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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코드 Sep 09. 2024

[이탈리아 남부] 아말피 레몬주스와 사탕에 홀릭한 사연

천상의 도시 소렌토, 아말피, 포지타노와 비운의 도시 폼페이


레몬 맞아?


싼 게 비지떡이라더니 그런가 보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 노점상도 별 수 없군 하고 속으로 투덜거리는데,



하나도 안 써.


이건 또 뭐람? 레몬이 시면 셨지 쓸리 있나? 가왕에 이 먼 곳까지 왔는데 명품을 안 먹어보면 되나 싶은 꿈이 부서져 내렸습니다.



별로 시지도 않은데...



소렌토, 아말피, 포지타노, 폼페이. 라인업만으로도 여행 부심이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 이탈리아 남부의 대표 지역입니다. 폼페이를 거쳐 소렌토, 포지타노, 아말피 순으로 동선을 짤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유적지인 폼페이를 제외하고 소렌토, 포지타노, 아말피는 비경에서 우열을 가리기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평생 한 번은 꼭 가 볼 곳’으로 빠짐없이 등장하는 삼총사입니다.



아마도 전에는 아말피 대신에 카프리섬이 들어갔던 모양인데 요즘엔 아말피가 떠오르는 샛별 대접을 받니다. 아말피에선 발 디딜 틈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어김없이 해안 절벽에 건물이 들어서 경탄을 자아내는데요. 능선을 따라 한참 내려오다 보면 아말피 해안과 해안 위로 난 마을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해안엔 규모는 작지만 아름다운 해변이 있어 그곳에서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기는 관광객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상 아말피


해안 절경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아말피. 천상계의 신맛을 자랑하는 레몬 사탕은 덤

해안선을 주욱 둘러보았다면 이제 마을로 들어설 차례인데요. 흡사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건 협곡 사에 마을이 조성되어 야릇한 심상을 자아냈기 때문입니다. 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한 대목을 연상했는데요.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자 설국이었다.” 탁 트인 해안과 안으로 깊이 팬 협곡이 묘한 대조를 이루며 이곳이 비경인 까닭을 웅변하는 듯했습니다. 마을 입구에 두오모라는 이름의 제법 큰 성당이 있습니다. 그리 크달 것 없지만 대단히 인상적인 분수도 있고요. 그 앞에 의자도 있어서 잠시 쉬다 갈 수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정확한지는 자신할 수 없습니다. 거리 좌우로 각종 장식품을 파는 가게와 음식점들이 즐비한데요. 시간만 허락한다면 어느 음식점이든 들러 호기롭게 지역 특산물을 즐기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되겠지요.



꼭 사야 할 물건이 있다는 것,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국산 레몬 과립이나 레몬 사탕의 경우 입에 털어 넣고 입안에서 한참 굴리다 보면 쓴맛이 나는데 이곳 사탕은 쓴맛이 전혀 나지 않습니다. 풍부한 일조량과 지중해 바람 탓인지 이 지역 레몬은 알이 굵고 신맛이 깔끔합니다. 지역 레몬 100%를 사용해 만든 사탕이라 처음 입에 넣었을 때부터 조금 남은 덩어리를 이로 깨뜨려 먹을 까지 상큼하고 멋스러운 신맛이 그만입니다. 전 제대로 홀릭되고 말았습니다. 5 봉지를 사서 같이 간 분들에게 4봉을 나눠주고 한 봉만 가져왔는데 봉지에서 사탕 하나하나를 꺼내 먹는 내내 아쉬움이 커져만 갔습니다. 아직 10개나 있네, 가 아니라 이제 겨우 20개만 남은 현실 때문에 말이죠. 이번에는 큰맘 먹고 10봉을 살 작정입니다. 그전에 카프리섬 투어냐 아말피 투어냐를 놓고 고심 끝에 아말피를 택하는 ‘알흠다운’ 장면이 연출된다는 조건에서요. ‘아름다운’ 곳에서의 ‘알흠다운’ 결말은 정말 잘 어울릴 겁니다.



이상 소렌토


소렌토 비경과 함께 레몬주스 한 잔의 추억

폼페이 유적지에서 능선을 따라 난 길을 차로 20여 분쯤 구불구불 오르다 보면 전망대에 이르는데요. 전망대까지 올라오며 차창으로 내다본 풍경에 잔뜩 넋 나간 정신줄을 다잡고 비경이 눈에 켜켜이 꽂힌 탓에 가뜩이나 얼얼해진 몸도 다스를 겸 차에서 내리면 하, 또다시 시야를 강타하는 풍경에 녹초가 되고 맙니다. 이건 뭐 10회 전 시합을 마치고도 승부를 못 낸 권투 선수에게 연장전을 치르라는 것과 마찬가지 시추에이션이더군요. 동공에 불을 지른 녀석은 소렌토입니다. 케이크 위를 한 치의 틈도 없이 촘촘히 바른 생크림처럼 절벽 아래도 소렌토가 얼마나 달달한 모습을 드러내던지 깜짝 놀랐습니다. 뛰지도 않았는데 갈증이 또 얼마나 솟구치던지?



혹시나 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말이 전망대지 건물 하나 없는 이곳에 노점상이 떡. 역시나 노점상은 만국공통어라는 확신에 기름을 부은 것도 잠시 늘어선 줄에 아연실색하고 말았습니다. 한참을 기다려 레몬주스 한 잔을 받아 컵 윗부분에 조심스럽게 입술을 가져다 대는데 천상의 맛도 이런 천상의 맛이 없더란 말이죠. 오리지널 레몬 한 개를 갈아 준 건데 우리가 익히 아는 그렇고 그런 신맛은 온데간데없더군요. 결국 레몬주스 맛에 홀려서는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 잠시 쉰 포지타노 인근에서 또 다른 노점상을 습격하기까지. 아뿔싸 거기선 석류 주스만 팔더군요.. 위에서 한 잔 더 마시고 내려올걸. 아쉬운 대로 석류 주스를 단숨에 들이켜는데 이마저도 천상의 맛이라니, 이쯤 되면 소렌토와 아말피의 ‘레몬 빠’가 되는 것도 하등 이상할 까닭이 없지 싶었습니다. 노점상 주인에게 잘 마셨다는 말을 한 대여섯 번은 한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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