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iginal Mind] 심연을 길어 올리는

도르래의 문학 — 이승우, 신의 침묵을 대필하다

by 안녕 콩코드

​프롤로그: 신의 침묵을 기록하는 수도자의 서재

​이승우를 마주하기 위해 찾은 공간은 서울의 소음이 닿지 않는 어느 깊은 골목의 끝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코끝을 찌르는 것은 오래된 종이 냄새와 차가운 향나무의 잔향이었다. 그곳엔 황정은의 방에서 느꼈던 서늘한 정적과는 또 다른 종류의, '압도적인 경건함'이 공기 중에 부유하고 있었다.


​책상 앞에 앉은 이승우는 마치 평생을 고해성사 창구 안에서 보낸 사제 같았다. 그의 얼굴은 세속의 욕망이 휘발된 뒤 남은 앙상한 진실처럼 정갈했다. 와크텔이 말했듯 인터뷰가 '보이지 않는 영혼의 형상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이승우와의 대화는 '심연의 바닥에 가라앉은 신의 음성을 도르래로 길어 올리는 일'이었다.


​나는 그의 눈을 보았다. 그것은 눈앞의 나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등 뒤에 드리워진 긴 죄의식의 그림자를 응시하는 듯했다. 그는 타인의 삶을 관찰하기보다, 인간이라는 종(種)이 숙명적으로 짊어진 원죄의 무게를 측량하는 중이었다. 나는 이 거대한 중력의 문학 앞에서, 그가 왜 그토록 집요하게 '보이지 않는 것'에 매달리는지 묻기 위해 조심스럽게 첫 질문을 던졌다.


생의 이면: 보이는 현상 너머를 응시하는 눈

이승우의 소설 『생의 이면』은 한국 문학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자전적 메타소설이다. 그는 보이는 세계를 그대로 기록하는 대신, 그 이면에 숨겨진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에게 소설은 삶의 모사가 아니라, 삶이라는 거대한 농담 속에 숨겨진 뼈아픈 진실을 찾는 고해성사다.


질문: “작가님의 작품들은 언제나 우리가 보는 현실의 뒷면을 가리킵니다. 『생의 이면』에서 보여준 그 지독한 자기 성찰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조차 의심하게 만듭니다. 왜 당신은 이토록 집요하게 ‘이면’에 집착하십니까?”


​이승우는 찻잔을 만지던 손을 멈추고 창밖의 흐린 하늘을 보았다. 그의 음성은 낮고 건조했다.


​“우리가 보는 현실은 거대한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지만, 소설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어야 하는 존재죠. 제가 이면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곳에 인간의 진짜 얼굴이 있기 때문입니다. 밝은 대낮의 광장에서는 누구나 선량한 시민이지만, 밤의 골목과 고독한 방 안에서는 누구나 괴물이 되거나 신을 찾습니다. 저는 그 어둠 속의 진실을 보고 싶었습니다. 이면을 들여다본다는 건,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인정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죄의식과 구원: 탕자의 발자국을 추적하는 문장

​이승우 문학의 핵심은 '죄'와 '구원'이다. 하지만 그의 구원은 결코 값싼 위로나 종교적 황홀경이 아니다. 오히려 구원을 갈망하며 진흙탕 속을 뒹구는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에 가깝다. 그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도망치지만, 결국 자신이 떠나온 그 죄의 근원으로 되돌아온다.


​질문: “작가님의 인물들은 늘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거나, 용서받지 못할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현대인들에게 '죄'라는 개념은 다소 고루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 작가님은 왜 여전히 이 주제를 붙들고 계신가요?”


​“현대 사회에서 죄는 '범죄'로 치환되었지만, 문학에서의 죄는 '관계의 단절'을 뜻합니다. 타인과의 단절,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불화죠. 우리는 모두 무언가에 결핍되어 있고,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서로를 상처 입힙니다. 그것이 제가 말하는 죄의식입니다. 죄를 자각하는 순간 비로소 구원의 가능성이 열립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고생한 뒤에야 집의 소중함을 알 듯, 인간은 자신의 밑바닥을 보아야만 비로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봅니다. 제 문장은 그 바닥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도르래가 되고 싶을 뿐입니다.”



