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영토 — 소설가 은희경을 만나다
프롤로그: 흐트러짐 없는 정적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메스
은희경의 집필실 문을 열었을 때, 나를 맞이한 것은 환대가 아니라 기묘할 정도로 낮은 '공기의 온도'였다. 도심의 소음은 두꺼운 방음문에 잘려 나갔고, 실내를 채운 공기는 어떤 불필요한 감정의 부스러기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투명했다. 나는 잠시 문간에 서서 그 풍경을 관찰했다. 책상 위, 각도까지 맞춘 듯 나란히 놓인 스테들러 펜들과 먼지 하나 없이 서가에 꽂힌 책들의 정렬은 마치 수술을 앞둔 외과의의 도구들처럼 날이 서 있었다. 이 정갈함은 결코 취향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비루함과 무질서라는 거대한 파도에 대항하기 위해 작가가 스스로를 결박하며 쌓아 올린, 가장 치열하고도 고독한 성벽이었다.
그녀는 무채색의 찻잔을 내밀며 자리에 앉았다. 찻잔을 놓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그녀의 동작은 절제되어 있었다. 나는 문득 캐나다의 인터뷰어 엘리너 와크텔이 위대한 거장들의 서재에서 포착하곤 했던 그 팽팽한 긴장감을 떠올렸다. 와크텔이라면 작가의 찻잔 속에 비친 흔들림 없는 수면을 보며 이렇게 자문했을 것이다. "이 완벽한 통제는 사실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가장 격렬한 투쟁의 결과가 아닐까"라고. 나는 작가의 맞은편에 앉아, 그 우아한 거리두기 이면에 숨겨진 날카로운 진실의 메스를 조심스럽게 꺼내기로 했다.
냉소의 미학: 삶을 견디게 하는 비겁하지 않은 태도
나는 그녀의 눈을 보았다. 상대의 호의에 쉽게 무장해제되지 않는, 그러면서도 상대를 집요하게 관찰하는 그 눈빛은 소설 속 12살 소녀 진희(『새의 선물』)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그녀는 말을 할 때 문장을 끝까지 고르고 고른 뒤에야 입 밖으로 내뱉었다.
질문: “작가님의 소설은 가슴이 서늘해질 때가 많습니다. 사랑이나 가족, 헌신 같은 우리 사회의 숭고한 가치들을 매우 냉소적으로, 때로는 잔인할 정도로 객관화하시더군요. 어떤 이들은 이것을 인간에 대한 불신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당신에게 '냉소'란 무엇입니까?”
은희경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들었다. 찻잔을 쥔 손가락 끝은 단단했고, 목소리는 낮았지만 문장 끝에는 서늘한 힘이 실려 있었다.
“저에게 냉소는 세상을 미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세상을 '제대로 보려는' 지독한 노력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그 따뜻하고 낭만적인 환상들이 현실이라는 암초에 부딪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인정해야만, 비로소 진짜 삶이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감정에 매몰되는 순간 진실은 가려집니다. 저는 인물들이 비극 속에서도 폼을 잡거나 신파에 빠지는 것을 경계합니다. 냉소는 뜨거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고통을 한 걸음 뒤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지적인 서정'입니다. 그것은 삶의 비겁함이 아니라, 오히려 이 불합리한 세계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견뎌내는 가장 우아하고도 정직한 방식이죠.”
관계의 거리: 타인은 결코 구원이 될 수 있는가
집필실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아파트 숲을 그녀는 무표정하게 응시했다. 수만 명의 사람이 밀집해 사는 저곳에서, 그녀는 평생 타인과의 '적절한 거리'를 고민해왔을 것이다. 그녀의 손목에 감긴 얇은 시계가 초침 소리를 내며 시간을 깎아내고 있었다.
질문: “작가님의 대표작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결국 '고독'으로 수렴됩니다. 소설 속 연인들은 한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도 각자의 섬에 유폐되어 있죠. 당신은 인간이 타인을 통해 온전히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으시나요? 아니면 우리는 영원히 평행선을 달리는 존재일 뿐입니까?”
작가는 잠시 시선을 창밖의 메마른 풍경으로 던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타인과의 경계선을 가늠해 보는 듯한 긴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고독을 증명하는 서사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와 완전히 하나가 된다는 건 불가능할뿐더러, 사실 매우 위험한 환상입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이해받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타인이 내 영토를 침범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죠. 이 모순이 관계의 본질입니다. 저는 그 사이의 아슬아슬한 거리를 묘사하는 걸 좋아합니다. 구원은 타인이 주는 시혜가 아니라, 내가 나의 고독을 얼마나 완벽하게 수용하고 사랑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서로의 고독을 훼손하지 않고 존중하는 그 서늘한 공간, 거기서 비로소 인간적인 존엄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평행선을 달리지만, 그 선을 유지함으로써 서로를 계속 응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소함의 힘: 위대한 서사보다 강렬한 일상의 파편들
그녀의 시선이 내 셔츠 끝의 보풀이나, 내가 들고 있는 수첩의 낡은 모서리에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거대한 담론을 말할 때보다, 누군가의 사소한 습관을 관찰할 때 더 생기가 돌았다. 그녀에게 삶은 '사건'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였다.
