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온 (Log-on)
오전 8시 30분. 테헤란로의 고층 빌딩 14층, '제일기획본부 2팀'의 공기는 오늘도 질식할 듯 정체되어 있었다.
대리 '수아'는 모니터 앞에 앉아 습관적으로 공유 폴더에 접속했다. 팀원 모두가 자료를 올리고 공유하는 공간. 하지만 수아에게 이곳은 매일 아침 자신의 무능함을 증명받는 심판대와 같았다. 팀장 '박 상무'는 직접적인 폭언을 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우아하고 정중한 말투로 수아의 자존감을 잘게 도려냈다.
"수아 대리, 이번 기획안 말이야. 내용은 좋은데... 어딘지 모르게 '수아 대리답게' 허술하네. 수정해서 공유 폴더에 올려둬요. 아, 이번엔 '수정 금지' 걸지 말고."
팀원들의 비릿한 시선이 수아의 뒤통수에 꽂혔다. 수아는 마우스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때, 평소 보이지 않던 폴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ADMIN_Only : 읽기 전용]
숨겨진 경로 (Hidden Path)
누군가 실수로 권한 설정을 풀었거나, 시스템 오류임이 분명했다. 수아는 홀린 듯 폴더를 클릭했다. 그 안에는 팀원들의 이름으로 된 하위 폴더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수아가 자신의 이름이 적힌 폴더를 열었을 때, 그녀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곳엔 업무 일지가 아닌, 수아의 **'관찰 기록'**이 담겨 있었다.
09:12 - 출근 후 탕비실에서 4분간 체류. 표정 어두움.
11:30 - 박 상무의 지적에 눈동자가 흔들림. 가스라이팅 효율 85% 도달.
14:45 - 메신저로 동기에게 상무 험담 시도. 스크린샷 캡처 완료.
모든 문장은 기계적이었고 차가웠다. 작성자는 박 상무가 아니었다. 기록의 말투는 놀랍게도 바로 옆자리에 앉아 매일 수아에게 비타민을 건네던 사수 '정 선배'의 것이었다.
노이즈 (Noise)
수아는 소름 끼치는 공포를 느끼며 정 선배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여느 때처럼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고 있었다.
"수아 씨, 왜 그래? 어디 아파? 얼굴이 너무 창백해."
정 선배의 다정한 목소리가 수아의 귓가에서 노이즈처럼 흩어졌다. 수아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폴더 속 파일들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15:20 - 대상(수아)이 [ADMIN_Only] 폴더에 접속함. 비밀이 탄로 남. 제거 단계 진입 필요.
수아의 심장이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 제거? 직장에서 제거란 해고를 뜻하는 걸까, 아니면 그 이상의 무언가일까. 수아는 급히 로그아웃을 하려 했지만, 마우스 커서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원격 제어였다.
로그아웃 불가 (Log-out Denied)
사무실의 모든 소음이 일시에 사라졌다. 타자 소리, 전화기 울림, 사람들의 잡담. 수아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팀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수아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박 상무가 천천히 수아의 책상 앞으로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수아 대리, 공유 폴더의 가장 큰 규칙이 뭔지 알아요?"
박 상무의 눈은 웃고 있었지만, 안경 너머의 눈동자는 파충류처럼 서늘했다.
"누군가 비밀을 '읽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공유'의 대상이 아니라 '데이터'가 되어야 한다는 거야. 이제 수아 대리의 자리는 이 폴더 안으로 옮겨질 거예요."
수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발이 바닥에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모니터 속 화면이 거대한 블랙홀처럼 변하며 수아의 시야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정 선배가 수아의 어깨를 토닥이며 마지막 기록을 타이핑했다.
15:25 - 데이터 전송 완료. 수아 대리 퇴사(삭제) 처리.
다음 날 아침, 제일기획본부 2팀의 수아 책상은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새로운 신입 사원이 그 자리에 앉아 환하게 웃으며 공유 폴더에 접속했다. 그리고 폴더 구석, 읽기 전용 파일 하나가 생성되었다.
[파일 이름 : 수아_데이터_Final.d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