언어의 수직성: 수평적 일상을 거부하는 고결한 문법

​이승우의 문장은 독특하다. 김훈의 문장이 지표면을 따라 단단하게 뻗어 나가는 '수평적 골격'이라면, 이승우의 문장은 땅 밑 심연에서 하늘 끝까지 수직으로 관통하는 '수직적 중력'을 지닌다. 그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으나, 한 문장 한 문장이 신학적인 무게를 견디며 쌓아 올려진 성벽 같다.


​질문: “작가님의 문법은 세속적인 리듬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문장이 전진하기보다 위로 혹은 아래로 깊어지는 느낌을 줍니다. 이런 문학적 호흡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입니까?”


​그는 처음으로 엷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 역시 고독해 보였다.


​“저는 문장이 사건을 전달하는 도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장 자체가 하나의 사유여야 하죠. 수평적인 문장은 정보를 주지만, 수직적인 문장은 질문을 던집니다. 저는 독자가 제 글을 읽으며 '다음 사건'을 궁금해하기보다 '나의 존재'에 대해 멈춰 서서 고민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일부러 호흡을 늦추고 단어의 무게를 무겁게 가져갑니다. 땅을 파 내려가는 삽질과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같습니다. 제 문장은 그 두 행위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 놓여 있습니다.”


​사랑의 생애: 에로스에서 아가페로 나아가는 고통의 연대

​최근작 『사랑의 생애』에서 그는 사랑을 감정이 아닌 하나의 '생명체'로 규정한다. 사랑이 인간에게 들어와 어떻게 번식하고, 파괴하며, 결국 한 인간을 완성해 나가는지 분석한다. 황정은이 낮은 곳에서 '우산'을 같이 쓰는 연대를 말했다면, 이승우는 사랑이라는 거대한 타자에게 자신을 내맡기는 '헌신'을 말한다.


질문: “작가님에게 사랑은 달콤한 감정이 아니라, 한 인간의 자아를 무너뜨리는 강력한 힘처럼 묘사됩니다. 사랑이라는 생애를 통과한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랑은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님을 깨닫는 사건입니다. 사랑이 시작되면 나는 타인이라는 타국으로 강제 이주당하게 되죠. 그곳에서 우리는 자존심이 꺾이고 비참해지기도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만 인간은 비로소 이기심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끝에 남는 건 '상처'가 아니라 '확장된 자아'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느끼게 되는 것, 그것이 제가 믿는 가장 고귀한 인간의 진화입니다.”


​에필로그: 심연을 응시하는 정직한 도르래의 뒷모습

​이승우와의 긴 대화를 마치고 나오니 세상의 소음은 여전히 날카로웠지만, 내 안의 중심추는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만약 엘리너 와크텔이 이승우를 인터뷰했다면, 그녀는 '인간의 영혼이라는 심해에서 진실의 조각을 건져 올리는 늙은 어부'의 눈빛을 보았을 것이다. 박완서가 대지를 일구고, 김훈이 성벽을 쌓고, 황정은이 그 폐허를 응시했다면, 이승우는 그 모든 풍경 밑에 흐르는 근원적인 죄와 구원의 물길을 찾아냈다. 그의 글은 어렵고 무겁다. 하지만 그 무게는 우리를 짓누르는 무게가 아니라,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삶의 닻과 같은 무게다.


​심연을 응시하는 자는 그 심연을 닮아간다. 이승우의 문학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어둠을 정직하게 마주하게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가장 찬란한 빛의 방향을 가리킨다. 나는 이제 그가 건네준 묵직한 도르래의 밧줄을 쥐고, 다음 작가가 기다리는 또 다른 문학의 숲으로 발을 내딛는다. 그곳엔 어떤 신성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본 글은 엘리너 와크텔의 인터뷰 스타일을 차용하여 작가의 실제 인터뷰와 작품 세계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표제사진, 중앙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