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곰팡이 — 황정은, 고요한 파편들의 기록자
[The Original Mind] 폐허 위에 돋아난
프롤로그: 무중력의 방, 침전하는 소음의 영토
낡은 상가 건물을 오르는 계단은 가팔랐다. 발을 디딜 때마다 삐걱이며 들리는 목재의 신음은 고요한 복도 끝으로 무겁게 침전됐다. 그 소음마저 소설 속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방 안에서, 황정은은 희고 정갈한 종이 같은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그녀는 말을 아꼈다. 침묵은 단단했고, 그 사이를 흐르는 공기는 김애란의 온기가 급격히 냉각되어 결정(結晶)이 된 듯 무거운 밀도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보았다. 무언가를 움켜쥐기보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의 궤적을 가만히 응시하는 듯한 손. 그녀는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만지지 않는다. 다만 그 고통이 공기 중에 흩어지는 비릿한 냄새를 묵묵히 기록할 뿐이다. 엘리너 와크텔이 말했듯 인터뷰가 '영혼의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라면, 나는 지금 황정은이라는 가장 고요하고도 지독한 파동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이 서늘한 폐허 속에서 그녀가 길어 올린 '환상'의 정체가 무엇인지 묻기 위해, 얼어붙은 입술을 뗐다.
그림자와 물건: 존재가 희미해지는 비정함의 미학
그녀의 시선은 창가에 비친 제 그림자를 조용히 쫓고 있었다. 소설 『백(百)의 그림자』에서 사람들의 그림자는 자꾸 일어서려 하고, 『야만적인 앨리스씨』의 인물들은 쓰레기장 같은 공간에서 사물처럼 취급받는다. 황정은에게 존재란, 언제든 형태를 잃고 바스러질 수 있는 위태로운 '물건'에 다름 아니었다.
질문: “작가님의 세계에선 사물이 말을 하고 그림자가 자아를 가집니다. 인간이 사물화되는 이 기묘한 장치들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왜 당신의 인물들은 이토록 쉽게 '희미해지는' 것입니까?”
황정은은 창틀에 낀 먼지를 가만히 응시했다. 마치 그 먼지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사라진 이름인 양.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얇은 막 하나로 지탱되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자본과 안전망이 사라진 곳에서 인간은 금세 배경이 되고, 물건이 되고, 결국엔 소음이 됩니다. 저는 그들이 완전히 지워지기 직전, 그림자가 일어서는 것 같은 마지막 저항의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어요. 환상은 현실을 도피하는 꿈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의 비정함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돋보기죠. 그림자가 일어선다는 건, 그 사람이 아직 사라지고 싶지 않다는 비명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 비명을 문장으로 옮겨 적는 대필가일 뿐입니다.”
언어의 밀도: 뼛속까지 시린 짧은 문장들의 타격감
나의 시선: 그녀의 문장은 단출하다. 수식어는 거세되어 있고, 마침표는 가차 없다. 김훈의 문장이 적을 향해 '싸우는 문장'이라면 황정은의 문장은 자기 안의 통증을 '견디는 문장'이다. 군더더기 없는 그 짧은 호흡들이 내 살갗에 닿을 때, 문장은 서늘한 비수가 되어 박혔다.
질문: “작가님의 문장에는 독특한 리듬이 있습니다. 간결하지만, 행간에 말하지 못한 슬픔이 꽉 차 있어 숨이 막혀요. 문장을 깎아낼 때 당신이 끝까지 지키려는 '밀도'란 무엇인가요?”
그녀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운 칼날처럼 빛났다. 문장의 밀도를 말할 때 그녀는 비로소 소설가라는 본성을 드러내는 듯했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여백'이 하는 말을 믿습니다. 많은 말을 한다고 진실에 가까워지는 건 아니니까요. 꼭 필요한 단어만 남기고 나머지를 다 버렸을 때, 그 빈자리에서 독자가 자신의 고통을 채워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글쓰기는 깎아내는 작업입니다. 앙상한 뼈대만 남을 때까지 깎고 또 깎아서, 마침내 그 뼈가 내는 서늘한 소리를 듣는 것. 그 소리가 독자의 심장에 닿을 때 문장의 밀도는 완성됩니다. 저는 독자가 제 소설을 읽고 위로받기보다, 자신의 상처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선명하게 깨닫기를 바랍니다.”
