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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코드 Sep 10. 2024

[어떤 세상] 상사 입맛에만 맞으면 허위든 뭐든 오케이


흠결투성이 혹은 허위 계획이라도 상사 입맛에만 맞으면 그만. 훌륭한 계획으로 둔갑하기. 세상 둘도 없는 바보가 그런저런 바보를 가려내라는 구도. 구조적으로 정상화가 불가능한 집단



판단력 부재가 심각한 수준이다

순수 이성 비판 등을 쓴 칸트를 상고하자는 말이 아니다. 글자 그대로 판단력이 결여될 때 거기서 기인하는 악영향을 숙고해 보자는 얘기다. 여기 부하직원과 상사가 있다. 상사 위에는 더 높은 직위를 가진 사람이 있다. 이들 상사는 부하직원이 올린 계획서 등을 검토하고 승인할 책임이 있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들은 시세 판단이 남다르고 실무에도 밝다는 점에서 존중받을 위치에 있다. 알고 보니 이들의 판단력이 형편없다면 앞서 언급한 장점은 사실 별 소용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허명에 가깝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믿을 만한 소식통에 의해 그들이 업에 관심 자체가 없다는 사실에 이르게 되면 조직이 두 쪽 나도 이상할 게 없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상사가 부하직원의 빗나간 의도를 알아채려면 질문의 순도를 높여야 하는데, 상사부터 일에 관심이 없거나 관심이 있더라도 입술을 적시는 달콤한 말만 들으려 하니 예리한 질문은커녕 시의적절한 질문을 던질 수 없고, 따라서 그런 질문을 통해 계획의 흠결을 짚어내는 건 현실 세계에선 아주 불가능한 꿈이 되는 것이다. 사태를 파악한 직원이 대충 설명한 뒤 예산 절감액이 얼마라고 쐐기를 박으면 왜 이제야 그 말을 하느냐는 표정을 담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기 바쁘다. 주위에서 계획의 타당성이나 절감액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더라도 일단 윗선을 통과하면 허위투성이의 계획이 ‘신의 한 수’로 둔갑하는 건 시간문제다. 더 큰 문제는 그 사람 다음에 일어난다.



상사의 눈에 든 그 계획이 바로미터가 되는 것. 이 조직에 상사의 입맛에 맞춘 계획들이 난무하는 이유다. 고객을 이롭게 할 목적에 부합해야 할 계획이 고객에 해악을 끼치는 괴물이 되는 것, 일상다반사다. 이를 막으려면 결국 감사든 감사 할아버지가 나서서 이 잡듯 잡아야 한다. 이마저도 겨우 바뀌는 시늉에 그치는 게 현실. 외부 감사가 그 정도인데 내부 감사에 무엇을 기대하랴! 내부 감사를 포함해 감사라는 외피를 두른 그 외 어떤 것도 이들 세상에선 짜고 치는 고스톱 이상이 되지 못한다. 상 바보가 보통 바보를 가려내려니 어디 그게  일인가?





심상찮은 바람이 분다

사실 관계가 아니라 법리를 다투는 최종심에서마저 하급심에서 부인된 구태의연한 주장을 거듭한다면 패소는 불가피하다. 더욱 당사자가 원고라는 점에서 이런 패착이 용인되어선 안 될 상황임에도 그렇다. 법문을 바탕으로 상대의 주장 요지, 특히 2심의 결정을 빈틈없이 공박해도 모자랄 판에 마지못해 쓴 몇 줄로 하급심 판결이 바뀌길 바라는 건 쓸데없는 욕심이다. 단 몇 줄의 그 글마저 1,2심에서 패소한 주장을 반복하고 있어 과연 상고를 한 당사자가 맞는지 의구심마저 든다.



최근 들어 부쩍 이상야릇한 바람이 불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일을 처리하거나, 이런 경우 과연 바쁜지도 의문이다, 토씨 하나 안 바꾼 기존 주장으로 요행을 바라는 심리가 만연한 것도 같잖은 이들의 득세 또는 온존과 무관치 않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 통에 다들 픽픽 쓰러지기 일쑤다. 정말 크게 낭패볼 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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