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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Aug 05. 2024

통제 없이 운영되는 유연근무, 벽장 속 곶감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꼴 언제까지


다른 근무 시간이라면 응당 그러려니 하겠지만 유연근무 시간은 자신이 콕 집어 일정 시간만큼 일찍 나오거나 늦게 퇴근하겠다고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그에 따라 1시간 일찍 출근해서 1시간 일찍 퇴근하거나 반대로 1시간 늦게 출근해서 1시간 늦게 퇴근할 권리가 주어지지만, 실제 그 시간에 유연 근무자가 제대로 근무하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조치가 없다. 확인 결과 근무자 양심에 맡긴 게 전부다. 문제는 양심이 생각만큼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정상적인 근무 시간(08:00~18:00)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자기 계발, 출퇴근 편의 등의 목적으로 특정 근무자의 출퇴근 시간에 자율성을 부여했다면 그 시간은 자율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르도록 설계되는 게 마땅하다. 달리 말하면 정상 근무 시간에 비해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유연근무 시간에 어떤 일을 했는지부터 꼼꼼히 챙겨야 할 것. 제대로 운영되려면 유연근무 시간에 수행할 일의 목록을 제출하도록 하고, 사후 그 일의 처리 실태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으시다면 해당 유연근무 시간이 실제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부터 따져보는 게 순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출퇴근 시간에 자율성을 부여했으니 그 시간만큼은 더 집중해서 일하겠지,라는 기대는 하지 마시라. 설마 소수의 문제겠지,라고 흘려들을 분도 계시시라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틀렸다. 아침에 1시간 혹은 1시간 30분 먼저 나와 사무실 밖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 잡담하거나, 관공서 주변을 산책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를 부서장이 나서서 조장하고 있으니 저변은 말할 것 없다. 1시간 늦게 퇴근하는 경우엔 저녁 먹으러 나가는 직원들 틈바구니에 섞여 마치 마실 다녀오듯 한다. 그러면 1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유연근무 본래의 취지는 시쳇말로 ‘개에게 내던진’ 지 오래다. 대부분의 유연근무 시간이 하릴없이 소비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통제장치 없이 운영되는 유연근무 시간, 소일거리로 전락: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꼴 언제까지


 근무자가 1시간 일찍 출근하거나 1시간 늦게 퇴근하는 그 시간은 정확히 민원 사각지대나 다름없다. 아침 8시에 관공서에서 일을 볼 민원인이 있을까? 1시간 일찍 나와 근무하는 직원이 있다는 사실을 민원인이 알기나 할까? 이에 관해 관공서가 자발적으로 홍보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서민원응대와 동떨어진 유연근무의 실태를 찾을 수 있다. 반대로 무자가 1시간 늦게 퇴근할 경우 민원인이 6시를 넘겨도 7시까지 관공서를 방문하면 너끈히 일 처리를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지만, 유연근무자가 자리를 지킨다는 보장이 없다. 근무자 대부분이 자리에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7시까지 근무하는 직원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현실에서 민원인이 해당 관공서를 찾을 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유연근무로 사용되는 출퇴근 전후 1시간은 근무 시간이라는 명칭을 달고 있지만 대부분 근무와 상관없이 사용되고 있다. 앞서 민원 사각지대라는 표현을 썼었다. 이 부분에선 법(규정)의 사각지대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일을 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시간. 그 시간을 따라나서는 직원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어떤 정책이든 자리 잡기 전이라면 엄격한 기준과 적용의 다과 혹은 여부에 따른 상벌이 분명하게 주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방관하면 방종으로 흐르는 건 시간문제다.



양이가 양심적으로 생선을 지키길 바라지만 생선에 군침을 흘리는 고양이 앞에서 양심 운운하는 건 미친 짓이다. 더러는 몇몇 고양이가 정말 주인의 뜻에 화답해서 입에 물린 생선을 삼키지 않을 순 있다. 이론적으로라도 그 수가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적어도 고양이의 날카로운 이빨에 견디도록 생선을 꽉 싸매기라도 해야 한다. 그런 안전조치(통제 수단) 없이 생선을 지키길 바라는 건 한마디로 정신나갔다고 해도 할 말 없다. 더욱이 그 생선이 자신들 것이 아닌 민원인 것임에랴. 만에 하나 반쯤 삼킨 생선을 고양이 입에서 빼내려 해 보자. 고양이가 어떻게 나올까? 상상만으로도 유튜브다. 나중에 가서 바로잡으려고 나서면 진통만 커질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통제장치 없이 운영되는 현행 유연근무 시간은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렸다. 앞으로도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권리만 남고 의무는 없는 기괴한 유연근무 시간으로 시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땅바닥나 뒹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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