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의 연대기 — 모든 서사의 기원, 박완서를 만나다
프롤로그: 노란 집, 한국 문학의 거대한 모계(母系)
경기도 구리시 아치울 마을의 ‘노란 집’. 한국 문학의 지도를 그릴 때, 우리는 결국 이 고요한 집 앞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박완서를 만나러 가는 길은 단순히 노작가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여정만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현대사가 남긴 가장 깊은 흉터를 확인하고, 그 상처 위에서 어떻게 '정직한 문장'이 피어났는지를 목격하는 일이다.
정원은 정갈했고, 작가는 햇살이 잘 드는 창가에서 나를 맞이했다. 후일 우리가 만나게 될 은희경의 예리한 메스, 김훈이 세운 서사의 골격, 그리고 김애란이 포착한 미지근한 습기까지. 그 모든 문학적 형질은 박완서라는 거대한 대지에서 이미 싹을 틔우고 있었다. 그녀는 생존의 비정함과 생활의 비애를 한 몸으로 통과해낸, 우리 문학의 가장 거대한 모성이자 가장 서슬 퍼런 증언자였다.
나는 그녀의 눈을 보았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그 눈빛은 투명했다. 타인의 고통 앞에 발그레해지는 '부끄러움'과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 그 눈동자 안에서 공존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평생을 바쳐 기록해온 그 '부끄러움'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정직함이 어떻게 우리 문학의 뿌리가 되었는지 묻기 위해 조심스럽게 첫 질문을 건넸다.
전후의 폐허와 나목: 뒤늦게 피어난 증언의 꽃
박완서는 마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나목』으로 등단했다. 그녀의 소설은 전쟁의 참혹함을 이데올로기로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미군 부대 초상화부에서 일하던 스무 살 청춘의 눈에 비친 비굴함과 허기, 그리고 그 안에서도 끝내 말라죽지 않았던 희망을 그린다. 그녀에게 소설은 기억의 복원이자, 죽은 이들에게 바치는 뒤늦은 속죄였다. 후배 작가 김훈이 훗날 세우게 될 그 단단한 '서사의 골격'은, 사실 박완서가 폐허 속에서 길어 올린 이 정직한 증언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다.
질문: “선생님께서는 늘 ‘전쟁이 나를 작가로 만들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전쟁 이야기는 영웅담도, 이념의 투쟁도 아닙니다. 오히려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 아래에서 무너져 내린 개인들의 구질구질하고도 처참한 일상에 집중하시죠. 당신에게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박완서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창밖의 정원을 응시했다.
“나에게 기억이란 살아남은 자의 지독한 형벌이자 의무였습니다. 전쟁터에서 죽어간 오빠와 숙부들, 그 아수라장 속에서 짐승처럼 먹고 자야 했던 나날들…. 그 기억이 내 안에서 곪아 터지기 직전에야 비로소 소설이라는 문이 열렸죠. 나는 거창한 역사를 쓰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내 이웃이 왜 그렇게 비겁해져야 했는지, 왜 그렇게 서로를 할퀴어야 했는지 그 ‘현장’을 정직하게 증언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내가 본 것은 영웅이 아니라, 벌거벗은 채 떨고 있던 고독한 ‘나목(裸木)’들이었습니다. 그 나무들이 죽지 않았음을, 봄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기록하는 것이 내 문학의 시작이었습니다.”
중산층의 허위와 부끄러움: 소시민의 속살을 들추다
전쟁 이후, 박완서의 시선은 강남의 아파트 평수와 자녀들의 학벌로 대변되는 중산층의 욕망으로 향했다. 그녀는 속물적인 욕망을 혐오하면서도, 동시에 그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약함을 동정했다. 훗날 은희경이 '타인에게 보여지는 삶'의 허위를 날카롭게 해부할 수 있었던 것도, 박완서가 먼저 일궈놓은 이 '부끄러움의 토양'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터다.
