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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코드 Sep 06. 2024

[이탈리아 여행]바티칸 박물관과 피스타치오 크루아상

이보다 으스스할 수 없다! 혹은 이보다 달달할 수 없다!


개장 시간 훨씬 전에 도착해도 2시간 이상의 대기시간은 각오해야

바티칸 박물관은 대기 인파로 악명이 높습니다. 박물관 입구까지는 보통 2시간 안팎의 시간이 드는데요. 서 있는 시간이 워낙 오래되다 보니 무료한 건 둘째 문제고,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찔끔찔끔 가는 통에 겨우 30분이 지났을 뿐인데도 체력이 바닥난 기분입니다. 전날 이탈리아행 기내에서 13시간을 옴짝달싹 못 하게 계셨던 분이라면 아마 연상되는 장면이 있을 텐데요.



기내에서 영화 볼 것 다 보고도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애써 잠을 청했는데, 깨고 보니 애걔 10분이 지났네요. 시계가 미덥지 않아 휴대폰을 주섬주섬 챙기는데 정/말/ /긴/ /시/간/을/ /잤/습/니/다. 역시나 10분. 그렇게 너덧 시간을 자다 깨기를 반복하면 멘붕 직전까지 가게 되는데요. 그래도 결국은 공항에 도착한다는 거. 박물관 줄 서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는 등 뒤로 까마득하게 늘어선 인파를 안쓰러워하며 박물관 입구를 통과하게 되더라는... 최대 3시간을 예상하고 줄 서는 게 아무래도 건강에 이로울 듯한데요. 실제 3시간을 넘겼다는 분도 있으니까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패키지 상품의 경우 박물관 문 여는 시각(9시)에 훨씬 앞서 줄을 서는데요. 아예 3시간을 예상하고 6시부터 나와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규모가 어느 정도일까요? 7시만 돼도 족히 수백 명이 줄 선 게 느껴집니다. 맨 앞쪽이 보이지 않을 정도라면 상상이 가실까요? 길이로 치면 한 5백 미터쯤 돼 보입니다. 신기한 건 아무리 일찍 가도 내 앞에 줄 선 사람들은 꼭 있다는 것. 평소보다 일찍 도착했음에도 대기시간이 기막히게 꼬박 2시간을 넘기더라는 겁니다. 주술에 씐 듯 기묘한 기분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바티칸 박물관 정보

○ 운영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입장은 오후 4시 마감)

○ 휴관일 : 일요일(단,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은 무료 이용, 오전 9시 – 오후 2시(입장 마감 시각 오후 12시 30분)

○ 입장료 : 일반인 17유로, 만 26세 미만과 학생증 소지자 8유로

* 야간개장 : 5.6-7.15 기간 매주 금요일





하루 종일 인파 위에 쏟아지는 짙은 그늘, 초가을이라도 리는 매우 차

약간의 경사가 있는 폭 3미터 정도의 인도를 따라 왼쪽으로 박물관 담장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담장 길이는 500미터쯤 돼 보이는데 높이가 사람 키의 5배를 훌쩍 넘어 보입니다. 인도 오른쪽으로는 바로 도로가 면해 있는데요. 도로 건너편으로 역시 길게 카페와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혹 카페나 음식점을 찾는다면 이곳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한두 블록 오른쪽으로 카페 맛집들이 많거든요, 기왕이면 그런 곳이 기억에 많이 남게 되겠지요. 뒤에 제가 소개할 카페도 같은 곳에 위치에 있습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담장이 인도 왼쪽으로 가파르게 솟아있다는 거, 잊지 않으셨죠?



깎아지를 듯 솟은 담장이 온종일 인도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는데 시쳇말로 장난이 아닙니다. 이곳에 처음 도착해 줄 맨 끝에 설 때만 해도 담장 그늘 때문에 시원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경복궁 담장을 연상하며 운치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요. 초봄 혹은 초가을이라도 아침 공기가 제법 찹니다. 그늘진 곳의 공기가 더 찬 건 당연하겠죠. 참을 만하면 괜찮은데 낯선 곳의 공기는 다른 곳의 공기보다 더 빨리 식는 거 같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몸속으로 한기가 스며드는데 종내에는 으스스 몸이 떨려 오기 십상이죠. 그쯤 되면 긴팔이 아니라 패딩이 간절해지는데요. 사전 지식이 있더라도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뭘, 하고 대부분 챙겨 오지 않습니다. 낭패죠.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겐 원군이 있습니다. 따뜻한 커피 한 잔. 그런데 말이죠. 희한하게도 찾으려면 잘 안 보이는 게 카페이기도 하더라고요. 미리 알고 가면 조금 더 나은 커피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먹을 수 있는데 저 역시 같은 딜레마에 빠진 적이 있어서 동병상련 ㅜㅜ