폐허 속의 연대: ‘디디’와 ‘도도’가 나누는 낮은 목소리의 우산
황정은의 인물들은 거창한 구원이나 영웅적 승리를 꿈꾸지 않는다. 그저 서로의 옆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낮은 목소리로 서로의 이름을 부를 뿐이다. 『디디의 우산』에서 보여준 그 미미한 연대는, 폭력적인 세상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마지막 품위처럼 보였다. 빗물에 젖은 쓰레기더미 속에서 낡은 우산 하나를 나눠 쓴 채 웅크린 두 인물의 잔상이 내 눈앞에 겹쳐졌다.
질문: “작가님이 그리는 연대는 김애란의 '다정함'보다 훨씬 건조하고 위태로워 보입니다. 무너져가는 세상 속에서 타인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연대라는 말이 너무 거창하게 쓰이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연대는 '옆에 있음' 그 자체입니다. 내가 무너질 때 나를 지탱해줄 거대한 힘이 아니라, 내가 바닥에 쓰러졌을 때 같이 바닥에 누워 있어 주는 마음이죠.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상대가 춥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그 추위를 같이 견디는 것, 우산을 같이 씌워주는 게 아니라 비를 같이 맞는 것이 제가 믿는 최선의 연대입니다. '디디'와 '도도'처럼, 서로의 이름을 나직이 부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아주 조금 더 오래 견딜 수 있습니다.”
폭력의 계보: 평범한 일상 속에 숨은 날카로운 손톱
그녀의 시선은 사회 구조적인 폭력을 넘어, 가장 가까운 관계—가족, 연인, 이웃—사이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폭력의 입자들을 포착한다. 그녀가 묘사하는 폭력은 거대한 악의가 아니라, 타인을 향한 무신경함과 '다수'라는 이름 뒤에 숨은 잔인함에서 시작된다.
질문: “작가님의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지 깨닫게 됩니다.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악(惡)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나요?”
“악은 특별한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타인의 고통을 구경거리로 만들거나,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존재를 지우는 그 무감각함이 바로 악의 정체죠. 저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폐허를 하나씩 품고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폐허를 숨기기 위해 남의 폐허를 더 크게 부수곤 하죠. 저는 그 파괴의 과정을 정직하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그 잔인함을 직시할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에게 손을 내밀 자격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에필로그: 폐허를 응시하는 정직한 파수꾼의 퇴장
인터뷰를 마치고 건물을 내려오는 길, 여전히 서울의 공기는 소란스럽고 무거웠다. 하지만 내 귀엔 황정은의 낮은 목소리가 잉잉거리는 이명처럼 남아 있었다.
만약 엘리너 와크텔이 황정은을 인터뷰했다면, 그녀 역시 '소멸해가는 존재들의 마지막 주파수를 수집하는 고독한 파수꾼'의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박완서가 세운 대지 위에 김훈이 골격을 세우고 김애란이 온기를 불어넣었다면, 황정은은 그 모든 것이 무너진 뒤에 남은 파편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닦아내어 전시한다. 그녀의 글은 아프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통증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아픔은 우리를 절망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여전히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감각하는 존재'임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폐허 위에서도 환상의 곰팡이는 피어나고, 그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동안 생명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이제 그녀가 남긴 서늘한 여운을 안고, 다음 작가가 기다리는 또 다른 영토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곳엔 또 어떤 종류의 비릿한 진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황정은이 세워둔 '디디의 우산' 아래 잠시 머물렀던 기억은,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폐허 속에서도 나를 지탱해줄 단단한 침묵이 될 것이다.
본 글은 엘리너 와크텔의 인터뷰 스타일을 차용하여 작가의 실제 인터뷰와 작품 세계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가상 인터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