질문: “작가님은 아주 사소한 일상의 디테일에 집요하게 머뭅니다. 누군가의 말투, 옷차림, 식탁 위의 작은 어긋남 같은 것들이 소설의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죠. 왜 당신에게는 이런 '작은 것들'이 그토록 중요합니까?”
“역사는 교과서에 박제되어 있지만, 진짜 삶은 빨래 바구니나 찻잔 속에 숨어 있거든요. 한 사람의 본성은 거창한 신념을 설파할 때보다, 식당에서 종업원을 대하는 미세한 표정이나 연인과 헤어질 때 가방 속에 챙기는 소지품 같은 사소한 순간에 더 선명하게 폭로됩니다. 저는 그런 미세한 균열들을 통해 인간의 진심을 해부하고 싶습니다. 거대한 서사가 놓쳐버리는 그 비릿하고 사적인 진실들, 그 파편들이야말로 소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삶은 거대한 파도가 아니라 작은 물방울들의 연속입니다. 그 작은 물방울 하나를 정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바다 전체를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진실에 가까울 때가 있습니다.”
불온한 상상력: 단정한 문장 뒤에 숨겨진 전복의 쾌락
집필실 한편에 놓인 작은 거울을 보았다. 그녀는 그 거울을 통해 매일 아침 자신의 흐트러짐을 점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갈한 거울 너머로 그녀가 꿈꾸는 것은 언제나 세상을 향한 '불온한 질문'이었다. 그녀는 가장 단정한 옷을 입고 가장 위험한 폭탄을 제조하는 기술자 같았다.
질문: “작가님의 문장은 매우 정갈합니다. 하지만 그 안의 내용은 때로 도발적이고 불온하죠. 가장 평범한 일상의 표면 아래에서 끓어오르는 뒤틀린 욕망을 서술할 때, 그 형식과 내용의 괴리는 어떤 의도를 품고 있습니까?”
은희경의 눈빛이 찰나의 불꽃처럼 반짝였다. 그녀는 마치 비밀스러운 음모를 공유하는 동조자처럼 몸을 내밀며 속삭였다.
“단정한 문장은 일종의 위장술이자 예의입니다. 가장 예의 바른 목소리로 인간의 가장 뒤틀린 본질을 건드릴 때 발생하는 그 팽팽한 긴장감을 저는 즐깁니다. 소설은 독자를 안심시키는 위로의 도구가 아니라, 그들이 당연하게 여겨온 평온한 일상의 밑바닥을 송곳으로 찌르는 도구여야 하니까요. 저는 그 정중한 문법 안에서 세계의 모순을 전복시키는 순간의 쾌락을 위해 글을 씁니다. 독자가 내 문장의 우아함에 방심하다가, 그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 비명을 지를 때, 소설은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죠. 그것이 제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가장 우아하고도 치명적인 질문입니다.”
에필로그: 고독이라는 축복, 그 서늘한 평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설 때, 창밖에는 어느덧 어스름이 깔리고 있었다. 은희경의 문학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인 동시에, 독자가 차마 마주하지 못했던 자기 안의 허위와 소외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차가운 수면과 같았다. 그녀는 결코 우리를 따뜻하게 안아주지 않는다. 대신 “당신의 고독은 결핍이 아니라 자유이니, 그 황폐한 영토 안에서 당당하라”고 서늘하게 선언할 뿐이다.
와크텔의 통찰을 빌려 이 만남을 정리하자면, 은희경은 ‘가장 고독한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된 작가’일 것이다. 집필실 밖으로 나오자 세상은 여전히 소란스러웠으나, 내 안에는 작가가 남긴 서늘한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그것은 차가운 얼음 아래 흐르는 맑은 물줄기처럼, 앞으로의 삶을 지탱해 줄 견고한 힘이 될 것이었다. 나는 가방 속 수첩을 꽉 쥐었다. 그곳에는 그녀가 흘린 사소한 관찰의 파편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본 글은 엘리너 와크텔의 인터뷰 스타일을 차용하여 작가의 실제 인터뷰와 작품 세계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가상 인터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