피스타치오 크루아상 맛집, Caffe Delle Commari

1시간 정도 줄 섰다 싶으면 마실 것과 달달한 것이 간절해지는 사정, 만국공통입니다. 아주 가까운 곳에 그냥 카페가 아니고 카페 맛집이 있으면 정말 웃음이 다 나겠죠. Caffe Delle Commari가 바로 그런 곳입니다. 브런치로 이미 유명한데 관광객들을 사로잡은 메뉴는 크루아상과 커피라고 합니다. 크루아상 중에서도 피스타치오 크루아상이 단연 선호도가 높다는군요. 시간이 넉넉하면 덧붙인 사진 자료의 브런치를 맛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줄 선 곳에서 이곳 카페까지는 멀리 봐도 10분이면 족한 거리입니다. 두 블록 오른쪽에 있습니다. 박물관 입장까지 적게는 2시간에서 많게는 3시간을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고충을 생각하면 카페에서 커피와 크루아상은 물론 가벼운 브런치라도 편안하게 먹고 마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겁니다. 서실 자유 여행이 아니라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게 고민이죠. 패키지여행의 경우 너무 늦게 줄 선 곳으로 돌아가면 다른 사람 눈치가 보인다고 걱정하는 분들이 꽤 됩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미리미리 앞뒷분들에게 먼저 다녀오시라고 말해주는 것도 요령이라면 요령일 듯합니다. 아예 시간을 정해주는 거죠. 천천히 다녀오세요,라고 두루뭉슬하게 말하지 않고 한 40분 정도 다녀오셔도 될 것 같습니다. 오시면 우리가 교대하겠습니다. 만일을 대비해 연락처도 공유하면 더할 나위 없겠고요. 그렇지 않으면 괜한 걱정에 빵에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사이에 다들 들어간 거 아니야?, 싶은 생각이 들면 최악이죠. 역시나 여행지에서도 만사 튼튼은 문율입니다^^


Caffe Delle Commari 정보

크루아상 맛집

커피 1.5유로

 크루아상 2.5유로, 피스타치오 크루아상 3.5유로

* 테이블 비용을 따로 받는 만큼 관광객이라면 서서 먹거나 테이크아웃 추천




이하 '송원진의 클래식 포토 에세이]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 < 1 >' 일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 멀리 산 피에트로 대성당 지붕이 삐죽 인사를 한다. ⓒ사진=송원진

전 세계를 여행하며 아직 가본 곳보다 안 가본 곳이 더 많다. 하지만 지금까지 가 본 곳 중에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묻는다면 사랑하는 여러 곳 중 이곳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탈리아의 로마 북서부에 있는 카톨릭 교황국인 바티칸시국(Stato della Citta del Vaticano)이다.


바티칸은 19세기 이탈리아가 근대 통일국가로 바뀌자 교황청 직속의 교황령을 상실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1929년 라테란(Laterano)협정에 의해 이탈리아로부터 교황청 주변지역에 대한 주권을 이양받아 안도라, 산마리노와 함께 세계 최소의 독립국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을 꼽는 이유는 다름 아닌 바티칸 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


Musei Vaticani, 이곳은 정말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것들인가?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자아내는 곳이다. 총 24개의 미술관을 다 채우고도 모자랄 만큼 방대한 양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어서 하루종일 돌아봐도 다 감상하기 힘든 최대 박물관 중 하나다.


'멜로초 다 포를리(Melozzo da Forli)', 천사들 무리(Group of angels), 프레스코(Fresco), 1481년, sala4, Pinacoteca, Vati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의 작품이 있는데 지금의 건물은 약 70년간의 '아비뇽 유수(1309-1377)'를 마치고 로마로 돌아온 교황이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산 피에트로 대성당과 함께 궁전을 정비하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후 교황 클레멘스 14세와 피우스 6세의 후원을 거쳐 1970년 지금의 모습을 갖췄는데 엄청난 규모와 화려함은 베르사유 궁전을 초라하게 만들 정도라고 한다.