질문: “선생님의 작품 속 중산층은 늘 ‘그럴듯한 삶’을 연기하지만, 선생님의 문장은 그 연기의 틈새를 가차 없이 벌려 놓습니다. 특히 속물성을 묘사할 때 보여주시는 그 서늘한 냉소와 따뜻한 연민 사이의 긴장이 놀랍습니다. 우리 삶에서 ‘부끄러움’이 사라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건, 내 안에 타인이 들어와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혹은 내가 가진 것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쌓인 것임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그 뜨거운 감각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죠. 요즘은 그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가 된 것 같아 안타까워요. 속물이라는 건 결국 자기가 가진 것만 보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나는 소설을 통해 독자들의 등을 살짝 떠밀어, 거울 앞에 서게 하고 싶었어요. ‘보라고, 당신도 나와 다르지 않은 나약한 속물이지 않느냐’고. 그 부끄러움을 공유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를 용서하고 연대할 수 있습니다.”
여성의 삶과 모성: 억압된 목소리의 해방
박완서는 한국 문학에서 ‘여성의 삶’을 가장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언어로 해방시킨 작가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아내와 어머니라는 이름 아래 갇혀 있던 여성들의 욕망과 분노, 그리고 지독한 생활력을 그녀는 숨김없이 기록했다.
질문: “선생님의 소설 속 여성들은 놀라운 생명력을 가집니다. 때로는 이기적이고, 때로는 지독하게 헌신적이죠.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선생님께 어떤 투쟁이었습니까?”
“나에게 여성 문제는 거대 담론이 아니라 ‘밥의 문제’였고 ‘살점의 문제’였습니다. 전쟁 통에 가족을 먹여 살린 것은 남자들의 명분이 아니라 여자들의 억척스러운 손길이었죠. 나는 그 손길들을 문학적 수사로 미화하고 싶지 않았어요. 여자들도 질투하고, 미워하고, 세속적인 성공을 꿈꾼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죠. 어머니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여성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여성주의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들에 대한 애도: 고통을 통과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
박완서 문학의 후기를 지배하는 것은 뜻밖의 사고로 잃은 아들에 대한 참혹한 슬픔이다. 그녀는 하느님에게 삿대질하며 고통의 극한을 토해냈다. 『한 말씀만 하소서』는 작가가 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어떻게 문장으로 견뎌내는지를 보여주는 처절한 기록이다. 이 지독한 슬픔의 기록은 훗날 김애란이 포착할 '일상의 비애'보다 훨씬 선행된, 인간 고통의 원형적 풍경이다.
질문: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낸 고통은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그 고통조차 문장으로 기록하셨습니다.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마주하는 것, 그것이 작가의 운명이라고 생각하셨나요?”
작가의 눈가에 잠시 이슬이 맺혔다.
“그것은 작가의 운명이라기보다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세상은 그저 소음일 뿐이죠. 나는 신에게 따져 묻고 싶었어요. 왜 하필 나였냐고. 하지만 그 처절한 비명을 문장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습니다. 고통에는 이유가 없지만, 고통을 통과하는 정직한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을요. 바로 그 고통을 ‘앓는’ 것입니다. 소설은 내가 그 지옥 같은 시간을 앓아낸 흔적입니다.”
에필로그: 부끄러움의 연대기를 시작하며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설 때, 박완서 작가는 자신이 직접 가꾼 정원의 꽃 한 송이를 매만지며 미소 지었다. 그녀는 여든의 나이에도 누구보다 예민하게 세상을 감각하는 '청춘'이었다.
만약 엘리너 와크텔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녀 역시 박완서라는 거대한 나무 아래서 '한국 문학의 모든 줄기와 잎사귀가 뻗어 나온 가장 깊은 뿌리'를 발견했을 것이다. 박완서가 일궈놓은 이 정직한 살점의 문학이 있었기에, 이후 우리는 은희경의 예리함을, 김훈의 골격을, 김애란의 습기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노란 집을 나서는 길, 작가가 건네준 따뜻한 손의 감촉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녀는 우리에게 문학이란 결국 '얼마나 정직하게 부끄러워할 수 있는가'의 문제임을 가르쳐주었다. 이제 우리는 이 거대한 뿌리에서 뻗어 나온 첫 번째 줄기, 은희경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여행을 이어가려 한다.
본 글은 엘리너 와크텔의 인터뷰 스타일을 차용하여 작가의 실제 인터뷰와 작품 세계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가상 인터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