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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코드 Sep 10. 2024

폼페이, 나른한 그림자.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단 18시간 만에 사라진 도시


폼페이, 길게 부르면 마치 한 줌 남김없이 부서질 것만 같은 나른한 그림자
- 과시적 소비의 극한 화려한 주택, 연일 격투가 벌어진 원형 경기장, 등불 밝힌 주점은 한바탕 봄꿈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잿더미로 화한 비운의 도시 폼페이. 존재 자체가 전설로 남은 그 시절 폼페이를 처음 만난 건 어떤 소설에서였습니다. 더할 나위 없는 풍요와 더 추락할 수 없는 향락이 크레센도로 울려 퍼진 도시에 다양한 군상이 등장합니다.



"여름의 마지막 더위가 한창인 8월 하순의 네아폴리스만. 로마 최고의 전성기를 자랑하듯 해안의 화려한 대저택에서 휴가를 즐기는 로마 제국의 부호들과 한가롭게 닻을 내린 세계 최대 규모 로마 함대는 이 평화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네아폴리스만 일대의 아홉 도시, 25만 인구에 물을 공급하는 아우구스타 수도교의 책임자 아틸리아수는 전임자의 실종을 비롯, 폼페이의 귀족 암플리아투스의 거대 양식장에서 나기 시작한 한줄기 유황 냄새로 이 도시에 알 수 없는 위기가 닥쳐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신의 힘으로도 제압할 수 없는 폼페이의 최후가 시시각각 다가오는 가운데, 아틸리우스는 탐사대와 함께 베수비우스 산으로 향하는데…"





모 인터넷 책방에 소개된 아주 짧은 줄거리입니다. 극적 긴장감을 잘 살린 문장이라 가필 없이 싣습니다. 작가 로버트 해리스는 이 작품으로 ”화려한 고대 로마 문화 묘사와 인류사 비극의 순간에도 빛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보여주었다는 찬탄을 받습니다. 작품명은 《폼페이》입니다. 이 책을 구입한 시점은 20년이 조금 못 된 시기였던 것 같은데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지는 못했습니다. 그 후로 한두 번 더 완독에 대한 강력한 동기가 있었던 듯한데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누렇게 바랜 채로 책장에 꽂히는 비운을 겪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책마저 도시 폼페이와 운명을 같이한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이참에 읽을 결심을 새로 합니다. 작품에는 매력적인(?) 인물 4명이 등장합니다. 다음은 출판사의 소개글입니다.



"영토 확장과 함께 대제국을 건설했던 로마는 늘어나는 인구에 꾸준히 물을 공급해야 했고 이에 근처의 산에서 물을 끌어오기 위한 수로와 수도교를 건설했다. A. 트레버 호지의 《로마의 수도와 급수》에 따르면 “기원후 1세기의 로마 시에는 1985년의 뉴욕 시보다 훨씬 많은 물이 공급되었다.”라고 하니 로마 수도 시설이 어느 정도로 발달했는지는 짐작할 만하다. 《폼페이》는 바로 이 수도교를 관리하는 아쿠아리우스(수도기사)인 아틸리우스라는 청년이 화산 폭발 이틀 전, 갑작스럽게 끊긴 수도관에서 유황 냄새를 맡으면서 이상의 기후를 감지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나 사태를 파악하려는 아틸리우스를 방해하는 것은 거대한 힘을 지닌 자연이 아니다. 바로 탐욕과 이기로 점쳐진 인간들이다.


로버트 해리스는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로 인한 폼페이 멸망을 작품의 소재로 잡았지만, 그 이면으로는 로마의 이런 찬란한 문화를 다룸과 동시에 현대의 상황과도 다를 바 없는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지진으로 초토화된 마을에 홀로 남아 빈집을 이용한 부동산 사업을 벌여 떼부자가 된 노예 출신 귀족 암플리아투스, 아우구스타 일대의 수도가 끊긴 것을 이용해 오히려 이익을 취하려 하는 폼페이의 관료 포피디우스, 화려한 젊은 시절을 모두 보내고 이제는 자기 연민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르는 해군 총독이자 학자 플리니우스, 그리고 아우구스타 수도관을 지켜내겠다는 철저한 직업윤리를 지닌 정직한 주인공 아틸리우스….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 이후의 영화와도 같은 급박한 작품 전개도 이 작품의 큰 장점이지만, 폭발 이전까지 이어지는 각 인간군상들에 대한 절묘한 표현과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심리전은 후반의 블록버스터적 재미와는 또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작품을 읽을 동기는 이미 충만합니다. 18세기에 비로소 발굴을 시작해 여전히 발굴 중인 비운의 도시 폼페이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비단 화려한 저택과 원형 경기장, 너른 빈터, 주점뿐만이 아닙니다. 용암과 화산재를 피해 달아나다 결국은 쓰러져 얼굴을 감싼 채로 화석이 된 인간, 애인을 부둥켜안고 마지막 생을 처연히 맞은 연인들의 뜨거운 그림자, 애처로운 인간들고통에 찬 얼굴. 폼페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훅 끼치는 아우성에 한참 귓전에 아릿한 공명이 퍼지는 것도, 화산석 사이에서 겨우 자란 풀잎들의 묵언에서, 그날의 그 자리가 절대 가볍지 않음을 소스라치게 깨닫고는 이내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 경고에도 불구하고 향락에 취해 혹은 영원한 번영을 과신한 탓에 폼페이를 떠나지 않은 다수 시민이 죽음을 맞은 것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숭고한 인간 생명의 가치에 관해서는 누구도 경중을 따질 수 없기에 폼페이가 이룬 문명의 장대함을 마냥 경탄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탄성이 안으로 잦아든 곳에 깊이 눌러둔 한숨이 통제 없이 터져 나오는 아찔한 느낌에 한참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 탓에 그곳의 기억은 사실 많지 않습니다. 주작 대로 좌우로 펼쳐진 고급 주택과 정돈된 주점에서 폼페이 사람들의 비일상적인 삶을 더러 유추하기도 했지만 그 모습은 잔상이 거의 남지 않을 만큼 휘발되었고, 화랑과 광장에 울려 퍼졌을 가파른 웃음과 왁자지껄한 대화는 손쉽게 폐허에 묻혔습니다. 그곳을 한 번 더 들르는 까닭은 이번에는 심상한 눈으로 대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 때문입니다. 하릴없이 부서질 기대라는 걸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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