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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코드 Sep 05. 2024

불멸의 존재에서 지배종의 지위마저 AI에 앗긴 인간으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호모 데우스에 이어

 

당신이 아프리카 초원에 서서 거대한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광경을 보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때는 10만 년 전, 어마어마한 규모의 동물 무리들이 멀리서 서성이고 있다. 당신은 벌거벗었다. 옷도 연장도 장신구도 없다. 당신의 피부는 벌레의 공격에 속수무책이며 손발은 너무 연약해서 써먹을 수 없다. 덩이줄기 같은 먹을거리를 찾아내더라도 씹거나 소화하지 못한다. 고귀한 기관인 뇌도 별무소용이다. 당신 같은 족속이 지구를 물려받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창조적 유전자》, 에드윈 게일



유발 하라리는 단 세 권의 책으로 단숨에 역사와 미래를 통찰한 대표적 지식인의 반열에 올랐다. 인류의 태동과 발전 과정을 소프트하게 정리한 《사피엔스》의 가파른 인기에 힘입어 각종 매체와 강연에 모습을 드러낸 유발 하라리는 발언에 거침이 없었다. 청중들은 열광했다. 그 분야에서 두드러진 업적을 내지 못한 학자에게 과연 그런 열화와 같은 대접이 가당키나 한지에 대한 의문과 별개로 청중들은, 나아가 《사피엔스》를 읽은 독자들은 후속작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수많은 종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서고 마침내 지배종이 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사피엔스》에 동태적으로 담았다. 기존 역사서술의 방법론에서 벗어나 생각할 거리가 많은 질문을 던진 것이 주효했다. 전례 없는 질문 세례에 독자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특히 《사피엔스》가 미래 인류에 관한 전망까지 다루자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지지 않을 수 없었다.



《사피엔스》에 이어 등장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징검다리라고 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징검다리의 기능은 개울을 탈 없이 건너게 하는 데 있다. 또한 징검다리는 그 자체로 가리키는 바가 있다. 끝에 목적지가 있다는 것. 이어 《호모 데우스》가 출간되자 독자들은 유발 하라리의 시선이 어디에 가닿았는지 명료하게  수 있었다. 기계지능에 힘입어 인간지능이 고도로 도약한 특이점에 대한 기대, 그는 그 지점을 ‘불멸’로 고쳐 말했다. 명시적으로 유발 하라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기조가 그 지점에 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아니었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불멸 앞에 놓인 징검다리로 고쳐 말할 수 있다면 《사피엔스》는 거대한 밑그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이 된 인간’에 이르는 일련의 여정이 녹록했을 리 없다. 독자는 이들  권의 책을 묶어 유발 하라리에게 헌사했다. '인류 3부작'이었다. 왕의 신전에 수장되는 것, 현실계에서 잊히는 게 누구처럼 힘들었을까? 유발 하라리는 이번 달에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가 신작 《넥서스》 할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AI는 앞으로 수십 년 안에 유전자 코드를 작성하거나 무기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무기 코드를 발명함으로써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 수 있는 능력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만화 같은 상상력을 현실화한 것이 첨단 과학이라고 해도 결국 인공지능이 생명을 창조하는 데까지 이를 거라는 전망은 지나치다 못해 우스꽝스럽다. 레이 커즈와일이 언급한 2045년의 특이점도 아직은 과학이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 시기를 뒤로 미루는 경향이 짙은 상황에서. 결국 인간을 신의 반열에서 끌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일까? "AI는 우리 종의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진화 과정을 바꿀 수 있다."



유발 하라리를 애정한 독자의 한 사람으로 《넥서스》가 족적을 남긴 그의 인류사 서술사족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기를 바란다. 솔직히 고백하면 밑동을 갉아먹는 쥐 혹은 근간을 허무는 개미떼가 될 것 같아 참담하다. 마무리가 아쉬운 시절이다. 건승을 빈다.



살아 있는 존재는 기계가 아니고, 우리 머리 밖에는 수학이 존재하지 않고, 실재하는 세계는 시뮬레이션이 아니고, 컴퓨터는 생각하지 못하고, 의식은 환각이 아니고, 의지는 자유롭지 않다. - 《세계 그 자체》, 울프 다니엘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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