회화관(Pinacoteca)은 11-17세기 회화 작품을 전시하는 것으로 16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제일 처음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작품은 바로 이탈리아의 움브리아파 화가인 멜로초 다포를리(Melozzo da Forli, 1438-1494)의 천사들 무리(Group of angels) 이다. 옆에 '음악의 천사'가 같이 있었지만 그 천사들만 찍으려고 하면 이상하게 수전증(?)이 생겨서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꼭 나를 피하려는 듯한 느낌이다.


이 작품은 로마의 산티 아포스톨리 성당의 천장화의 일부였으나 1711년 성당 증축때 떼어내면서 바티칸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멜로초 다포를리 작품의 특징인 밝은 색채와 명확한 형태 그리고 단축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진짜 천상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을 따라 칙칙폭폭 기차놀이를 하듯 그림들을 보며 이동을 하다보면 라파엘로의 그림 3점이 전시되어 있는 VIII실에 들어가게 된다. 다른 작품들보다도 '그리스도의 변용'을 바라보면 오랫동안 서 있었다.


1520년 4월 26일 열병으로 세상을 떠난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1520)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는 알지 못한 사실이다. 이 그림이 라파엘로의 마지막 그림이었다는 걸.


하지만 방에 들어선 그 순간부터 이 그림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 같았다. 난 이 그림에게서 떨어질 수가 없었다.


'그리스도의 변용'은 라파엘로가 끝내지 못했다. 그가 그린 밑그림을 바탕으로 제자 줄리오 로마노가 하단 부분을 완성했다. 신약성서 마태복음 17장의 두 장면을 그린 작품으로, 상단부는 그리스도의 승천을, 하단부는 귀신 들린 소년이 치료받기 위해 사도들 앞에 이끌려 나오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귀여운 솔방울 분수. 새들이 많이 와서 물을 먹을 것 같이 생겼다. 회화관과 피오 클레멘티노 박물관을 이어주는 길이다. ⓒ사진=송원진

회회관을 다 보고 나니 밖으로 연결된 길이 있었다. 바로 '피냐의 안뜰(Cortile della Pigna)'로 가는 길이었다.


거대한 '솔방울 분수'가 있어 < 솔방울 정원 > 이라고도 불리는 이 곳은 회화관과 피오 클레멘티노 박물관을 이어주는 길이다. 정원이라고 '그냥 의자와 꽃만 있다' 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고대 로마를 상징하는 소나무의 원천, 솔방울을 모티브로 만든 '솔방울 분수' 외에도 다채로운 볼거리가 있다.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설명 표지판. 정작 '천지창조'가 있는 시스티나 성당에는 이런 표지판이 없다. 물론 사진도 전혀 찍지 못한다. ⓒ사진=송원진

또 이곳에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자세히 설명해주는 표지판(?)같은 것이 있다. 처음엔 왜 이런 곳에 '천지창조'의 설명문이 있지? 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천지창조가 있는 시스티나 소성당(Cappella Sistina)에는 아무 설명이 없고 또 거기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정말 목이 빠져라 천장을 자세히 보는 일 밖에 할 수 없다. 작지만 의외로 규모가 있는 시스티나 소성당엔 정말 많은 그룹의 관광객들이 목디스크가 걸릴 정도로 천장을 쳐다본다.


재미있는 건 처음엔 모두들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점점 웅성거림으로 바뀌다 어느 순간 꽤 크고 요란한 웅성거림으로 변한다. 그러면 관리인이 "조용히! 조용히!"를 외친다. 그러면 갑자기 조~용 해지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이걸 몇분 단위로 반복하게 되는데 어떤 사람들은 천장화를 보기엔 너무 목이 아프다고 아예 바닥에 드러눕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그러면 어떻게 아는지 관리인이 달려오고 누워있던 사람은 그냥 바닥에 앉아서 보기 시작한다.


너무나도 뚜렷한 그림에 넋이 나간다. 1512년에 그려진, 500년 전에 그려진 그림이 어떻게 이렇게 뚜렷할 수 있을까? 또 하나는 그림이 아니라 채색된 조각같다는 것이다. 너무 신기해서 눈을 여러 번 깜빡이고 비비고 쳐다봐도 그림이 아니라 조각 같았다. 역시 조각가 미켈란젤로의 작품다웠다.


이 작품 하나만을 보기 위해서라도 바티칸 박물관은 꼭 와볼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이 그림 때문에도 바티칸에 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바티칸엔 카톨릭 사제들만이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순간적으로 개종을 해야하나 고민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바티칸의 작품들과 환경이 준 영향이 참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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