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아이'는 진화하는가
잉태의 순간 선고되는 '데이터 운명'
영화 <가타카(Gattaca)>의 오프닝은 소름 끼칠 정도로 정갈하고 차분하다. 주인공 빈센트가 태어나는 순간, 축복의 말 대신 차가운 수치들이 분만실을 채운다. 간호사가 갓 태어난 아이의 피 한 방울을 채취해 분석기에 넣자, 1분도 채 되지 않아 아이의 전 생애를 요약한 성적표가 발부된다. "신경계 질환 가능성 60%, 우울증 42%, 집중력 장애 89%, 심장 질환 확률 99%, 예상 수명 30.2세."
이 세계에서 인간은 더 이상 이름이나 꿈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오직 유전적 결함이 완벽하게 제거된 '적격자(Valid)'와 자연의 섭리대로, 즉 부모의 사랑만으로 태어난 '부적격자(In-valid)'로 나뉠 뿐이다. 장 자크 루소가 그토록 경계했던 인위적인 불평등, 즉 사회적 계약에 의해 발생한 불평등이 이제 제도를 넘어 생물학적 세포 속에 완전히 각인된 셈이다. 부적격자로 판명된 빈센트에게 허락된 삶의 반경은 오직 청소부와 같은 단순 노동의 영역뿐이다.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다는 그의 꿈은, 그가 가진 심장 박동 수치보다 가벼운 농담으로 치부된다.
존 로크의 '백지'를 지워버린 유전공학의 폭력
근대 자유주의 철학의 토대를 닦은 존 로크는 인간의 정신을 '타불라 라사(Tabula Rasa)', 즉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깨끗한 백지라고 보았다. 신분이나 혈통이 아닌, 개인이 후천적으로 겪는 경험과 교육, 그리고 노력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이 믿음은 신분 사회를 무너뜨린 민주주의의 가장 강력한 초석이었다. "누구나 노력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근대의 낙관론은 바로 이 백지 위에서 쓰였다.
하지만 <가타카>가 그려내는 미래는 로크의 백지를 거칠게 찢어버린다. 인간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전 생애의 성능 성적표가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타카의 입사 면접은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대화가 아니다. 지원자는 면접관 대신 소변 검사와 혈액 샘플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면접관은 당신의 열정이나 비전을 묻지 않는다. 오직 당신의 염색체 배열이 우주선의 정밀한 기계를 다루기에 적합한지만을 판독한다.
여기서 '천부인권'은 '천부유전권'으로 대체된다. 인간의 존엄성은 존재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본을 투자해 설계한 '우월한 유전자 조합'에서 나온다. 자본력이 뒷받침된 부모는 자녀에게 질병 저항력과 높은 지능, 심지어는 외모적 완벽함까지 선물한다. 그렇게 태어난 '적격자'들은 사회의 상층부를 독점하고, 자연의 아이들은 '신의 아이'라는 조롱 섞인 명칭 속에 하층민으로 전락한다. 계급은 이제 상속되는 재산을 넘어 생물학적 숙명으로 고착화된다.
'안녕, 콩코드'의 속도로 읽는 빈센트의 저항
초음속으로 흐르는 세상 속에서 모든 것이 효율성으로 치환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비효율적인 것들'을 탈락시킨다. 유전공학 시스템의 눈에 비친 빈센트는 제거되어야 할 오류이자, 자원을 낭비하는 비효율적인 존재다. 그러나 빈센트는 이 차가운 시스템에 균열을 내기 위해 무모한 도전을 시작한다. 그는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적격자' 제롬 유진 머로우의 신분을 산다. 매일 아침 자신의 피부 조직을 긁어내고, 제롬의 피와 소변을 몸에 숨긴 채 가타카(Gattaca)라는 철옹성에 입성한다.
빈센트의 삶은 매 순간이 위태로운 연극이다. 눈썹 하나, 각질 한 조각조차 그를 파멸시킬 수 있는 증거가 되기에 그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지워내며 타인의 삶을 연기한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마주한다. "데이터가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변수는 존재하는가?" 유전적으로 완벽한 동생 안톤과의 수영 시합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체력적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었던 빈센트가 승리했을 때, 안톤은 경악하며 묻는다. "어떻게 이게 가능해? 넌 이길 수 없단 말이야!" 빈센트는 답한다. "난 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서 널 이길 수 있었어." 데이터는 근육의 힘과 심장의 박동 수는 계산할 수 있지만, 죽음을 무릅쓴 인간의 '의지'와 '절실함'은 계산해내지 못한다. 시스템이 30살에 죽을 것이라 예언한 남자는, 그 예언을 비웃듯 자신의 한계를 넘어 우주선을 탑승한다.
2026년, 우리의 '울타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현재 <가타카>가 경고한 미래의 문턱에 서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역량을 점수화하여 채용을 결정하고, 유전자 편집 기술인 크리스퍼(CRISPR)가 인간 배아의 수정을 논하는 시대다. 토크빌이 우려했던 '부드러운 전제주의'—국가가 혹은 시스템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며 서서히 우리의 자유의지를 잠재우는 현상—는 이제 알고리즘과 생명공학의 탈을 쓰고 우리 삶에 스며들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새로운 울타리를 치고 서로를 차별하고 있는가? 소셜 미디어상의 숫자가 나의 가치를 결정하고, 내가 소비하는 데이터가 나의 계급을 증명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혹시 빈센트처럼 매일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긁어내며 '적격자'로 보이기 위한 연극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루소가 말한 '자기애(Amour-propre)'—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만족을 얻는 마음—는 디지털 문명을 타고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다.
빈센트가 가짜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태워 없애야 했던 자신의 흔적들은, 어쩌면 우리가 효율성과 생존을 위해 스스로 거세당하고 있는 인간성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결함이 있기에 아름답고, 한계가 있기에 도전하며, 예측 불가능하기에 존엄했던 그 본연의 가치들 말이다.
첫 번째 연재를 마치며: 데이터 너머의 인간
기술이 완벽한 평등을 약속할 때, 그것은 대개 가장 완벽한 차별의 시작이기도 하다. <가타카>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가치는 세포 속에 박제된 데이터에 있습니까, 아니면 당신이 내딛는 불확실한 발걸음 속에 있습니까?
초음속의 세상에서 잠시 멈춰 서서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시스템의 예측을 배반하는 인간의 의지야말로, 우리가 다가올 미래에 끝까지 붙들어야 할 마지막 '콩코드'의 속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