받자 이내 가볍게 떠올라 표면을 유영하기 시작했다.
나는 냉장고를 뒤져 남은 재료들을 찾았다. 어머니의 부엌처럼 오색의 고명을 갖추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해 지단을 부치는 수고로움 대신, 나는 달걀 하나를 톡 깨서 끓는 국물 속에 그대로 풀었다. 노란 달걀 줄기가 국물 사이로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가지런히 찢은 소고기 양지 대신, 냉동실 구석에 남아있던 만두 두 알을 집어넣었다. 마지막으로 김 봉지 바닥에 남은 김 가루를 탈탈 털어 넣자, 비로소 내가 먹을 '그날의 1인용 떡국'이 완성되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릇을 양손으로 받쳐 들고 식탁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는 텔레비전 리모컨과 며칠 전 읽다 만 책 한 권뿐이었다. 누구의 칭찬도, 누구의 타박도 없는 적막한 식사. 나는 수저를 들어 첫 국물을 떠먹었다.
시판 육수의 인공적인 감칠맛이 혀끝을 자극했지만, 그 뒤로 따라오는 뜨거운 온기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 빈속을 덥혔다. 문득 기이한 감정이 차올랐다. 그것은 명절날 홀로 남겨진 이가 느끼는 처량함이나 자기연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지독한 대견함'에 가까웠다.
누군가 차려주지 않아도, 밖에서는 세상이 멈춘 듯 고요해도, 나는 나를 위해 물을 끓이고 떡을 불리고 음식을 장만했다. 이 단출한 떡국 한 그릇은 내가 여전히 이 세상을 살아갈 의지가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신호였다. 떡을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쫄깃한 저항감은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감각을 일깨워주었고, 몽글몽글한 달걀은 혼자라는 사실 때문에 거칠어질 뻔한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것이 어린 시절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설렘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나를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묵직한 중력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떡국을 먹는 순간만큼은 그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나를 대접하기 위해 들인 이 작은 수고가, 앞으로 다가올 일 년의 무게를 지탱해 줄 단단한 주춧돌이 되어줄 것만 같았다.
나는 정성껏, 그리고 천천히 떡국을 비워냈다. 고명은 단출했고 과정은 초라했을지 몰라도, 그 맛은 그 어떤 화려한 잔칫상의 음식보다 정직하게 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홀로 먹는 떡국은 외로움의 증거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돌보겠다는 '생의 예식'이었다. 텅 빈 방 안에서 들리는 나의 수저 부딪히는 소리가, 그 어떤 화려한 덕담보다 더 따뜻한 위로로 내 귓가에 머물렀다.
다시 시작되는 '보통의 날'
그릇 바닥에 남은 마지막 국물까지 들이켜자, 몸 안쪽에서부터 기분 좋은 온기가 서서히 차올랐다. 방 안의 서늘했던 공기는 어느덧 떡국에서 피어오른 수증기로 인해 부드럽게 누그러져 있었다. 나는 빈 그릇을 앞에 두고 잠시 눈을 감았다. 식사를 마친 뒤의 이 짧은 정적은, 명절 아침의 고립감이 아니라 치열하게 한 살의 무게를 받아들인 자의 평온함이었다.
홀로 먹는 떡국은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우리를 보호해 주기도 하지만, 결국 그 울타리 밖으로 걸어 나와 스스로의 허기를 채워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그럴 때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타인의 화려한 덕담이 아니라, 내가 나를 위해 기꺼이 불 앞에 서서 물을 끓이는 '성실한 자기애'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설거지를 시작했다. 물소리가 주방을 가득 채웠다. 떡국의 흔적을 씻어내며 나는 이제야 비로소 '가족의 맛'을 통과해 온 긴 여정을 돌이켜보았다.
무뚝뚝한 아버지가 남긴 탄 계란 프라이의 서툰 애정부터, 어머니가 짐 가방 깊숙이 찔러 넣었던 묵직한 김치 통의 무게, 그리고 오늘 내가 나를 위해 끓인 단출한 떡국까지. 이 모든 맛은 결국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로부터 받았던 사랑의 기억을 동력 삼아, 이제는 내가 나 자신을, 그리고 언젠가 내가 사랑할 누군가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어른의 힘'을 길러가는 과정이었다.
설거지를 마친 뒤, 나는 굳게 닫아두었던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차갑지만 투명한 겨울 공기가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창밖의 도시는 여전히 정적에 싸여 있었지만, 아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저 고요함 속에는 수많은 개인이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지탱하며,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숭고한 침묵이 깃들어 있었다. 이제 곧 명절의 짧은 마법은 풀릴 것이고, 도시는 다시 경적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 찬 '보통의 날'로 회귀할 것이다.
나 역시 그 보통의 날들 속으로 걸어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 홀로 맞이한 명절은 나를 외롭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내가 얼마나 단단한 존재인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가족이 곁에 있든 없든, 돌아갈 고향이 선명하든 희미하든, 우리는 각자의 떡국을 먹으며 한 살의 무게를 견디고 또 다음 계절로 당당히 나아간다.
창문을 닫고 뒤를 돌아서자, 깨끗하게 닦인 식탁 위로 겨울 햇살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나지막이 스스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잘 먹었습니다. 그리고 올 한 해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