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iginal Mind] 반지하의 햇살,

그 미지근하고 아릿한 온도 — 소설가 김애란을 만나다

by 안녕 콩코드

프롤로그: 창틀의 습기, 그 낮은 곳의 비의(秘儀)

​김훈의 황량한 전장을 빠져나오자, 축축하고 미지근한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그것은 생존의 끝단에서 맡아지는 비릿한 냄새이자, 동시에 누군가의 삶이 끓어오르다 남긴 정직한 수증기의 냄새였다. 김훈이 연필로 꾹꾹 눌러 깎아 세운 서사의 골격이 비장한 생존의 선언이었다면, 이제 우리가 당도한 소설가 김애란의 영토는 그 단단한 뼈대 사이로 스며드는 미세한 습기와 먼지,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비애의 영역이다.


​서울 어느 평범한 주택가 골목, 낮은 건물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작은 카페 구석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수줍게 웃는 그녀의 앞에는 낡은 노트북 한 대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머그잔, 그리고 여기저기 모서리가 닳아 헤진 수첩이 놓여 있었다. 그 풍경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오히려 그 지극히 평범한 틈새 속에 숨겨진 삶의 비의를 포착해내는 그녀의 천부적인 감각을 웅변하는 듯했다.


​나는 그녀의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것은 타자를 압도하려는 관찰자의 눈이 아니었다. 타인의 고통이 내는 아주 미세한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정밀하게 조정되는 안테나, 혹은 깨지기 쉬운 존재들의 떨림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예민한 수신기에 가까웠다. 은희경이 차가운 메스로 중산층의 허위를 해부했고, 김훈이 서사의 골격을 세워 생의 엄숙함을 들이받았다면, 김애란은 젖은 수건으로 삶의 얼룩을 조용히 닦아내며 묻는 작가다. 이 얼룩은 대체 왜 생겼느냐고, 우리는 왜 이토록 젖어 있느냐고. 카페 안을 채운 낮은 웅성거림 속에서, 나는 동시대를 관통하는 청춘들의 '기막힌 슬픔'과 그 슬픔을 견디게 하는 '비릿한 농담'에 대해 첫 질문을 던졌다.


​반지하의 상상력: 비극 속에 심어놓은 눈물겨운 숨구멍

그녀가 노트북 옆에 둔 수첩을 보았다. 거기엔 아마도 지하철에서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고단한 뒷모습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충혈된 눈빛, 혹은 고시원 창틈으로 새어 나오는 라면 냄새 같은 것들이 그녀만의 문장으로 채집되어 있을 것이다. 김애란의 소설은 가난을 다루되 결코 그 칙칙함에 매몰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는 눈물 나게 발랄한 농담이 섞여 있어, 보는 이의 가슴을 더 아릿하게 후벼 판다.


​질문: “작가님의 초기작부터 꾸준히 등장하는 공간은 '반지하', '고시원', '자취방' 같은 이 시대 가난의 상징적 장소들입니다. 그런데 작가님은 그 비좁고 습한 공간을 단순한 비극의 무대로만 쓰지 않더군요. 오히려 그 안에서 터져 나오는 '웃픈' 상황들이 독자를 더 아프게 만듭니다. 당신에게 가난이란 무엇이며, 그 가난의 냄새 속에 유머를 섞어 넣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애란은 머그잔에서 피어오르는 온기를 손바닥으로 감싸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손가락 끝은 섬세했지만, 문장을 고르는 태도는 지극히 신중했다.


​“가난은 단순히 통장 잔고가 비어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상상력을 특정한 방향, 즉 '생존'이라는 아주 좁은 구멍으로 몰아넣는 물리적인 힘이죠. 하지만 저는 그 비좁은 구멍 안에서도 인간이 여전히 농담을 던지고, 누군가를 질투하고, 환상을 꿈꾼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었어요. 비극 한복판에서 뜬금없이 웃음이 터져 나올 때, 그 웃음은 비극을 지우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비극의 윤곽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형광펜 같은 역할을 합니다. 제가 쓰는 유머는 세상을 향한 냉소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 비좁은 삶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에게 건네는 아주 작은 '숨구멍' 같은 것이죠. 습기 찬 방에서도 아주 잠깐 햇살이 비치는 순간이 있듯, 제 소설도 그 찰나의 온기를 포착하고 싶었습니다.”


​식욕과 슬픔: 밥보다 무거운 마음의 허기

​김훈이 '생존을 위한 밥'의 엄숙함을 서사의 골격으로 삼았다면, 김애란의 인물들은 '편의점 삼각김밥'이나 '자장면 한 그릇'에 깃든 정서를 말한다. 나는 그녀가 인물들의 먹는 행위를 묘사할 때 보여주는 그 애틋하고도 지독한 리얼리즘을 떠올렸다. 식욕은 인간을 가장 적나라하게 만드는 동시에, 가장 연약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질문: “작가님의 소설에서 먹는 행위는 종종 지독한 슬픔과 연결됩니다. 『칼자국』에서 어머니가 칼로 썰어주던 국수나, 홀로 방에서 꾸역꾸역 밀어 넣는 인스턴트 음식들이 그렇죠. 김훈 작가님이 밥의 '무게'를 말한다면, 작가님은 밥의 '외로움'을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먹는다는 행위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으셨나요?”


