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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코드 Sep 11. 2024

상하가 얼마간 불편해야 근간이 무너지지 않는다.

위는 아래를 시종 부리듯 하고 아래는 시종을 자청하는 기가 찬 상황


위아래에 위계가 서고 상하 상호 간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특히 부장이 차장을 어려워해야 한다. 차장이 직속상관인 부장에게 깍듯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부장이 차장을 가볍게 생각한다면 부장이 부서를 쥐고 흔드는 건 경험상 시간문제일 뿐이다.  더 황당한 건 차장이 아예 부장의 시종 역할을 자임할 때인데 이런 경우 대다수 부서가 부장의 사유물로 전락하는 걸 막을 수 없다. 차장이 부장 앞에서 바짝 몸을 낮추는 것이야 근평을 잘 받으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자신의 승진 욕심과 부서의 장래를 맞바꾼 것이어서 예후가 좋지 못하다.



가관은 그런 차장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는 것. 우습지 않은가. 그동안 부장이라는 우산 아래서 누릴 거 다 누리고 얻어먹을 거 다 얻어먹은 주제에 피해자리니? 당시는 부장의 위세가 워낙 세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그나마 부장의 지위가 전에 비해 볼품없이 되었을 때 태세전화용으로 하는 변명일 뿐임을 다들 안다. 정말 부장의 수족 질을 한 것이 마지못해 한 것이라면 부장의 권력이 시퍼렇게 살아 있을 때 그런 자신의 처지를 토로하거나 애초에 부장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한 전례가 있어야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을 터다. 그렇게 얻은 부스러기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쓰레기일 뿐이다. 그걸 얻어먹으려고 온종일 예, 예 하는 것이 얼마나 비루한 지는 따로 말하지 않겠다.



차장의 몰지각한 처신으로 부서는 질서가 무너지는 호된 경험을 이어가고 있다. 덕분에 차장은 오늘도 호가호위를 이어간다. 부서에서 통용되어야 할 기본적인 에티켓이나 기초적인 도독률은 벌써 무너졌고 ‘일은 알아서 대충, 상사 비위를 맞추는 데는 혈안’이 된 대단히 기형적인 조직이 되고 말았다. 잔뜩 이빨을 드러낸 채 먹잇감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승냥이에게 남의 살을 헌납한 결과다. 누구들은 배불러서 좋겠다. 나만 먹잇감이 안 되면 돼,라는 자기 편의적인 생각이 부른 참사다. 먹잇감 하나로 만족할 승냥이라면 본색을 드러내지 않았을 터. 이방이 달라붙어 날개를 단 마당에 거칠 것 없다. 죄다 잡수시라. 내 알 바 아니다.



사르다나팔로스의 죽음, 외젠 들라크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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