​“우리는 슬퍼도 배가 고프고,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도 목구멍으로 무언가를 넘겨야 하는 구차한 육체들입니다. 그게 참 비참하면서도 눈물겨운 일이죠. 저는 한 인물이 무엇을 먹고, 어떤 냄새를 맡으며, 그 음식을 삼킬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를 묘사할 때 그 사람의 진짜 내면이 폭로된다고 믿어요. 세련된 레스토랑이 아니라 좁은 자취방에서 홀로 삼키는 음식 안에는, 그 사람이 차마 밖으로 내뱉지 못한 고독과 그리움이 섞여 있습니다. 밥을 먹는다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차한 생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가장 비릿하고도 간절한 고백입니다. 저는 그 먹는 행위의 비굴함 속에 숨겨진 거대한 삶의 의지를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비행운(飛行雲): 사라지는 것들을 향한 미지근한 연민

​나의 시선: 카페 창밖으로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법한 젊은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김애란의 시선은 자주 그들에게 머물렀다. 그녀의 소설 『비행운』처럼,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상징인 그 비행기 구름이 누군가에게는 불운의 징조(非幸運)로 치환되는 그 서글픈 아이러니를 그녀는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질문: “작가님의 작품들에는 '성장하지 못하는 청춘' 혹은 '너무 빨리 늙어버린 아이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당신이 포착한 이 시대의 상실감은 선배 세대들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요? 왜 우리 시대의 고독은 이토록 얇고도 날카로운가요?”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


​“예전의 상실이 거대한 벽 앞에 부딪혀 으깨지는 느낌이었다면, 지금 우리가 겪는 상실은 아주 미세한 사포에 매일같이 조금씩 마모되어가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영혼의 가장자리가 조금씩 깎여 나가는 것이죠. 우리는 모두 화려한 비행운을 꿈꾸며 하늘을 보지만, 실제로는 그 비행운이 만들어낸 차가운 그늘 아래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 그늘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어요.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나도 여기서 당신을 보고 있다'라고요. 소설이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누군가가 혼자 울고 있을 때 그 곁을 지키는 미지근한 물 한 잔의 온기는 되어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다정한 관찰: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작가의 윤리

인터뷰가 이어지는 동안 그녀는 테이블 위에 맺힌 머그잔의 물자국을 조용히 닦아냈다. 그 사소한 배려의 몸짓이 그녀의 소설과 닮아 있었다. 그녀는 타인을 함부로 정의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서 있는 자리를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그 '바라봄' 자체가 그녀에게는 가장 숭고한 창작의 윤리인 듯 보였다.


질문: “작가님의 시선은 늘 약자나 소외된 자들에게 향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동정하거나 미화하지 않죠. 그 '적절한 거리감'이 오히려 독자에게 더 큰 공명을 줍니다. 작가로서 타인의 슬픔을 대할 때 스스로 경계하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타인의 고통을 소설의 재료로 쓰는 것은 언제나 두렵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을 '불쌍한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을 가장 경계합니다. 동정은 때로 폭력이 될 수 있거든요. 저는 그저 그들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 그들이 사용하는 말투, 그들이 머무는 공간의 습기를 최대한 정직하게 묘사하려 노력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들의 삶을 '미학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겪는 고통의 '개별성'을 지켜주는 일입니다. 한 사람의 슬픔이 다른 사람의 슬픔과 결코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연민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에필로그: ​고통의 주파수를 수집하는 다정한 안테나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설 때, 그녀는 자신이 머물던 자리를 정갈하게 정리했다. 카페를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은 군중 속에 섞이자마자 금세 알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그녀가 남긴 문장들의 온기는 여전히 내 손바닥에 남아 있었다. 만약 엘리너 와크텔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녀 역시 김애란의 수줍은 미소 뒤에서 '서사의 골격 사이로 스며든 비애의 얼룩을 닦아내어 문학의 성소(聖所)로 옮겨놓는 정교한 번역가의 얼굴'을 발견했을 것이다.


​김훈의 문학이 단단한 서사의 골격을 세우며 우리를 거친 광야의 생존자로 단련시켰다면, 김애란의 문학은 그 골격 사이사이에 비로소 인간의 살점과 눈물자국을 입혀낸다. 김애란은 거창한 구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일상이라는 거대한 소음 속에서 가장 가냘프게 떨리는 생존의 신호를 포착하여 우리에게 전해줄 뿐이다. 그녀의 글을 읽고 나면, 무심코 지나쳤던 편의점의 파란 불빛이나 반지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의 분주한 다리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그 비좁고 고단한 삶의 틈새마다 그녀가 심어놓은 '다정한 비애'가 싹을 틔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김훈의 육중한 전장을 내려와, 김애란이 안내하는 미지근하고도 아릿한 일상의 골목길로 접어든다. 그곳엔 여전히 우리가 벌어먹어야 할 밥과 견뎌야 할 고독이 있지만, 그녀가 켜준 낮은 등불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한 눈으로 서로의 그늘을 응시할 수 있게 되었다.



본 글은 엘리너 와크텔의 인터뷰 스타일을 차용하여 작가의 실제 인터뷰와 작품 세계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가상 인터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